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 Forum: 남북관계의 변화와 북한의 전략
강사 : 손광주(통일정책연구소 연구위원)
손광주는 1957년에 태어나 고려대학교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사에서 기자로 오랫동안 근무했고, 현재는 통일정책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다큐멘터리 김정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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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개인으로는 기자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북한 연구에 유리한 환경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을 진정으로 잘 아는 분들은 북한에서 살았던 분들이나 북한 본질을 꿰뚫고 있는 활동가들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오히려 제 의견에 미흡한 것이 있으리라고 여겨집니다. 다만 오늘 이 자리는 최근의 남북관계의 변화와 관련된 문제와 이 변화의 중요한 한 축이라고 할 수 있는 김정일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최근 남북관계가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고 이러한 남북관계의 변화를 바라보는 시각도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남북관계는 세 가지의 지점에서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평화정착, 둘째 민족의 화해, 그리고 통일, 이 세 가지의 측면입니다.

이렇게 봤을 때 이번 6. 15 공동선언 합의문은, 평화정착과 민족화해의 두 항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단의 안정적 관리가 이번 합의의 초점이라고 생각됩니다. 과거 자주·평화·통일을 내세운 7. 4 남북공동선언도 남북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단지 자주·평화·통일이라는 통일방법에 대한 선언적 의미만 있을 뿐 통일에 있어서는 별 의미가 없었습니다. 1992년의 남북기본합의서 내용자체도 분단의 안정적 관리가 주를 이루고 있고, 실행에 대한 의문은 여전했습니다. 당시 동유럽의 붕괴로 체제유지에 불안을 느낀 김일성이 국제적 해빙분위기에 조응하는 제스처로, 단지 체제의 방어를 위한 것에 역점을 둔 합의서였습니다.

과거의 남북관계에 대한 북측의 태도와 더불어, 이번 6.15 공동선언에 있어서도 북한은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분단의 안정적 관리를 위한 평화정착 문제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평화정착 문제에 있어서도 남측은 4자회담을 통해 평화를 구축하자는 입장이고, 북측은 남북간의 평화정착은 북미간의 문제이지 남한과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또한 4자회담 자체에도 입장차이가 있지요. 남한의 입장은 남·북을 중심으로 하고 미·중이 포함된 관계의 4자회담을 이야기하는 입장이고, 북한은 북미평화협정 당사국인 북과 미를 중심으로 남·중이 협조적 입장을 취하는 형태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정전회담 당사자가 유엔군과 북이므로 북미관계를 우선하는 북한의 입장은 예전과 변함이 없습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단정할 수는 없지만 만일 클린턴의 방북이 실현된다면 이후 4자회담이나 변형된 4자회담 혹은 3자회담 등 어떠한 형태든지 실무회담의 윤곽이 뚜렷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남북관계 거시전망

다음으로 큰 틀에서 향후 남북관계에 대해 이야기 해 보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김대중 정부는 햇볕정책을 통해 북한을 세계질서 속으로 끌어내고자 하고 있습니다. 즉 북한과 관계개선을 목표로 유화정책 등으로 점진적으로 북한을 시장경제 쪽으로 이끌고자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지속적 교류 및 평화공존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이는 1998년 세계은행 총재 방한 시 김대중 대통령이 사실상의 통일상황 실현을 언급하며 남북간의 평화협정을 재임 중에 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였던 것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또 1993년에 김대중 대통령의 영국 방문 시에는 현체제에서는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남북관계의 연합단계에서는 북한의 민주화가 실현될 것이라고 언급한 적도 있고, 또 궁극적으로는 교류협력 등을 통해 북한의 민주화가 실현될 것이라는 3단계 통일론을 피력한 적도 있습니다.

이러한 남한의 의도와는 별도로, 북한은 최근 남한을 이용해 경제를 재건하겠다는 것을 목표로 삼고 강성대국, 경제대국 형성을 위해 경제현안을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김정일의 경제 현지지도 장소는 대체로 군수산업 쪽인 것으로 보아, 경제문제와 정책들에 있어서 실질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부분이 인민들을 위한 것인지 체제유지를 위한 직접적인 부분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의 사실여부는 모르는 일입니다.

단지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북한의 현재 행동으로 미루어 봐서 남한을 이용한 경제재건만을 꾀하려 하고 있을 뿐, 전반적인 경제계획을 짜는 느낌은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금강산관광 등에 역점을 두는 점 등은 남한의 부를 북한에 평균적으로 옮기기 위한 의도로만 보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대외관계에서도 남한을 이용해 서방국가와 수교를 맺으려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북한은, 주한미군 문제에 있어서도 북·미 평화협정 체결 후 주한 미군의 지위가 변경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직접적인 주한미군 철수 주장은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북한 내부 혹은 국제적 그리고 남북간의 분위기 등 복잡한 관계 안에서 북한이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지는 오직 김정일의 생각에 달려 있는 것 또한 분명합니다. 그런 면에서 향후의 남북관계에 대한 예측을 위해서도 김정일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정일은 어떤 인물인가

북한방송이나 노동신문 등을 통해 김정일의 광폭정치를 인덕정치로 메이킹 하는 등 봉건적 지도자 상을 지향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이고 있습니다. 그것은 김일성의 발언에서 나온 ‘조선의 대장군’이라는 칭호로 이미지를 포장하려는 예에서 잘 나타납니다. 김정일을 칭하는 용어로는 『근로자』라는 잡지에서 ‘당대 수령’으로 언급했으나 김일성이 거부해 '장군님' 혹은 ‘지도자 동지’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 외 카메라 앵글도 상향식으로 잡는 등 인민들을 통해 신격화된 이미지를 만들고 있는데 신격화 작업은, 김정일이 '서울에 몰래 다녀갔는데 김정일이 지나가니 빌딩이 숲처럼 일어났다' 라는 멘트를 방송에서 할 정도라고 합니다.

