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법치주의 원칙은 어디에? 인쇄하기
이름 NKnet
2022-04-26 10:33:40  |  조회 19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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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법치주의 원칙은 어디에? 

“법치국가원리의 한 표현인 ‘명확성의 원칙’은 기본적으로 모든 기본권 제한 입법에 대하여 요구된다. 규범의 의미내용으로부터 무엇이 금지되는 행위이고 무엇이 허용되는 행위인지를 수범자가 알 수 없다면 법적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은 확보될 수 없게 될 것이고, 또한 법 집행 당국에 의한 자의적 집행을 가능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 헌재 2002. 1. 31. 2000헌가8, 판례집 14-1, 1, 8.

‘명확성의 원칙’이란 뭐가 불법인지 법률의 표현에서 명확히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명확성의 원칙에 대해 예를 들자면, 2014년 2월에 나온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의 결과보고서가 지적한 북한 형법에 대한 비판을 꼽을 수 있겠다.

북한의 형법에서 ‘비법국경출입’을 위법행위로 규정했는데 실제로는 2010년부터 불법 월경자에 대해서 형법 제62조의 ‘조국반역죄’를 위반한 것으로 간주했다. 따라서 북한의 보위성이 ‘조국반역죄’에 따라서 교화형 5년까지 내릴 수 있게 했다는 설명이다.
즉 법률의 표현이 모호하기 때문에 COI의 권고안으로 형법의 표현을 명확하게 개정하라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북한 형법의 모호함으로 인해 ‘반인도범죄’에 해당하는 ‘자의적 구금(arbitrary detention)’이 빈번히 발생한다는 우려 또한 심각하다.

이처럼 법률에서 명확성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법치의 원칙이 제대로 서있지 않는 나라들에서 주로 발견된다. 하지만 한국처럼 민주화되고 문명의 수준이 높은 나라에서 최소한의 법치원칙인 ‘명확성의 원칙’이 무시된 법안이 나왔다니 믿기지 않는다.

한국 국회에서 의원 187명의 찬성 통과 이후, 22일 국무회의에서 심의 의결한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서 법치의 기본인 ‘명확성의 원칙’이 무시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법률 개정안의 신설되는 제 24조 ‘남북합의서 위반행위의 금지’에 대해서다.

“제 24조 (남북합의서 위반행위의 금지) (1) 누구든지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 국민의 생명 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켜서는 아니된다. 

1.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북한에 대한 확성기 방송행위
2.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북한에 대한 시각매개물 (게시물) 게시행위
3. 전단 등 살포행위”

위 세 가지 행위가 위법이 되는 조건은 ‘국민의 생명 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키는 경우이다. 하지만 실제 확성기 방송행위나 시각매개물 게시행위, 또는 전단 등 살포 행위 그 자체가 국민의 생명 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키지는 않는다. 이 행위가 위법이 되려면 이로 인해 화가 난 북한당국이 DMZ 남측을 향해 도발을 해서 국민의 생명 신체에 심각한 위험이 발생해야 한다.

예컨대, 한 탈북민이 북한의 가족이 요구하는 돈을 보내면서 전화통화로 근황을 물었다고 가정하자. 탈북민들이 일반적으로 하는 행위지만 개정된 법률에 따라 금전을 제3국을 통해 북한으로 이동시키는 행위도 ‘전단 등 살포행위’에 해당돼 범죄 혐의가 있다.

이 혐의로 처벌을 받게 될 경우는 북한당국이 이를 고깝게 여겨서 남북 간의 긴장을 고조시키자고 결정을 하고 DMZ 지역에서 장사포를 발사할 때이다. 그리고 북중 국경지역에서 탈북민들의 ‘간첩행위’를 한국 정부가 막지 못 했다며 비방하는 담화를 내보낼 경우, 이 개정 법률안에 따라 금전을 북으로 이동시킨 행위는 위법으로 처벌 대상된다.

그렇다면 북한 당국이 도발하지 않을 경우에는 해당 법에 저촉되지 않아서 위법이 되지 않는가. 또는 북한 당국이 도발은 했지만 어떤 행위 때문에 북한 당국의 심기가 불편해졌는지는 어떻게 알아 낼 것인지 의문도 생긴다. 즉 북한의 특정 도발행위와 대북정보유입 활동은 어떻게 인과관계를 연결 지어서 처벌 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차라리 북한 당국이 도발행위를 한 이후, ‘이번 포사격은 몇월 며칠에 남조선(한국)의 선교 단체가 조중(북중) 국경지역으로 외부저장장치 100개를 몰래 들려보냈기 때문이다’고 발표한다면 그 단체는 기소돼 재판 받고 처벌 받게 될 것인가?

“국민의 생명 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켜서는 아니된다”는 표현에서 또 다른 의문점이 생긴다. 위험을 발생시키는 원인 즉 북한 도발의 원인으로 위 세가지 행위를 위법시 한 것이나 다름 없다. 그렇다면 북한 도발의 책임을 이 세 가지 행위를 한 개인이나 단체에 전가시키는 것은 아닌가.

지금까지 있었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북한의 군사적 도발과 ‘서울 불바다’를 언급한 위협과 긴장 고조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그게 아니라면, 북한 당국이 한국 국민의 생명 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키는 것은 (어쩌면 당연스레) 존재한 일이지만, ‘전단 등’을 들려보내서 발생하는 특정 위험에 대해서만은 그 행위를 한 개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인가? 그럼 북한 당국이 다른 이유로 발생시킨 도발의 위험은 누가 책임지고 처벌을 받아야 하는가?

북한인권 시민단체들 속에서도 지지와 동조를 받지 못해 소멸 위기에 있던 대북전단 활동을 막고 대처할 방안으로 이처럼 문제도 많고 수준도 낮은 법률 개정 밖에 없었는지 의문이다. 법조항 자체가 논리적이지도 않고 표현이 모호해서 해석도 애매한 수준 미달의 개정법률안이 187명이나 되는 의원들이 찬성해서 통과시켜서 대통령의 재가만 남기고 있다니, 한국의 법치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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