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 - 장군님의 전사들

첫 번째 이야기

“나가자 인민군대”

아마 인구비례로 따질 때 세계에서 군인이 제일 많은 나라가 북한일 것이다. 요즘 한국의 신문에 나온 자료를 보니 한국군의 전력이 북한군의 64∼74%정도라고 한다. 군인 수도 그렇고 무장장비도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무장장비는 모르겠지만 군인 수에 있어 한국군이 북한군에 비해 월등히 적은 것은 한 눈에 알 수 있다.

한국군은 어디에 꼭꼭 숨어사는지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군복 입은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지만, 북한에서는 길거리나 공공장소 등 그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군인들이다. 아마 젊은이들 가운데 장애인과 고질병 환자를 제외하고는 거의가 다 군인이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정도로 군인이 많다. 이것은 내 개인적인 견해가 아니라 북한 사람이면 한결같이 갖는 생각일 것이다.

북한에서는 중학교나 전문학교를 졸업한 17∼18세의 나이에 입대를 한다. 한국에서는 2년 2개월의 군복무 기간이 길다고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2개월 단축’을 내걸고, 딱 2년밖에 안 되는 시간이 뭐 그리 길다고 입대하기 전에 애인이랑 부둥켜안고 질질 짜던데, 북한 청년들은 군대에서 10여 년의 청춘 시절을 훌쩍 날려버리고 그 동안에 휴가라는 것도 없다시피 한다. 한국에서는 2년의 기간을 그 무슨 커다란 상실처럼 생각해 어떻게든 군대를 빠져보려고 머리를 굴리다 ‘병역비리’가 보도되기도 하지만, 북한에서는 10년 세월을 보내는 그 군대를 서로 가려고 아우성이다.

과거 북한에서는 인민군대에 나가는 것을 아주 자랑스러운 일, 영예로운 일로 여겨왔다. 남자라면 응당 군대에 갔다와야 사람 구실을 하는 것으로 여겼고, 제대군인이라면 어디서나 인정을 받았다. 간부사업은 물론이고 심지어 결혼할 때 여자 쪽 부모들은 상대방 남자가 제대군인인가를 제일 먼저 물어볼 정도로 사회에서 각광을 받는 것이 군 출신이었다. 현역 군관에게 시집을 간 경우에는 성공한 것으로 모두가 부러워했다. 자식을 군대에 내보낸 부모들은 인민군대 후방가족으로 존경을 받았고 대우를 받았다. 그러니 자식들을 키우면 군대에 내보내는 것을 당연한 의무로 여겼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나도 달라졌다. 시대가 변하면서 북한 인민들의 군대에 대한 인식도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는 자식들을 군대에 내보내기를 꺼려한다. 이제는 군대에 나갔다 오면 사람구실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질을 못하는 몹쓸 인간으로 되어 버린다’는 것이 북한 사람들의 하나같은 인식이다.

지금 북한에서는 백성들은 굶주려도 군대만은 먹을 것을 보장한다고 사람들이 알고 있다. 물론 그런 측면이 있지만 군대 내 상관들의 부정과 비리로 인해 전사(군관이 아닌 일반 병사)들은 먹을 것을 충분히 보장받지 못하고 하루 밥 세끼나 겨우 먹을 정도이다. 한창 자랄 나이에 고된 집단생활 속에서, 더구나 충분한 양을 먹지 못하다보니 거의 모든 전사들이 허약증(영양실조)에 걸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이것이 지금 북한 사람들이 자식을 군대에 내보내지 않으려는 원인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옛날에는 군대에 나가는 자식들을 바래주면서 부모들은 이렇게 말했다.
“군사복무를 잘하거라. 꼭 당원이 되어 떳떳이 돌아오너라." 그러던 것이 오늘날에는, “애야. 입당은 못해도 좋으니 어떻게 해서든 죽지말고 살아서 돌아오너라. 절대로 도적질과 강도질은 배우면 안 된다. 부모들을 생각해서라도 말이다." 이렇게 바뀌었다. 일부 사람들은 “집에 있으면 굶어죽지만 군대에 나가면 밥이라도 매끼 먹을 수 있다”면서 자식을 군대에 보내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경우는 드물다. 북한 사람들 거의 모두가 지금은 자식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할 수 없이 군대에 보내고 있다.

내가 잘 아는 함경남도 ○○군의 군사동원부장이 있었다. ‘군사동원부장’이라 하면 군인 모집을 담당하는 책임자이다. 그는 생활 형편이 정말 좋은 편이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군의 의사로 배치되어 갔을 때, 그는 1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그 도시의 군사동원부장이었다. 어느날 초대를 받아 그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고난의 행군’ 시기인데도 그는 정말 잘 살고 있었다. 10년 전보다 생활이 더 나아져 있었다.

“고난의 행군시기인데도 어떻게 이렇게 잘 살 수 있습니까?" 그러자 그의 대답이 변화된 현실을 잘 설명해주었다. “과거에는 서로 군대에 가겠다며 훈련이 힘든 특수 병종(兵種)에 보내달라고 뇌물을 가져다 바치더니, 지금은 어떻게 해서라도 자식을 군대에 안 보내려고 뇌물작전을 하네. 그러니 차라리 지금 벌어먹기가 더 좋아." 실제 내가 방문했던 그날 저녁, 한 나이 먹은 늙은이가 그의 집을 찾아왔다. 자식을 군대에 보내게 된 할머니였는데, 양손에는 닭을 두 마리 들고 있었다. 그 늙은이가 닭을 바치면서 군사동원부장에게 통사정을 했다.

“부장어른, 제발 우리 아들 좀 봐주시오. 그런 약골이 군대나가면 허약 걸려 죽지요, 죽지.” “할머니, 내가 그걸 마음대로 어떻게 해요? 봐주고 싶어도 나라에서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어요.” 부장의 매정한 거절에 할머니는 울음을 터트렸다. “아이고 부장어른…, 그렇다면 내 자식 좀 헐한 데로라도(편한 곳으로라도) 보내주시유. 아이고, 아이고….”

『나가자 인민군대 용감한 전사들아 인민의 조국을 지키자 목숨으로 지키자』

이것은 북한의 어디에서나 불려지는 대중행진곡이다. 하지만 지금 북한 인민들은 ‘나가자 인민군대’가 아니라 어떡하면 자식들을 ‘안나가자 인민군대’로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다.

실록: 장군님의 전사들
프롤로그 / 나가자 인민군대 / 처음부터 신발 잘 신겨라 / 쟤들이 싸움이나 하겠노? / 우린 나라를 지킨단 말이야 / 훈련에서 배운 습격전을 실천에 옮긴다 / 현대판 '임꺽정'들 / 잔재주는 따를 사람이 없어 / 1900년대 태생은 다 동갑 / 장군님의 전사들과 누가 감히 맞서? / 이수복 영웅은 화구를 막았지만 나는 달리는 차를 막았소 / 한창 나이의 전사들 / 장사의 능수들 / 병사들의 제대준비 /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