6. 15 공동선언 이후 남한 내에서는 김정일이 변화했다는 방송과 함께 일각에서는 김정일을 칭송하는 분위기조차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 내의 여러 정황으로 봤을 때, 이는 김정일이 변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시각이 변화한 것일 뿐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김정일에 대한 대외이미지의 거품현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남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이러니한 '김정일 바로 보기' 붐은 대체로 정치지도자로 평가되는 부분이 아니라 다른 부분의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치지도자는 정치적 업적으로 평가받아야 마땅하지 그 사람의 문화적 취향이나 정서로 평가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현재 김정일 바로 보기 면목으로 사용되고 있는 몇몇 책들은 바로 이러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이 중 어떤 책의 취재원으로 알려진 신모라는 인물의 경우도 그 실체가 모호한 인물로 중앙당 책임지도원으로 알려지기도 하고 중앙당 선전선동 부부장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 사실성 여부는 알려진 바가 없는 상태로 정보의 신뢰성에 문제가 많은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러한 주관적이고 모호한 정보가 남한사회에서 북한을 평가하는 여론을 주도하고 있는 등 현재 6.15선언 이후 남한사회는 김정일에 대한 집단적 착각 상태에 빠져 있지 않나 봅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정치지도자는 정치적 업적으로 평가받아야 하며, 그를 개인의 스타일로 추론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에 불과하는 점입니다.

김정일은 예술적, 감각적 두뇌는 발달했지만, 정치지도자로서의 능력과 자질의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정치지도자로서는 부족할 정도의 논리력과 수리력 그리고 거시적인 통찰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김일성이라면 중국식 개혁개방으로 갈 수도 있을 텐데, 김정일은 불가능하다.' 라는 탈북자들 사이의 평가에서도 그의 정치적 능력을 미루어 볼 수 있습니다.

북한사회의 운영원리

북한사회를 운영하고 있는 중요한 원리는, 당의 ‘유일적 지배체제’와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 이 두 가지입니다. 10대 원칙의 내용을 간추리면, ‘수령 김일성 동지를 충성으로 높이 우러러 모셔야 한다’거나,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권위를 절대화하여야 한다', 혹은 ‘김일성 동지의 혁명사상을 신념으로 삼고 수령님의 교시를 신조화 하여야 한다’는 등 김일성과 김정일만을 믿어야한다는 10가지 원칙들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일적 지배 체제’는 오직 김일성과 김정일만이 모든 명령을 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이러한 운영원리로 오랫동안 체제가 유지되어 왔기 때문에 북한의 김일성주의는 인민들의 뇌수에 강하게 각인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강릉 잠수함 사건의 집단 자결이 바로 10대 원칙의 6조 3항에 의거한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의 변화는 가능한가

그렇다면 과연 북한은 개혁개방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현 정부 정책의 성과가 나타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남한 정부는 남북 상호의존과 상호 계약을 통해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하고, 그 이후 북한에서 정치적 민주화가 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한 정부의 의도대로 유도되는 것은 곧 북한체제와 김일성주의 유지의 불가능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북한은 전면적 개혁·개방으로는 절대로 못 나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지만 김정일은 자신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개혁과 개방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표방하고 개성의 경제특구를 도입하지만, 이것은 남한에서 바라보는 북한 시장개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개성 경제특구는 김정일이 원하는 형태의 경제특구로 자본과 기술은 환영하지만 체제도전에 우려가 되므로 인적 자원의 출입은 제한하는 특수한 형태의 개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제특구가 북한의 전면적 개혁·개방의 단초가 될 것인지는 현시점에서 쉽게 말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실질적으로 북한의 개혁·개방을 위해서는 조선노동당 자체가 개방되어야 하고, 그 다음으로는 군당위원회, 시도당위원회, 당중앙위원회 등의 민주적 인선, 이러한 절차만이 북한 개혁·개방의 단초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현재 북한은 오히려 수령주의가 심화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지만, 남한 등 외부에서는 북한이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북한의 전술적·전략적 변화 중 전술적 측면만을 본 것입니다. 즉 북한은 현상만 변화한 것이지요.

북한의 개혁·개방의 핵심은 ‘군대를 줄이고 있는가’라는 문제에 있습니다. 이것만이 북한이 개방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측면인데, 현재 우리가 흥분해서 보는 북한의 변화모습은 단지 현상의 변화이지 본질의 변화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강조하고 싶습니다.

끝으로 결론적인 우리의 대응을 말씀드리면 향후 대북 관계에서 정부당국은 양측의 긴장완화와 관계 개선을 위해 유화적인 교류를 끌어내야 한다면, 민간 단체 및 NGO는 북한에 대한 올바른 여론형성에 노력하고 국가정책에서 북한의 인권 문제 등이 반영될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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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내용은 지난 11월 22일에 열린 제3차 NKnet포럼에서 발표한 내용이다. 녹음한 것을 요약하여 풀어쓴 관계로 강연의 취지가 완전히 반영되지 않은 면이 많다. 강사와 독자의 양해를 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