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민주화운동’을 이야기하지만 도대체 우리는 북한에 대해 얼마나 알까? 이 글을 읽기 전에 먼저 종이를 꺼내 보십시오. 그리고 자기가 아는 북한 도시의 이름을 적어 보십시오. 북한에서 나서 자랐던 독자 분들은 제법 많은 도시 이름을 적으셨겠지요. 하지만 남한에서 나서 자란 독자 분들은 아마도 많아야 열 댓 개 정도를 쓰셨을 것입니다. 그럼, 북한의 행정구역 중 도(道)를 써보십시오. 분단이전의 행정구역이 아니라 현재 행정구역으로 말입니다. 제대로 적는 분이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각 도의 도청소재지를 적으라고 하면 제대로 맞추시는 분은 극히 적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직할시는 어느 도시인지 써봅시다. 이것도 맞추는 분이 얼마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지금부터 북한 여행을 떠나봅시다. 얼른 짐 챙겨서 따라오세요∼!

직할시: 평양, 남포, 개성, 라선

도(도청소재지): 황해남도(해주), 황해북도 (사리원), 평안남도(평성),

평안북도(신의주), 자강도(강계)도, 양강도(혜산),

함경남도(함흥), 함경북도(청진), 강원도(원산)

대포동, 노동은 마을 이름

여러분은 ‘대포동 미사일’이라는 이름을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여기서 ‘대포동’이라는 이름은 ‘대포(大砲)동’이 아니라, 미국의 정찰위성이 이 미사일을 최초로 발견해 촬영한 장소가 함경북도 대포동(大浦洞)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북한은 최근 이 미사일의 정식 명칭을 ‘백두산 1호’라고 공개했습니다. 그리고 이 미사일이 발사된 정확한 위치는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라고 하였습니다. 남한의 행정구역은 《 도 - 시·군 - 읍·면 - 리·동 》 체계로 되어있는 반면 북한은 읍(邑)이나 면(面)이 없습니다. 《 도 - 시·군 - 리·동 》으로 바로 연결됩니다. 그래서 ‘화대군’ 다음에 면 단위 이름이 없이 곧바로 ‘무수단(無水端)리’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무수단리는 대포동의 옛이름 입니다.)

‘노동 미사일’이라는 이름도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여기서 ‘노동’을 勞動이라고 착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이 역시 북한이 스스로 붙인 이름이 아니라 미국에서 붙여준 이름입니다. 노동(蘆洞)은 함경남도 함주군에 있는 마을입니다. 실제 노동(蘆洞)을 勞動으로 잘못 알아 일본과 영국의 잡지에서 ‘勞動 1호’, ‘Labour 1호’로 쓴 적도 있었습니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기지는 이렇게 함경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지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일본 열도와 그 너머 태평양을 바라보고 있고 또 험준한 산악지대여서 은폐가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유경은 평양의 옛이름

위 표에서 평양을 ‘직할시’라고 하니까 의아해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평양은 직할시입니다. 북한에는 ‘특별시’라는 명칭 자체가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평양은 북한의 수도이며 외부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도시, 거대한 관광지, 혹은 연극세트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외지인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인민들을 동원해 어떠한 연극을 벌이는지 Keys 지면을 통해 여러번 소개해 드린 적 있습니다. 평양 ‘류경호텔’을 모두 아실 겁니다. 평양시 보통강 구역에 있는, 피라미드처럼 생겼고 높이가 300m가 넘는 105층 짜리 건물 말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큰 호텔을 지어라”는 김정일의 지시로 김일성 80돐 생일에 바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60% 정도만 공사가 진척된 채 멈추어 버려 도시의 흉물로 남아 있습니다. ‘유경(柳京)’이란 이름은 평양의 옛 이름중 하나입니다. 버드나무가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평양은 19개 구역과 4개 군, 6개 노동자구, 251여 개 동, 131여 개 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중 ‘노동자구’라는 명칭은 생소하실 겁니다. 노동자구는 공장이나 광산지역에 있는 행정구역으로, 노동자들의 집단생활을 위해 만들어 졌습니다. 북한의 공장·광산지역에는 한 두 개쯤 이러한 노동자구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함경북도 무산에는 창렬·강선·주초 노동자구가, 부령에는 고무산·무수 노동자구가, 라선직할시 선봉구역에는 두만강·웅상 노동자구가 있습니다.

