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기고: EU가 북한과 대화할 때 고려해야 할 것
피에르 리굴로(Pierre Rigoulot)
- 『사회사 평론』 편집장

피에르 리굴로는 1944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68운동 과정에는 모택동주의자였으나 70년대에 스탈린주의를 반대하면서 이상적 사회주의를 복원하려는 잡지인 『Les Temps Moderns』의 편집인으로 참여하였다. 이후 <사회역사연구소>에서 일하다 현재는 『사회사평론』편집장, 프랑스 시민단체인 <북한주민돕기위원회> 회장을 맡고 있다. 1997년 『공산주의 흑서』의 북한편을 저술하였고, 지난 2000년에는 탈북인 강철환씨와 함께 북한 강제수용소의 실상을 고발한 책 『평양의 수족관』(Les Aquariums de Pyongyang)을 불어로 출판했다. 이외에도 북한 인권문제와 관련한 유럽 지식인 성명을 여러 차례 주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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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월 13일, 세계는 ‘남북한 두 정상이 만나는 쇼’라는 특별공연에 초대되는 특권을 가졌다. 이 정상회담이 던져 준 많은 희망들을 몇 가지 단어들로 표현한다면, 화해, 협력, 그리고 가까운 시일내의 통일이 될 것이다. 이 이벤트는 그야말로 놀라운 것이었다. 이것은 ‘햇빛정책’이라 불리는 한국의 개방적이고 우호적인 태도의 결과로서, 정상회담은 ‘적대적 형제들(enemy brothers)’ 사이에 최고위급 수준의 협상 시작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긴장은 무너져 신뢰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고, 협력은 곧 시작될 것 같았다. 이산가족들은 재결합되고 다시 만날 것 같았다. 수수께끼 같은 정체불명의 김정일은 곧, ‘확고한 데탕트의 창조자 김대중 대통령’에게 호의로 보답하고자 했다. (그 후 김대중 대통령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였다.)

외국의 투자자들 또한 이러한 전망에 기뻐하고 있었다. 그들은 곧 값싼 북한의 노동력을 고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국제 금융기관들의 협력 자금들이 그들에게 제공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끝으로 적잖이 중요한 건데, 이 열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 비록 프랑스가 안보·인권문제와 관련한 약간의 전제조건들을 붙이고 있었지만 - 여러 유럽의 지도자들은 주저함 없이- 약간은 졸속으로 그리고 다른 부문의 어떠한 양보도 없이 - 평양과의 외교적 관계를 수립했다.

