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놈을 스스로 양성하고 처형하는 김정일
대낮에도 코를 베어가는 사회
이라크 후세인 정권이 붕괴되자 TV 뉴스에는 이라크 주민들이 기뻐 환호하는 모습과 함께,
공공건물이나 상점에서 닥치는 대로 재물을 가져가는 모습이 비쳐졌다. 아나운서는 위와 같은 행위를 ‘약탈(掠奪)’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에서 살다온 나는, 그러한 행위에 눈살이 찌푸려지면서도, 한편으론 ‘저런 것을 약탈이라고까지 표현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에서 강도 높게 저질러지는 도둑, 약탈 행위에 비하면 TV를 통해 비쳐지는 이라크 주민들의 그것은
약탈 행위라 보기도 어렵다.
약탈행위는 말 자체로 ‘폭력으로 빼앗는 행위’다. 그런데 폭력도 없이 주인이 없는 건물에 들어가 물건을 집어내오는 행위를
어떻게 약탈이라 할 수 있나?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김정일 독재정권이 붕괴되었다고 가정할 때, 북한에서는 그보다
더 엄청난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지금은 어떻게 변하였는지 몰라도, 내가 북한에 있던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북한 주민들의 생활은 도둑질을 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최근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제는 인민들이 생존의 방법을 터득하여 극단의 혼란은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주민들이 도둑을 목격했다 하면 ”대낮에도 코
베어갈 사회”라고 미연성(未然性) 발언을 했다. 아직 그렇게 되지 않은,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그러나 지금은
미연의 발언이 아니라 진행형 발언을 한다. “대낮에도 코를 베어 ‘가는’ 사회”라고 말이다.
심지어 일부 주민들 속에서는 도둑보다 도둑에게 당하는 자들을 증오하는 아이러니한 감정까지 생겨났다. 생존형 도둑들이 득실대는
속에, 결국 도둑에게 당한 자들은 ‘가진 자’들이다. 그런 자들이 도둑을 양성시킨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김정일이 쥐어준
권력의 끈을 쥐고 온갖 비리로 주민들의 고혈을 짜냈기 때문일까? 아니면 국제사회가 지원한 식량을 분에 넘치게 공짜로 받아먹고도
남아 장마당에 고가(高價)로 팔아 넘겨 떼부자가 된 얄미운 간부나부랭이들이기 때문일까? 하여튼 도둑을 당하는 사람도 도둑과
똑같은 놈들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주민들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인민군 병사들의 약탈 및 강도행위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1980년 대 인민군 병사들의 도둑형태는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탈영한 군인들의 개별적인 행동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인민군은 군복무 생활 자체가 도둑이자
강도로 변했다. 일반 주민들은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생존형’ 도둑이 되었다면, 인민군은 생활자체가 조직적이고
습관적인 ‘생활형’ 도둑으로 변했다. 주민들의 재산을 도둑질하고 약탈하여 먹고 쓰는 기풍이 조직적으로 습관화되어 있다.
양심의 가책도, 그 어떤 거리낌도 없다. 북한의 주민들이 감히 대적 할 수 없는 ‘김정일 장군님의 군대’ ‘통일 병사’라는
명분을 내걸고 말이다.
김정일 정권이 붕괴되면 김일성,
김정일 우상화 상징물이 첫 번째 약탈의 대상이 될 듯
어느 날 김정일 정권이 붕괴된다면 주민들과 군인들은 증오심과 사욕(私慾)이 뒤엉킨 채 공공건물의
재물을 깨부수고 마구 훔쳐 갈 확률이 이라크의 주민들보다 더욱 높다. 특히 김일성, 김정일의 우상화 상징물이 약탈의 대상이
될 것은 당연하다. 북한에 세워진 김일성, 김정일 우상화 상징물은 후세인의 상징물에 대비할 수도 없이 많기도 하고 훨씬
더 고급이다. 김일성 동상만 해도 3만 5천여 개에 달한다. 여기에 쓰인 재질들은 북한 사람들이 감히 사용하지도 못하는
최상의 고급 재료들이다.
예컨대 김일성, 김정일의 ‘혁명역사연구실'(이런 연구실은 각 시·군·구, 학교 및 직장마다 있다) 창문에 둘러진 커튼은
북한 여성들이 그처럼 갖고 싶어하는 스카프 수십 개를 만들 수 있는 고급천이다. 그런 스카프 한 개면 북한 돈 150∼200원이다(7월1일
경제조치 이전의 가격). 노동자 2∼3달 임금에 해당된다. 물욕(物慾)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연히 김일성, 김정일의 혁명역사
연구실부터 눈독을 들일 것이다. 어디 그런 커튼뿐이겠는가. 고급 청동재질로 된 동상은 손가락 하나까지 남는 게 없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남한 태생의 독자들은 불안한 마음을 가질 수도 있다. ‘김정일 정권의 조기붕괴가 한반도에 혼란을 초래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그러나 언젠가 한번은 북한도 이라크와 같은 변혁기를 맞게 됨은 필연적이라 생각한다. 어차피 거쳐야
할 관문을 자꾸 늦춰서 화(禍)를 키우는 것 보다 빨리 그 숙명을 받아들이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낫다. 북한 체제를
저렇게 까지 방치한 데에는 남한 인민들의 책임도 전혀 없다고만 할 수 없다.
