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 - 장군님의 전사들

네 번째 이야기

“우린 나라를 지킨단 말이야”

『청제비 쌍쌍 춤추는 봄날에 모내기 흥겨워라
앞에는 땅크병 뒤에는 농장처녀
모기계 함께 타고 모를 심어요
군민은 한마음 행복을 심으며
군민일치 꽃을 피워요』

이 노래에도 있듯이 북한은 ‘군민일치'(軍民一致 ; 군대와 인민은 하나)를 북한군의 전통이라고 자랑한다. 북한에서 주민 선전교양용으로 쓰는 책자 가운데 「항일빨치산 참가자들의 회상기(回想記)」라는 것이 있다. 여기에는 “사령관도 인민의 아들입니다”, “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군대도 인민을 떠나서 살 수 없다”는 말을 나열하면서 “인민군대는 인민을 위한 진정한 군대”라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은 이것도 우리 속담으로 ‘빛 좋은 개살구’ - 하나의 선전 구호이자 빈말로 되어버렸다. 만약 아직도 군민일치를 논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느 아득한 구석기시대 사람이 아닌가 싶다.

참기 어려운 배고픔과 구타, 욕설. 이런 환경에서 오직 자라나는 것은 ‘악심'(惡心)뿐이다. 어디 해볼 데는 없지, 전쟁이라도 꽝하면 실컷 싸움이라도 해서 밸(화)풀이라도 하련만 그것도 불가능하니 상대는 오직 적수공권(赤手空拳)의 인민들뿐이다. 지금은 더구나 선군시대, 군대제일주의인지라 군대가 인민 위에 있는데 감히 누가 우리를 막으랴!

점점 이러한 흐름이 형성되다보니 이제는 군대가 인민을 못살게 굴고 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침해하는 모든 현상들이 하나의 기정사실로 돼버리고 말았다. 지난날 군민일치를 꽃피웠다던 인민군대는 오늘날에는 인민들의 원한과 공포의 대상으로 되고 있다. ‘장군님의 전사’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지금 나라를 지키고 있으니 편안히 살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인민군대가 없으면 벌써 미국놈들이 쳐들어와서 노예가 된 지도 옛날일 것이다." 내가 북한에 있을 때 겪은 일이다. ○○군에서 의사로 근무할 당시였는데 급한 환자가 있어 왕진을 나간 적이 있다. 차가 없다 보니 뜨락또르(트랙터)를 잡아타고 가는데 한참 달리던 차가 멈춰서는 것이었다.

앞을 보니 뜨락또르 몇 대가 퉁탕거리며 서있는데 길 한가운데를 자행포(自行砲 ; 한군국의 자주포(自走砲)에 해당) 견인차가 가로막고 있었다. 법석대는 소리가 들려와 차에서 내려 다가가 보니 한 늙은이와 군인들이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견인차 운전수와 같이 나온 전사들은 내가 알만한 군인들이어서 왜 그러는지 사연을 물어보았다. 사연인즉 늙은이가 집의 염소를 방목하러 나왔다가 잠시 일이 있어 염소를 길가에 매놓고 한 시간쯤 있다가 와보니 염소가 보이지 않더란다. 염소를 찾다 고기 굽는 냄새가 나길래 가보니, 글쎄 견인차 위에서 통째로 불고기를 해 먹더란다. 너무나 억장이 막힌 늙은이는 울면서 하소연했다. 집에 있는 재산이라고는 이 염소 한 마리뿐인데 그것을 잡아먹었으니 과연 어떻게 하랴! 상대가 군인들이다 보니 염소 값을 받아낼 수도 없지……. 그런데 군인들이 하는 소리가 더 가관이다.

“노친, 그쯤 한 것 가지고 울긴 왜 울어대? 사람이 죽었나? 아, 우리가 나라를 지키고 있으니 노친네가 이쯤이라도 살아 있는 거야. 군대에 지원했다고 생각하라구요!” 차라리 인민군대를 지원한다고 먼저 염소를 가져다 바쳤으면 칭찬의 말이라도 들어보련만 이를 어떡하지? 후에 내가 구분대장을 만나 그 소리를 하니 구분대장이 하는 소리가 “그거 무슨 큰일이라고, 그럴 수 있는 일이지”라고 한다.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나라를 지키고 있는데 누가 감히 우리보고 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인민을 향한 인민군대의 배짱이다.

실록: 장군님의 전사들
프롤로그 / 나가자 인민군대 / 처음부터 신발 잘 신겨라 / 쟤들이 싸움이나 하겠노? / 우린 나라를 지킨단 말이야 / 훈련에서 배운 습격전을 실천에 옮긴다 / 현대판 '임꺽정'들 / 잔재주는 따를 사람이 없어 / 1900년대 태생은 다 동갑 / 장군님의 전사들과 누가 감히 맞서? / 이수복 영웅은 화구를 막았지만 나는 달리는 차를 막았소 / 한창 나이의 전사들 / 장사의 능수들 / 병사들의 제대준비 /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