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을 사상적으로 와해시키는 임무를 띤 ‘민경대 적공대원’이 체험한 北과 南

백두한라회. 북한을 탈출하여 한국에 온 청년들의 친목 모임으로 출발하였으나 남한 청년들이 하나 둘 손을 맞잡으면서 이제는 ‘남북 청년의 통일 대오’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단체이다. 백두한라회가 어떤 단체인지 알고 싶으면 긴 설명 필요 없이 그냥 정기 모임에 한 번 나가보면 된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모여서 삼겹살에 소주 한 잔씩 기울인다. 앞자리에 앉은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술을 마시다, 두어 순배 술잔이 돌아가면 악수를 청한다.

“저는 갑돌이입니다. 고향은 함경도 청진입니다. 지금은 양천구 신정동에 살고 있습니다.”
“저는 을순이예요. 대전에서 태어났구요, 고양시에 살고 있어요.”

그리고 곧장 친해져서 웃고 떠들며 이야기 꽃을 피운다. 술 한잔 들어갔는데 노래도 한 곡조 뽑아야지! 2차는 무조건 노래방이다.

“우리∼ 마안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이었어∼”

서로 자연스럽게 악수하고, 어깨동무하고, 그렇게 우정의 밤은 깊어 간다. 두 번 세 번 만남을 갖다보면 고향 이야기도 하고, 을순이는 북한에 대해 궁금했던 것을 갑돌이에게 묻고, 갑돌이는 남한 생활을 하면서 의문스러웠던 점을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며, ‘친구’가 된다. 굳이 ‘단결하자’ ‘하나되자’ ‘북한에 대해 알자’는 식으로 강변하지 않아도, 만나다보니 친해지고, 때론 다투기도 하지만 그것이 더욱 든든한 우정의 밑거름이 되고, 그렇게 남과 북이 하나되는 단체가 ‘백두한라회’다.

사상투쟁의 최전선에 서있던 인민군 병사

지난 3월 22일. 백두한라회의 새로운 대표가 선출됐다. 탁은혁, 나이는 23세. 고향은 평안남도 중화군인데 2살 때 이사를 가서 함경남도 함흥시에서 17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함흥에서 고등중학교까지 졸업한 후 군대에 갔다.

은혁씨는 인기스타(?)다. 요새는 한 해에 1천 명 정도의 탈북자들이 한국에 입국하고 있으니, 웬만한 탈북자가 아니면 뉴스에 보도되지도 않는다. 그런데 은혁씨가 한국에 왔을 때는 주요 신문에 제법 크게 기사가 실렸다. 기억하고 있는 독자도 있겠지만, 2002년 2월 미국의 부시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도라선역에 들렀는데, 바로 그 전날 밤에 도라선 인근에서 남한으로 귀순해 온 북한군 병사가 있었다. 소총 2정을 들고 비무장지대를 넘어온 그 병사가 바로 탁은혁 씨다. (물론 그는 부시 대통령이 휴전선 인근에 온다는 사실을 남한에 와서야 알았다고 한다.)

그는 북한에서 ‘민경부대’에 있었다. 휴전선 경계 근무를 하는 군인을 ‘민경’이라고 부른다. 민경부대에서도 ‘적공국(敵工局)’에 있었다. 적공국은 말그대로 ‘적을 공작하는 부대’다. 대남 방송이나 각종 선전물을 통해 국군을 심리적으로 와해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게 ‘사상투쟁의 최전선’에 있었던 그가 수령독재사회의 문제점을 깨닫고 남한행을 결심했다. 이제 그의 목소리로 23살 미남 총각의 북과 남에 대한 소감을 들어보자.

- 군에는 언제 입대했습니까?
“1997년도에 입대했습니다.”

- 그때면 북한의 식량 사정이 최악이었던 시기인데 굶어죽는 사람들도 많이 봤겠어요?
“많이 봤죠. 보기도 하고 듣기도 하고….”

