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유태준 미스터리
유태준 사건 경과
1998년 11월 유태준, 아들(당시 3세)과 함께 탈북
12월 유태준, 남한으로 귀순
2000년 2월 유태준의 어머니 안정숙 귀순 (98년 4월 탈북)
6월 유태준, 아내를 마저 데려 온다며 중국으로 출국
9월 남한당국, 유태준에 대한 정착지원금(월 58만원) 지급 중단
10월 남한 정보당국, 유태준 체포사실을 어머니 안정숙에게 통보
10월 6일 남한당국, 유태준에게 지급된 임대아파트 회수
10월 30일 남한당국, 유태준 주민등록 말소
12월 조선일보 통한문제연구소 김미영 기자, 안정숙에게서 유태준 체포, 처형 사실을 들음
2001년 3월 16일 조선일보 색션 <NK리포트>에 유태준이 함흥에서 공개처형 당했다고 보도
3월 30일 ‘북한에서 공개 처형된 유태준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연대’ (대표 이서 목사) 발족
4월 11일 유태준 문제와 관련한 국회 대정부질문(통일부장관 답변 : 유태준이 입북하였다는 첩보를 입수하였지만, 처형 여부에 대해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4월 14일 TIME지, 유태준 문제 보도
4월 20일 미국 자유아시아라디오(RFA)방송, 유태준 문제 보도
4월 22일 미주지역 탈북난민 인권보호협의회(회장 미주반석장로교회 유천종 목사) 산하 <공개처형된 탈북자 유태준 진상규명위원회>, ‘강제납북 후 공개처형된 유태준 진상규명을 위한 기도회’ 개최. 남북한 정부에 보내는 성명서 발표
6월 7일 북한 평양방송, 유태준이 북으로 귀환했다고 발표
6월 12일 유태준, 평양에서 기자회견. 평양방송 보도
6월 13일 안정숙, “평양방송에 나온 목소리는 내 아들이 아니다” 주장

■ 추리소설 같은 이야기

죽었던 사람이 되살아났다.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TV 프로그램에나 나올법한 일이 북한에서 일어났다. 함흥에서 공개처형 당한 것으로 보도되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나 라디오 방송에서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기자회견까지 한 것이다.

지난 6월 7일 평양방송은 “남조선 정보원의 모략과 얼림수에 속아 남조선에 끌려나갔던 전 함경남도 석탄관리국 함흥석탄판매소 지도원 유태준이 얼마 전에 공화국의 품으로 돌아왔다”고 보도했다. 2001년 5월호(통권 11호) 『Keys』에서 짧은 코멘트로 입장을 밝힌바 있지만, 우리는 지금껏 유태준의 공개처형 사실이 희대의 오보이기를 바라 왔으며 하루 빨리 정확한 진상이 밝혀지기를 기대했다.

유태준이 ‘공화국의 품으로 돌아왔다’는 6월 7일 평양방송의 보도가 있고 난 6월 12일, 북한민주화네트워크는 “평양방송의 유태준 입북사실 확인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 성명에서 우리는 유태준이 정말 살아있다면 “TV 등 공개적인 매체를 통해 그의 생존모습을 즉각 확인시켜줄 것”을 북한 정부에 요구했다. 그런데 그 성명서가 각 언론사로 전달되던 시각, 공교롭게도(?) 이번에는 유태준이 기자회견을 했다는 보도가 들려왔다. 비록 라디오 방송이지만 아무튼 유태준이 살아 있다니 무척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평양방송에 등장한 유태준은 과연 ‘그’ 유태준일까? 『Keys』는 평양방송이 ‘유태준 청년’이라며 내세운 기자회견의 녹음테이프를 구해 들어보았다. 그리고 유태준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에게 그의 목소리가 맞는지를 확인해 보았다. 약 30분 분량의 이 기자회견은 먼저 유태준의 발언이 있은 후 아내 최정남의 발언이 이어지고, 조선중앙통신, 통일신보, 조선중앙방송위원회, 민주조선 기자들의 답변에 대답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유태준의 목소리는 약간 빠른 말투로, 어떤 부분에서는 격앙되어 떨리는 듯 들리기도 했다.

