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Knet이 만난 사람
조선노동당 초급당비서 출신 탈북자 김진호

조선노동당 ‘초급당’의 실상

김진호(가명·52세) 씨는 북한의 철도부문 기업소에서 20여 년 간 초급당비서로 일해왔다. 북한의 구체적인 실정을 잘 모르고 있는 독자의 경우에는 ‘초급당비서’가 북한에서 어느 정도의 지위를 차지하는 사람인지 잘 가늠이 되지 않을 것이다. 조선노동당 중앙당에서 국제담당비서를 역임하다 한국으로 온 황장엽 씨의 직함을 익히 들어오던 터라 ‘초급당비서’하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독자도 많을 것이다. 물론 중앙당 비서에 비한다면 미미한 존재일 수 있지만, 북한 일반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가장 많이 부딪히는 존재가 ‘초급당비서’이다. 시장이나 구청장보다 동네 이장(里長)이나 통장(統長)이 평민들의 실생활에는 더 가깝고, 경우에 따라서는 보다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존재라는 사실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조선노동당의 최하 기층 조직은 ‘당세포’이다. 보통 5∼20명으로 구성되는 당세포는 ‘세포비서’가 인솔한다. 세포가 모여 초급당 위원회를 이룬다. 일반적으로 초급당과 당세포 사이에는 부문당이 존재한다. 당원 수가 30명을 초과할 때 초급당을 구성할 수 있다. 이 초급당을 책임지는 사람이 ‘초급당비서’로, 대개 100명 정도의 당원을 책임지고 있다. 초급당이 모여 시·군당 위원회를 이루고, 1·2급 대형 기업소에는 공장당위원회를 이루기도 한다. 그리고 이들이 모여 도당(道黨)을, 도당은 중앙당을 형성한다. 따라서 초급당은 조선노동당의 기초 골간이나 다름없다.

이번호 <NKnet이 만난 사람>에서 우리가 만나볼 김진호 씨는, 초급당비서로 일하기 전에는 철도부문 건설기업소에서 기사장(참모장), 지배인 등 행정일꾼으로 일했다. 그는 초급당비서직을 수행하는 과정에 북한체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고 한다. 그에게서 북한 초급당 운영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약간 전문적인 내용이 많아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것이라 예상되지만, 조선노동당 기층조직 내부실태를 살펴보는 데 좋은 자료가 될 것이라 판단하고 가급적 이해하기 쉽게 옮겨놓으려 애썼다. 이 과정에서 김진호 씨의 발언 내용을 잘못 풀이한 부분이 있다면 전적으로 Keys 편집위원회에 그 잘못이 있음을 밝혀둔다. 이하 김진호 씨를 ‘김 선생’이라 호칭하기로 한다.

한국에는 언제 입국하셨습니까?
“2001년 7월에 왔습니다. 이제 만 2년이 되었습니다.”

탈북을 결심하게된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저는 중국 연고자(緣故者)입니다. 중국에 고모를 비롯한 친척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탈출을 해도 안정적으로 머무를 수 있는 거처(居處)가 많았습니다. 이것이 일단 ‘중국에 가면 뭘 하고 살까’ 하는 것부터 걱정해야 하는 여느 탈북자들과는 달리 탈북을 비교적 쉽게 결단할 수 있게 한 첫째 조건이 되었습니다.

사상적인 원인이라 한다면, 중국에 있는 친척들이 북한에 친척방문을 오고, 또 우리 아버님이 중국에 친척방문을 가는 등 왕래를 하는 과정에서 중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현실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제가 당사업을 시작한 초기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점차 북한이 경제적으로 대단히 침체되고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럴수록 외부 세계의 모습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었습니다. 특히 남조선에 대하여 알고 싶은 욕망에 KBS 사회교육방송을 은밀히 들어 왔습니다. 탈북 하기 전에 1년 반 정도 청취해왔습니다.”

당일꾼이었는데 남한 방송을 꾸준히 청취하여왔단 말씀입니까?
“대체로 밤 10시 반 이후부터 KBS 사회교육방송을 들었습니다. 이 방송을 들으면서 국제사회의 이모저모 다양한 소식들을 알 수 있었습니다. 특히 남북관계에 대한 소식들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당일꾼들 가운데 시, 군당 부장, 부부장급 친구들이 많았는데, 친구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특히 중간충의 당간부들은 국제사회에 대하여 남한 사람들처럼 구체적으로는 몰라도 윤곽적으로는 알고 있습니다. 그들도 나름대로 정보 입수의 통로가 있었겠죠.