- 가슴 아프겠지만 그때의 이야기를 조금 들려주시죠.
“제가 살던 곳은 북한군 군부대 주둔 부락이기 때문에 우리 마을에서 사람들이 굶어 죽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알다시피 함경남도가 식량난 시기에 가장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97년도 3월에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함경남도에서 한 달에 최고 500만씩 굶어죽었다고 하는데, 물론 그 수치는 대단히 과장되었긴 하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말이겠죠. 정말 남한 사람들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제가 인민군에 입대하기 위해서 3월 말부터 4월 초까지 보름동안 초모소(한국으로 말하면 ‘병무청’)에 다녔는데, 그때 거의 50m에 한 명씩, 보태지도 빼지도 않고 딱 그 정도 거리에 한 명씩 노숙자나 꽃제비들이 굶어서 죽어 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시체들을 치워야 겠는데 인력이 부족해서인지, 운반 수단이 부족해서인지 치우지 못하고 가마니 같은 것으로 덮어놓았더군요. 4월이었지만 북한은 그때까지 날씨가 쌀쌀한데도 살 썩는 악취가 거리에 진동하고…. 참 보기 딱하고 가슴아픈 게 눈물이 났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이런 것들을 너무 많이 보게 되니까 점차 동정심도 없어졌습니다. 사실 자기 살기에 바쁘기도 했구요. 동정심을 가진 사람이 옥수수 지짐 같은 것을 다 죽어가는 꽃제비들의 손에 쥐어주었는데 그래도 먹지를 못해요. 먹을 힘도 없이, 죽기 바로 직전이었으니까요. 그 동정 받은 옥수수 지짐마저 지나가던 개들한테 다 뺏기고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것을 많이 목격하면서, 아… (허탈한 웃음을 지우며) 정말 사람이 죽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로구나, 내가 이제 며칠 후면 군복을 입고 최전방에 나가야 하는데 과연 이런 사회를 지키기 위해 군대에 나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뿐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똑같은 생각을 했으리라 봅니다.”

이런 사회를 지키기 위해 군대에 가야 하나

은혁씨는 “우리 마을에서 사람들이 굶어 죽는 경우는 없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여기서 잠깐 독자들의 이해를 돕자면 군부대 사택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겠다.

북한의 군부대 주변들에는 군부대 사택이 있는데 주로 군관(장교) 가족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곳에는 군관 가족들을 위한 학교, 병원, 편의시설들이 갖추어져 있다. 식량을 비롯한 모든 필수품은 군(軍)에서 지급된다. 또 군부대 부양 가족들이 만약 농산물을 생산했다면 수확물을 국가에 바치지 않고 자체로 소비할 수 있는 특정 구역이다.

여기에는 일반 주민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타지역의 사람들이 이곳에 들어가려면 군관 가족들과 친척관계가 있다는 것이 확인되어야 들어 갈 수 있다. 불분명한 목적으로는 군부대 사택 마을에 들어 갈 수 없다. 반대로 군관가족들은 제약 없이 드나들 수 있다. 특히 은혁씨가 살고 있던 군부대 사택은 공군 비행사 가족들만이 사는 구역이다. 따라서 일반 군인 사택보다 마을의 경비가 더 엄격하고 모든 생활 조건이 편리하다.

“당시 북한의 구호가 ‘힘들어도 사회주의를 지키자!’였습니다. 그러나 군대에 가게 된 친구들 뿐 아니라 농촌?공장에서 일하는 친구들도 ‘저것을 보면서(굶어죽는 것을 보면서) 사회주의를 지키자는 말이냐’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 군대 초모(招募, 의병이나 지원병 등을 모집함)는 어떻게 합니까?
“북한군은 지원제 입니다. 남한 사람들은 북한군을 의무제라고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꽤 많던데, 법적으로는 자원(自願)해서 가게 되어있습니다. 옛날에는 군대 가기가 힘들었고 (입대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군대 인원 수를 대폭 늘렸습니다. 그래서 막말로 말하면 팔과 다리 없는 사람들을 빼놓고는 다 징집합니다.” 북한에서는 한국의 징병제와는 달리 모병제를 실시해왔다. 그런데도 서로 군대를 ‘가려고’ 아우성이다. 왜 그럴까? 군대를 가지 않으면 출세길이 막히기 때문이다. 출신성분이 안 좋은 사람은 군대에 가고 싶어도 못 간다. 그래서 기를 쓰고 군대에 가려고 한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간부들이 자녀들을 대학에 진학시켜 군(軍) 입대를 기피하는 현상이 번졌다. 굳이 군대에 보내지 않아도 부모의 권력으로 자식을 출세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일반 주민들의 불만을 야기시켰다. 따라서 김정일은 당중앙위원회 비서국 간부들의 자녀는 대학 재학중이라 하더라도 3년 동안 군복무를 의무화하라고 지시했다. 이로써 고위층 자녀들의 군 기피는 줄긴 했지만,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일반 주민들 사이에서도 군 기피 현상이 확산됐다. 이제는 입당 같은 것도 필요 없이 ‘돈만 있으면 되는’ 체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최근 북한군은 한국과 같은 형태의 징병제를 실시하기로 했다.