아들의 목소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어머니 안정숙씨는 “내 아들의 목소리가 아니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를 아는 사람들 역시 유태준이 아니라고 고개를 젖는다. 녹음과정에서 목소리가 약간 바뀔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인 톤부터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유태준과 함께 생활한 적이 있는 백두한라회 회장 김성민씨는 “기자회견을 하려면 목소리가 비슷한 성우를 고를 것이지, 그런 것도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여기서 의문은 꼬리를 문다. 평양방송의 보도대로 유태준이 살아있다고 가정해보자. 살아있다면 왜 이제야 기자회견을 한 것일까? 기자회견을 했다면 대내방송이나 TV 등을 통해 대대적으로 할 것이지, 왜 30분 가량의 간략한 대외용 기자회견으로 그쳤을까? 그리고 한번의 기자회견이후 왜 더 이상 아무 말도 없는 걸까? 그럼 유태준이 죽었다고 가정해보자. 죽었다면 북한은 무엇 하러 무리해서 기자회견을 했을까?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그냥 가만히 있으면 속된말로 ‘중간이라도 갈텐데’ 말이다. 또 하려면 그럴듯하게 하지 목소리가 전혀 비슷하지 않은 사람을 내세웠을까?

우리는 현시점에서 다시 유태준 문제를 제기한다. 남북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를 놓고 너무 집요하게 문제삼을 필요가 있느냐 질책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한 인간의 생사에 관한 문제이므로 이 문제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 정말 유태준은 살아 있을까?

가장 의문이 가는 부분은 “왜 이제야 기자회견을 했을까?”이다. 유태준이 중국으로 간 것은 2000년 6월이고, 우리 당국은 그 해 9월에 유태준의 어머니에게 아들의 실종사실을 알렸다. 그 사이에 유태준은 북한으로 ‘간 것’이다. 처음에는 북한으로 갔는지 안 갔는지 조차도 확인되지 않았으나 이번 평양방송의 보도로 유태준이 북한에 간(또는 끌려간) 것은 확실해졌다. 죽었든 살았든 북한에 있지 않은 사람을 굳이 북한이 가공해 긁어부스럼을 만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한에 들어가고 나서 1년 정도의 시간동안 유태준은 어디에 있었던 걸까? 남한 신문에 유태준 문제가 보도된 것은 올해 3월의 일이다. 이 보도가 있고 나서도 석달 이상동안 유태준 문제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없었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부분은 즉각 대응하는 북한의 행태를 볼 때 이번 사건은 반응이 느려도 너무 느린 것이다.

추측은 여러 가지로 해 볼 수 있다. 우선 유태준이 자진 입북을 했는지 강제로 끌려갔는지의 여부부터 추리해봐야겠다. 유태준을 아는 사람들은 그가 자진 입북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유태준은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이 “남조선 괴뢰 정보원 놈들과 그놈들과 결탁한 외삼촌 안행교 놈 그리고 어머니 안정숙 그리고 씨다른 동생 리근형 놈들의 모략에 걸려 남조선에 끌려갔다”고 했지만 주위의 주장은 이와 다르다. 하긴 기자회견을 하면서 ‘끌려갔다’고 하지, 북한체제가 싫어서 탈출했다고 할 리는 없다. 또한 사람의 마음이란 알 수 없기 때문에 갑작스런 심경의 변화로 정말 ‘자진 입북’했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런데 만약 유태준이 자진입북을 했다면 바로 그때 기자회견을 했을 것이지 왜 이제야 하는 걸까? 혹자는 유태준이 ‘입북’했을 당시가 2000년 7-8월 경으로 남북정상회담으로 인해 남북화해의 분위기가 높아갈 때여서 북한이 정치적으로 배려한 것이 아니냐고 추측할 수도 있다. 일리있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남한 언론의 보도가 있고 나서 바로 이것을 받아치지 않고 또 왜 3개월의 공백을 두었을까? 특히 상대는 북한이 “폭파시켜버리겠다”고 위협할 정도로 싫어하는 조선일보인데도 말이다. 게다가 한총련이 대의원대회 자료집에 ‘대표적인 반통일 행각’으로 비난한 〈색션 NK리포트〉에 특종으로 보도된 내용이다.