예를 들면 북한에서는 6·25전쟁을 미제와 남조선괴뢰들의 침략전쟁으로 선전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북한이 먼저 일으켰다는 것, 또 버마(미얀마)의 랭군폭발사건도 북한에서 일으켜 대사관까지 쫓겨났다는 것 등을 서로 알고 있습니다. 대화를 하다보면 서로 알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게 됩니다.”

버마의 수도 랭군에 있는 아웅산 묘소에서 일어난 폭파사건. 버마(Burma)라는 국명을 1989년 ‘미얀마’로 바꿨기 때문에 이제는 ‘미얀마 랭군 폭파사건’ 또는 ‘아웅산 테러 사건’이라고 불린다. 1983년 10월 9일 일어난 이 사건으로, 이날 묘소 참배가 예정되어 있던 한국의 정부요인과 수행기자들이 다수 사망하고 중경상을 입었다. 테러는 전두환 대통령을 노린 것으로 보이지만 다행히 그는 화를 면했다.

사건의 주범으로 북한이 지명됐고, 곧이어 북한 공작원 3명이 발각되었다. 체포과정에서 한 명은 죽고, 한 명은 사형선고를 받아 처형되었으며, 다른 한 명은 수감중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원래 친북적이던 미얀마 정부는 북한과 국교를 단절했다. 아웅산 테러는, 의문의 여지없이 김정일의 지시에 의한 계획적인 테러이다. 그러나 북한은 사건 발생 2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아웅산 테러는 우리와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남조선 당국자들이 우리를 헐뜯어보려 책동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제 북한 주민들 중 상당수는 랭군폭파 사건이 김정일의 지시 하에 연락소(테러 및 대남공작부서) 일꾼들이 자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 소문이 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당일꾼들 사이에 그런 이야기를 쉽게 합니까?
“아니죠. 웬만한 사이끼리는 이야기 할 수가 없고 오랜 기간, 적어도 10년 이상 상대방에 대하여 속셈까지 깊이 알고 있는 경우에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그렇다고해도 김정일이 무엇이 나쁘다, 김정일 체제를 뒤집어엎어야 한다고 딱 집어 말 할 수는 없습니다.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 몰라도, 위에서 말한 것처럼 ‘랭군폭발사건은 우리가 한 테러 짓이다. 6·25전쟁은 남침이다’는 정보를 서로 교환하는 수준입니다. 그에 대한 깊은 분석과 추리는 될 수 있는 한 금합니다. 말이 새어나간다 해도 책임을 회피할 수 있을 정도만 이야기합니다. 하여간 이러한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 김정일의 선전에 어딘가 허구가 많고 북한 사회가 철저히 개인숭배와 독재로 일관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럼 선생님이 탈북하신 것은 정치적인 이유가 크다고 볼 수 있겠습니까?
“물론 일종의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습니다. 나는 당비서 사업을 하면서도 생활이 참 어려웠습니다. 아침을 먹으면 다음 끼니를 걱정했습니다. 게다가 기업소의 종업원들과 가족들이 수천 명 되는데 그 사람들을 먹여 살리려고 안간힘을 써보았지만 해결되지도 않았습니다. 내 손으로 많은 시체들을 묻었고, 허약자(虛弱者)들의 가정을 방문하면서 과연 종업원들과 가족들을 어떻게 살려내겠는가 하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당에서는 기업소에 ‘혁명과업’이라고 하는 경제정책을 하달하는데, 과연 그것을 어떻게 수행해 내겠는지 도저히 출로를 찾을 수 없고…. 이건 기업소의 몇 명 간부들의 잘못이 아니라 체제의 문제라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이게 아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런 복합적인 사고과정을 거쳐 탈북하게 됐습니다.”

선생님이 당비서 사업을 한 기업소는 몇 급에 해당 됐습니까?
“초기에는 4급 기업소였고 종업원이 300여 명 좌우였습니다. 얼마 후에는 3급 기업소로 되었는데 종업원이 700여 명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철도부문은 기업소 급수를 일반 사회보다 한 급 높게 봅니다. 철도에서 4급이라면 사회에서 3급 정도에 해당됩니다.”

