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Keys - 평양에서 벌어지는 쇼
평양에서 벌어지는 ‘쇼’

언젠가 서방의 어느 기자는 “평양은 거대한 세트장”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의 말은 하나도 과장이 없다고 봅니다. 적잖은 사람들이 평양을 갔다 와서 그것으로 북한을 다 아는 듯 이야기하고, 심지어는 북한민주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북한을 갔다 와 보고나 하는 소리냐”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당에 의해 이미 철저히 조직되고 준비된 사람들을 만나보고 오고서는 마치 그것을 북한의 모든 것으로 여깁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 한 것은, 또 그 사람들의 대다수가 정작 북한에서 온 탈북자들의 생생한 증언은 거의 믿으려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북한 사람들 가운데 일생 동안 평양에 가보지 않은 사람이 수두룩할 정도로 평양은 특별한 도시이며, 그러한 평양조차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 호에는 평양에 외국 방문객들이 왔을 때 평양 사람들이 각본에 따라 어떠한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평양에서 살다 온 장인숙 님의 증언을 통해 다시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Keys 2001년 3월호 (통권 제12호)에 실렸던 기고문입니다. 당시 제목은 “북한을 바로 알고 이야기합시다”였습니다.

장 인 숙
장인숙 씨는 함북 청진 태생으로 평양 운수대학 교량터널과를 졸업하고 설계원(우리나라 건교부 차관과 국장사이의 직급에 해당)으로 26년간 근무하며 북한의 주요 건설사업에 참여한 바 있다. 170m 높이의 김일성 주체사상탑과 폭 100m 길이 8km짜리 광복거리, 평양-남포간 고속도로 등을 건설했다.


선생님은 등산을 갔다 오신 겁니다

6.15 공동성명이 발표되고 여러 단체들이 서로 앞을 다투어 방북 길에 오르고 있고 이산가족상봉을 비롯한 여러 가지 만남의 횟수가 늘어남에 따라 현재 한국에서는 북한 전체가 다 열려져 있고 모든 것들이 선전대로 모양새가 갖추어졌다고 입을 모아 경탄을 금치 못해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을 보는 우리들 - 북한에서 온 탈북자들의 심정은 참으로 답답하다. 먹지 않고서 배부르다고 할 수 없고, 이 추운 겨울날 옷 한 벌 제대로 갖추어 입지 않고 덥다고 할 수 없다. 이것은 인간의 생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먹지 안고도 배부르다 하고 추워서 얼어죽을 지경인데도 덥다고 말하라는 완전한 생억지, 정부의 요구에 따라 춤추는 ‘꼭두각시’ 놀음을 계속하고 있는 나라가 있으니 그곳이 북한이다.

내가 나서 자랐고 선조의 무덤이 있고 나의 탯줄을 묻은 고향산천 - 꿈속에서라도 가보고 싶고 잠꼬대를 할 때에도 부르게 되는 것이 나의 고향 이름과 친척, 친구들의 이름이다. 7천만 동포가 한결같이 통일을 염원하겠지만 고향을 이북에 둔 우리들의 소망은 더 없이 간절하다. 통일을 위한 행군길은 참으로 험난하다. 부닥치는 걸림돌을 하나씩 하나씩 치워버리고 우리들 몸 전체가 디딤돌이 되어서라도 이룩해야 할 문제가 곧 통일이다.

문제는 지금 남한 사람들이 통일을 이야기하면서도 북한을 너무 모르고 있다는데 있다. 그 어느 전쟁에서든지 상대편을 잘 알고 그에 상응한 전략전술을 세우는 것이 승패의 기본 고리라는 것은 원칙화 되었다. 이런 시점에서 볼 때 북한의 모든 모습을 있는 그대로 옳게 이해하는 문제는 초미의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방북하고 돌아온 인사들의 말은 천차만별이다. 공통점은 북한의 안내원(보위부 요원)의 인솔 하에 지정된 장소에 가서 지정된 사람을 만났고 거기서 북한의 모습들을 모았다는 것이다. 물론 금년부터 북한도 서방외교에 힘을 넣고, 특히 남한의 모든 원조를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더 빨리 얻어내겠는가 하는데 많은 잔머리를 굴리는 것은 사실이다.

나는 얼마 전에 금강산 관광에 갔다가 돌아온 실향민을 만났는데 아름다운 경치에 매혹되어 지정된 장소에서 몇 발자국 벗어나 사진을 찍었다가 필름 전체를 압수 당하고 곤욕을 치렀다고 했다. 그 때 그 분은 괜히 금강산 관광에 많은 돈을 쓰며 갔다왔다고 후회했다. 이 때 내가 그에게 “선생님은 금강산에 관광 갔다온 것이 아니라 등산 갔다왔습니다”라고 이야기하자 허거픈 웃음을 지으면서 “그래 맞았어. 분명히 등산코스를 따라 몇 m에 1명 씩 서 있는 경비원들의 눈총을 받으며 다녀왔으니 틀림없는 등산이구만” 하였다.

이것이 어찌 한 분 - 실향민들의 생각이겠는가? 생각하니 나 역시 몹시 서글펐다. 1차 이산가족 상봉시 적지 않는 방송사, 신문사에서 나한테 문의전화가 왔다. 북한에서 오는 상봉자들이 어떤 옷을 입었을까? 어떤 선물을 가지고 올까? 이런 여러 가지 의문이었다.