이렇게 볼 때 이제야 기자회견을 하는 데에는 무슨 ‘결정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추측 가능한 상황은 이렇다. 유태준이 처음에 끌려가서 상당한 고문을 당했는데, 남한과 국제사회에서 이 문제가 커지자 어떻게든 살려내고 회유하여 기자회견장으로 불러냈다는 것이다. 유태준 실종 이후 공개까지 걸린 상당한 시간은 ‘육체적 회복을 위한 시간’이 아니었겠는가 하는 추측이다.

그러나 탈북인들은 “이것은 북한을 너무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이야기한다. 남한에 귀순하여 정착까지 했던 사람은 그 몇 개월 동안 살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또 그동안 유태준이 버텨냈다고 해도, 그런 고문을 다 당한 사람이 무엇 하러 그렇게 일순간에 마음을 바꾸냐는 것이다. 고로 유태준이 마음을 바꿔 전향(?)했을 가능성도 그리 높지 않다.

또 유태준의 기자회견문을 보면 어머니에게까지 상스런 욕을 하가며 남한체제를 비난하고 김정일 정권을 찬양하고 있다. 써 준대로 읽었다 하더라도, 목소리의 느낌으로 볼 때, 그가 만약 진짜 ‘유태준’이라면 그는 꽤나 목소리 연기를 잘하는 사람인 것 같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은 유태준은 그 정도로 유창하게 글을 읽는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아니면, 그동안 대단한 훈련을 시켰던지.

유태준의 기자회견 내용 중에도 석연찮은 점이 많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몇 차례 반복해서 언급되는 외삼촌 안행교에 대한 이야기인데, 안정숙씨는 이 외삼촌이 한국전쟁 시기 죽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북한은 죽은 유태준을 살려내면서 죽었던 외삼촌까지 살려냈다는 것인데,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북한과 안정숙씨, 둘 중 하나는 결정적인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자신을 남조선에 속여 데려간 외삼촌과 어머니라지만, 대외에 방송된 기자회견에서 유태준은 ‘∼놈’, ‘∼년’이라며 입에 담지도 못할 패륜적인 말을 계속 반복하고 있다. ‘북한은 원래 그런 곳’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 우리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녹음 테이프를 듣다보니, 그러한 표현들이 오히려 ‘이 사람 정말 유태준 맞나’ 하는 의혹만을 갖게 만들었다.

■ 만약 죽었다면 왜 ‘기자회견’을 만들어냈을까?

그럼 유태준은 죽은 것일까? 탈북인들은 유태준이 죽었을 것이라고 확정적으로 이야기하는데, 앞서 언급하기도 했지만 죽었다면 북한이 무엇 하러 굳이 ‘유태준을’ 도마위에 올려놓았을까? 연합통신은 〈북한 유태준씨 기자회견 마련 배경〉이라는 기사를 통해 “유씨를 꼬투리로 한 북한의 인권 시비가 국제사회에 부각되는 것을 피하겠다는 생각이 내심 작용한 것으로도 보여진다”고 설명하고 있다. 국내 언론에 보도되고, 진상규명을 위한 단체까지 결성되면서 압박을 느끼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6월 13일부터 브뤼셀에서 북한과 유럽연합(EU) 간의 인권대화가 예정돼 있는 상황도 작용했을 것”이라는 설명도 있다.

그러나 유태준이 북한에 끌려가는 것을 본 사람도 없어 그의 재북(在北) 사실을 입증할 열쇠는 오로지 북한정부만이 쥐고 있다. 고로, ‘모른다’고 하면 끝날 문제다. 그동안 그래왔듯이 말이다. 지금까지 북한은 외부에서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대해 마치 성역을 건드린다는 식으로 철저히 강경했다. 물론 유태준 문제에 대한 북한의 대응을 ‘북한이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현실적으로는 가장 설득력있는 견해이기도 하고, 북한인권운동이 북한정권에게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인지를 알려주는 것 같아 긍정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나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는 증거로 또 굳이 유태준 문제를 끄집어낼 필요가 있었을까? 6월 중순이면 유태준 문제도 점점 관심 밖으로 밀려나던 시기인데 말이다.