‘강계정신’의 강계

자강도와 양강도의 존재를 모르는 남한사람들도 의외로 많습니다. 그러나 자강도와 양강도가 생겨난 것은 꽤나 오래된 일입니다. 자강도는 1949년에 평안북도와 함경남도 일부를 통합해 만들어졌습니다. 자강도에는 자성군과 강계시가 있는데 두 곳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이름입니다. 자강도는 중국과 국경을 사이에 두고 있는데 국경도시 중 만포시는 북한이 개방 정책을 폈을 시 지리적 여건상 개방할 가능성이 높은 도시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자강도에는 군수공장이 많습니다. 2001년 9월 『Keys』에서 우리는 “자강도에는 군수공장이 많아 배급이 잘 나간다”는 탈북 청년의 증언을 들은 바 있습니다. 자강도는 김정일이 가장 아끼는 도이며 그만큼 시찰도 자주 나가고, 최근에는 ‘자강도 사람들’이라는 영화마저 제작되었습니다. 김정일의 오른팔인 연형묵이 자강도당 책임비서로 있기도 합니다. 자강도의 도청소재는 ‘강계’인데, 이 도시의 이름도 유명합니다. 올해 신년공동사설을 비롯하여 지난 몇 년간 북한은 ‘강계정신’이라는 말을 강조해 왔습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억세게 밀어 부치는 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강계정신에서 말하는 강계가 바로 이곳입니다. 예로부터 강계포수, 강계미인이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정일봉의 수수께끼

양강도는 1954년 함경남도 북부와 함경북도, 그리고 자강도 일부를 떼어내 만들어 졌습니다. 양강도를 한자로 兩江道라 하는데, 여기서 ‘兩 江’이란 두만강과 압록강을 이르는 말입니다. 양강도에는 백두산이 있고, 백두산에서 양 강이 시작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백두산’을 이야기하니까 대강 짐작을 하셨겠지만, 양강도에는 이른바 ‘혁명사적지’라는 것이 많습니다. 구호나무가 무더기로 발견된 곳도 이곳 양강도입니다. 구호나무는 김일성이 항일혁명투쟁을 하던 시기에, 국내의 독립운동가들과 인민들이 김일성 부자(父子)를 찬양하는 마음을 나무 껍질 등에 새겨 넣은 것이라 합니다. 생각해볼수록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해방이후 줄곧 발견되지 않던 것이 어떻게 1970년대에 그렇게 수 천 개씩 발견 될 수 있는지. 그것도 수 십 년 동안 비바람에 썩지도 않고 멀쩡하게 말입니다. 백두산에는 김정일이 태어났다는 귀틀집이 있고 그 뒤에는 ‘정일봉’이라는 봉우리도 있습니다. 신기한 것은 이 귀틀집과 정일봉 꼭대기와의 고도차(高度差)가 216m라고 합니다. 김정일의 생일 2월 16일과 일치하는데, 과연 이것을 우연이라고 봐야 할까요?

김정일이 싫어하는 혜산

양강도 북부에는 대홍단군(郡)이 있습니다. 올해 북한의 신년공동사설에 “농업근로자들은 돌우에도 꽃을 피우는 대홍단정신, 대홍단일본새로 21세기의 첫해농사에서 풍작을 이룩하여야 한다.”라는 문구를 기억하고 계신 분이 있을 겁니다. 여기서 ‘대홍단’이 바로 이 대홍단군을 이르는 말입니다. 여기는 감자농사를 많이 하는데, 외국 방문객들이 찾아오면 시범으로 보여주는 곳입니다. 그래서 먹을 것이 넘쳐나는, 북한의 별천지라고 하는군요.

양강도의 도청소재지는 혜산입니다. 신문보도에 의하면 작년 5월과 6월 사이에 이곳 혜산에서 당 간부와 장사꾼 30여명이 부정과 범죄 혐의로 공개처형 되었다고 최근 탈북자가 전했다 합니다. 99년에도 이른바 ‘혜산 대숙청 사건’이 있었습니다. 수 십 명이 죽고, 수 천명의 주민이 탄광이나 오지로 끌려갔다 합니다. 혜산은 중국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지척에 있어 밀수가 심하고 탈북자 중 상당수가 이곳을 통해 국경을 넘는다 합니다. 그래서 김정일이 가장 싫어하는 도시가 혜산이랍니다.