당원 수는 몇 명이나 되었습니까?
“철도부문 기업소의 당원 수는 일반 기업소의 당원 수보다 많습니다. 철도는 국가의 동맥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당원비율이 높습니다. ‘철도는 제2중대와 같다, 철도를 질적으로 꾸려야 한다’는 김일성의 방침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회 기업소는 당원 비율이 4분의 1정도입니다. 즉 400명중에 100명 정도입니다. 철도의 경우, 여기서 가장 핵심적인 기관차대 같은 경우에는 당원수가 거의 절반 정도에 달하고, 우리와 같은 건설계통은 부차적이기 때문에 3분의 1정도입니다.”

북한에서 입당을 하는 데 있어서 출신성분이 기본을 이루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선생님은 중국 연고자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당일꾼까지 될 수 있었습니까?
“일반적으로 당일꾼은 1980년도 이전까지는 출신성분관계를 7촌까지 봤습니다. 처가는 보통 4촌까지 봤고요. 그러다가 80년대 이후부터는 6촌까지 봤습니다. 안전부나 보위부, 당일꾼들은 다 이런 식으로 토대(출신성분)를 따집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6촌, 7촌을 따져도 걸릴 것은 없었습니다. 우리 친척들은 6·25전쟁기간에도 중국에 있었기 때문에 걸릴 것이 없었고, 복잡한 사회생활을 겪어 보지 않았기 때문에 특별히 문제삼을 만한 일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 알다시피 북한에서는 일본 귀국자 출신, 러시아에서 온 출신 등 외국 연고자의 자녀들은 믿지를 않습니다. 일본에서 조총련을 통해서 귀국한 사람들은 믿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간첩과 연관시켜 의심하면서 도청을 하는 정도까지 보위부가 상당히 신경을 씁니다. 중국 출신들은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믿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고, 간부로 등용하지도 않았습니다. 특히 당간부를 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했습니다.

저는 할아버지가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참여해 업적이 있다고 해서 당일꾼으로 선택됐습니다. 북한식으로 말하면 이른바 ‘백두산줄기’에 해당됩니다. 김일성과 같이 투쟁한 것은 아니고 최용건과 같이 투쟁한 경력을 갖고 있어 좀 밀리기는 했지만 제가 선택된 것은 할아버지 덕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우리 친척들은 나이가 되면 다 입당을 했고 동생이나 사촌들도 당일꾼은 아니지만 행정간부로 등용이 됐습니다.”

북한에서 출세의 양대 줄기는 ‘백두산줄기’와 ‘룡남산줄기’이다. ‘백두산줄기’는 김일성과 같이 항일무장투쟁을 한 사람과 그 후손들을 말하고, ‘룡남산줄기’는 김정일과 함께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동창생들과 그 인맥을 말한다. 이들의 출세가도에는 이상이 없다. 재능이 있든 없든 국가에서 등용해준다.

김 선생 역시 이러한 케이스다. 혹시 할아버지가 김일성 빨치산부대에게 감자 한 알만 쥐어준 경력이 있어도 후손들은 백두산줄기로 인정받아 부족함 없는 삶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김일성이 아니라 최용건 부대를 지원했기 때문에 ‘정통’ 백두산줄기보다는 좀 혜택이 적었다는 설명이다.

최용건은 평안북도 태천 출생으로, 동북항일연합군 제7군단장 및 제2로군 참모장으로 활동하였다. 해방이후 조선인민군 총사령관을 맡기도 했으며, 전쟁 후 박헌영 숙청사건을 지휘하기도 했다.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국가 부주석 등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1976년 사망했다. 북한에서 김일성을 제외한 사람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라 할 만한 부주석까지 지냈고 항일투쟁의 경력도 있지만, 사망 후 ‘충신(忠臣)’으로 칭송되면서 이름을 딴 군사학교까지 생겨난 최현, 김일(본명 박덕산) 등과는 달리 최용건은 그다지 높게 평가되지 않고 있다. 아마도 김일성에게 적극적으로 충성한 인물은 아닌 듯 여겨진다.