가능한 경우의 수를 총동원해보자면, 진짜 유태준은 목숨이나마 어떻게든 살아있는데 그가 기자회견을 할 정도는 아니어서 일단 다른 사람을 기자회견장에 내세웠을 것이라 추측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 북한이 그 정도로 다급해할 이유가 없다.

남한체제를 비난하기 위한 대외선전용은 아닐까?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이후 내용상으로는 남한정권의 대미 예속성의 문제, 매체상으로는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 방송을 제외하고 남한체제에 대한 북한의 비난은 거의 없어졌다. 여기에 갑자기 평양방송을 통해 남한체제를 비난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유태준이 말하는 “남한의 썩어빠진 실상”을 들어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다. 북한의 대남 비난이 대부분 그렇긴 하지만 말이다. 고로 대남 비난용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대내용’으로 활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확인된 바로는 대내용 방송에는 유태준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 언론의 자유가 철저히 통제되어 있지만, 그로 인해 북한은 대단히 소문이 빠르기도 하다. 하지만 어떤 경로를 통해서도 유태준 기자회견 소문이 입수되지 않고 있다. 결국 유태준은 ‘대외선전용’으로만 취급된 것이다. (소식통에 의하면 유태준이 공개처형 당했다는 북한내의 소문도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여러모로 유태준 사건은 아리송하다.)

또한 김정일은 “열 명의 간첩을 잡는 것보다 한 명의 탈북자를 잡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유태준의 기자회견은 북한사람들에게, ‘남한에 가서 일년 이상 살다온 사람도 무사할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줄 수 있다. 이런 기자회견을 대내용으로 마련할 필요가 없다. 물론 남한으로 귀순했다가 다시 북한으로 간 사람도 있었다. 1996년 탈북하여 남한으로 왔다가 2000년 7월 다시 북한으로 간 남수씨의 경우다. 그는 지금도 북한의 각종 매체에 출현하여 북한체제를 찬양하고 남한체제를 비난하는 홍보용으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유태준은 아직 그러고 있지 않다. 정말 유태준에게는 ‘무언가가’ 있는 게 확실하다.

■ 모든 의혹은 북한이 풀어야 한다.

길게 추리해봤지만 아직까지 유태준 문제에 대한 대답은 ‘미스터리’ 뿐이다. 이 모든 미스터리를 푸는 열쇠는 북한이 쥐고 있다. 북한이 유태준의 ‘얼굴’을 직접 확인시켜 준다면 모든 의문은 풀린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라디오를 통해 목소리를 듣는 정도였지 살아 움직이는 그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일단 살았는지 죽었는지를 알아야 큰 가닥 하나가 풀리게 된다. 만약 살아있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했던 추리는 그냥 ‘추리’로 그치게 된다. 살아있으면 됐지 그 배경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아무튼 유태준이 살아있기를 다시 한번 기원해 본다. 그러나 죽었다면….

이미 죽은 사람의 대역을 만들어내 기자회견까지 할 정도의 강(强)심장이라면 북한정권은 정말 극악무도한 인류역사상 최악의 정권이거나, 아니면 극도로 사리분별을 못하는 정권이 아닐 수 없다. 혹은 인권문제에 대한 외부의 지적을 ‘엄청나게’ 무서워하던지. 전 세계가 시퍼렇게 눈을 뜨고 보고 있는데 어찌 그런 악랄한 게임을 즐길 수 있단 말인가.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모든 의문은 ‘북한’이 풀어야 한다.

성명서

평양방송의 유태준 입북사실 확인에 대한 우리의 입장

지난 3월 조선일보는 탈북인 유태준이 99년 6월 중국에 갔다가 북한의 국가보위부에 체포되어 금년 초 함남 함흥에서 공개처형 당했다고 보도하였다. 유태준은 98년 11월 어머니, 아들과 함께 북한을 탈출, 중국을 통해 한국에 건너온 탈북인으로 그가 중국으로 다시 간 이유는 북한에 두고 온 아내를 마저 데려오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러한 보도에 대해 우리 정부는 유태준이 중국에 갔으며 그곳에서 행방이 묘연해진 것은 확실하나 북한에 있는지의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지난 6월 7일 북한의 평양방송은 조선중앙통신의 보도내용을 인용하는 형태로 “남조선 정보원의 모략과 얼림수에 속아 남조선에 끌려나갔던 전 함경남도 석탄관리국 함흥석탄판매소 지도원 유태준이 얼마전에 공화국의 품으로 돌아왔다”고 보도하였다. 이로써 유태준이 “북한에 있다”는 것은 일단 확실해 졌다.

