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女공작원 김현희의 ‘절망’과 새 출발이 기억난다 인쇄하기
이름 NKnet
2008-09-04 16:22:59  |  조회 26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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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공작원 김현희의 ‘절망’과 새 출발이 기억난다

[이광백 칼럼] 원정화 여간첩 사건…또 사기치는 김정일
[2008-09-04 12:09 ]

1987년 11월, 민간인 115명이 탑승한 여객기 KAL 858기를 폭파한 후 체포된 여간첩 김현희. 그녀는 체포 당시 자살을 시도했다. 독약이 든 담배 필터를 깨문 것이다. 그러나 주변에 있던 경찰들에 의해 즉시 병원으로 옮겨져 위세척을 당하는 바람에 자살에 실패했다.

병원 침대에 묶인 채로 죽음의 잠에서 깨어난 직후, 그녀를 엄습한 것은 질긴 생명에 대한 저주와 죽음에 실패한 절망감, 그리고 자결에 성공한 동료 공작원 김승일에 대한 부러움이었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쓰더라도 죽어야 해”

그때 그녀는 그렇게 결심했다. 정신이 혼미한 상황에서도 오로지 죽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꿈꾸듯 자살 방법을 찾았다. 간호사의 가위를 빼앗으면 자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으나, 그녀의 몸은 꽁꽁 묶여 옴쭉달싹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시간이 지나 산소 호흡기와 입안의 위세척용 호스가 제거되는 순간, 그녀는 곧바로 혀를 깨물었다. 죽기를 작정하고 깨물었지만, 붉은 피가 흐르고, 혼절의 고통이 밀려올 뿐 혀는 절단되지 않았다. 사실, 그녀의 혀가 절단됐다 해도 경찰과 의료진이 대기하고 있는 병원에서 다량의 피를 흘려 죽음에 이를 가능성은 애초부터 없었다. 결국 그녀는 자결에 실패하고 서울로 이송됐다.

죽기 위한 그녀의 처절한 몸부림은 그녀가 고도로 훈련된 공작원이라는 사실과 함께 소위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심', 북에 있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 그만큼 깊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준다.

그런 그녀가 북한에 대한 애정과 미련을 깨끗하게 버린 계기가 있다. KAL기 사건이 국제사회에 전해진 직후, 북한 당국이 ‘KAL기 사건은 남조선의 조작극’이라며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당시 김현희가 북한의 공작원이라는 증거로 제시된 사진이 있었다. 어린 시절의 김현희가 남북적심자회담 때 남한측 대표 장기영 씨에게 꽃다발을 전하는 사진이었다. 북한 당국은 ‘그 사진의 주인공은 김현희가 아니라 자신’이라고 주장하는 정희선이라는 여성의 회견 내용을 담은 비디오 테잎을 조총련을 통해 일본 여론에 배포했다. 그 화면은 TV를 통해 한국에서도 방송됐다.

“이건 나다. (나는) 그 대표들이 왔을 때, 꽃다발을 준 당사잔데, (남조선에서) 이건 '마유미'(김현희)라는 겁니다. 제가 지금 평양에서 살고 있는데, 그럼 제가 마유미라는 겁니까? 아, 사람을 잡아도 분수가 있지. 아, 전 참을 수 없습니다. 정말 이걸 똑바로 해명하지 않고서는 참지 못하겠습니다. ······ 제가 신문을 보면서 려객기 사건은 다 조작극이다 하는 건 인식했댔습니다. 그러나 직접 나한테 들씌우고 보니 저는 남조선 괴뢰들이 이때까지 떠든 것이 백프로 다 거짓이구나, 다 날조로구나, 다 조작이구나, 똑똑이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 자리에서 남조선 괴뢰들의 비열한 행동에 대해서 증오에 찬 목소리로 단호히 규탄합니다.”

TV뉴스를 통해 정희선이라는 여성의 주장을 지켜본 김현희는 가슴이 터질 듯한 분노가 일었다. ‘나를 가짜 북한 사람이라고 몰아 세우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충성심이 컸던 만큼 그녀의 배신감도 컸다. 자신의 생명과 삶을 바쳐온 당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으니 오죽했겠는가. 그녀는 회고록에서 ‘남조선 특무’들 앞에서 고개를 들 수가 없을만큼 비참하고 초라했다고 고백했다.

김현희가 배신감에 고통받을 때, 평양에서는 KAL기 폭파사건은 남한 정보부의 비열한 자작극이라는 규탄대회가 연일 열렸다. 김현희가 다니던 일본어과 대학의 교수들도 규탄대회에 동원됐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1983년 남한 대통령을 노린 북한의 미얀마 아웅산 테러사건 후에도 북한 당국은 전국적인 규모의 남조선 규탄대회를 열었다고 한다. 미얀마 아웅산 테러가 남조선 괴뢰정부의 자작극임을 만천하에 선포하고 하루 빨리 남조선에서 미제를 몰아내고 전쟁을 통해 통일을 완수하자는 구호로 전국이 들썩였다는 것이다.

지난 3일,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은 여간첩 원정화 사건이 “모략극”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시기에도 남조선에서 수많은 ‘간첩사건’들이 조작돼 물의를 일으켰지만 이번처럼 치졸한 ‘간첩사건’이 날조되기는 처음”이라고 전제하고, 우리 정부를 겨냥해, “보수세력을 결속하고 진보세력을 탄압하며 북남관계 악화의 책임을 회피하고 동족대결 정책을 추구하기 위한 데 그 속심(속셈)이 있다”고 비난했다.

김정일 정권은 대남간첩 사건이 터질 때마다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려는 어이 없는 거짓말을 해왔다. 이번에도 어김 없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의 거짓말을 믿을 사람은 물론 아무도 없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선(善)하고 도덕적인 지도자로 알고 있는 일부 북한 주민들과 극소수 남한 내 친김정일주의자들의 이탈을 줄이기 위해서는 자신이 생각해도 민망하고 쑥스러운 행동을 아니 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여간첩 원정화는 김정일 독재정권의 소모품이다. 어쩌면 가장 큰 피해자인지도 모른다. 그녀가 진심으로 자신의 행적을 반성하고 뉘우친다면 새로운 삶의 기회를 한 번 더 줘야 한다.

[이광백 논설위원]

* 이 글은 이광백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이 '데일리NK'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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