“군대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이 아닙니다. 좋은데도 있고 당연히 아주 나쁜데도 있죠. 병종에 따라 다릅니다. 좋은 곳이라 하면, 김정일 친위대라든가, 후방총국, 또는 최전방 군인 등 입니다. 나쁜 곳이라 하면, 일반 군대… 예컨대 1군단, 5군단, 식량이 보급 되지 않는 강원도, 그리고 공사만 하는 도로국(道路局) 등 입니다.

일반적으로 토대(출신성분)나 빽(배경), 그리고 자라난 환경 등 모든 것을 보고 선별을 합니다. 힘이 있고(권력이 있고) 토대가 좋은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좋은 곳에 갈 수 있고, 힘이 없고 토대가 나쁜 사람들은 아무리 군복을 입어도 총을 쥘 수 없습니다. 후방부대나 도로국에 가서 13년 군 복무기간 동안 총은 구경도 못하고 곡괭이나 망치를 들고 공사를 해야 합니다.”

- 그래도 주민들 사이에서는 군대에 가면 굶어 죽지는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물론 북한은 선군(先軍)정치이기 때문에 군대에서는 사회처럼 굶어 죽지 않습니다. 북한에서 자체 생산되는 식량이나 국제 사회에서 지원하는 모든 원조식량은 군대부터 돌립니다. 따라서 ‘굶어 죽는다’ 이것은 피할 수 있습니다. 영양실조가 많이 나타나서 죽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회보단 낫죠.”

- 어떻게 전방부대에 배치 받게 됐습니까?
“제 경우는 ‘제1부류’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1부류라고 하면 김정일 친위대, 특수부대원, 5과생(김정일 관련 부서에 근무)들이나, 대남공작을 할 수 있는 군인들, 그리고 비행사, 잠수함, 우리처럼 최전방에 배치 될 수 있는 군인들을 말합니다.

저는 일반 동료들과 함께 초모를 하지 않았습니다. 고등중학교 6학년 1학기부터 저희들은 따로 선발을 했습니다. (군대에서) 따로 내려와서 심사를 합니다. 가정환경, 토대, 성적을 보고, 신장이나 체중, 학력도 봅니다. 최종적으로 합격이 되면 6학년 2학기에 통지서가 날아옵니다.

그 통지서에 의해서 자기가 원하는 곳, 즉 5과, 친위대, 민경부대, 비행사 이런 식으로 그 사람의 적성에 맞게 지정 받습니다. 그리고 나서 동료 초모생들과 같이 군사동원부에 다니는데 우리는 ‘간부과’라는 다른 부서에서 심사를 절차대로 받고 초모에 징집됩니다.”

북한에서 군 초모는 4∼5월과 8∼9월 사이에 집중적으로 진행하는데 4월에 위와 같은 특별한 병종들을 뽑고 나머지는 대개 건설부대 군인들을 뽑는다.


너희는 철천지 원수들과 대치하고 있다

- 처음 배치된 군부대는 어디였어요?
“저는 최전방 민경부대를 지원했습니다. 그때 최전방 부대 지원도가 제일 높았습니다. 김정일이 최전방 시찰을 자주 하니까…. 그러니까 대덕산, 오대산과 같은 최전방 시찰을 했는데, 그래서 젊은 사람들은 (김정일이 자주 찾는) 최전방에 나가고싶어 했습니다. 물론 지원한다고 다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저는 원래 비행사로 지망했다가 친한 친구가 민경에 가자고 해서 함께 민경에 지원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서부 전선에 배치 받았지만 그 친구는 동부전선에 배치 받았습니다. 그 뒤로는 영원히 볼 수 없었죠.”