더 분명한 것은, 김정일 정권이 붕괴되었을 때 혼란으로 인한 남북 인민의 일시적인 고통보다 지금 북한 인민이 당하고 있는
고통의 크기가 비할 바 없기 크기 때문이다. 김정일 우상화 체제 하에 주민들을 그대로 방치시킨다면 굶어죽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생존하는 주민들까지 이성을 잃게 할 수 있다. 남한 인민들이 진정으로 통일을 바란다면, 김정일 우상화 체제의
붕괴가 북한 인민들에게는 희망을 안겨 주는 가장 합리적인 대안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명심해야 한다. 김정일 한 사람의 멸망으로
남북한 인민 모두에게 삶의 희망을 줄 수 있다. 역사는 인민을 굶겨 죽이는 정권, 인권을 탄압하는 반인민적 정권은 반드시
붕괴되고 말았다는 것을 여러 면에서 보여주고 있다. 김정일 정권 붕괴 시 약탈과 혼란이 있다고 해도, 치안을 안정시키고
국가 재건에 모든 힘을 집중시키면서 우리 민족은 슬기롭게, 그리고 빠르게 그 난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잠깐의 고통을
못 이기는 사람은 행복 역으로 가는 열차를 탈 자격이 없다. 이번 호에는 현재 북한에서 보편화된 도둑 및 약탈행위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집단주의자도, 개인이기주의자도 필연적으로 도둑이 된다
천성적인 도둑은 없다고 본다. 북한 사람들의 심성이 거칠어서가 아니라 사회제도 자체가 도둑을 양성하고, 그것을 이유로
처형한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 사회에서 태어났다면 당연히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북한 주민들의 의식은 크게 두개의 부류로 구성돼 있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집단주의 사상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이기주의
사상이다. 도둑은 이런 집단주의와 개인이기주의가 생존본능과 충돌을 빚으면서 발생한다.
김정일은 북한주민들의 생존본능을 집단주의에 종속시키고 그 단결의 중심에는 김정일 자신밖에 없다면서 절대적, 무조건적으로
순종하도록 강요한다. 집단주의를 당, 행정 등 모든 영역에서 확고히 틀어쥐고 나가야 할 조직생활의 지침으로 삼고 있다.
개인의 생존본능에는 개인이기주의라는 꼬리표를 달아 ‘투쟁의 대상’이라 한다. 그러나 1990년대의 식량난은 집단주의라는
원칙을 지킨 사람도, 비원칙인 개인이기주의자들도 모두 죽음으로 몰아갔다. 김정일의 지시대로 지나치게 집단주의에 충실한
자들은 너무도 고지식하여 굶어죽었고, 지나친 개인이기주의자들은 안전부, 보위부와 같은 독재기관에 의해 범죄자로 몰려 처형당했다.
북한에서 개인이기주의의 대표적 표현은 도시생활에서는 장사꾼, 농촌생활에서는 뙈기밭 농사꾼이다. 장사와 뙈기밭 농사는 집단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개인의 이익만을 위한 행동으로 치부된다. 하지만 식량난이 심화되면서 주민들은 창조적인 생존 수법을
찾게 되었는데, 그것은 장사꾼이 되고 뙈기밭 농사꾼이 되는 것이며, 여기에서 타락하면 도둑과 약탈자로 변해버렸다.
먼저 집단주의자, 즉 고지식한 사람들이 어떻게 도둑으로 변하였는지 살펴보자.
알다시피 북한에는 실업자가 없다. 만 17세가 되면 노동당에서는 적성에 관계없이 의무적으로 각 직장에 배치하거나 군에
징집한다. 적성에 맞지 않는 직업이라고 불평하거나 무단결근을 하면 안전부와 같은 독재기관에 넘겨져 처벌을 받는다. 따라서
어쩔 수 없이 출근하여 마음에도 없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직장에서는 근로자들이 출근해도
식량배급, 노임(勞賃)을 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집에서 그냥 놀아서도 안 된다. 생명도, 운명도 김정일에게 의탁하고 당에서
하라는 대로 하라고 강요한다. 식량도, 노임도 주지 않는 직장에 매일 출근하여 시키는 대로 일만 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먹어야 살지 않겠는가. 고지식한 사람들은 그동안 저축했던 자금을 모두 털어 식량을 사먹으며 출근을 했다.
바라는 식량과 임금은 해를 넘겨도 주지를 않았다. 얼마 되지도 안는 가정의 저축금(貯蓄金)으로 식량을 겨우 겨우 사먹는다.
얼마 후 저축금도 바닥이 나면 귀중품을 장마당에 들고 나가 식량과 바꿔 먹는다. 귀중품까지 다 바꿔 먹고 나면 직장출근은
고사하고 집안에 누어서 굶는 수밖에 없다. 굶주림 속에 생명이 꺼져 갈수록 생존의 의욕은 강하게 요동친다. 풀뿌리라도
찾아내어 주린 창자를 채우려고 돌아다닌다. 그러나 풀뿌리를 캐어 먹는 것도 1∼2년이다. 1∼2년이 지나면 만성적인 기아상태에
빠져 뼈만 앙상하게 남아 활동량이 적어지고 나중에는 자리에 누워 굶어죽고 만다. 1997년까지 약 200만 명 이상이
이런 식으로 굶어죽었다.
당의 요구가 기만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때가 늦었다. 밑천이 없으니 장사도 할 수 없다. 방법은 단 하나,
공장의 기계부속품을 도둑질해서 요령껏 팔던가, 아니면 협동농장의 곡물을 도둑질하던가 해야 한다. 도둑놈이 돼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고지식한 사람들은 어떤 계층의 사람들인가. 일반적으로 교원, 교수, 과학자, 기술자 등 지성인들이다. 당이 바라지
않는 장마당으로 뛰어들기에는 몹시 민망한 지식인들, 굶어죽으면 죽었지 도둑과 같이 남을 해치는 짓은 도저히 할 수 없었던
고지식한 인텔리들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도둑질을 하면 얼마나 잘하겠는가! 그러나 살자면 그 길밖에 없었다.