당일꾼은 어떠한 과정을 통해 양성됩니까?
“예전에는 철저히 공산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을 당일꾼과 정치일꾼으로 등용했습니다. ‘정치일꾼’에는 당일꾼뿐만 아니라 근로단체일꾼들까지도 포함됩니다. 2급 기업소 이상의 유급 사로청(현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위원장, 직맹(조선직업총동맹) 위원장까지도 공산대학을 졸업해야 했습니다. 강습 형태의 1개월 과정이 있고, 6개월, 1년 과정이 있었습니다. 현직 당일꾼을 1개월간 재교육 형태로 양성하기도 했는데, 1990년 이후부터는 3년 이상 당교육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유급 당일꾼으로 쓰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1990년대 후반부터 ‘당일꾼도 실무가 밝아야 한다’는 김정일의 방침에 의해 일반대학을 졸업한 사람들, 예를 들면 철도의 경우에는 철도대학을 졸업한 사람들도 보위부, 안전부, 당일꾼으로 등용하였습니다. 순수 정치사상교양을 위한 양성학교라고 할 수 있는 공산대학을 졸업한 것보다 행정실무가 있는 대학 졸업생들을 많이 등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북한에서는 군관으로 제대한 군인을 당일꾼으로 많이 등용시키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들은 행정실무가 있는 대학졸업생보다 행정실무능력이 떨어질 것으로 보이는데, 실상은 어떻습니까?
“북한에서는 대부분 간부가 되자면 군사복무과정을 거쳐야 됩니다. 그러나 국가적으로 필요한 계통, 예를 들면 철도부문에서 핵심부분인 기관차대나 객화(客貨)차대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입대 나이가 되어도 징병을 하지 않습니다. 이런 데를 제외하고는 군사복무를 했기 때문에 간부사업을 하다 보면 제대군인 아닌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제대군인들만 간부가 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제대군인들로 당일꾼, 행정간부를 양성한다는 규정은 없습니다.

제대군관 같은 사람들은 초급일꾼을 시켜도 현장에서 체계적으로 일하면서 양성한 사람들보다 실무능력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군관으로 제대한 군인들이나 특수훈련을 받은 사람들, 예를 들면 대남공작활동을 하다가 제대된 사람들은 위(상부)에서 ‘어디에 배치하라’고 직급을 명시해 내려보냅니다.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해당 시, 군당 또는 도당에서 간부사업을 하는데, 일반적인 당일꾼은 시키지 않고 민방위부 또는 청년근위대 등에 유급군사일꾼으로 배치합니다. 또 안전부나 보위부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을 맡깁니다. 실제 당 내에서 실무적인 역할을 하는 조직부나 선전부의 비서, 그리고 기업소의 초급당비서로 등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럼 이제 당사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여쭤보겠습니다. 북한에서 당사업의 기본 임무는 무엇입니까?
“북한에서는 ‘당사업이란 첫째로 사람과의 사업이다’ 라고 말하고 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김일성, 김정일을 우상화하기 위한 사업이 첫째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북한식으로 말하면 ‘당원들과 종업원들, 모든 근로자들을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의 혁명사상으로 튼튼히 무장시키는 사업’이 첫째가는 사업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문제는 김일성, 김정일의 지시 명령을 무조건 관철하기 위한 조직지도사업입니다. 우선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충실성과 계급적 토대(출신성분)를 기본으로 해서 간부선발을 해야합니다. 이렇게 선발된 간부들을 김일성, 김정일의 충신들로 만들기 위해 교양하고, 김일성, 김정일의 지시 명령 관철을 위한 돌격대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조직 동원해야 합니다. 요컨대 북한의 당사업이란 김일성, 김정일을 신으로 모시기 위해 인민들을 교육하고 돌격대로 내세우는 일련의 작업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들이 있습니까?
당사업의 범위는 굉장히 넓습니다. 우선 행정경제사업에 대한 당적 지도를 하게 됩니다. 이것은 다시 정치적 지도와 정책적 지도의 두 측면으로 나누어집니다.
또 당에서 해야하는 중요한 사업을 무장하기 위한 사업입니다. ‘사상적 무장’ 말입니다. 그 거점은 ‘김일성동지 혁명사상연구실’입니다. 북한에는 남한의 교회만큼이나 많은 김일성동지 혁명사상연구실이 있고 그곳에서 학습, 강연회 등 교육을 통해 당원과 근로자를 김일성, 김정일의 정수분자로 키우기 위한 사업을 진행합니다.