-민경의 신병훈련은 어떻습니까?

“최전방 비무장지대에 근무하는 군인들을 민경이라고 합니다. 민경이란 ‘민사행정경찰’의 약자입니다. 동부전선, 서부전선의 거리는 약 615리(242km)인데 여기에 배치된 민경수가 약 1만8천 명 정도입니다. 여기에 9개의 민경부대가 있고 그 군인들을 양성하기 위한 훈련소가 있습니다. 입대하면 1년 동안 민경 신병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고 각 분대에 배치됩니다. (일반 군대는 6개월간 신병훈련을 받는다)”

- 민경의 신병 훈련강도는 일반 군대에 비해 어떻습니까?
“비할 바 없이 강하죠. 예를 들면 훈련 사관들이 하는 말이 ‘너희들은 우리의 철천지 원수들하고 대치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너희들이 약하면 먹히고 만다. 먹히면 너희들이 제일 먼저 교수대에 올라야 한다’고 하면서 훈련을 시키는데, 정말 야수 같은 훈련을 강요당합니다. 낮과 밤 따로 없이 훈련을 시킵니다. 기상(起床)도 아무 때나 시키면서 훈련을 하는데 하루에 자는 시간이 4∼5시간도 안 됩니다.”

- 구체적으로 어떤 훈련을 하는데요?

“대열훈련은 하루 2시간 이상씩 하는데 인민군은 ‘빨리 빨리’ 그리고 ‘직선’(흐트러짐 없는 동작)만을 요구합니다. 솔직히 가장 힘든 게 대열 훈련인데, 그건 그렇고 기본은 사격훈련을 중심으로 합니다. 한 달에 60발∼90발정도 사격을 하고 단검 던지기도 함께 실시합니다. 창격술(남한의 총검술에 해당), 특공 무술을 배우고, 주체격술은 1단부터 6단까지 배우고 있습니다. 또한 납치방법, 국군초소 습격방법 등과 산악전, 유격전, 게릴라전을 배웁니다. 훈련에서 강도가 높은 것은 행군입니다. 일주일에 2∼3번 정도 하는데 200리(78.5km)씩 진행합니다.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에 합니다.”

- 행군할 때는 어떤 장비를 갖춥니까?
“장비는 자기의 훈련 직종에 맞게 갖춥니다. 보통 훈련생은 자동보총 한 자루와 탄알 90발이 든 탄창, 방독면과 15kg의 모래배낭, 그리고 자기가 먹을 수 있는 식량과 약품 같은 것들을 갖춥니다.”

- 신병 훈련을 마치고 어디에 배치됐습니까?
“저는 신병훈련을 마치고 서부전선 6사단 민경대에 배치됐습니다.”

- 배치됐을 때 군사 칭호(계급)는 뭐였어요?
“민경은 일반 군대와 달리 계급 수준이 한 등급 높습니다. 민경 뿐만 아니라 잠수함, 비행사, 김정일 호위대가 (일반 군대와는) 다릅니다. 민경의 경우 훈련이 끝나면 상등병, 1년 지나면 하사 계급을 줬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군사체계가 바뀌어서 부대에 갓 배치 받으면 초급병사, 1년이 지나면 중급병사, 그리고 4년이 지나면 상급병사가 됩니다.”

- 민경은 일반 군대에 비해 대우가 좋습니까?
“제가 있던 부대의 경우 모든 물자를 무력부 후방총국에서 직송으로 보내왔습니다. 민경은 식량도 그렇지만 피복은 (일반 군대와) 대비가 안됩니다. 일반 군대의 병사들은 외출복 한 벌과 훈련 때 입는 군복 한 벌 이렇게 2벌 뿐입니다. 우리는 3벌 이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반 군대가 입는 외출복은 저희들의 훈련복과 같고, 위장복이라는 것이 있는데 한국군의 군복과 비슷합니다. 또 외출복이 있는데 판문점을 지키는 군인들의 복장과 같습니다. 이것은 외출 할 때만 입습니다. 인민군 장교복으로, 자기의 계급 견장을 답니다. 이것이 민경에 대한 배려입니다.”