장사를 하려면 뇌물을 바쳐야 한다
다음으로 개인이기주의자, 즉 사욕(私慾)주의자들이 어떻게 도둑으로 변하였는지 살펴보자.
김정일과 노동당에 모든 운명을 의탁했다가는 굶어죽고 만다는 것을 너무도 재빨리 알아차린 사람이 북한에서 말하는 소위 개인이기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집단에서 압력을 행사하든 말든 언제나 장사를 해서 살아남을 궁리만 한다. 집단주의적 강요는 합법적이고 개인이기주의는
비합법적이다. 때문에 투쟁의 대상인 ‘장사’가 순조로울 수는 없다. 남한의 상인들처럼 법적으로 자유롭게 장사를 진행할
수만 있다면 북한 장사꾼들의 피해도 덜 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서 장사, 그 자체는 조직의 투쟁대상이고 법기관의 탄압대상이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원칙적으로 장사는 불법이며, 지금 북한에 장사가 성행한 것은 김정일의 선의(善意)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상황이 그렇게 흘러간 것이다.
어느 누구든 장사를 하지 않으면 생존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장사를 하려고 해도 요령이 있어야 한다. 우선 장사밑천이
있어야 한다. 고지식한 사람들처럼 직장에 출근하며 그동안 저축했던 자금을 털어먹으면 안 된다. 그 밑천을 굴려서 마진(차익,
差益)을 남겨야 먹고 살 수 있다.
장사밑천을 손에 쥐었다고 해도 직장의 당 조직, 행정조직에서는 장사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는다. 직장 간부들과
관계처리를 잘못하고 장기간 무단결근을 하면 안전부에서 체포하여 강제노동단련대와 같은 곳에 가둬 넣고 일을 시키기 때문이다.
장사할 시간을 벌자면 직장의 당 조직 또는 행정조직의 승인을 받아야한다. 한두 번은 이 핑계 저 핑계로 시간적 여유를
얻어낼 수 있지만 지속적일 수는 없다.
다음부터는 장사를 해서 떨어진 마진에서 일부를 직장간부들에게 뇌물로 바친다. 또 장마당에서 장사를 하는 과정에는 안전원이나
규찰대에 잘 보여야 원만히 장사를 할 수 있다. 잘 보인다는 말은 어느 정도 뇌물을 줘야 한다는 말이다. 북한의 합법적인
치안기관은 유흥업소의 돈을 뜯어먹으며 운영되는 남한의 깡패조직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결국 장사로 떨어진 마진에서 이것저것을 떼고 나면 남는 것이 별로 없다. 그것마저 보안원이나 규찰대의 괘씸죄에 걸려 빼앗기는
날이면 역시 도둑이 되어야 살 수 있다.
장사와 같은 개인이기주의를 하지 말라는 것은 김정일의 지시요, 그를 단속하고 처리하는 것은 안전원들과 규찰대들이다. 개인이기주의는
언제나 탄압의 대상이므로 장사 그 자체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이다. 탄압으로 장사밑천을 하루아침에
까먹을 수 있는 요소는 항상 존재한다. 또 장사꾼들이라고 하여 도둑을 당하지 않는다는 법이 없다. 그 밑천이 도둑에게
당하는 날이면 역시 소생할 방법이 없다.
소생의 길은 단하나,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야 한다. 남의 것, 또는 공장·기업소의 공동재산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자면 공장의 생산물을 도둑질하던가 아니면 남의 것을 빼앗아야한다. 도둑과 약탈의 재미도 한두 번이다. 언젠가는
잡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잡히면 강제노동단련대 혹은 교화소(교도소)에 끌려가 굶어죽고 만다. 혹시 풀려 나온다 해도
가진 게 아무 것도 없으니 앞으로도 생존수단은 도둑밖에 없다. 도둑은 새로운 도둑을 양성하며 더 큰 도둑으로 둔갑한다.
당한 사람은 손해를 메우기 위해 도둑질에 합세하고 성공한 도둑들은 좋은 경험을 축적하게 된다.
권력에 의지한 ‘합법적인’ 도둑도 있다
그러면 주로 어떤 계층의 사람들이 장사로 생존하려고 할까?
1990년 이전에는 주로 노동자, 농민계층의 40대 이상 주민들이 장사꾼의 과반수였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세계관이
형성되어 김정일과 노동당에 의탁만 해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러나 1990년대의 식량난 - 이른바
‘고난의 행군’ 과정을 거치며 이제는 계층에 관계없이 모든 인민들이 장사에 전념하고 있다.
현재 북한에 생존한 주민들은 적당히 집단주의, 개인이기주의 양면을 취하는 영리한 처세주의자들이 다. 절대 그들을 탓할
수 없지만, 3백만이 굶어죽는 아수라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오직 생존본능만이 그들을 살려 지금까지 지탱해주고 있다.
대낮에는 김정일에게 충실한 척 로봇처럼 집단주의를 찬양하고, 야밤에는 생존을 위한 ‘창조적인’ 개인주의 생활방식이 기본을
이른다. 북한에서는 주민들을 사상교육하면서 ”동상이몽(同床異夢) 양봉음위 (陽奉陰僞) 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사회주의
한 침상에서 헛생각을 하지말고, 양지에서는 받는 척 하면서 음지에서 역모를 꿈꾸지 말라는 경고의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북한 주민 모두가 동상이몽하고, 양봉음위하면서 살고 있다.
