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극우세력의 일부가 과거 자신들의 제국주의 침략사를 왜곡하고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그릇된 역사 인식을 심어주려고 시도하는 것에 대해서는, 침략의 피해를 입은 당사자로서 또 이웃해 있는 우방으로서 우리는 마땅히 지적해 주어야 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그리고 일본 정부와 진보적 지식인들은 이를 시정하기 위한 노력을 다하여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것에 대해서는 일말의 이의를 제기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있을 때마다 일본을 향해 분노의 목소리쯤 한마디 내어 내재된 애국심의 증거로 삼기 이전에, 우리는 이 정의의 잣대를 다른 문제들에는 똑같이 갖다 대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북한의 심각한 교과서 왜곡 문제 말이다.

■ 샤먼호를 무찌르고 3·1운동을 주도 ... 열렬한 애국자의 핏줄

북한의 교과서 왜곡은 너무도 심각하기에 이를 역사교과서에만 한정지을 수 없고, 그 예도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이다. 『Keys』는 이를 시리즈로 연재할 것을 검토하기도 했으나 북한민주화와 북한 민중의 인권실현에 그리 절박하게 제기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자세한 분석과 제기는 먼 훗날로 미루기로 한다. 오늘은 다만 북한의 교과서 왜곡이 어느 정도 심각한지를 대강 살펴보는 계기로 삼자.

김일성과 김정일이 한국 근현대사를 자신들 가족의 혁명역사로 모두 왜곡해 버린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예를 들어 1871년 신미양요의 발단이 된 제너럴 셔먼호 침몰 사건을 북한은 김일성의 증조부인 김응우가 주도한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우리 인민의 첫 반미투쟁의 앞장에는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원수님의 증조할아버지이신 김웅우 선생님께서 서 계시었다. 김응우 선생님께서는 만경대 인민들을 이끄시고 밧줄을 모아 … 이리하여 9월 2일 침략선 '샤먼'호는 꼼짝 못하고 불길에 휩싸여 대동강 물속에 처박히고 말았으며, 거기에 탔던 미제날강도놈들도 모조리 불타 죽거나 대동강의 고기밥이 되고 말았다." (조선력사 3권 93∼94쪽)

북한은 또 3·1 운동이 김일성의 아버지인 김형직의 주도로 평양에서 시작하였고 당시 8살에 불과한 김일성이 만세행렬에 참가하였으며 - 인민학교 교과서에는 심지어 '앞장서 이끌었다'고 이야기한다 - 1945년 해방도 김일성의 항일투쟁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고 나뭇잎을 타고 강을 건넜다는 이야기는 예로 들기에는 너무 유치해 생략한다.

"3·1 인민봉기는 평양에서의 대중적인 시위 투쟁을 첫 봉화로 하여 전국 각지에서 일어났다. … 이때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원수님께서는 여덟살 되시는 어리신 몸으로 반일시위에 참가하시어 삼십여리나 되는 평양 보통문 밖까지 가시었다."(근대조선력사)

"조선의 해방은 김일성 장군님이 조직 령도한 영광스러운 항일무장투쟁의 빛나는 승리가 가져다 준 위대한 결실이었다" (근대조선력사)

평범한 촌노에 불과했던 김일성의 할아버지 김보현, 할머니 이보익, 어머니 강반석, 동생인 김철주, 김일성의 첫 번째 아내이자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 등은 김정일이 전권을 잡은 70년대 이후 모두 열렬한 애국자로 둔갑하였다. 그들의 이름을 딴 도시, 학교, 거리를 만들고 수천 개의 동상을 북한 땅 조그만 농촌 마을에까지 세워 관리하게 한 것 역시 김정일의 지시에 의해 이루어진 일이다. 예를 들어 김정일은 지난 81년 양강도 신파군을 김정숙군으로, 혜산 사범대학을 김정숙 사범대학으로 개칭하였으며, 양강도의 후창군을 김형직군으로, 풍산군을 김형권군으로(김일성의 삼촌)개칭하였고, 최근에는 김정숙의 생일인 12월 24일을 명절로 선포하였다. 이외에도 김정숙 탁아소, 강반석 탁아소, 김형직 사범대학, 김정숙 사범대학, 김철주 사범대학, 김보현 대학, 김정숙 제1고등중학교, 김형권 고등중학교 등 김정일이 자신의 가계를 우상화하고 수령절대주의 체제를 강화하려고 역사를 왜곡한 만행의 흔적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 교과서의 40%는 김일성, 김정일 찬양 내용