- 규정에 따른 하루 식량 공급량은 어느 정도 됩니까?
“하루 식량은 입쌀 800g에 간식 200g씩 총 1kg을 주고, 고기 300g, 남새(채소) 1kg, 기름 150g씩을 공급합니다.”

- 규정대로 공급이 됐습니까?
“잘되지 않았습니다. 사회가 곤란한데 민경에 어떻게 제대로 전달이 됐겠습니까. (상부에서) 나오는 물자는 정상적으로 공급되는데, 가져오면서 여기저기서 뜯어먹고, 부대에 오면 또 이 사람 저 사람 뜯어먹고, 그래서 하급 군인들에게 전달되는 것은 극소량입니다.”

- 민경도 중대(中隊) 단위로 생활합니까?
“그렇습니다. 한 개 중대에 180명, 많게는 200명 정도 됩니다. 일반 군대의 중대단위와 다른 것은 휴전선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소대가 4소대, 6소대까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반 군대에서는 한 개 소대가 30명이지만 민경은 35명 이상입니다.”

- 민경대에서 적공대 일을 했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무슨 일 입니까?
“적공대란 ‘적을 상대로 공작을 한다’는 뜻입니다. 인민군 적공국에서 파견된 군관(장교)들로 구성된 ‘적공조’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들은 민경과 공동 작전으로 국군을 와해시키기 위한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 민경부대에도 별도로 적공부서가 있습니다. 민경부대의 적공부서와 적공조가 서로 연계를 취하면서, 국군을 와해시키는데 중점을 두고 공작을 펼칩니다.

적공국에서 내려온 소조에는 하전사(일반 병사)가 한 명도 없습니다. 모두 군관들로, 정치대학 최우등 졸업생들입니다. 저 같은 민경의 적공대는 민경부대 내에서도 출신성분이 좋은 사람들로, 보위부요원들과 함께 편성되어 있습니다. 예컨대 국군과 주도적으로 대화를 하도록 한다든지, 전단과 같은 것을 살포한다든지, 국군의 방송이나 전단을 수색하여 보위부에 바치는 일 등을 합니다.”

- 적공대의 근무 패턴은 어떻습니까?
“인민군 적공국에서 따로 내려온 사람들은 6개월간 전방에 배치되어 국군 와해 사업을 하고 다음 6개월간은 (후방으로) 들어가서 휴식 겸 교육을 받는다고 합니다. 우리 같은 민경 적공대는 2달에 한 번 전방에 나왔다가 다음 두 달 동안 들어가 있습니다. 이때 보름동안 강습이 있습니다.

- 휴전선에 나오면 남한 방송을 많이 듣게 됩니까?
“군 복무를 6년 동안 했습니다. 남한 방송을 자장가 소리처럼 들었습니다. 그래서 교육을 시키는데, ‘너희들이 귀가 있는 이상 안들을 수 없다. 일단은 듣고 다 내보내라’고 위에서 지시합니다. 남한의 방송을 듣고 생각하지 말고 다 흘러보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생각을 아니 할 수 없습니다.”

- 처음 전연 초소에 나와서 남한방송을 들었을 때 다른 대원들은 뭐라고 이야기 하던가요?
“북한은 일반 군대도 그렇겠지만 민경 같은 경우에는 3명중 한 명이 보위부 정보요원입니다. 나하고 상대방이 말을 하면 그 동료 중에 분명히 보위부 요원이 있는 식입니다. 보위부 요원 아니면 정치부 요원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사소한 감정이라도 노출되면 무조건 민경부대에서 쫓겨나 일반 군대에 가든지 심한 경우에는 아예 생활제대 시킵니다. 민경부대라는 것이 그만큼 감정표현을 할 수 없는 곳입니다.”

휴전선을 넘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는 행위

- 한국으로 넘어 오게 된 동기는 뭐였어요?
(그는 이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자기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타인들의 운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이니 남한에 온 지금도 이런 질문에 대한 답변은 할 수가 없다.)

- 언제 넘어 왔어요?
“2002년 2월 19일에 분계선을 넘었습니다.”