예컨대 행방(장사하러 타 지역을 방황하는 것)을 떠난다면 당 조직과 행정조직의 승인을 밭아야 한다. 승인도 없이 떠났다가는
비판의 대상이 되고 두 번 다시 승인을 받기 어렵다. 한번의 행방으로 굶어죽지 않고 생존할 수 있는 목돈이 떨어진다면
모험 삼아 해볼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의 현실은 그렇지도 않다. 한번 행방을 떠나 잘되면 기껏해야 열흘 정도 먹을 식량이
떨어진다. 그 열흘이 지나기 전에 또 다시 당 및 행정 기관의 승인을 얻어내야 한다. 그러자면 조직생활(집단생활)에 적극적인
듯한 인상을 주어야 한다. 최근에는 직장에 결근하는 조건으로 돈을 바친다. 예를 들면 한달 임금이 2000원이라면 그
돈을 직장에 바치고 한 달 동안 장사질을 하는 식이다. 국가가 주민들의 조직생활을 담보로 합법적인 갈취를 하고 있는 셈이다.
장사 중에서도 쌀장사와 휘발유, 디젤유와 같은 에너지 장사가 가장 톡톡히 재미를 보는 장사다. 쌀장사는 적은 밑천을 가지고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 있다. 국제지원식량이 공짜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지원식량은 주민들에게 골고루 배급되는
것이 아니라 물줄기 마냥 권력자들의 손에 따라 분배된다. 당연히 당, 보위부, 안전부, 군부 등 권력자들에게 집중된다.
이들은 먹고 남는 식량을 장마당에 고가로 팔아 돈벌이를 한다. 일반 주민들도 위와 같은 권력자들로부터 식량을 팔아달라고
위탁을 받으면 그런 대로 마진이 떨어진다. 이런 실태는 Keys 32호(2003년 2월호) 『북한에 도착한 국제지원식량은
어떻게 분배되나?』에서 소개한 바 있다. 북한 체제 자체에, 항구로 지원식량이 도착하자마자 군부와 권력기관에 빼돌려 질
수밖에 없는 특성이 담겨 있다.
휘발유나 디젤유 역시 권력기관에서 독차지하고 있다. 교통수단이 낙후한 북한에서 에너지는 쌀만큼 귀하다. 이런 것들이 권력기관의
손에 쥐어져 있기 때문에 그들에 의하여 일부 장사꾼들에게 흘러들어 고가로 팔린다. 북한식 장사의 요령은 이런 지원식량,
휘발유를 비롯한 공공재물을 빼돌려 팔아버리는 것이다. 부패한 사회일수록, 권력에 의지한 ‘합법적인 도둑’이 제일 잘되는
장사인 법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도 언제 정말(?) 도둑으로 변할지 모른다. 장사를 하다가 밑천이 날아가는 경우가 많고, 갑작스레 권력이
끈이 끊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까지는 호시절(好時節)을 누리겠지만, 일이 그릇되면 역시 생존 수단은 도둑이다.
도둑이 되지 않으려면 탈북하는 것뿐이다.
인민군은 생활 자체가 도둑과 약탈 위와
같은 북한 주민들이 ‘생존형 도둑’이라면 인민군은 ‘생활형 도둑’이다. 앞서 말했듯 생존을 위해서 도둑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도둑과 약탈이 습관적인 생활의 한 형태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군대는 명령 속에 살고 죽는다. 지휘관들의 명령 자체가 도둑질을 해오라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없는 물건을 ‘무조건
가져다 놓아라’고 하니 말이다. 명령의 형태로 도둑질을 하는 수많은 사례들 가운데 단편적인 한 예를 들어보자.
1986년 경 모스크바에 서독(西獨) 비행기가 침습했다는 뉴스가 북한에 전해졌다. 구 소련군의 대공 감시망은 서독
비행기가 모스크바 수도 중심부에 날아들 때까지 발견을 못했다고 한다. 최신식 비행기가 아닌 구식 비행기인데도 말이다.
서독 비행기가 산골짜기를 저공(低空) 비행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민무력부에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식이라면
평양에도 적기(敵機)가 얼마든지 날아들어 올 수 있었다.
북한의 일부 고사포(高射砲, 비행기 등을 격추시키기 위한 대포) 진지들도 계곡을 따라 낮게 나는 비행기는 발견하기
어려운 요소들이 많았다. 고사포 진지들은 적기 출연시 거치적거리는 것이 없이 사격할 수 있도록 포진지 사계(射界)가
넓어야 할 텐데, 북한의 고사포 진지는 숲과 위장물에 가려져 사계(死界)가 넓은 경우가 많았다. 또 일부 포 진지들은
시멘트 콘크리트로 시설이 구축되어 있었다. 이것은 적의 폭격을 받을 경우 콘크리트가 깨어지면서 그것이 파편이 되어
오히려 화를 더 크게 불러일으킬 확률이 높았다. 각 군단 지휘부에서는 서독 비행기의 모스크바 침습을 교훈으로 이와
같은 포 진지를 당장 개조하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모든 포 진지 개조에 필요한 자재는 ‘각 부대들이 알아서’ 구입하란다. 없는 것은 만들어내고 모자라는 것은
찾아내는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발휘하면서 말이다. 생산단위도 아닌 인민군대가 자재를 확보하자면 주민과 민간 기업소에서
도둑질을 하는 방법밖에 없다. 남한에서는 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라 모든 건설 자재들이 상품화되어 시장에서 팔리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에는 건설자재를 파는 시장이 없다. 상급기관의 계획에 따라 생산 공장에 찾아가 접수해 오는
식이다. 인민군대와 같은 경우 국가적인 큰 건설이 아닌 이상 자재를 공급 해줄 기관이 없다. 따라서 지휘관들이 명령하면
도둑질을 해서라도 막무가내로 집행하는 방법밖에 없다.