다음으로 간부선발사업, 노농적위대 사업을 해야 합니다. 유급 당비서들은 1년에 한번씩 ‘조상학(組上學)’이라는 것을 합니다. 일반 적위대원들이 군사훈련을 하듯 간부들은 2주 동안 지휘관 훈련을 매년 진행합니다. 조상학은 해당 시, 군 민방위부 부장 또는 부부장이 직접 조직하고 집행합니다. 따라서 일반 군사훈련과는 급이 다릅니다. 3, 4급 기업소의 초급당비서는 일개 대대 규모의 적위대원들을 거느립니다. 초급당 비서는 당비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적위대 대대장의 역활을 동시에 수행하게 됩니다. 일단 유사시에는 노농적위대 대대장의 임무를 수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근로단체에 대한 당적 지도를 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3, 4급 기업소라고 하면 여맹(조선 민주여성동맹), 사로청, 직맹을 가지고 있는데 이에 대한 당적지도를 해야 합니다. 대체적으로 당사업이란 이런 일들입니다.”

지난호(2003년 8월호, 통권37호) Keys에서 북한의 당간부와 행정간부 사이의 갈등구조에 대해 다룬 바 있습니다. 즉 당간부가 행정간부의 우위에 서있는 구조 때문에 경제가 비정상적으로 운영되는 실태에 대해 소개했었는데요, 현지에서 당일꾼을 맡았던 분으로서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십시오.
“구조적으로 당일꾼들이 행정사업을 대행하지 않을 수 없게끔 조성되어 있습니다. 실제 행정경제일꾼들이 일을 맡게 되면 통솔력이 떨어지니까, 당비서가 나서서 행정사업을 틀어쥐고 조직지도해야 능률이 나는 것 같은 느낌을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자기가 먹을 것도 더 챙길 수 있죠.

당간부들은 주로 3가지 원인에서 행정대행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우선 총화과정에서 잘못이 발견되면 이것이 모두 ‘당비서가 일을 잘못했다’고 귀결되기 때문입니다. 당조직들은 정기적으로 총회를 개최합니다. 당 규약에 따르면 시·군당위원회 매월 위원회 2회, 집행위원회 3회 이상 모임을 갖게 되어있습니다. 초급당위원회는 위원회 1회, 집행위원회 2회 이상, 당세포는 매달 정기 총회를 1회 이상 해야 합니다. 생활총화를 별도로 진행하고도 말입니다. 이런 모임에서는 여러 가지 문제가 토의되지만 주로 혁명과업 수행을 기본으로 총화하게 됩니다. 혁명과업수행에서도 비중 있게 다루어지는 것이 행정경제사업에 대한 총화입니다. 원칙대로라면 행정경제사업에 대한 총화는 기업소의 참모장 격인 ‘기사장(技師長)’이 해야 합니다. 그런데 상급당에 올라가 평가를 받고, 잘못이 있을 때 추궁을 받는 것은 기사장이 아니라 지배인 또는 초급당비서입니다. 물론 잘됐으면 지배인이나 초급당비서가 칭찬을 받겠지만, 자기가 직접 챙기지 않는 실무영역에 대해 비판을 받게되니 행정경제사업에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습니다.

이런 구조적 특징과 함께 다른 하나는, 매월 당위원회는 행정경제사업에 대한 ‘전투계획(생산 계획)’을 작성하고 초급당위원회 확대회의에서 비준(批准)을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통나무를 생산한다고 할 때 기사장과 같은 실무일꾼들이 계획을 세우지만 최종적으로는 초급당에서 비준을 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초급당위원회에서 계획을 비준해야 다음 달 생산계획으로 넘어갑니다. 그러니 초급당비서는 자기가 비준한 계획량의 달성 여부에 첨예한 관심을 쏟을 수 밖에요.