양강도에는 김정숙군, 김형직군, 김형권군이 있습니다. 김일성의 처, 아버지, 삼촌의 이름을 따 지은 도시 이름입니다. 온 가계를 우상화한 흔적을 이렇게 행정구역에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대남선전방송 송신소가 있는 해주

양강도가 새로 생겨나던 1954년 10월, 황해도가 황해북도와 남도로 나누어졌습니다. 황해남도의 도청소재지는 해주, 황해북도의 도청소재지는 사리원입니다. ‘미친 곳에서 쓴 일기’의 저자 노베르트 폴러첸씨를 알고 계실 것입니다. 폴러첸씨는 독일 비정부기구인 ‘카프아나무’의 일원으로 북한에서 의료지원활동을 벌였습니다. 폴러첸씨는 화상을 입은 북한 주민에게 자신의 피부를 이식하여 ‘공화국 친선메달’을 받았는데, 그가 이 수술을 행한 곳이 해주입니다. 공화국 친선메달을 받은 이후 북한 곳곳을 둘러 볼 수 있었던 폴러첸씨는 끔찍한 인민들의 현실을 목격하면서 단순한 인도적 지원만으로 북한 인민들의 상처를 치유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합니다. 해주에는 북한의 대남선전기구인 「한국민족민주전선」의 <구국의 소리> 방송 송신소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구국의 소리 방송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3호 청사 직속 기관입니다.

황해남도에는 ‘신천군’이 있습니다. 이곳은 한국전쟁시기 미군에 의해 이른바 ‘신천 양민학살’이 벌어진 곳으로, 북한이 반미선전을 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도시입니다. 또 황해남도에는 ‘은률군’이 있습니다. 이곳은 대동강이 바다로 빠져나가는 곳인데 강 건너로 남포직할시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두 곳을 이어 거대한 갑문을 건설하였는데 이를 ‘서해갑문’이라 부릅니다. 서해갑문은 북한이 ‘노동당시대의 기념비적 건축물’로 자랑하는 갑문으로 10원권 지폐에도 그려져 있으며 외국인 등 방문객들에게 보여주는 필수 관광코스입니다.

수령의 무모함이 낳은 북한 특대의 부실공사 ‘서해갑문’

서해갑문은 1981년에 착공하여 1986년에 완공되었는데, 건설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1967년의 ‘평양 대홍수’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자연재해를 거의 모르고 살았던 평양이 이틀사이 1000mm의 폭우가 쏟아지면서 완전히 물에 잠겨 버린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대동강 곳곳에 갑문을 막아 홍수피해를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래서 제기된 것이 평안남도 남포시 검산리에 남포갑문을, 이어 평양시 사동구역 미림에 미림갑문을 건설하는 계획이었습니다. 이 건설사업은 몇 년간 진척되다가 “현 위치에 남포갑문을 건설하면 10여년 후에는 퇴적물이 쌓여 남포항이 없어지게 된다”는 연구결과로 인해 중단됩니다. 그렇게 몇 년간 일손을 놓고 있다, 1981년 김일성이 직접 배를 타고 남포 앞 바다까지 나가 “이 위치에 5년안에 남포갑문을 완성하라”고 새로운 공사를 지시합니다. 그래서 ‘수령의 명령’ 한마디에 충분한 설계와 검토 과정도 없이, ‘설계와 시공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북한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인력동원을 맡은 인민무력부장 오진우는 “5만명의 군인을 동원시키라”는 명령을 집행하기 위해 전국 각지의 청장년들을 전부 불러모읍니다.

그렇게 해서 남포 직할시 와우도구역 영남리에서 황해남도 은율군 피도 사이에 폭 14m, 총연장 8Km, 4차선 도로와 철도까지 놓여진 거대 방조제가 5년만에 완성됩니다. 수 만 명이 개미떼처럼 돌과 흙을 지어 나른 이 대역사(大役事)에 수 천 명이 물에 휩쓸려 죽었다 합니다. 서해갑문은 5만톤급, 2만 5천톤급, 2천톤급 배가 드나들 수 있는 세 개의 갑실과 31개의 호형수문, 3개의 비상수문, 2개의 고기길을 갖고 있습니다. 건설이 끝난 후 김일성이 “강이 아니라 바다를 막은 거창한 사업이니 이름도 서해갑문이라 지으라”하여 이름도 남포갑문에서 서해갑문으로 바뀌었습니다. 서해갑문의 완공으로 평양의 물난리는 막을 수 있었으나 대동강 수위의 상승으로 재령평야가 매년 물난리를 겪고, 흐르던 대동강 물이 고인 물로 되어 오염이 심해져 ‘대동강 숭어’가 사라졌다 합니다. 건설에 참여했던 기술자 출신의 탈북인은 “수령의 무모함이 낳은 북한 특대의 부실공사”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참, 그런데 북한은 대동강에서 발생한 고대 문명을 나일,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와 함께 ‘세계 5대문명’중 하나라고 부른다지요?