3군단 소속의 어느 중대 포 진지 개조도 이와 같은 형식으로 진행됐다.
중대에서는 하수도관이 절실히 필요했다. 장마철 포 진지 침수를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중대장은 병사들에게 수도관이
있을만한 공장, 기업소를 비롯한 주민지대를 ‘정찰’해오라고 명령했다. 병사들은 대낮에 주민지대를 조심스레 돌아다니며
수도관이 보관되어 있는 한 인민학교(현재는 ‘소학교’로 개칭) 보일러공사장을 찾아냈다. 하수도관이 녹이 쓸어 낡기는
했어도 쓸만한 것들이 100여 개나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중대장은 소대장이상 지휘관들에게 명령한다.
“이제부터 ‘전투명령’을 내린다. △△인민학교의 보일러 공사장의 수도관을 습격한다. 만약 발각되어 성공을 하지 못한다면,
우리 중대는 싸움준비로 훈련된 인민군대라고 평가할 수 없다. 성공하는가 못하는가는 우리 중대가 전투훈련을 얼마나 잘했는가
못했는가 하는 평가이기도 하다.”
군대도 아닌 주민들의 물건을 소리 없이 도둑질해내지 못한다면 전투마당에 서야하는 군인들의 자세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휘관의 명령대로 병사들은 적진(敵陣)에 뛰어드는 병사 마냥, 젊은 혈기를 펄펄 날리며 수도관을 도둑질해왔다.
아마 평상시 전투 훈련을 잘해온 탓일까. 학교측에서는 인민군대가 감쪽같이 보일러공사에 필요한 수도관을 훔쳐갔다는 것을
알 수가 없었다. 어디에 하소연 할 곳도 없다. 법치사회라면 법기관에 신고라도 할 수 있지만 신고만 받고 처리가 없는
것이 북한의 현실이다. 얼마 전 서울의 거리를 지나다 ‘국민고충처리위원회’라는 간판을 보았다. 행정기관의 위법ㆍ부당한
처분이나 사실행위 또는 불합리한 제도 등으로 인하여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국민에게 불편ㆍ부담을 주는 고충민원을
간이·신속하게 처리한다고 한다. 북한에도 당기관이나 사회안전부(현재는 ‘인민보안성')에 ‘신소 처리과’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런 기관에 신소를 해봤자 인민군이 한 짓이라 판단되면 아무런 반응이 없다. 노골적으로 “인민군이 한 짓이다”라고
말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사는 주민들은 위와 같은 현상을 상식으로 알고 있다.
부담은 어린 학생들에게 돌아 갈 수밖에 없다. 학교측에서는 다시 학생들에게 집에 가서 수도관을 ‘구입해오라’고 지시한다.
학생들에게 공장, 기업소에서 수도관을 도둑질해오라고 지시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집에 수도관이 있을 리
없다. 교원들의 지시를 수행하자면 학생들도 공장, 기업소를 돌아다니며 수도관을 도둑질하는 방법밖에 없다. 집단적인
도둑에서 새로운 집단의 도둑이 발생하는 하나의 실례라고 하겠다.
또 다른 실례를 들어보자.
1980년 말경 김정일은 인민군대 살림살이를 자체로 해결하라고 지시했다. 대부분의 인민군은 중대가 생활단위로 되어있다.
‘중대의 살림살이’라는 표현이 흔하게 쓰인다. 따라서 중대 병영(兵營) 주변에 텃밭을 조성하여 곡식을 생산하는 한편
토끼, 염소, 돼지 등 가축을 대대적으로 사육하게 된다. 그러자면 각종 농기구들도 구입해야하고 가축 우리도 건설해야
한다.
역시 3군단의 한 중대에서는 가축우리 건설에 필요한 시멘트를 구입해야 했다. 시멘트 구입 명령이 어떤 형식으로 내려지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보자.
중대장은 아침 상학검열시간에 각 소대단위로 주어진 양의 시멘트 구입을 명령했다. 다시 소대장은 각 분대별로 명령한다.
분대장은 시멘트 구입(?)에 동원되는 병사들을 선발하여 사회기관의 건설장에서 시멘트를 도둑질하는 요령을 알려준다.
그리고는 배낭을 하나씩 내어주며 정해진 시간까지 도둑질해오라고 지시한다. 병사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야간에
도둑질을 하라면 별문제 없지만 시퍼런 대낮에 도둑질을 하라고 하니 대체 어쩌란 말인지……. 그래도 방법이 없다. 명령이니
어떤 형식으로든 집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협동농장의 시멘트 창고를 들이치기로(습격하기로) 했다.
그런데 경비원이 문제다. 궁리를 해봐야 경비원을 협박하는 방법밖에 없다. 방법도 그럴듯하게 적용해야한다. 아무런 이유
없이 경비원에게 다가갔다가 놀라서 달아나며 “도적이야!”하고 소리치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시멘트를
손에 넣었다고 해도 소속 부대가 알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소속 부대가 알려지면 지휘관들은 상급으로부터 호된 추궁을
받게 된다. 그것으로 인해 병사들은 ‘괘씸죄’에 걸린다. 병사들이 지휘관에게 미운 털이 박히면 군사복무기간에 노동당
입당도 못하게 될 수 있다. 북한 주민들의 군사복무 목적이 노동당입당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은 대단히 치명적이다.
여하튼 여러 사람이 괴롭게 된다. 그러니 악랄하고 모진 수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담뱃불을 붙이는 척, 경비원에게
접근하여 결박하는 것이다. 그래야 모든 것이 성공적이다.
이런 인민군의 본능 때문에 도둑이 아닌 약탈의 수법이 적용된다. 이것이 인민군대의 약탈, 도둑의 문제풀이라 하겠다.