앞서 소개했듯 은혁씨가 분계선을 넘은 날은 한국을 방문한 부시 미국 대통령이 도라산역을 방문하기 바로 전날이었다. 한국 군사 당국은 남북 간에 미칠 영향과 부시 대통령에 대한 경호 문제 등을 고려하여 은혁씨의 귀순 사실을 하루 늦게 공개했다.

사람들은 흔히 ‘휴전선을 넘었다’고 하면 간단히 ‘길을 따라 달려왔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은혁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중국으로 탈출해 한국으로 오는 것보다 훨씬 ‘목숨을 걸어야 할’ 일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중국으로 탈출하는 경우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둘러댈 수 있지만, 전방부대의 군인이 휴전선을 넘으려다 발각되는 경우는 변명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 그의 말을 들어보자.

- 넘을 때 심정은 어땠어요?
“산다는 보장은 1%, 아니 0.1%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다가 죽으면 그만’이라는 각오로 나섰습니다. 가다가 장애물 속에서 죽지 않으면 인민군의 총탄에 맞을 수도 있고 국군의 총탄에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전에 우리가 세뇌교육을 받을 때처럼 ‘국군이 해치지 않을까’생각했습니다. (인민군에서는 민경부대 교육과정에서 ‘남한으로 가면 국군이 쏴 죽인다’고 가르친다 한다)”

장애물을 넘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제가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이해가 되지는 않겠지만…. 지뢰도 있고, 악명 높은 고압선도 있고, 50m마다 잠복호도 있고, 탱크 차단물이라고 깊이 5m 너비 3m 되는 물구덩이도 있습니다. 그런데 길은 딱하나 있습니다. 판문점에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라고 있는데 거기는 무조건 복병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시 철책선도 있고 좀 더 나가면 또 각종 장애물이 있습니다. 함정이 있는데 그 안에는 창 같은 것을 세워놓아서 빠지면 꽂혀 죽게 되고, 또 ‘돌벼락’이라고 발을 잘 못 디디면 돌이 와르르 무너져 깔리게 되는 장애물들이 수 없이 많습니다. 그 위험을 감수하며 왔습니다.”

- 처음 한국에 들어 왔을 때 심정은 어땠습니까?
“전방에서 전단이나 한국 방송을 통하여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한국에 대하여 다 이해하고 있지는 못했습니다. 새로운 땅이라 새로운 것도 많았지만 특히 ‘자유민주주의 사회’라는 것이 새로웠습니다. 북한에서는 남한을 자본주의라고 하면서 자본주의는 돈만 있으면 살 수 있는 사회, 약육강식에 따라 지배되고 돈이 없는 사람은 죽여도 되는 사회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살아보니 그런 측면도 어느 정도 있긴 하지만 본질은 ‘민주주의’에 있습니다. 민주화된 사회가 어떤 사회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돈이 없어도 자기의 권리를 주장 할 수 있고, 개인의 인격을 소중히 여기고, 또 열심히 살면 산 것 만큼 혜택이 돌아온다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놀랍기까지 했습니다.”

- 북한과 남한을 대비해보자면 어떻습니까?
“북한은 독재 사회이고 인민들이 노예화되었습니다. 최근에 보니 후세인을 독재자라고 하던데 실상을 보니 북한의 김정일보다는 많이 나은 것 같습니다. 한민족의 반쪽 땅인 남한에서나마 이렇게 민주주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 다행이고, 또 한편으론 ‘한 핏줄인 민족이 어쩌면 이렇게 상반된 길을 걸을 수 있을까’하고 생각해 봅니다. 남한에 와서 분열된 강토의 아픔을 더욱 실감 할 수 있었고, 통일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 올해 대학에 입학했다는데 어느 대학에서 뭘 전공하고 있어요?

“연세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이 질문에서 그는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탈북자 정착 교육시설인 하나원을 나오고 나서 그는 곧장 학원에 등록을 했고 일년 동안 공부를 해 대학에 입학했다. 서너 살 정도 나이가 어린 동생들이랑 조금은 늦은 출발을 하고 있다. 이젠 머리도 갈색으로 염색하고 청바지를 멋들어지게 입은 모습이 남한의 여느 새내기 대학생과 다를 바 없었다.

