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식량계획(WFP)의 긴급구호보고서에 따르면 지난달 들어 북한 당국의 식량배급량이 성인기준으로 하루 300∼400g에서 200g으로 줄어들었으며 5월초에는 잠정 중단될 것이라고 한다. 북한에서 주로 재배되고 있는 보리와 대용작물인 감자의 수확시기가 대략 6월 하순부터 7월 초순이기 때문에 5, 6월 두 달 가량은 식량난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식량을 국가에서 배급하는 북한의 시스템에서 배급이 중단된다는 것은 가장 기초적인 사회운영체계가 붕괴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산업화의 물결도 지나가고 기본적인 생활조건의 충족을 넘어서는 정신문명의 시대라는 21C의 초입에서 그것도 인민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상당한 정도의 생활수준을 확보하고 있던 나라가 이 지경으로 망가질 수 있는지 쉽게 이해가 되질 않는다.

인민이 주인이며 어린이를 하늘처럼 모신다던 이 나라는 그토록 끔찍이 여긴다고 떠들던 인민, 특히 어린아이들을 사지로 내몬 지 오래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아사자와 병사자, 그리고 남의 땅을 불안감에 쌓여 헤매는 수많은 탈북난민, 장마당을 배회하는 처참한 몰골의 아이들을 방치하면서 세계 인민을 상대로 정치흥정을 하고 있는 반혁명분자들(?)이 지배하는 나라 - 이것의 지상최고의 사회주의 낙원이라던 북한의 현실이다.

안팎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인식하게 된 데에는 그동안 간간이 있었던 망명객들의 증언과 정치범수용소 출신 탈북인들의 증언, 그리고 본격적인 식량사태 이후의 대량 탈북난민 발생과 <좋은벗들>, <RENK>와 같은 국내외 인권, 구호단체들의 헌신적인 조사활동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여러 해가 지난 지금까지도 국제적인 관심에 비해 오히려 가장 가까운 혈육인 남한에서는 무관심과 허위의식으로 이러한 현실에 애써 눈감고 있다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특히 민주주의와 인권실현을 위해 노력해 왔다던 일부 사람들의 침묵과 왜곡은 그 도를 지나쳐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아는데 방해물이 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와중에도 우리들의 무관심과 침묵, 그리고 허위 의식에 대해 다시 한번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북녘 아이들의 기록들은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굶주림보다 무서운 것은 희망을 잃어버리는 일입니다』이다. (최근에는 이미 육성 증언으로 알려진 소연, 철이 남매의 기록도 알려지고 있다.- www.durihana.com 참조 )

굶주림보다 무서운 것은 …

16살, 14살의 춘식, 선희남매는 1997년 식량난으로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마저 가벼운 사고임에도 치료를 받지 못해 죽게 되자 외숙부집에 맡겨졌으나 버림받고 산속 등을 헤매다 중국으로 탈북한 아이들이다. 이 남매는 수 차례의 체포와 송환, 재탈출의 고난을 거친 후 다행히도 뜻있는 분들의 도움으로 살아남아 이 기록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한창 부모의 품안에서 어리광을 부리며 뛰어 놀 시기에 엄청난 참상을 겪은 이들은, 그러나 의외로 너무나 담담하고 솔직하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쓰고 우리들의 양심을 찌르고 있다.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렇게 우리들의 처지를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호소하는 길뿐입니다.”
“제발 북조선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져 주세요. 그리고 목소리를 높여 주세요. 우리들 북조선 아이들이 살아 남을 수 있으려면 이제는 그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우리들을 버리지 마시고 우리들이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안겨주세요.”
“먹을 것이 없는 것도 아주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희망을 잃어버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서 하고 싶은 일이 없어진다면 살아있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삶을 떠받쳐 줄 수 있는 희망만 있다면 아무리 배가 고파도 견딜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절망밖에 없다면 무엇 때문에 굶주림을 참으면서까지 살아야 하겠습니까?”

책이 나온 이후 이들은 무사히 한국으로 들어와 현재 남한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또 다른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부모도 없이 낯선 세계에서 이들이 서로 의지하며 열심히 살아가길 바란다.

그러나 아직도 또 다른 수 천, 수 만의 선희네들은 이들보다 더 극심한 상황에 놓여 장마당이며, 만주, 시베리아 등지를 굶주림과 절망에 지쳐 떠돌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모두들 막연한 통일에 대한 기대감으로 온 나라가 들썩이고 따사로운 햇살을 주어 두꺼운 외투를 스스로 벗게 하자는 이 와중에도 수많은 춘식 선희네들은 저 추운 북쪽 어딘가를 떠돌며 ‘그 놈의 햇볕이란 것도 배급이 되는 건가’ 하고 궁금해할지도 모를 일이다. 절망과 고통속에 살아가고 있는 북녘의 아이들과 주민들에게 우리가 주어야 할 것은 식량과 더불어 삶에 대한 희망이 아닐까? 스스로의 인생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 …

우리의 아이들에게 희망에 대해 알려주고 싶은 분들에게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