‘대안의 사업체계’의 발상지 남포

‘남포’이야기를 조금 더 해봅시다. 남포 직할시는 남한으로 하면 ‘인천’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울과 인천의 거리와도 비슷하고 차지하는 역할의 측면에서도 그렇습니다. 남포 역시 경제특구를 추진할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추측되기도 했습니다. 항구도시인 남포는 현재 인천과 항로가 연결돼 있습니다. 북한으로 가는 지원물자들은 대부분 남포항을 통해 들어갑니다. 최근에는 독일에서 지원하는 냉동 쇠고기 1차분 6000톤이 남포항에 도착했습니다. 올해 초에는 남포항에서 북한측이 특정선박의 입항을 거부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입항허가를 독점하여 더 많은 통행료를 받으려는 속셈으로 해석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북한과 경협을 진행중인 중소기업들이 부도위기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대안의 사업체계’라는 말을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남포를 이야기하자면 이 ‘대안의 사업체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남포직할시에는 강서·천리마·대안·항구·와우도 등 5개 구역이 있습니다. 이 중 대안구역에 있는 대안전기공장에 1961년 12월 김일성이 현지지도를 다녀가면서 ‘대안의 사업체계’가 생겨났습니다. 대안전기공장의 사업방식을 고쳐주며 새로운 사업체계를 만들어 주고 이것을 북한 전체에 일반화하도록 한 것인데 간략히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60년대 이전까지 북한의 경제체제는 ‘지배인 유일관리체제’였습니다. 이 방식은 전문경영인인 지배인의 지휘아래 모든 경영이 이루어지도록 한 것인데, 이 방식은 책임성이나 전문성은 높을 수 있지만 개인에게 모든 것을 맡김으로써 잘못 하다가는 주관과 독단이 개입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김일성이 정작 걱정한 부분은 이것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공장, 기업소 등 생산현장에 대한 당의 지도가 약화되는 것을 우려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김일성은 모든 생산현장에 ‘당적(黨的) 지도’를 관철할 것을 지시합니다. ‘대안의 사업체계’에 의해 지배인이 모든 것을 관할하던 체계에서 당비서가 지휘하는 체계로 바뀝니다. 이것을 김일성, 김정일식 표현으로는 “물질적 자극에 정신도덕적 자극을 결합한 것” 혹은 “대중노선에 입각한 경제관리체계”라고 이야기하는데, 현실은 그렇게 풀리지 않았습니다. 경제인이 운영하던 기업에 정치인이 낙하산으로 임명된 꼴이었습니다.

공장에 배치된 당비서들은 무조건 “생산량 초과달성”만을 외쳤는데, 이것은 경제의 기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익의 재투자’를 무시하게 했습니다. 무작정 생산량만 늘리려다 보니 설비투자라든지 시설 보수들은 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또 생산현장의 노동력을 문답식 학습경연이나 써클 활동, 외화벌이 등에 동원하여도 지배인은 한마디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노동자들은 쓸데 없는 강연회나 토론회에 불려 다니고, 부족한 생산량은 밤을 새워 달성해야 했습니다. 당연히 설비는 낙후되고 노동강도는 쎄지고, 생산성은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매년 신년사에 대안의 사업체계를 자랑했고 아직도 이 방식을 주장하고 있지만, 대안의 사업체계는 이렇듯 북한경제를 말아먹은 원인 중 하나입니다. 물론 근본적인 원인은 ‘수령이 모든 것을 쥐고 결정하는 체제’ 때문입니다.

경의선의 끝, 멋쟁이들의 도시 신의주

그럼 이제 다시 지도 북쪽으로 올라가 봅시다. 평안북도에는 수풍발전소라는 북한 최대의 수력발전소가 있습니다. 북한의 수력발전소 중 남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이름은 아마도 ‘금강산 발전소’일 것입니다. 금강산발전소의 정식명칭은 ‘안변청년발전소’이며 강원도 안변군에 있습니다. 2000년 10월에 1단계 공사가 완료되어 2001년 공동사설에 그 성과가 자랑된 바 있습니다.