1년이 지나자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 남북간 장관급 대화는 정지되었다. 세 차례의 이산 가족의 만남 - 매우 제한적이면서도 근접 감시 속에서 이루어졌던 - 은 점차 기억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한국과 다른 외국의 투자자들은 아직도 북한으로부터 보증장치를 기다리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북한에 있는 한국의 보기 드문 기업 중의 하나인 ‘금강산 관광회사’가 거의 파산하기에 이른 것이다. 즉 현대는 이 거래로 이미 수억 달러를 잃었으며, 필사적으로 북한과 계약을 재협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 정권에게는 만족을 주었다. 온갖 종류의 무조건적 지원이 그 나라로 들어왔지만, 그 통치자는 1인치도 후퇴하지 않았다. 기근은 줄지 않았고, 중국으로 넘어가는 수많은 난민들 역시 줄어들지 않았으며, 공개처형은 아직도 일반적인 관습이다. 지속적인 중동국가들에 대한 미사일 수출은 말할 것도 없고 백만 명 이상의 강한 군대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김정일의 서울 답방을 생각해보자. 이것은 이미 합의된 계획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은 아직도 막연히 이 일이 일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또한 평양 지도자들은 상당수의 외교관계자들과 일부 여론매체를 통해 “남북관계의 냉각은 남북화해에 반하는 ‘강경정책’을 입안한 미국의 책임”이라는 것을 확산시키는 데에도 성공했다. 그러나 이것이 잊고 있는 것은 - 심지어 서울에서도 고위 공무원들조차 사적으로 부시행정부를 ‘거만한 카우보이들’이라고 공격하곤 한다 - 오래 전에 북한이 이산가족 만남을 일방적으로 지연시켰으며 한국과의 모든 협상을 종결시키겠다고 위협하기 시작했는데, 적어도 이 때까지 미국의 외교관계자들은 김정일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시작하지 않았고 그와의 재협상에 전제조건들을 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불행하게도 EU의 지도자들은 남북관계 냉각의 근원에 대해 북한의 해석을 믿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최근 평양 방문은, 미국에 의해서 공공연하게 방해를 받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시행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것도 아닌 ‘북한과의 관계’를 복구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들은 지금 자신들의 정책이 미국의 대북정책에 ‘꼭 필요한 보충물’(necessary complement)이라고 생각한다. 이 얼마나 달콤한 생각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EU와 북한 지도자들간의 대화는 상황을 많이 변화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유럽은 북한의 관료 여섯 명을 초대하여 인권문제를 다루는 몇몇 회의에 참석시킬 수는 있다. 그러나 이것은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를 해체하도록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EU 지도자들의 이러한 태도는 그들이 얼마나 북한 정권의 진정한 본질에 대해 알지 못하는 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리베라시옹지(紙)는 프랑소아 고드망 기자가 쓴 지난 5월 22일자 기사에서 이것을 ‘선교사’(무조건 베풀기만 하는 사람을 비꼬는 말 - 역자 주)라고 적절히 표현하였는데, 그들의 순진한 접근은 슬프게도 오늘의 한국정부에 의해 공유되고 있다.

사람들은 반드시 EU와 한국의 지도자들에게 거듭해서 말해야 한다. 김정일은 절대로 인권옹호자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거듭 말해야 한다. 평양의 원시 스탈린 체제와 민주주의와의 화해 그리고 한반도의 통일은, 독일에서 그랬듯이 그 공산국가가 붕괴하지 않고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북한은 최소한 25년 동안, 동아시아를 소란스럽게 만들 것이라고 위협하거나 2000년 6월 회담과 같은 유혹 행동을 반복함으로써 재정적 외교적 이득을 취해왔다는 것을. 번갈아 일어나는 미소와 협박의 목적은 단 하나, 그 정권을 유지하는 데 있다. 이것은 단지 북한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외교가 북한을 더 잘 알아야 된다는 것이다.

평양 정권은 지금 무너지기 시작하고 있다. 수십만의 난민들은 지금 북한 정권에 대해 ‘북한을 떠남’으로써 반대를 표하고 있다. 그들은 단지 약간의 먹을 것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좀더 많은 자유를 찾기 위하여 중국으로 간다. 그들은 매우 빈번하게, 그들의 가족을 돕기 위해 북한으로 되돌아가며, 그럼으로써 먹을 것과 ‘사회주의 낙원’에 살고 있다는 공식적인 선전을 불신케 하는 뉴스들을 가지고 들어간다. 김정일을 반대하는 낙서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북한 주민들이 외국의 라디오 방송을 듣는다. 서울로 온 많은 북한 주민들은 그렇게 높은 지위에 있었던 사람들이 아니다.

이러한 저항의 초기 징조들은 반드시 격려와 지원을 받아야 한다. 북한 주민들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 유럽은 실지로 민주주의와 좀더 존엄한 삶을 향한 그들의 희망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비누와 의약품, 음식, 그리고 뉴스라는 새로운 유형의 도움이 반드시 제공되어야 한다. 프랑스는 RFI(Radio France International) 채널 중에 새로운 한국어 방송을 마련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세계의 여러 나라들은 외교적이거나 다른 것이든 간에 북한과의 관계를 수립하기 전에, 인권이 존중되고 있는 지와 지역 안정이 위협받고 있지 않는 지에 대한 검증을 원한다고 확실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그때만이 우리는 2천 2백만 북한 주민들의 더 나은 삶을 희망할 수 있으며, 남북이 통일되고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긴장 지역에 평화가 찾아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