인민군의 다양한 약탈 행위
북한의 사회적 특성상 인민군은 두려울 것이 없다. ‘선군(先軍)정치’ 때문이다. 사회의
치안을 담당한 안전원들도 인민군이 주민들을 약탈하고 도둑질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대개 방관한다. 안전원들이 관할할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민군의 범죄행위는 경무원(헌병)들이 막아야 한다. 북한에서 경무부(헌병대)는 시, 군에 하나씩
세워져 있다. 하지만 군인 수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수다. 한 개 군(郡)에 여러 개의 연대가 있는 반면 이를 담당하는
경무원 인원수는 불과 20명 안팎인 경우가 많다. 이들 대부분은 역전 주변이나 열차 단속에 집중 배치되어 있다. 따라서
군인들이 어디서 무엇을 도둑질하는지 알 수가 없다. 북한의 어느 지역을 가나 인민군이 득실대지만 군인이 주민들에게
법적, 도덕적으로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그를 처벌할 기관이 불분명하다.
그래서 일반 주민이 군복을 입고 도둑질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행위는 일단 발각되는 경우에는 가혹한 처벌이 가해진다.
도둑질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김정일 장군님 군대의 명예를 훼손시켰다’는 것이 가장 큰 죄목이다.
하나의 실례가 있다. 1998년 3월 26일 함경북도 청진시 라남구역 라북장마당에서 교수형 및 공개 총살이 있었다.
당시 현장에서 처형을 목격한 한 탈북자는 그 끔찍한 상황을 이렇게 전한다.
라남 장마당(청진시 라북리 소재)은 청진시내의 주민들이 가장 많이 모여서 장사를 하는 곳이다. 오전 10시 경, 수성천이
흐르는 강둑에는 두개의 교수형 말뚝이 설치됐다. 또 그 아래에는 9개의 말뚝이 세워졌다. 청진시 안전부에서 13명의
범죄자들을 ‘승리 58호’ 트럭에 싣고 와서 ‘주민공개회의’를 시작했다. 죄목은 그들이 인민군대로 가장하고 협동농장
탈곡장에서 경비원을 위협하며 농작물을 도둑질했다는 것이다. 더 엄중한 것은 군민(軍民)관계를 훼손시켰으므로 군법으로
처형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가장 처참한 극형으로 처벌한단다. 주모자 2명은 교수형에, 9명은 총살형에, 2명은 무기 징역으로 처형했다.
먼저 주모자 2명에 대한 교수형이 진행됐다. 목을 매달자 버둥거리지도 못한다. 처형장에 끌려오기 전에 얼마나 고문을
당했던지, 이미 살아있는 주검이나 같았기 때문이다. 다음은 9명에 대한 총살이 진행됐다. 한사람 당 9발의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주검은 가마니에 둘둘 말아 차에 실어 어딘가로 보냈다.
사형장의 주민들은 공포에 떨면서 무엇이라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속생각은 모두가 뻔했다. 그들이 실지 인민군대였다면
저렇게 극형을 받지도 않았을 것이다.
북한에서 총살형은 많아도 교수형은 극히 드물다. 1970년대 말경 평안남도 평성시에서 사람을 잡아먹는 정신병자를 교수형으로
처벌한 적이 있다. 그는 평성시 어떤 직장의 보일러공이었는데 어스름한 길목에서 연약한 처녀들만 골라가며 잡아먹었다고
한다. 그것도 몇 달 동안 여러 명을, 먹다 남은 시체는 보일러에 넣어 태워버리고…….
결국 주민들에 의해 적발됐고 교수형을 한 후에 모든 참석자들이 시체를 돌로 쳐서 다시 한번 죽이는 형벌에 처했다.
이와 같은 범죄자가 진정 벌을 받아 마땅한 극형이었다면, 현재는 주민이 인민군으로 가장한 것도 극형이다. 오직 선군정치의
미명 아래에서만 있을 법한 일이다. 인민을 굶겨 죽이는 정치체제가 아니라면 이런 범죄도 없었을 터인데 말이다.
북한사회에서 군인은 사회의 주민들보다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 여행을 떠나도 군복을 차려입으면 여러모로
편리하다. 주민들에게 괴로운 짓을 해도 단속하고 처벌할 사람이 별로 없다. 이것이 인민군을 도적으로 만든 하나의 요소이기도
하다. 그래서 주민들은 인민군을 ‘마적단’이라고 한다. 마적단처럼 거리낌 없이 범죄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문차기(빈집털이)
그럼 이제부터는 도둑의 유형 몇 가지를 짚어보자.
‘문차기’를 남한 식으로 말하면 빈집털이에 해당되나 방법에서 약간 차이가 있다. 남한 주택의 출입문은 모두 철문으로
되어있고 자물쇠도 쇳덩이로 되어 있다. 따라서 범죄자들은 드릴(drill)과 같은 소공구를 이용하여 출입문을 열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거의 모든 주택출입문은 나무로 만들어졌거나 쇠창살을 만들어 끼웠다. 따라서 문차기꾼들은 드라이버(driver)나
망치를 가지고 다닌다. 어떤 이들은 키(key) 뭉치를 가지고 다니는 자들도 있다. 북한의 자물쇠 키는 똑같이 제작된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빈집털이를 하는 것은 어느 사회에나 현존하는 일이기에 더 이야기 할 것도 없지만 버젓이 집주인이 자고 있는 데도 들어가
귀중품을 훔쳐 가는 경우도 있다. 이 역시 남한에도 있는 범죄 유형이라지만 북한은 가정집에 침입하기가 쉬워 이런 경우가
더 많다.
