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이 술자리에서 싫어하는 대화 소재는 ‘군대(軍隊)이야기’이고, 그 다음은 ‘축구이야기’이며, 가장 싫어하는 소재는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대한민국 남자 치고 군대에 갔다오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기 때문에 어느 술자리에서건 군대 이야기는 빼놓을 수 없는 단골 안주중 하나이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 군대를 갔다오지 않은 여성들이나 여러 가지 이유로 면제(免除)받은 남자들은 소외 받기 십상이다.

재미있는 건, 똑같은 2년여 시간을 복무했어도 병과(兵科)에 따라, 우리 포병이 최고라느니 해병대가 최고라느니 하면서 호탕하게 언성을 높인다. 얼마나 더 힘든 군대 생활을 했느냐, 남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독특한 체험을 했느냐 하는 것이 일종의 자랑거리로 되는 것이다. 하여튼 한 때 힘들긴 했어도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 되는 것이 인간사의 한 법칙이렷다.

이런 자리에서 재미있는 군대 이야기 하나 내어놓지 못하는 ‘면제받은 남자’들은 일단 조용히 접시 위의 안주만을 뒤적거릴 수밖에 없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면제를 받았을 테고 당사자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때론 남자 대접 못 받을 때도 있다. 혹시 뭔가 부족한(?) 사람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북한에서는 이게 좀 더 심하다 한다. 남한에서는 어떻게든 군복무를 피해볼까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많고 최근에는 양심적·종교적 병역거부를 인정하자는 운동까지 자유롭게 일어나고 있지만, 북한에선 군대를 갔다오지 않으면 일단 ‘당원(黨員)’이 되는 것에 제약이 따른다. 충실한 군생활을 마치는 것이 출세의 밑천인 당원이 되는 첩경이고, 원만한 사회생활을 가능하게 해준다. 군대도 못간 남자는 그야말로 바보 취급당한다는 게 탈북인들이 전하는 말이다.

일생에 한번 달아볼까 말까 한 ‘별’

군대를 갔다온 사람들은 알 것이다. 군대에서 ‘별’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어깨 위에 별을 얹고 장성(將星)이 되는 것은 모든 직업 군인들의 꿈이요, 하늘이다. 일반 사병으로 군복무를 마친 사람들은 그 2년여 동안 이러한 ‘스타(star)’를 한번이나 볼까 말까할 정도이다. 기껏 중대장이나 대대장쯤 되는 소령, 중령 앞에서도 목소리가 떨릴 지경인데, 일단 스타가 ‘떴다’하면 온 부대가 발칵 뒤집히고 복창(復唱)소리가 열 배는 커진다.

언젠가 4성 장군과 악수를 한 어느 사병은 “눈 부셔서 쳐다보지도 못하겠더라”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만큼 군대에서 ‘장군’이라는 존재는 수십 년 동안 화약냄새, 흙냄새 맡으면서 온갖 전투현장의 군사지휘에 잔뼈가 굵은, 주름마다에 삶의 연륜과 강한 의지가 느껴지는 ‘거목’이다.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하여 직업군인의 길을 걷게 되면 보통 대령으로 예편하게 된다. 평생 소위, 중위, 대위, 소령, 중령, 대령의 여섯 계단을 밟는 것이 군인의 삶이다. 이것을 뛰어넘어 별을 다는 것은 그야말로 가문의 영광. 이등병으로 시작해 장군이 되는 것은 전쟁에서 공을 세운 경우가 아니고는 흔히 볼 수 없는 일이다.

북한에서도 마찬가지다. 조선인민군의 계급체계는 국군보다 조금 복잡해, 사병은 전사→초급병사→중급병사→상급병사→하사→중사→상사→특무상사로 나뉘어 지고, 장교는 소위→중위→상위→대위→소좌→중좌→상좌→대좌를 넘어서야 소장→중장→상장→대장 등의 장성에 이르게 된다. 대장 위에는 다시 차수와 원수가 있고, 죽은 김일성만이 차지하고 있는 ‘대원수’도 있다(『Keys』 2000년 11월호 Dictionary 참조). 북한의 계급장에 장교급은 모두 별을 단다. 그러므로 남한처럼 별을 다는 것이 그리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군사대학을 졸업해 대위가 되기까지는 대개 5년에서 10년이 걸린다. 대좌는 50살이 넘어서야 달 수 있고, 북한에서도 장군이 되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다.

원수 김정일, 대장 김정남

그런데 여기 재미있는 남자들이 있다. 군대에서 짬밥 한번 안 먹어보고, 참호에서 총 한번 안 쏴보고, 유격훈련장 진흙탕 한번 뒹굴어 보지 않고, 연병장에서 흙먼지 한번 뒤집어 써보지 않고서 반짝반짝 별을 단 이상한 장군(將軍)님들! <김정일 시리즈>의 변함 없는 주연 스타 김정일씨와 최근에 화려하게 등장한 그의 아들 김정남씨, 오늘은 이분들의 병역문제를 한번 살펴보자.