이러한 왜곡과 수령우상화 교육은 역사과목에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예를 들어 인민학교 교과서의 경우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대원수님 어린 시절,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원수님 어린 시절, 공산주의 도덕, 국어, 수학, 력사, 자연, 체육, 음악, 도화공작(미술) 등 총 10과목을 배우는데 모든 교과서 내용은 '김일성 교시'와 '김정일 말씀'이 먼저 나온 후 학습내용이 제시되어 있다. 국어과목은, 각 학년 제1과에는 김일성 찬양시와 '김일성과 어린이'에 얽힌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으며, 전체 단원 중 40% 이상이 김부자 찬양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수학 역시 "위대한 김일성원수님이 태어나시어 혁명의 큰 뜻을 세우신 만경대로 학생 336명이 견학을 가는데 한 대에 48명이 탈수 있는 버스 몇 대가 필요한가"라는 유형의 문제로 이루어져 있다. 영어교육도 우상화 교육의 일환이기는 마찬가지다. "The portraits of the great leader Marshall Kim Il Sung and the leader Mr. Kim Jung Il are on the front of the class-rooms." (고등중학교 고등반 3학년 영어)

남한과 미국에 대한 적대심 교육 역시 심각하다.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불쌍한 남조선 아이들을 꾀어 세균무기를 실험하는 미제 승냥이 놈들!" (인민학교 4학년 국어 제 33과, '빵 세 개 사과 다섯 알')

"미제 승냥이 놈들이 짓밟고 있는 남조선의 한 도시에만도 학교에 못 가는 어린이가 2350명이나 됩니다. 그 가운데서 □명은 구두닦이를 하면서 살아가고 나머지 어린이들은 빌어먹고 있습니다. 빌어먹는 어린이는 몇 명이나 됩니까? □=1578명일 때 답을 구하시오." (인민학교 3학년 수학, '더하기와 덜기')

"미제 괴로도당이 도사리고 있는 남조선 땅에서는 절대다수의 가난한 인민들은 심한 병에 걸려도 엄청나게 비싼 약값을 마련할 길이 없어 주사한대 맞지 못하고 숨져가는 가슴 아픈 일들이 보통 일로 되고 있다." (고등중학교 3학년 생물, 제4절 '곰팽이')

"경애하는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 선생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우리나라에서는 지하자원을 더 많이 캐내어 인민생활을 훨씬 높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조선 괴뢰도당은 남조선의 지하자원을 미제놈들이 마음대로 빼앗아가게 통채로 내 맡기고 있습니다." (인민학교 4학년 자연, '지하자원')

■ 적개심을 길러주는 교육

남한의 대표적 진보적 지식인으로 존경받는 한 원로 교수는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 경력이 많이 과장되긴 했으나 총을 들고 일제와 한번 싸워 보지도 않은 남한의 역대 위정자들이 가짜 김일성 운운하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이라는 논지의 주장을 어느 책에 한바 있다. 물론 전혀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백 번 양보해 김일성의 항일 투쟁의 경력을 북한의 주장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그것이 수령독재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또한 항일 투쟁의 경력이 있다는 것과 이를 과장하고 그 가족 모두까지 우상화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없는 구호나무를 찾기 위해 전국을 들쑤셔, 기막히게 보존이 잘 된 구호나무가 한꺼번에 수 천 개씩 방방곡곡에서 발견(?)된 것은 무리한 역사왜곡이 낳은 희대의 촌극이 아니고 무엇인가. (개인의 생명보다 귀중한 민족의 생명 39∼40쪽 참조, 황장엽 著, 시대정신)

북한의 역사왜곡과 우상화 작업은 김정일의 지시에 의해 시작되었고 확대되어 왔다. 아버지의 후광에 의지하여 권력을 장악하기 시작한 김정일로서는, 어떻게든 자신의 가족 모두를 극대화하여야 권력의 정당성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왜곡과 날조도 북한이 개방되어 인민들이 세계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드러날 죄상(罪狀)이다. 김정일이 개혁 개방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남북 화해를 위한 정부의 노력이 계속되면서 구시대적인 반공논리가 남아있는 우리 도덕·윤리교과서의 내용을 시정해야 한다는 일각의 목소리가 있었다. 이 역시 옳은 일이다. 그러나 무조건 북한을 미화하는 것이 진보이고 통일의 과정이라는 착각은 버려야 한다. 사실 그대로 전하면 되는 것이다. 또한 북한 민중과의 진정한 화해와 협력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북한의 역사 왜곡과 몰상식한 교과서 내용에 대해서도 응당 관심을 갖고 지적하여야 한다.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에 분기탱천하는 감정과 이성의 단 10%라도 할애해서 말이다.

인민학교 4학년 국어과 교과서에는 이런 글이 있다. "또한 존경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같은 말이라도 높여드리는 말을 써야 합니다. 즉 '말'은 '말씀', '주다'는 '드리다', '있다'는 '계시다' 등으로 써야 합니다. 그리고 원쑤놈들에 대해서는 '머리'는 '대가리', '죽다'는 '뒈지다', '먹다'는 '쳐먹다' 등의 속된 뜻 같은 말을 써서 원쑤놈들의 더러운 몰골을 나타내야 합니다.… 우리는 자나깨나 미제놈들 때문에 헐벗고 굶주리는 남녘땅 어린이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분노와 적개심, 증오감을 배워온 아이들이 통일시대를 어떻게 맞을 수 있을지 많은 생각을 갖게 하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