셋째로, 당일꾼 자체가 갖고 있는 권리를 누리고자 하는 욕심 때문입니다. 당비서가 악착스럽지 못하고 능력이 부족하면 지배인에게 쥐어 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그 기업소에서 생산은 잘될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 말했던 기본적인 당사업, 즉 간부를 선발하고 당원 및 근로자를 교육하며, 근로단체를 조직지도하고, 노동적위대 훈련도 시키는 등의 사업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당일꾼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꼭 되어야만 하기 때문에 자기가 전권을 휘두르려 합니다.”

초급당비서와 지배인은 동급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당비서가 지배인을 쥐었다 폈다 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행정경제사업 지도에서 초급당비서와 지배인과의 마찰이 많습니다. 마찰 정도가 아니라 한계를 넘어선 갈등 정도입니다. 기업소에서 기사장은 직접 생산을 책임지는 사람이고, 지배인은 경영을 책임지는 사람이며, 당비서는 이를 정치적, 정책적으로 지도하는 사람입니다. 기업소 내에서 기사장과 지배인의 생각이 다르다면 지배인의 권한으로 참모장을 지시할 수 있습니다. 참모장의 급수가 지배인보다 낮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참모장이 양보를 많이 합니다. 그러나 동급인 지배인과 초급당비서와의 생각이 다를 때는 서로 양보를 하지 않습니다. 서로 자기의 주장이 옳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 마찰이 생깁니다. 사업에 혼란이 생기고 인간관계까지도 극한 대립으로 나가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생산물 처리 문제를 놓고 갈등이 많습니다. 종이를 만드는 공장이라고 할 때 하루에 100통의 종이를 만든다고 합시다. 거기서 60∼70%는 국가계획에 따라 보낼 곳에 보냅니다. 나머지 30% 정도는 기업소에서 자체적으로 처분해서 다시 확대재생산을 위한 데 쓰입니다. 대개 설비를 구입하는데, 기본자재를 해결하는데, 후방사업(종업원들의 생필품 보장) 등에 씁니다. 원래 기업소에는 이런 처분권이 없었는데 1990년대 중반부터 실시해오고 있습니다.

이것을 처분할 때 지배인이 생각하는 방안과 초급당비서가 생각하는 방안이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직급이 같기 때문에 누구의 의견에 따를 것인가 하는 것이 상당한 문제입니다. 종이가 필요해서 받아가려는 기업소에서는 종이를 생산하는 기업소에서 필요로 하는 물자를 줘 맞바꾸기도 하지만, 잔여물자 처분권을 가진 책임간부에게 뇌물을 줘 해결합니다. 예를 들면 칼라 TV, 냉장고, 옷감, 생필품 같은 것을 개인적인 뇌물로 줍니다. 특히 농촌에서는 종이가 많이 필요한데 식량, 돼지 고기 등 농토산물을 뇌물로 건네줍니다. 기업소 종업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하지만 책임간부에게 바치는 개인뇌물도 상당합니다. 이런 뇌물 때문에 당비서와 지배인은 생산물 처리에 대하여 각기 결정권을 가지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배인과 당비서는 기업소 내에 자기 집안(세력)을 꾸리려 애씁니다. 이런 분야에서는 초급당비서가 지배인보다 유리합니다. 입당시키기 위한 사업, 군대에 입대시키는 문제, 수훈문제, 간부선발 문제 등 사람이 잘되고 못되게 하는 결정적인 권한을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지배인은 손톱만한 권한도 업습니다. 그러니 행정사업은 지배인이나 기사장이 책임지고 해야 할 영역이지만 초급당비서가 개입하자면 끝도 없이 할 수 있습니다. 개입해도 지배인이나 참모장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습니다. 행정 사업에서 당적지도를 무조건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경제 정책에 대한 지도는 원칙적으로 김정일의 경제 정책을 해설 침투해서 그 경제 정책대로 집행되도록 통제하는 것이지 그 어떤 생산 숫자를 놓고 실무에 개입해서는 안 됩니다. 노력관리를 한다든가, 생산에 대한 직접적인 지도를 한다든가, 생산물 처리에 간섭한다든가, 원료자재의 이용 및 확보에 간섭하는 일 등은 초급당비서가 간섭해서는 안 되는 것들입니다. 특히 먹을 것과 생필품을 나눠주는 후방사업은 심리적으로 가장 예민한 부분입니다. 초급당비서가 후방사업에 간섭해서 누구는 얼마를 주고 생산물은 어떻게 처리해야한다고 결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도 당비서는 이런 데까지 개입해서 자기의 집안을 꾸립니다.

