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크로싱’, 잊고 있던 ‘그들의 이야기’와 만나다 인쇄하기
이름 NKnet
2008-07-23 09:46:14  |  조회 27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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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크로싱’, 잊고 있던 ‘그들의 이야기’와 만나다

[객원칼럼] 살기위해 헤어져야만 했던 가족들의 슬픈 이야기
[2008-07-22 14:08 ]

영화 크로싱을 보러 가는 마음은 출발 전부터 무거웠다. 혹시 영화를 보다가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을 흘리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크로싱은 생각보다 눈물을 자극하는 영화는 아니었던 듯하다. 영화 크로싱은 무척이나 잘 절제되어 있는 영화다.

내가 알고 있는 북한의 실상과 탈북자들의 고난은 이 영화에서 그려지는 것보다 훨씬 크고 적나라하다. 영화는 그런 이야기들을 굳이 다 담아 내려고 하지는 않은 것 같다. 영화는 그저 한 가지 플롯(plot)을 쫓아 담담하게 그 행로를 따라가고 있고, 그 주변을 가능한 범위에서 그리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용수(차인표 분)라는 탈북자가 잃어버린 한 가족의 이야기, 살기위해 헤어져야만 했던 가족들의 슬픈 이야기다.

용수는 아내의 결핵약을 구하기 위해 중국행을 결심한다. 중국에서의 쫓기는 생활 끝에 용수는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남한 땅을 밟게 된다. 용수는 남한에 정착해 북한에 남겨진 가족과의 연락을 시도하고, 남한의 약국을 찾아가 결핵약을 찾던 그는 보건소에 가면 결핵약은 ‘공짜’로 준다는 약사의 말에 넋을 잃는다. 오로지 그 약을 구하기 위해 가족과도 헤어져 갖은 고생을 하며 여기까지 오게 되지 않았던가. 브로커를 통해 마침내 가족의 행방을 찾았으나 아내의 사망을 확인하고 용수는 오열한다.

용수가 중국으로 떠난 후 아들은 어머니를 보내고 아버지를 찾아 중국으로 향한다. 꽃제비들과 함께 생활하며 중국으로 가는 길을 찾아낸 아들은 두만강을 넘다 국경경비대에 잡혀 노동단련대로 보내진다. 아내의 죽음을 확인한 용수에게 남은 지상 과제는 아들을 빼내서 한국으로 데려오는 일. 용수와 브로커의 노력으로 노동단련대를 빠져나온 아들은 안전하게 중국까지 도착한다.

그러나 돈을 받은 브로커는 아들을 중국과 몽골 국경까지만 데려다 준다. 목에 한국 대사관으로 보내달라는 표지판을 달아주며 누군가를 만나기만 하면 무사히 한국으로 갈 수 있다는 설명과 함께. 그러나 몽골의 사막은 너무나 넓었다. 아들은 태양이 내리쬐는 몽골 사막을 헤매다 결국 숨을 거둔다.

실제 있었던 스토리를 바탕으로 구성된 크로싱은 진정한 의미에서 비극적이다. 그러나 감독의 눈은 의외로 담담하고 차분하다. 감독은 어떻게 한 가족이 죽고 헤어져야만 했는지, 남편과 아버지로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고 그들을 잃어야 했던 과정을 조용히 그려 보여 준다. 그런 감독의 시선을 따라 가면서도 어쩔 수 없이 관객이 눈물을 머금고 가슴을 쓸어내리게 되는 것은 순간순간의 장면들이 너무 아프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아버지 용수와 아들 준이의 고통과 눈물은 실감나고 압축적으로 관객의 가슴을 파고든다. 그런 면에서 감독의 새로운 연출과 연기자들의 탁월한 연기는 대단한 표현력으로 돋보인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어떤 신파적인 슬픔을 노리지도 않으며 비극을 과장하지도 않는다. 수많은 사례로서의 북한의 실상을 애써 끄집어 넣거나 강조하지도 않는다. 그저 평범한 한 가족의 이야기, 임신한 아내의 병과 홀로 된 아들의 고난, 그것을 짊어진 아버지의 책임과 시선, 아픔만을 담담히 따라갈 뿐이다. 그러면서 영화는 북한의 거대한 모순이 어떻게 한 가족에 이르러 있을 수 없는 비극을 빚어내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이 영화의 놀라움은 여기에 있다. 개인의 고통에 충실한 영화가 사회의 모순을 어떻게 불가역적으로 축약해낼 수 있는지 자연스럽게 느끼고 깨닫게 된다.

북한이라는 사회가 워낙 많은 문제를 안고 있어 그것을 드러내는데 굳이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가 너무 충격적인 일이어서 그 한 가지 이야기만으로도 거대한 모순의 압도적 비극을 확연하게 드러내 보여줄 수 있었으리라.