북한의 민주주의와 인권문제를 연구하고 실천하는 우리 단체는 탈북인 유태준이 북에서 공개처형 당했다는 보도에 대해 그동안 특별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자신들이 국제사회에 공개한 기아(飢餓) 사망자의 숫자만 해도 22만 명이며 전문가들의 분석에 의하면 300만 명 이상이 굶어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인민의 배곯음을 한번에 해소할 수 있는 수 억 달러의 돈을 수령의 무덤을 금칠하는 데 탕진하는 김정일 정권이 탈북인의 목숨 하나 정도야 눈에 들어올 리도 없지만, 유태준이 북한에 끌려갔다는 확실한 물적·인적 증거를 찾을 수 없어 입장표명을 유보해왔다. 또한 마음 한편으로는 유태준의 공개처형 보도가 희대의 오보(誤報)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우리는 일단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던 북한당국이 유태준의 생존을 확인해 준 사실에 주목한다. 많은 탈북인들은 북한의 이러한 보도가 정치선전을 위한 쇼라고 주장하지만, 계속해서 무대응(無對應)으로 나갈 수 있었던 북한 당국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수 있는 사안을 굳이 왜 들고 나왔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유태준이 살아있다는 하나의 증거라고 아직도 믿고 싶다. 유태준의 실종은 조선일보의 보도이후 Time지, 미국의 RFA방송 등에서 보도되었으며 남한과 미국에서 진상규명위원회가 구성되는 등 꾸준히 국제사회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움직임에도 역시 눈 하나 꿈쩍할 김정일 정권이 아니지만, 하여튼 중요한 것은 북한이 스스로 유태준의 입북(入北)사실을 ‘인정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왜 하필 지금’ 이러한 보도를 하느냐 하는 것에 주목한다. 유태준이 중국에서 실종된 것은 이미 1년 전의 일이며, 조선일보가 이를 보도한 것은 3개월 전의 일이다. 북한당국이 반통일·반민족 신문이라 비난하며 기자의 출입까지 통제하는 조선일보가 남북간에 민감한 사안이 될 수 있는 문제를 잘못 보도한 것에 대해 바로 그때 진상을 공개하며 망신을 주지 않고 한참 지난 지금에야 뒷북을 치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 북한당국이 당당하게 유태준을 내놓을 수 없는 무엇이 있다고 생각한다.

분단 50년 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북한 국적의 사람이 남한으로, 남한 국적의 사람이 북한으로 넘어가 살고 있다. 유태준도 이런 숱한 월남과 월북 과정중 한 사람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유태준의 실종과 그 이후의 사건 전개과정은 단순한 월남과 월북의 과정으로 보기엔 석연찮은 점이 너무도 많다. 우리는 북한당국이 유태준의 입북사실을 일단 공개한 이상, 거리낄 것이 없다면 남한과 국제사회의 여러 불신을 시원히 씻을 수 있도록 TV 등 공개적인 매체를 통해 그의 생존모습을 즉각 확인시켜줄 것을 촉구한다. 그것이 북한이 주장하는 ‘남한내의 반북(反北) 여론’을 압도하는 무엇보다 큰 힘이 될 수 있지 않은가.

또한 남한당국은, 이제 유태준의 입북사실을 확인하였으니 그가 자유의사로 입북을 하였는지 납치되었는지의 여부를 북측에 묻고 신병문제를 해결하여야 할 차례이다. 북한은 유태준이 아직까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적(國籍)을 가지고 있는 공민이라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또 한편으로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이기도 하다. 언제까지 ‘확인할 수 없다’는 어정쩡한 자세만 취하고 있을 텐가. 다시 한번 남북당국의 성실하고 시원스런 조치를 촉구하며 내막이 어찌되었든 유태준씨가 건강하게 살아있기를 기원한다.

2001년 6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