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호 (2002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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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가장 하기 '싫은' 일은 무엇입니까? 하루 일과중 가장 하기 싫은 일은 무엇입니까? 한 해에 가장 싫은 날은
언제입니까? 혹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다시 생각하여도 지긋지긋하게 느껴지는 '싫었던' 일은 무엇입니까?
아침에 이불 개기, 교통지옥을 뚫고 출퇴근하기, 상사가 권하는 술을 억지로 먹어야 하는 회사 회식자리.... 제각각
다를 것입니다. 과거에 하기 싫었던 일로는 학교에 지각한 벌로 했던 화장실 청소가 역겨웠을 수 있고, 시험 보는 날
또는 성적표 나오는 날이 죽기 보다 싫었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군대에서 기합 받고, 유격훈련 받던 일이 다시 떠올리기도
싫은 기억일 수 있습니다. 귀찮게 자꾸 따라다니던 사람이 악몽처럼 생각날 수도 있겠군요.
지금도 하는 줄은 모르겠지만 우리 어린 시절에는 한 해에 한 번씩 손바닥 절반 만한 비닐봉지를 나눠주고 거기에 자기
대변을 조금씩 받아오도록 했는데, 이 날이 가장 싫었다고 말하는 분도 계십니다. 나이 지긋하신 분들은 ‘월사금 내는
날이 가장 싫었다’고 추억하시는 분들도 많더군요. 그 시절에는 돈이 없어 학교를 마음놓고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았고,
더구나 그 이유로 급우들 앞에서 매를 맞고 부끄럼을 당해야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런 이유들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지금도
한가지쯤 하기 싫은 일이, 혹은 하기 싫었던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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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 Keys에는 국내에 출판된 북한관련 서적들을 정리하여 특집으로 소개하였습니다. 『북한에서는 어떻게 교육할까』라는
책도 소개되어 있는데, 이 책은 탈북자 16명이 북한의 교육에 대해 증언한 내용을 엮은 것입니다. 내용중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오늘은 월요일, 한 주일 가운데 제일 마음 무거운 날이다. 오후 5시에 있는 주 생활총화 때문에 괜히 아침부터 가슴이
떨린다. 무엇을 가지고 자기 비판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지 않은가. 야단났다. 시간은 자꾸
가는데. 자기 비판은 그렇다 치고 호상 비판은 누구를, 무엇을 가지고 한다? (189페이지)”
북한에서 살다 오신 분들에게 ‘북에서 가장 싫었던 일이 무엇이었냐’고 물으면 남한 사람들의 대답만큼 다양하지만 대개
‘생활총화’를 싫어하는 일 가운데 하나로 꼽습니다. 생활총화하는 날이 좋았다는 분들은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북한을 ‘우상(偶像)의 나라’라고 이야기합니다. 언젠가 Keys는 ‘구호(口號)의 나라’라는 표현을 쓴 적도
있습니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북한은 또한 ‘총화(總和)의 나라’입니다. 북한 조선말대사전은 총화를 “사업이나 생활의
진행 과정과 그 결과를 분석하고 결속지으며 앞으로의 사업과 생활에 도움이 될 경험과 교훈을 찾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조직의 구성원들이 함께 모여 진행과정을 돌아보고 성과와 문제점을 찾는 회의는 어느 사회에서나 반드시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에서 ‘총화’를 일반 사회의 그것과 비슷하게 생각해서는 오산(誤算)입니다. 서로 머리를 맞대 토론하고 분석하고
문제를 지적해주는, 단순히 그런 회의라면 북한 사람들이 왜 그렇게 지긋지긋해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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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총화는 자기비판과 호상(互相)비판으로 나누어집니다. 대개 10명 내외의 인원으로 소조가 구성됩니다. 먼저 책임자의
진행으로 ‘원리(原理)학습’이 시작됩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어떠한 분이신가,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는
어떤 분이신가, 곁가지 대상이란 무엇이고 동상이몽(同床異夢) 양봉음위(陽奉陰違)란 무엇인가..., 이런 내용을 아무나
지적하여 느닷없이 물어봅니다. 여기에 안 걸리면 다행이지만 갑작스런 질문에 제꺽 답변하지 못하면 비판의 대상이 되지요.
그래서 원리학습은 생활총화 초반부의 두려운 대상입니다.