평안북도의 도청 소재지는 신의주입니다. 신의주는 북한에서 가장 현대화된 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고 단둥(丹東)과는 송유관을 직접 연결할 수 있을 만큼 가깝습니다. 그래서 이곳도 경제특구로 개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점쳐졌던 곳입니다. 현재 컴퓨터 공장 등 IT 산업시설이 신의주에 집중되고 있다고 합니다. 남북한이 올해 7월 공동으로 설립계획을 밝힌 하나비즈닷컴도 신의주에 공장을 세우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김정일이 올해 초 6박 7일간 중국 상하이를 방문한 후 들른 곳도 신의주입니다. 신의주는 주민들의 생활수준도 다른 지역에 비해 높고, 중국을 왕래하는 사람이 많아 외부 소식을 가장 잘 들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국경도시는 전시용으로 만들어져, 다른 도시에 비해 주민들에 대한 대우가 좋은 편입니다. 그래서 90년대 중반 극심한 식량난에도 신의주에는 굶어죽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1995년 신의주 비행장에서는 철도 전기선을 절단하였다는 이유로 제대군인 출신 남자 셋과 여자 둘이 공개총살되었습니다. 신의주는 경의선이 끝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김책공대는 김책시에 없어요

앞에서 대포동 미사일을 이야기를 하면서 함경북도 화대군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 북한의 ‘산(山)’은 몇 군데나 알고 계십니까? 백두산, 금강산, 묘향산 정도는 알고 계실 것입니다. 또 유명한 산으로 칠보산이 있습니다. 칠보산은 ‘함북 금강’으로 불릴 만큼 절경으로 함경북도 명천군, 화대군, 화성군, 어랑군 등 4개 군을 끼고 있습니다. 일곱 개의 보석이 묻혀진 산이라는 뜻에서 칠보산(七寶山)이라 불립니다. 지난 2000년 9월에 인민군 대장 박재경(총정치국 부총국장)이 김정일의 지시로 비행기 가득 송이를 싣고 와 남한인사 300명에게 추석선물로 주고 간 사건을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인민군 몇 개 사단이 동원되어 채취했다는 그 송이는 이 칠보산에서 딴 것입니다.

화대군 옆에서 김책시가 있습니다. ‘김책’도 사람이름에서 따온 지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김책시는 분단 이전에는 성진시였는데 1951년 김책시로 바뀌었습니다. 김책은 일제시대 김일성이 소련군에 있을 때 같이 활동했던 사람으로, 조선인민군 창설을 주도했던 사람입니다.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 전선사령관을 맡다 사망했습니다. 그의 업적을 기려 만든 도시가 김책시입니다. 김정일의 어머니 김정숙이 1949년 죽을 때, 김책, 최용건 등의 손을 잡고 “아들 정일이를 잘 길러 장군님의 대를 잇는 혁명가로 키워달라”고 유언했다지요.

김책의 이름은 ‘김책공업종합대학’이라는 학교명에서도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줄여서 ‘김책공대’라 부르는 이 학교는 남한으로 따지면 포항공대쯤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 과학기술자들의 상당수는 김책공대 출신입니다. 포항공대가 포항에 있으니 김책공대는 김책시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평양시 중구역에 있습니다. 중구역은 김일성광장, 인민문화궁전, 인민체육관 등이 있는 평양의 중심지역으로, 서울의 종로쯤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중구역 동상동에는 김정일의 관저도 있습니다. 물론 김정일 관저는 한 두 개가 아니지만요. 올해 10월 김정일이 김책공대를 방문하면서 관심이 쏠리기도 했습니다. 과학기술산업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해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김일성도 생전에 11번이나 김책공대를 찾아갔답니다.