따라서 종업원들은 관혼상제가 있으면 지배인에게는 알리지 않아도 초급당비서에게는 꼭 알립니다. 지배인과는 이해득실의 관계가 깊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 집안의 결혼식, 회갑 등에 초급당비서가 참가해야 그 집은 소위 ‘당의 신임을 받는 집’으로, 사회적으로 인격이 보장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이런 경우 지배인은 상당한 불쾌감을 가집니다. 당비서는 청하고 지배인은 청하지 않았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지배인도 집안을 가질 수 있는 약간의 떡고물은 있습니다. 생산활동과 생산물처리를 직접적으로 실행하는 것은 지배인이기 때문입니다.”

참 대단한 알력 다툼이군요. 북한에서 간부사업은 당비서의 역할이라고 했는데, 여기에 있어서는 어떠한 알력 관계가 존재합니까?
“간부선발에서도 문제가 있습니다. 간부사업 중 70∼80%는 행정간부를 선발하는 일입니다. 행정간부의 대부분은 지배인이나 기사장과 같이 일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지배인이나 기사장은 아무런 권한이 없습니다. 초급당비서가 자기 맘대로 임명합니다. 초급당비서가 대인관계에서 노련하다면 지배인이나 기사장과 토론은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지배인이나 기사장은 상당히 고마워합니다.
그런데 초급당비서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초급당비서로서 자존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간부사업은 자기의 고유한 권한이기 때문에 당적 원칙에 따라 진행한다고 하면서 행정경제일꾼들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혼자 결정합니다.

지배인이 똑똑한 종업원을 선정하고 자기를 이을 간부로 키우려고 지목하면 초급당비서는 그를 군대에 보내던가 공산대학에 보내고 맙니다. 공산대학에 가면 대학졸업 후 본 기업소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도당에서 배치하기 때문에 어디에 갈지 모릅니다. 똑똑한 사람 한 명을 자기 눈에서 제거해 버리는 것이죠. 이런 데서도 지배인과 당비서 사이에 마찰이 생기는 것입니다. 제가 북한에서 초급당비서 일도 해보고, 지배인 일도 해보고, 기사장 일도 해 본 경험에 의하면 기본적으로 초급당비서가 나쁩니다.”

북한이 민주화되면 그 과정에 조선노동당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조심스럽게 논의된 바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선생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거기에 대해서 깊이 생각을 못해 봤습니다. 지금 간단히 생각해보면, 북한이 민주화된다고 해도 50여 년 동안 이어온 조선노동당의 골격을 하루아침에 쉽게 바꾸기는 힘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지금 조선노동당이 왜 저러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나 하는 것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당이 국가를 이끄는 역할을 담당한 것이 아니라 김정일 우상화의 전위부대로 전락하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북한의 당 사업에서 중심이 되고 있는 김정일 우상화 체계를 없애기만 하면 상당한 전진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갖춰진 당 조직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민주주의 교육을 조직적, 체계적으로 시키면 빠른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면 김정일의 반인민적 죄행을 정확히 폭로하고 북한 주민들에게 민주주의 교육을 시킬 수 있는 준비작업을 지금부터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김 선생은 “북한 인민이 살 길은 오직 하나”라고 거듭 강조했다. 반드시 김정일 독재체재를 붕괴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 언론에서 떠두는 ‘북한 핵’이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김정일 독재체제가 존재하는 한 핵문제는 지속될 것이며, 북한 인민들에 대한 인권탄압도 계속 될 것이라 이야기했다. 모든 문제의 화근인 김정일이 사라지면 북한 사회는 빠른 시간 안에 정상화될 것이며, 비약적인 성장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확신했다.

조선노동당 깃발은 붉은 천에 마치, 낫, 펜이 그려져 있다. 마치는 노동자, 낫은 농민, 펜은 인텔리를 상징한다. 노동자, 농민, 인텔리의 당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간 조선노동당의 깃발에서 마치와 낫, 펜은 장식품에 불과했다. 오직 김일성·김정일의 얼굴이 그 중심에 있을 뿐이었다. 억눌려있던 마치와 낫, 펜이 들고일어나 그 얼굴을 갈아치울 날이 하루빨리 올 것을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