실록 - 장군님의 전사들

여섯 번째 이야기

“현대판 ‘임꺽정'들”

조선 역사를 보면 황해도의 백정 출신 임꺽정이 양반들의 학정에 반대하여 무장단을 조직해 싸운 기록이 있다. 북한에서는 이것을 「임꺽정」이라는 영화로 만들어 상영한 바 있다. 그래서 북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임꺽정에 대해 알고 있다.

그런데 임꺽정이 활동한 지도 수백 년이 지나갔건만 갑자기 임꺽정이 북한 전역에 퍼져나갔다. 옛날에 양반이나 잘사는 놈들은 임꺽정의 청석골과 탑고개를 무서워했건만 이 청석골과 탑고개가 지금은 북한의 전 지역에 생겨난 것인즉, 헌데 이상한 것은 우리가 알기로는 옛날의 청석골과 탑고개에서는 잘사는 놈들의 재물만 빼앗고 못사는 사람들에게는 재물을 보태준다고 들었건만 웬일인지 지금 북한의 청석골, 탑고개에서는 오히려 못사는 백성들의 호주머니까지 깡그리 털어 내니 어찌된 일인지……. 구천의 임꺽정이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랴! 이제라도 구천에서 달려나와 자기 이름 팔아먹는 못된 놈들을 혼이라도 내줬으면 좋으련만.

북한 사람 치고 말을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는 이 청석골과 탑고개는 바로 ‘인민군 전사들이 지나가는 백성들을 강탈하는 곳’을 말한다. 북한 전 지역에 이곳이 없는 곳은 없다. 아무 곳이나, 그 어디를 가도 청석골과 탑고개는 다 있다. 도적질도 시원치 않아 이제는 강탈질도 서슴지 않는다. 백주에도 출몰하여 행인들의 물건을 빼앗는가 하면 몇 명씩 떼를 지어 개인집도 약탈한다. 공공장소에서도 혼자 있다든지, 사람들의 행적이 좀 덜하다든지 하면 강제로 위협해서 돈과 물건을 빼앗는다.

지금이야 나라에서 먹을 것도 주지 않으니 장사를 안하면 굶어죽게 되어있으므로 북한사람치고 장사를 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인데, 장사길을 다니는 백성들의 공포의 대상이 청석골, 탑고개이다. 현대판 임꺽정들은 행인들이 잘 지나다니는 길목의 외진 곳에서 ‘세금’을 항상 받아들인다. 어떤 때는 물건을 모조리 빼앗기도 한다. 물론 울며 불며 사정해보았자 소용없는 짓이다.

우연히 만난 군대아저씨가 마음이 곱다고 생각하여 혹시 동행하게 되면 외진 곳에서 갑자기 임꺽정이 되어 버린다. 짐을 지고 길 떠난 사람들은 항상 마음이 긴장되어 있다. 그 유명한 임꺽정이 과연 어디서 출몰할까? 오늘은 탑고개를 어떻게 지나가랴?

나도 여러 번 겪어보았다. 한번은 누이네 집에 가려고 차를 얻어 타고 떠났는데 장사꾼들이 차에 스무 명 가량 함께 탔다. 산골길을 달리다 차가 고장이 나서 다들 내렸다. 할 수 없이 걸어가기로 작정하고 모두가 걷기 시작했다. 내놓고 말은 안 해도 누구나 마음은 긴장하고 있었다. 임꺽정의 출현을.

‘오늘에야 안 나오겠지,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뭘…….' 서로가 자신을 위로하고 있는데, 갑자기 군인들 여러 명이 불쑥 나타났다. “달아나는 놈은 바로 죽여버려! 이제부터 짐검사를 하겠다!” 그리고는 울고불고 법석을 떠는 아낙네들의 비명에도 아랑곳 않고 돈과 짐을 빼앗는 것이다. 그런데 그 중 두목인 듯한 사관이 낯이 익어 가만히 보니 언제인가 나에게 침을 맞은 사관이었다. 그에게로 다가가니 이내 알아보고는 인사를 했다.

“아, 선생이로구나. 정말 안됐다.” “나와 동행하는 사람들인데 좀 봐주지 그런가.” “오늘은 우리 차례이지만 내일이면 다른 애들이 나옵니다. 오늘 빈손으로 들어가면 며칠 동안 술 마실 돈도 없습니다. 좀 모르는 척 해줘요.” “너네 그러다가 제기(발각)되면 어쩌나” 하고 물으니 “아, 다들 이렇게 하는데 제기하면 다 제기하겠나”면서 “걸리면 인민군대 다 걸리는데……”라고 대답했다. 우리 ‘영웅적’ 인민군대가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실록: 장군님의 전사들
프롤로그 / 나가자 인민군대 / 처음부터 신발 잘 신겨라 / 쟤들이 싸움이나 하겠노? / 우린 나라를 지킨단 말이야 / 훈련에서 배운 습격전을 실천에 옮긴다 / 현대판 '임꺽정'들 / 잔재주는 따를 사람이 없어 / 1900년대 태생은 다 동갑 / 장군님의 전사들과 누가 감히 맞서? / 이수복 영웅은 화구를 막았지만 나는 달리는 차를 막았소 / 한창 나이의 전사들 / 장사의 능수들 / 병사들의 제대준비 /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