남한 사회의 본질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

- 백두한라회에는 어떻게 가입하게 되었어요.
“저는 다른 분(탈북자)들과 한국에 온 케이스가 다르기 때문에 이 사회에 와서는 그냥 조용히 살고, 앞으로 통일되면 부모님을 찾아가 내 잘못을 빌고 남은 기간 효도를 하리라는 단순한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정착을 시작했는데 인터넷에서 백두한라회를 만나게 됐습니다. 반세기만에 최초로 남북 청년들이 함께 만든 조직 아닙니까. 충격도 받고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나는 그냥 조용히 살려고 했는데 백두한라회를 보니 그것이 부끄러워지고, 내가 무슨 일이든 힘을 보태야 북한의 민주화와 통일을 앞당길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야 좀 더 떳떳하게 고향에 갈 수 있지 않겠는가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백두한라회 회원으로 가입했습니다. 그런데 남한에 온지 얼마 되지도 않은 저를 이렇게 백두한라회 회장으로 추천해주니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 이제 대학도 다니고, 친북 성향의 학생들도 만나봤겠는데, 한총련 같은 주사파 학생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요?
“아무리 민주화된 자유사회라 하여도 정의와 진리에 대하여서는 흑백을 가려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남한 젊은이들 중에 한총련 소속 주사파나 친북 세력들, 그리고 어느 정도 북한을 좋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종종 봤습니다. 북한의 허울 좋은 간판에 속아있는 그들을 볼 때면 ‘저 사람들이 북한에서 하루라도, 아니 단 한 시간이라도 살아보면 생각이 달라질텐데’하는 생각을 하곤 해요. 저는 그러한 사람들 때문에 북한에 민주화가 더뎌지고 통일이 어려워지고 늦어진다고 생각합니다.”

- 요즘 대학생들은 북한에 대하여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던가요?
“학생들은 물론 각각 다양한 생각을 갖고 있죠. 우선 북한 핵문제나 경제난에 대하여 말하는 학생들은 많아요. 그런데 말을 시작하면 목적이 있고 뜻이 분명해야 하겠는데, ‘북한 핵문제 때문에 우리가 경제적 타격을 받는다’거나 ‘북한의 경제사정이 악화돼서 탈북자들이 더 많이 생기고 굶어죽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에만 머물러 있지 그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잘 생각해보지 않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북한이 독재를 버리고 개혁 개방하여 민주화를 실현할 수 있을까 하는데 대해서는 거의 관심이 없죠. 말로는 분단과 통일을 이야기하는데 도대체 누구랑 통일하자는 것인지, 어쩜 그렇게 북한 사람들의 현재 상태와 그 원인에 대해서는 무관심한지… 참 많이 가슴이 아픕니다.”

- 앞으로 백두한라회는 어떤 활동을 하려고 합니까?
“일단은 친목과 봉사를 위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통일을 위해서 나름대로의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려 합니다. 우리 탈북자들이 자기 하나만을 위해서 산다면, 현재 상태에서 그럭저럭 조용히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단된 조국의 아들, 딸들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또 북한에서 상처받고 온갖 수난을 이기며 살아왔던 사람들답게 마음과 마음을 합쳐서 통일을 위한 애국단체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짧지 않은 인터뷰를 마쳤다. 조용하고 소심한 청년이었던 은혁씨는 백두한라회 회장을 맡고 나서 부쩍 바빠졌다. 한국에 오면 그저 조용히 통일될 날만을 기다리면서 살고자 했던 청년. 그러나 ‘그저 한 목숨 살자고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다짐하며 그는 오늘도 청년들을 만나고 있다.

어느새 날이 저물기 시작했다. 또 다른 약속이 있다며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사무실을 나서면서 은혁 씨는 “국제 사회가 북한 주민들의 인권과 민주화에 관심을 가져 줄 것”과 “남한의 청년학생들과 탈북자들이 북한의 민주화 운동에 적극 떨쳐나설 것”을 꼭 적어달라고 부탁했다. 국군을 사상적으로 와해시키기 위한 적공대에 있었던 그가 이제는 김정일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투쟁의 선봉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