북한의 농촌 주택에서는 무더운 여름밤이면 출입문이나 창문을 열어 놓고 자게 된다. 남한의 여느 가정집처럼 에어컨이
있고 선풍기가 있다면 출입문이나 창문을 열어 놓지 않아도 되겠지만 숨막히는 더위 때문에 문을 열어 놓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모기에 물리지 않으려고 가제(Gaze)(소독하여 의료용으로 쓰는 부드럽고 성긴 외올 무명베. 거즈)로 만든
무명베로 모기장을 치고 수면을 하게 된다. 또 보통 한 방에 온 가정이 모여 잔다. 출입문은 열려있고 모기장 때문에
잘 보이지도 않고 사람도 여럿이 자고 있으니 문차기꾼들에게 환경은 적격(適格)이다. 문차기꾼들은 이와 같은 기회를
엿보고 깊은 밤에 집안으로 스며든다. 그리고는 쌀, 옷가지, 신발 등 쓸 수 있고 돈이 될만한 것이면 다 훔쳐간다.
사람이 집에 있으면서도 도둑을 당했으니 허망하지 않을 수 없다.
공격수(서리)
‘공격수’는 역전이나 열차 칸에서 손님 또는 승객들의 짐을 도둑질하는 자들을 말한다. 이들은 열차의 환승역들을 거점으로
열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손님들의 짐을 훔친다. 예컨대 평양시 간리역에서 순천역까지, 순천역에서 신성천역까지, 신성천역에서
고원역까지 등등 짧은 구간을 활용한다. 주로 승무안전원들의 단속구간을 피하기 쉬운 야간행 열차를 대상으로 한다. 달리는
열차에 올라 승객들이 조는 틈을 이용하여 짐을 가지고 달아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남한의 ‘소매치기’나 속칭 ‘아리랑치기’와 비슷하지 않느냐고 하던데 치안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북한이
훨씬 노골적이고 그 수도 많다. 수법은 보통 링('면도칼’의 은어)을 사용한다. 북한에서 열차는 여행의 기본 교통수단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주민들은 열차를 이용하게 된다. 장사를 떠나는 주민이라면 그 짐도 한두 개가 아니다. 주민들은 짐을
가지고 승차하면 반드시 선반(旋盤)에 올려놓고 꽁꽁 묶어 놓고 눈을 크게 뜨고 지킨다. 감시를 소홀히 하다가는 어느
승객이 짐을 훔쳐 가지고 내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남한에서 열차 선반 위에 태연히 짐을 올려놓고 좌석에서 잠을 청하는
사람들을 보고 처음에는 참 신기했다. 북한에서 만약 그러면 - 그럴 사람도 없지만 - 십중팔구 도둑맞는다. 북한에서는
선반에 짐을 묶어 놓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손이나 발목에 끈을 연결하여 다시 묶어놓기도 한다. 공격수들은 이런 끈은
끓어버리려고 면도칼을 갖고 다닌다.
또 다른 방법은 승객이 배낭을 등에 지고 인파 속을 이동할 때 뒤에서 같이 이동하는 척하면서 면도칼로 배낭의 겉면을
째고 물건들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예컨대 승객이 쌀 배낭을 메고 승객들로 꽉 들어 찬 열차 칸을 이동한다면, 공격수는
그 승객의 뒤에 바짝 따라붙어 면도칼로 배낭을 째고 승객을 따라가며 쏟아지는 쌀을 자기의 빈 배낭에 받아 넣는다.
물론 승객이 등에 멘 배낭의 무게가 가벼워져 알아챌 수 있으니 배낭을 요령 있게 짓누르면서 말이다. 또 면도칼로 호주머니의
돈지갑을 통째로 도려내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아차 하면 대상자의 피부까지 베어놓아 들통이 나기도 한다. 그러나
피해자가 뻔히 당한 줄 알면서도 반항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주위에는 깡패처럼 조직화된 동일 집단이 행동하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주로 여성들이다. 남성이라면 성질을 내며 주먹을 휘두르기 때문에 공격수들은 여성을 노린다.
역전에서 하는 행동도 이와 유사하다. 손님들은 언제 올지 모르는 기차를 기다리며 밤을 지샌다. 평양시의 간리역, 사리원역,
신성천역, 고원역, 길주역, 청진역과 같은 환승역들에는 연착된 열차를 기다리는 손님들이 역전광장을 꽉 메운다. 겨울철에
손님들은 너무도 추워 비닐박막을 뒤집어쓰고 졸기도 한다.
공격수들은 미리 대상을 정해 놓았다가 슬쩍 짐을 들고 인파에 휩쓸린다. 위와 같은 행위는 혼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행동 역시 여럿이 작당을 하여 행동한다. 북한의 주민들이 가장 쉽게, 많이 당하는 행태다. 전문적인 공격수들은
주로 20∼30대의 청년들이다.
마대농사
‘마대농사’는 농촌에서 벌어지는 도둑행위다. 언젠가 모 월간지에서 남한에서도 “전국적으로 개 도둑이며 인삼 도둑,
고추도둑 등 돈이 될 수 있는 농산물 도둑들이 극성을 떨어 불쌍한 농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는 특별 기고문을 읽은
적이 있다. 북한의 마대농사도 이와 유사하다. 농촌 주민이 개인이기주의자로 몰릴 것을 각오하고 봄, 여름 내내 애써
지은 곡식을 마대(麻袋)로 도둑질하여 걷어들인다는 뜻이다. 이것을 이름도 거창하게 ‘마대농사’라는 은어로 부른다.