그런데 나는 100% 확률로 옷차림과 선물명세를 맞추었다. 어떻게 그렇게 정확도가 높은 답변을 할 수 있는가 하고 의문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내려오던 각본, 연출, 출현이기 때문이다. 어느 것 하나 당중앙의 승인을 받지 않은 것이 없고 행사처럼 모든 활동이 규칙화되었기 때문에 북한에서 온 사람들한테 물으면 모두 다 나 같이 적중할 것이다. 모든 행사 때마다 김정일 자신이 직접 지휘한 이런 활동들이 그를 높이 추켜세우는 이벤트처럼 되고 있으니 참으로 가슴이 우습고, 거기에 동원될 고향 주민들의 고통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짜여진 각본대로 움직이는 사람들

나 역시 평양에서 30여 년 이상 살면서 수많은 행사에 참가도 해보았고 또 상급당의 지시를 집행하여 보았다. 미국, 일본, 한국 대표단을 비롯하여 자본주의 국가 대표단들이 올 때면 밤새워 거리를 쓸고 타이루가 붙은 외벽을 닦고 늙은이들과 어린애들은 집안에 감금 되어야 하며 자기에게서 제일 좋은 옷을 입어야 했다. 상대방의 그 어떤 질문에도 당당하게 김 부자의 위대성을 중심으로 대답하라고 지시 받고, 질문에 대답할 내용을 통달하기 위하여 얼마나 큰 곤욕을 치루었는지 모른다.

또한 대표단들의 참관코스에 따라 미리 조직군중이 동원되어 온갖 ‘쇼’를 부리게 한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대동강유보도의 산보, 뱃놀이, 모란봉과 능라도에서 놀이 등을 보면서 나 자신은 그들의 핏기 없는 얼굴과 힘든 팔다리 동작을 내가 마치 강요당하는 것 같아 몹시도 힘들었다.

어찌 그뿐인가. 언제 통일이 되겠는가 하는 질문에 “통일은 이제라도 내가 하라면 한다. 이 같은 말은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는 김정일의 오만무례한 행동을 “통이 큰 장군님“, “경단성 있는 장군님“으로 칭송하는 방북 인사들을 보니 참으로 안타깝다. 통일을 위해 우리가 가야 할 길, 넘어야 할 산과 바다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모든 것을 자기 멋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김정일을 그토록 높이 추켜세우니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나는 얼마 전에 북한에 들어가 고아원과 양로원에서 인술(仁術)을 펼친 독일의사 폴러첸 선생을 만났다. 자기 피부까지 떼내 북한 어린이에게 이식수술을 해준 그 선생은 미국 국무장관이 방북했을 때 동행한 서방 기자들을 지정된 통로 외로 안내했다고 한다. 그것 때문에 반혁명분자로 낙인 찍혀 추방되어왔다는 사실은 이미 알았지만 정작 만나고 보니 마치 내가 그 선생한테 죄지은 것 같아 머리를 들 수 없었다. 그 선생의 말이, 어느 곳을 가 보려면 7일 전에 신청해야만 승인되고 이 곳 역시 철저한 ‘보호’를 감시를 받으며 가보았다고 한다. 절대로 북한을 바로 알기 전에는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된다고,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북한이 변하기 전에 먼저 북한이 변했다고 설치고 있으니 문제라고 했다. 우리 민족도 아닌 외국인이 이렇게 북한을 옳게 보는데 어찌하여 방북 인사들은 무책임적인 발언을 아무 거리낌없이 마음대로 말할 수 있을까?

북한을 바로 알고 이야기합시다

북한을 과대,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좋은 점은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쁜 점은 고쳐나가도록 뜻과 힘을 모두는 것이 현명한 처사라고 믿는다. 제한된 지역에 가서 지정된 시설이나 사람들의 말에 먼저 귀를 기울이는 대신 그 속에서 온갖 쓴 맛, 단 맛을 다 보면서 살아온 우리들의 말을 믿는 것이 훨씬 더 좋을 것이다. 이방인도 아닌 한 민족인 우리 탈북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북한문제를 옳게 고찰하고 연구하고 그에 상응한 대책을 취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본다. 방북 인사들이 무책임한 발언 때문에 남한의 국민들이 좌왕우왕할 것 같아 걱정스럽다.

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북한의 그 어떤 모습이 방영된다고 하여도 이것은 철저히 당중앙의 승인을 받고 짜여진 하나의 드라마 같은 것으로 보는 편이 정확하다. 그러나 그 속에서 움직이고 살아 숨쉬는 북한의 국민들은 참말로 강하고 지혜롭고 또 같은 동포들인 한국의 여러 단체의 지원을 참말로 고맙고 가슴 뜨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알면 좋겠다. 언제인가는 통일의 문이 열릴 것이고 그 때에는 서로의 마음을 다 열어 놓고 지나온 모든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면서 행복하게 친근하게 살 날이 기어이 오리라 믿는다.

우리들의 어깨 위에 짊어지고 있는 통일의 무거운 짐은, 우리 모두가 힘과 지혜, 용기와 결단을 다 발휘한다면 능히 통일된 조국의 남해 바닷가에 던져 버리고 ‘통일만세’를 마음껏 부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