원리학습이 끝나면 각자 자기 생활에 대한 반성의 말을 여러 사람들 앞에 늘어놓습니다. 내용은 가지각색입니다. 생산목표를
제 때에 완수하지 못했다, 노작 학습을 게을리 했다, 지각을 했다…. 이러한 생활총화 시간을 북한 사람들은 보통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갖습니다. 학생, 노동자들은 대개 그렇습니다. 농민들은 열흘에 한번, 농번기 때는 보름이나 한 달에 한번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문화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자유주의 바람이 들기 쉽다는 이유로 이틀에 한번씩 생활총화를
해야 합니다. 이것은 모든 인민이 늙어죽을 때까지 - 원칙적으로는 - 계속됩니다. 전업주부는 여맹(조선민주여성동맹)에서
생활총화를 해야 하고, 퇴직한 노인도 당세포에서 총화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총화를 단순한 ‘회의’나 '평가모임' 정도 수준으로 생각한다면 앞서 말했듯 그것은 어느 사회에나 있는 것이고,
일주일 한 번 정도는 별 것 아닐 수 있는데 왜 그리 지긋지긋해 할까요? 그것은 바로 반성에도 ‘틀'(?)이 있기
때문입니다. 생활총화는 단순히 ‘무엇을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몇 년 몇
월 몇 일 어디에서 무슨 교시를 하셨는데 나는 어찌하였다" 또는 “유일사상체계확립 10대 원칙 몇 조 몇
항에는 이렇게 지적되었는데 나는 이러한 잘못을 범하였다”라는 식으로 하여야 합니다. “공동사설 관철에 온 나라가 들끓고
있는 시기에…”,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지펴 올리신 라남의 봉화따라 전당 전군 전민이 들끓고 있는
시기에..." 라는 판에 박힌 수식어도 술술 나와야 합니다.
이것은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사업전반을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며,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는 여느 사회의
그런 회의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북한 인민들이 해야하는 총화에는 조직에 대한 의구심, 지도부의 정책적 오류에 대한
질타, 간혹 생길 수 있는 체제에 대한 회의감 등이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아니, 추호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수령의
충직한 전사(戰士)로 목숨 바쳐 살아왔느냐 그렇지 못했냐가 모든 총화의 기준이며, 그것만이 선악(善惡)과 성패(成敗)의
갈림길입니다. 수령의 뜻, 수령의 뜻, 수령의 뜻! 이것만을 매일 생각하며 매주 이것에 입각해 자기를 돌아봐야 한다면...,
없는 것도 있는 듯 지어내 이야기하고, 있는 것도 없는 것처럼 감추며 살아야 한다면..., ‘나’는 없고 오직 ‘수령’만이
존재할 수 있고 수령 없는 삶이란 상상할 수도, 상상해서도 안되는 일이라면... 정말 이 얼마나 지긋지긋하고 미칠
노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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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들은 생활총화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북녘 어느 도시 어느 공장의 노동자가 자신의 과오를 지겹도록
되풀이하여 반성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총화 기록은 군(君)당·시(市)당 등 상급기관으로 올라가고, 도(道)당을
거쳐 중앙당으로 올라갈 것입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수령 김정일의 사무실까지 도달할 것입니다. 이러한 보고서가 하루에도
몇 박스씩 쌓인다고 합니다. 그가 이것을 다 읽는 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수령은 인민들 앞에 한번도
생활총화를 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수령이 인민들 앞에서 ‘나는 이것을 잘못했다’고 스스로 반성한 문헌이 있다면 어디 한번 보여주십시오. 젊은 시절 자신의
방탕한 생활에 대해 반성한 적 있습니까? 그건 그렇다 칩시다. 수 백 만이 굶어 죽어갈 때 수령이 단 한 번이라도
공개적으로 '죄송하다' 말 한 적 있었습니까? 경제계획이 잘못 되어 나라 살림이 파탄날 때, 기차가 탈선하여 수 천
명이 죽었을 때, 또 부실한 아파트가 붕괴되면서 몇 개 사단 병력이 돌더미에 깔려 몰살되었을 때, 한번이라도 그것을
‘자신의 잘못’이라 이야기한 적 있습니까? 왜 수령은 총화를 하지 않는 것입니까? 인민들에게는 일주일에 한번, 열흘에
한번, 이틀에 한번씩 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월(月) 총화, 분기(分期) 총화, 연(年) 총화 다 시키면서 왜 정작
“근로인민대중의 최고뇌수이며 통일단결의 중심”이라는 수령은 생애에 단 한번도 생활총화를 하지 않는 것입니까?
자기비판과 반성은 좋은 것입니다. 스스로의 결함을 발견하고 이를 발전의 토양으로 삼는 것은 인간만이 갖고 있는 특출한
능력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을 부정하는 것, 즉 자기의 결함을 스스로 비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것을 제때에 제대로 했을 때 '사람답다'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덮어두고, 모른 척 하고,
결국 완전히 감각이 무뎌져 자신이 잘못을 했는지 안했는지 조차 모르게 된다면 이미 동물의 경지(?)에 다다른 것입니다.
북녘의 정일 씨는 지금껏 한번도 스스로를 반성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멀지 않은 훗날 인민의 손으로 그를 생활총화의
자리에 앉힐 것입니다. 지금까지 안 했던 것을 한꺼번에 하려면 모든 작업반과 농장, 인민학교, 고등중학교, 대학교
강의실을 매일 돌아다니며 쉼 없이 생활총화에 참석해야 할 것입니다. 미뤄왔던 생활총화를 한꺼번에 치르게 될 것입니다.
늙은 나이에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겠군요. 자기비판 시간도 괴롭겠지만 호상비판 시간은.... 갑자기 그의 미래가 측은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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