북-중 국경에서 북한 쪽을 바라 본 사람들은 민둥산의 뙈기밭을 무수히 보았을 것이다. 중국 쪽은 푸른 숲이 울창한
반면 북한 쪽은 나무 한 그루 찾아볼 수 없게 뙈기밭을 만들어 놓았다. 낮이면 한가롭게 보이는 이 뙈기밭에서 밤에는
도둑과 농사꾼 사이에 유혈전이 벌어진다. 뙈기 농사를 지어놓은 사람들은 도둑에게 곡식을 털리지 않으려고 방망이며 꽹과리를
준비하고, 도둑은 주인을 치고 곡식을 털어 내기 위해 방망이와 마대자루를 준비한다. 힘이 약하면 어쩔 도리 없이 뺏기고
만다.
1990년대 중순까지만 해도 방망이를 들고 지키는 사람들이 득세했으나 지금은 그렇지도 않다. 도둑들도 무리를 지어
방망이와 자갈(돌)을 들고 맞서기 때문이다. 도둑에서 약탈로 변했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지키는 사람들은 자키는 사람대로,
마대농사꾼들은 또 그들 나름대로 정해진 장소에 모여 행동한다. 날이 밝으면 도둑에게 곡식을 털린 사람들의 통곡소리가
들린다. 통곡은 더 큰 악을 부른다. 털린 사람은 봉창을 위해 마대농사에 합세하고 도둑들은 새로운 경험을 가지고 도전한다.
또 다행히 한밤을 무사히 보낸 사람들도 날이 갈수록 무엇으로 변할지 모른다..
협동농장의 곡식마저 이러한 마대농사의 대상물이 된다. 협동농장의 밭에는 인민군대가 총을 들고 경비를 서기 때문에 도둑들이
조금 주저하는 편이다. 그러나 방법은 착상하기에 나름이다. 군인들의 호감을 살 수 있는 기호품을 경비병에게 뇌물로
주고 곡식을 마대로 걷어 갈 수 있다. 주로 야간에 경비병에게 접근하여 술, 필터담배 등 생필품을 주고 한 마대 슬쩍
한다. 경비병도 이해관계가 있는 쪽을 따를 수밖에 없다. 협동농장의 곡식은 자기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경비병들이
자진하여 마대로 곡식을 훔쳐가기도 한다. 곡식을 안면 있는 주민의 집에 가져다 놓고 술로 바꿔 먹던가 아니면 곡식을
팔아 자금을 저축하는 등 제대 전까지 한 몫을 챙길 준비를 한다.
벼와 같은 곡물은 탈곡을 해야 하기 때문에 훔쳐가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방법은 어련히 생기기
마련. 자전거를 거꾸로 뒤집어 놓고 뒷바퀴를 돌려 볏단의 벼알을 훑어내는 기가 막힌 방법을 도둑들은 고안해냈다. 북한
주민들치고 이런 수법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말이다. 가을이 되면 위와 같은 현상들이 북한 전역에서 일어난다.
꺽기
‘꺽기’란, 장마당에서 구매자가 쌀이나 물건을 흥정하는 척 하면서 지폐뭉치를 줄 때 겉면에만 돈을 씌워놓고 돈뭉치
속에는 종이를 넣어 판매자를 속이는 사기의 한 형태이다. 꺽기에 대해서는 Keys 28호(2002년 10월호) 『장마당의
꺽기생들』이라는 제목으로 행동형태를 구체적으로 서술한바 있기 때문에 생략한다.
워낙 도둑과 사기, 약탈이 많고, 그 방법 또한 창조적(?)이고 다양해서 이름을 붙이기가 역부족이지만 북한 주민들의
입에 오른 도둑 수법들은 위와 같은 것들이다. 이중에서 가장 무섭고 위협적인 것은 인민군 군인들이 길목을 지키다가
장사를 떠나는 주민들에게 달려들어 강탈을 하는 것이다. 군대가 모든 범죄의 근원이라고 할 만하다.
김정일이 도둑을 손수 만들어 놓고……
이 글을 쓰면서 참 고민을 많이 했다. 혹시 북한 사람 전체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될까 하는 노파심에서
말이다. 내가 연재하고 있는 ‘이주일의 북한이야기’가 북한 사회의 부정적인 면만을 소개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늘 그렇듯 나는 북한의 인민들을 탓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앞서도 말한 바 있듯, 인민이
악한 것이 아니라 그 체제가 근본적으로 악하기 때문이다.
이번 호에 소개한 도둑질과 약탈행위 역시 발생 원인과 동기는 김정일의 우상화체계의 산물이다. ‘당의 유일사상체계확립의
10대원칙’이라는 우상화 각본을 만들어 놓고 주민들을 굶겨죽이고 있으니 주민들이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지 않을 수 없다.
속담에 ”사흘 굶어 도둑질 안 할 놈 없고 열흘 굶어 군자 없다”는 말이 있다. 김정일이 수많은 돈을 퍼부으며 핵이요,
미사일이요, 금수산기념궁전이요 하면서 인민들을 악착같이 굶기고 있는데 도둑이 성하지 않을 수 없지 않는가. 송두율이
주창했다는 ‘내재적 방법론’으로 생각해보라. 당신이 북한 사람인들 그렇게 살지 않겠는가.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김정일이 스스로 그렇게 도둑을 양산하는 체제를 만들어 놓고도, 그리고 자기 스스로 가장 큰 도둑이며
사기 협잡꾼이면서 구리선 몇 미터를 잘라 팔어먹었다고 공개처형을 일삼고 있는 것이다. 중세봉건제의 말기적 증상과 같은
이런 김정일 체제를 바라보면, 568년 전 철학자 토마스 모어(Thomas More:1478∼1535)가 『유토피아』에
쓴 말이 너무도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들이 도둑을 손수 만들어 놓고 그들을 처벌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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