선군정치(先軍政治)를 입이 닿도록 이야기하는 김정일씨의 공직직함은 국방위원장. 군사계급은 원수이다. 계급장에는 큰 별과 국장을 따로 표시한다. 현재 북한에는 김정일씨와 함께 이을설도 원수이지만, 김정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수’, 이을설은 ‘조선인민군 원수’로 차별하여 불린다. 이을설은 김일성과 함께 항일 빨치산 활동을 하였고 한국전쟁 때도 참모장, 연대장으로 전투를 지휘하였지만 김정일씨는 물론 총 한번 쏴본 적 없는 사람이다. 물론 사냥하면서 총을 쏜 것이나, 김정일씨의 취미인 사격을 하면서 총을 쏜 건 예외로 하고 말이다.

그런 김정일씨가 언제 어디서부터 군 생활을 시작하였는지는 알려진바 없다. 다만 1983년 5월 처음으로 ‘최고사령관’이라는 명칭으로 불리었고, 1993년 7월 인민무력부장 오진우가 노동신문에 ‘탁월한 군사전략가, 강철의 영장’이라고 김정일을 칭송했으며, 김일성이 죽고 난 1997년부터 ‘장군님’이라고 불렸다. 군사계급으로 공식 등장한 것은 1992년 공화국 원수로 추대되고부터. 소장, 중장, 상장, 대장 시절도 없이 곧바로 ‘원수’계급을 얻은 전세계적으로 유일한 인물일 것이다.

최근 알려진 바에 의하면 김정일씨의 아들 김정남씨의 군사계급은 현재 ‘대장’이라고 한다. 조선인민군의 승진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최고사령관 명령’이고 다른 하나는 ‘국방위원회 결정’인데, ‘최고사령관 명령 제00140호’, ‘당 중앙위, 중앙군사위, 국방위, 중앙인민위 공동 결정’하는 식으로 불린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개 대장급 이하의 인사는 최고사령관 명령에 의해, 원수·차수급 인사는 국방위원회 결정에 의해 공개된다. 하지만 김정남씨가 조선인민군 대장이 되었다는 ‘최고사령관 명령’은 역대에 없었다. 김정남씨가 인민군 보위국에서 근무한다고 하니 보안차원에서 비밀리에 진급하였는 지도 모를 일이긴 하다. 아무튼 그 역시 비대한 몸집으로 볼 때 유격훈련 한 번 안 받아 보고, 구보 한 번 뛰어 보지 않았음은 틀림없다.

병역비리 연루자는 지금이라도 군대에 보내야 한다.

최근 병역비리의 ‘몸통’이라고 불리던 박노항 원사가 오랜 도피생활 끝에 검거되었다. 그의 손에 의해 부정한 방법으로 병역을 면제받은 사람이 수백 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들 대다수는 고위 관리나 부유층의 자녀들이라고 한다. 한때 사회지도층의 이러한 병역기피 현상을 두고 개탄의 목소리가 높았다. 장관들의 인사청문회에서도 본인이나 자녀의 병역문제는 그 사람의 ‘공인(公人) 자격’을 가르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자신은 부정한 방법으로 국방의 의무를 외면하고, 또 자기 자식은 군대에 보내지 않으면서, 사회정의를 외치고 국가에 충성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처사이다. 지도층이 솔선수범해야 국민이 믿고 따를 것 아닌가.

이것은 김정일씨의 귀에도 대고 들려주어야 할 소리이다. 김정일씨는 줄곤 “나의 힘은 군대에서 나온다”고 하였다. 작년에는 ‘선군혁명노선은 나의 신념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총대우선주의’도 김정일씨가 만들어낸 문구 중 하나이고, ‘총폭탄이 되자’, ‘고난의 행군’, ‘70일 전투’ 등 모든 용어를 군사식으로 표현하기를 즐긴다. 하지만 어쩐단 말인가. 그런 말을 하는 ‘최고사령관’은 정작 자신은 군복조차 입어보지 않았으니, 2천만 인민은 무엇을 믿고 선군혁명에 동참하겠는가.

청문회를 열어서 김정일씨의 병역문제, 그리고 그 아들 김정남씨의 병역문제를 물어보아야 한다. 만약 부당한 방법으로 병역을 면제받았다면 전사(이등병)로 강등시켜 다시 군대로 돌려보내야 한다. 에구머니, 연병장에서 ‘쪼그려 뛰기’ 하고 있을 김정일씨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엄마가 보고플 땐 엄마 사∼진 꺼내 놓고…” 이건 그 옆에서 김정남씨가 부르게 될 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