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 - 장군님의 전사들

세 번째 이야기

“쟤들이 싸움이나 하겠노?”

쟤들이 싸움이나 하겠노? 북한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다. 눈에 보이는 군인들과 사관들은 그래도 괜찮지만 전사들은 다 비실비실하다. 바람이 불면 금세 넘어갈 듯 하다. 사회에서는 굶어죽는 사람이 많다고 아무리 아우성을 쳐도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지만 그래도 장군님의 전사들이라고, 거기에다 군대제일주의 정치시대임을 공식화하고 있는지라 군대가 모든 식량을 싹쓸이해 간다.

아마 지금 이 시간에도 남포, 원산 ,흥남, 신의주 등 항구와 기차역에는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와 한국, 중국 등 여러 나라에서 보내준 지원 식량과 물자를 인수하려고 군대 차량들이 차번호를 가리고 그 위에 일반 차량 번호를 달고 줄지어 서있을 것이다. 식량이 백성들에게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지 확인하려는 국제기구와 세계의 눈을 속이고 식량을 모두 군대에 공급하려는 속셈인 것이다.

“백성들이야 굶어죽어도 일이 없지만 장군님의 전사들이 굶어죽으면 나라가 어떻게 되지?"라는 말 앞에 대들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공산군 아저씨들은 도대체 무엇을 먹는지 왜 저렇게 영양실조에 걸려 죽을 지경이란 말인가?

언제인가 내가 인민군대 한 구분대장(한국군의 대대장에 해당)의 초청으로 병 치료를 나간 적이 있다. 간염으로 진단 받은 구분대장의 병을 치료하는 동안 군관과 사관들의 병도 시간이 나는 대로 치료해주었다. 한 달 동안 치료를 하고 돌아올 때 구분대장은 물론이고 치료받은 모든 사람들이 신세를 갚는다며 입쌀을 주었는데 거의 500킬로그램이 넘을 정도였다.

자기네가 줄 것 중에 그래도 사회에서 제일 값나가는 것이 쌀이라면서 가져가라는 것이었다. 그 쌀은 모두 구분대 전사들의 식량이었다. 나는 물론 기분이 좋았지만 미안한 생각이 들어 “정말 가져가도 되는가”하고 물으니 “미안하게 생각하지 말라. 전사들이 조절해서 먹으면 되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군인들에게는 그래도 식량이 제대로 공급된다. 그러나 사회와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 군대인지라, 굶주리는 자기 부모형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오직 식량을 ‘조절하는’ 수밖에 없다. “아무개 집은 군관하는 아들이 쌀을 가지고 와서 다 죽게 생겼던 가족이 살게 되었대." “오빠, 오빠는 그래도 군관이니 이밥을 먹고 있지만 집에서는 강냉이 한 킬로에 풀을 섞어 다섯 식구가 하루를 살아요. 오빠, 좀 도와줘요!”

외면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런 말들이다. 그래서 군관들은 물론이고 사관들도 어떻게 해서든지 군대식량을 조절해서 집에 식량을 보내려고 한다. 식량을 가지고 나가 집에 필요한 물건들로 바꾼다. 그러니 군대 내에서 식량을 관할하는 군관과 사관들이 제일 애를 먹는다.

상관들은 자기의 친척이 왔다고 쌀을 퍼내 가, 아들 돌 잔치한다고 쌀을 퍼내 가, 애인의 집에 누가 죽었다고 퍼내 가, 잔칫집 부조한다고 퍼내 가, 엊그제 제대한 사관장(각급 중대의 특무장, 중대의 살림을 도맡아 한다) 집에 가보니 생활이 한심해서 도와주기 위해 퍼내 가……. 좌우간 온갖 핑계를 다 만들어내 못 퍼내 가 안달일 지경이다. 이것을 안주지도 못하겠지, 그렇다고 몽땅 퍼주었다가는 걸리겠지, 결국은 힘없는 전사들이 골탕을 먹는다. 국가에서 지정한 양의 쌀을 먹어야 하겠으나 다들 퍼 내가다 보니 남은 것을 ‘조절해’ 먹어야 한다. 그러니 강냉이밥에 염장무 한 조각을 얻어 먹는 것도 다행일 수밖에.

그러니 영양실조에, 허약에 걸릴 수밖에. 오죽 허약 환자들이 많으면 군관 한 명이 허약 환자 한 명씩을 맡아 보살피는 제도를 만들었겠는가? 그것도 모자라 일단 허약에 걸리면 군대병원에서도 어쩔 수 없어 집으로 보내버린다. 먹을 것도 없어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는 집에 오면 어쩌겠는가.

실록: 장군님의 전사들
프롤로그 / 나가자 인민군대 / 처음부터 신발 잘 신겨라 / 쟤들이 싸움이나 하겠노? / 우린 나라를 지킨단 말이야 / 훈련에서 배운 습격전을 실천에 옮긴다 / 현대판 '임꺽정'들 / 잔재주는 따를 사람이 없어 / 1900년대 태생은 다 동갑 / 장군님의 전사들과 누가 감히 맞서? / 이수복 영웅은 화구를 막았지만 나는 달리는 차를 막았소 / 한창 나이의 전사들 / 장사의 능수들 / 병사들의 제대준비 /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