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소리 1: Keys가 뭘까 (최홍재 - 은평시민회 사무국장)
처음 소책자를 받아 보았을 때 제목이 참 생소하여 내용을 들여다보기 전에 갸우뚱하였다. '열쇠들...... 열쇠, 열쇠들' 그 후로 누구에게도 Keys가 무엇인지 설명을 들어보질 못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열쇠라고 해독하고 책자를 받아본다.

나는 Keys가 두렵다. 세상에...... 책이 두렵다니
아니, 또 두려우면 안 읽으면 되지 혹은 보지 않겠다고 냅다 전화질을 하거나.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것은 다 읽으면서......, 스스로 생각해도 참 딱한 사람이다.

기억하기에 두려움으로 잡았던 것은 87년 4월 황석영씨가 쓴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와 88년 7월 『사람 중심의 세계관』이라는 아주 얇은 책이었다.

광주의 진실을 아는 것이 두려웠다. 그것을 알면 내 인생이 바뀔 것 같았다. 나는 그때까지 기자가 되고 싶었다. 결국 그 책을 잡고 느꼈던 두려움처럼 나는 기자라는 직업과 정 반대편의 길을 가고 있다. 88년 8월의 책은 주체사상에 관한 것이었다. 맑스주의 서적과는 다르게 많은 두려움과 금기를 넘어서는 흥분이 엄습했다. 그것은 특별히 운명적인 느낌을 주지는 않았지만 지금도 그 두려움과 흥분을 나의 심장세포는 기억하고 있다.

Keys는 또 다르다. 가장 다른 점은 두려움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위 두 책은 이것이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물론 고민이 짧았던 만큼 격렬했지만.

Keys는 송곳으로 황폐한 의식을 후벼판다. 나는 아프다. 그래서 좀 쉬고 싶다고 해도,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너는 왜 아픈데 하면서 따져 묻는다. 너는 쉬고 싶은 게 아니라 피하고 싶은 거라고 비난한다. 내 존재의 정체성까지를 거론한다. 네가 정말 사람을 사랑하는가, 너의 욕심 때문이 아니라 진정으로 사람을 사랑했던 적이 있었는가.

조금 편안하다 싶으면 어김없이 Keys는 찾아와서 들쑤시고 책장에 들어선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라는 책을 읽고 나는 분노하였다. 그리고 머리띠를 묶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 한없는 자학에 빠져든다. 어쩌면 이 학살과 이 반(反)인간에 내가 동조자였기 때문이다. 한없이 무력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머리띠를 묶을 수도 없고, 그래서 고작 나와 힘겨운 싸움을 치르고 있다. 가끔 술자리에서 어마어마하게 쏟아지는 북한민주화운동가들에 대한 비난에 변호사 역할을 하는 것도 소소한 일이다. 그때 나는 내가 흥분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본다. 정말 그랬다. 정말 용기 있는 자는 자기의 실수를 인정하는 사람이다. 첫마음은 아름답다. 그 첫마음을 끊임없이 복원하며, 그 잣대로 실수를 인정하는 사람. 교언 영색 않고 기꺼이 진실을 이야기하는 Keys.

시대에는 이런 악동이 필요하다. 도대체 이 책이 없다면 후대들에게 우리가 양심세력이었다고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동일한 학살과 탄압에 상이한 논리를 들이대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그것은 양심이 아니라 무서운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열쇠!
고립된 의식을 열어제치는 열쇠가 되기를......
북녘동포에게 다가갈 수 있는 열쇠가 되기를......
나를 괴롭히는 Keys에게 두 손 모아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