요덕수용소가 있는 함경남도 요덕군

북한에 사람의 이름을 딴 대학은 김책공대 이외에도 한국전쟁당시 인민군 총참모장으로 전사했던 강건의 이름을 딴 ‘강건군관학교’, 올해 초 죽은 조총련 의장 한덕수의 이름을 딴 ‘한덕수평양경공업대학’, 북한이 남한의 대남 지하당으로 구축한 통일혁명당의 당수였던 김종태의 이름을 딴 ‘김종태해주제1사범대학’, 수류탄을 안고 적진에 뛰어 들어 북한의 전쟁영웅으로 남아있는 이수복의 이름을 딴 ‘리수복대학(옛 순천화학대학)’ 등이 있습니다. 물론 김일성 가계의 이름은 딴 학교나 병원, 공장 등은 셀 수도 없을 지경입니다. 김일성과 관련된 것만도 수 십 개이고 김일성의 아버지인 김형직, 어머니인 강반석, 할아버지인 김보현, 심지어 해방 전에 죽은 동생 김철주의 이름을 딴 학교까지 있습니다.

함경남도의 도청소재지는 함흥입니다. 함흥 밑에 보면 흥남이 있습니다. 원래 함흥시 흥남구역이었는데 흥남시로 분리되었다는 소식이 최근에 있었습니다.. “눈보∼라가 휘나∼알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하는 흥남부두가 바로 이곳 흥남입니다. Keys 9월호에 실린 “2001년 6월 북한 인민들은 이렇게 살고 있다”에서 인터뷰한 두 명의 청년 중 한 명이 흥남 출신이었습니다. 그는 “함흥 모방직 공장은 원래 일반사회공장이었는데 군복이나 군 담요를 생산하는 군수공장으로 전화되었다”, “꽃제비들이 고아원을 나와 장마당에 다시 득실거리고 있다”고 함흥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또 포약의 원료인 질안 비료를 생산하는 흥남 비료공장이 돌아가고 있다는 소식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함흥과 흥남의 동쪽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함경남도 왼쪽 끝에 있는 요덕군을 보실 수 있습니다. 요덕군은 ‘제15호 관리소’로 불리는 요덕정치범수용소가 있는 곳입니다. 지금까지 강철환, 안혁씨의 <병풍산의 통곡소리>, <그들이 울고 있다> 등의 수기를 통해 요덕 수용소의 실태가 증언된 바 있으며 올해 초 이곳에 5년간 수용됐던 이백룡씨가 탈출하여 다시한번 요덕의 실상을 알렸습니다. 북한에는 ‘특별 독재대상구역’이라 불리는 이러한 정치범 수용소가 요덕 외에도 평남 개천, 함북 회령·청진 등 10여 곳에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북한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말자

더 많은 도시가 남아 있지만 멀미(?)를 할 지도 모르니 오늘은 이 정도에서 여행을 마치도록 하지요. 우리는 지금까지 북한의 이곳저곳을 통해 북한체제와 인권실태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그동안 ‘북한바로알기’를 안다고 하면 사람들은 한가로운 평양 거리의 사진, 양산을 쓰고 나들이 가는 모습, 대동강 유보도를 거니는 처녀 총각들, 높이 솟은 주체사상탑, 넓고 깨끗한 김일성 광장 등을 보여주는 것이 기껏이었습니다. 그것은 북한바로알기 보다는 ‘평양 사진보기’라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습니다. 그것도 북한 당국이 허락한 곳만을 촬영한 연출사진으로 말입니다. 물론 그것 역시 제한된 것입니다. 평양은 면적으로 본다면 서울의 4배 정도이지만 ‘방문객’들이 다닐 수 있는 곳은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입니다. 또 평양 인구는 270만명을 헤아리지만 인터뷰할 수 있는 사람도 정해져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할 것은 평양이 아니라 북한이고, 우리가 연구해야 할 것은 겉으로 선전하는 북한의 문헌이 아니라 인민들의 목소리입니다. 북한 신문, 잡지, 김일성 전집, 김정일 담화록, 이런 것을 펴놓고 책상 앞에서 북한을 고민하는 사람은 대안의 사업체계가 실제 북한에서는 어떻게 풀리고 있고 강계정신이라는게 실상 무엇인지, 총대우선주의가 어떻게 인민의 삶을 괴롭히고 있는지 알 턱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북한은 유교적 전통에 입각한 독특한 자신만의 사회주의를 구축하고 있다”는 엉뚱한 소리만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김정일 체제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에 서는 사람더러 “내재적 관점에서 보라”는 적반하장식의 비난을 하는 것입니다. 내재적 관점에 선다면, 철저히 북한인민의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북한민주화운동의 원칙입니다. 함흥, 청진, 송원, 구성, 평산 등 북녘 곳곳, 2천만 인민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 여기에 사용된 지도는 조선일보 NKchosun.com 북한지리정보에 있는 지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