영화 크로싱은 다큐멘터리적인 흐름을 영화라는 그릇 속에 담아내고 있다. 다큐멘터리의 사실성과 영화의 극적 요인을 아주 절묘하게 조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형식을 통해 영화는 자신이 전하는 내용이 진실임을 담담하게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관객으로 하여금 ‘사실의 인식’ 이상의 감정을 억지로 이끌어 내려하지 않는다.

이 같은 부분에서 나는 마치도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서사극’을 마주하는 느낌이었다. 브레히트는 암전 속에서 희미한 빛을 남겨두어 다음 장면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배우들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그는 관객으로 하여금 이것 또한 연극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자 한다. 그리하여 관객은 연극 속에서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사는 존재임을 부각시킨다. 연극이 곧 현실임을 깨우치는 것이다.

‘전통극’은 관객으로 하여금 배우의 감정선에 깊이 몰입해 그 희비의 굴곡을 극적으로 쫓아가며 카타르시스를 만끽케 한다. 그러나 극장을 나온 사람들은 연극과 전혀 상관없는 현실을 살아가는 것이다. 브레히트는 그것을 거부하고자 했다. 연극이 현실이며 현실의 주인은 당신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다큐멘터리적 절제성을 통해 영화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어색하지 않으며 지루하지 않게, 군더더기 없는 객관의 시선을 아주 절묘하게 녹여내고 있다. 관객의 시선을 이야기의 실체에 고정시키면서 단조로움과 건조함을 훌륭히 극복해 내고 있다.

이처럼 훌륭한 작품성을 겸비한 크로싱은 아쉽게도 흥행면에서는 크게 성공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개봉 전부터 많은 기대와 관심을 모았으나 아무래도 뒷심을 발휘하지는 못하는 느낌이다.

영화가 관객을 끄는 데는 많은 요소들이 작용하지만 보통 영화의 흥행은 재미와 감동이라는 두 개의 보편적인 요소 안에 놓여 있다. 소재의 색다름이나 흥미진진함, 볼거리의 화려함, 영화의 속도, 긴장감, 연기의 매력 같은 요소들은 영화의 재미에 필수적인 사항들이고 쉽게 감동으로 연결된다. 크로싱이 해갈하지 못한 아쉬움이라면 그것은 아마도 극적 긴장감이 다소 떨어지는 측면, 지나치게 빨리 달려가지 않는 전개로부터 오는 속도감의 저하 같은 부분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고 크로싱이 재미없는 영화는 아니다. 어쩌면 크로싱의 주제에 대한 선입관이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영화를 고르게 하는 요인이 아닐까 생각된다. 누구나 크로싱을 대하며 너무 슬픈 영화, 너무 무거운 영화가 아닐까 하는 느낌을 가질 것이고 그것을 피하고 싶어 할 것이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나는 관객들에게 그 같은 짐을 조금 내려놓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앞서도 밝혔듯이 크로싱은 생각처럼 무겁고 거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비극과 슬픔을 애써 쥐어짜는 영화도 아니다. 어쩌면 가장 평범하고 편안한 영화인지 모른다. 우리는 얼마든지 심각하지 않은 시선으로 이 영화를 대면할 수 있다. 탈북자들의 탈북 경로와 경험, 북한 사회의 실체라는 새로운 재미와 흥미의 요소들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주인공 용수와 아들 간에 소통되는 진한 사랑과 그리움, 애정은 나무나 보편적이며 일상적인 우리의 일부다. 북한의 일상과 풍경을 재현한 세트는 그 사실성과 생동감이 놀라울 정도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배우 차인표의 연기가 돋보인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이 영화에서 그의 연기는 단연 빛난다.

이 영화는 꼭 봐야 할 영화다. 적어도 작품성을 기준으로 영화를 고르는 사람이라면 후회하지 않을 영화다. 북한이라는 사회 혹은 실상에 대해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이 영화는 필수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고 싶은 사람에게도 이 영화는 아깝지 않다. 인간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가슴에 품은 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보고 느끼는 것 자체에서 충분한 의미를 찾을 수 있으리라. 어떤 이유에서건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라면 누구나 꼭 한 번 봐야하는 영화다.

남한에 성실하게 정착하던 용수가 아내의 죽음을 확인한 후 그리고 아들의 묘연해진 행방을 접한 후 평소 마시지 않던 소주병들을 앞에 두고 눈물도 말라버린 가슴을 쓸어내리며 내뱉은 절규를 잊을 수가 없다. “하느님은 남조선에만 있습니까? 남조선만 사람이 사는 곳 입니까? 왜 남조선은 이렇게 밝고 풍요로운데 북조선은 어둡고 가난하기만 한 것입니까. 하느님은 세상도 가려서 살핍니까…”

어쩌면 우리가 보살피지 않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북한을 다시 기억해 내야 할 때인지 모른다. 더 늦기 전에…

[이종철/북민넷 정책팀장]

* 이 글은 이종철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정책팀장이 '데일리NK'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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