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인권의 리트머스 종이 ‘연례 인권조사보고서’에 나타난 북한
리트머스 이끼. 남아프리카의 희망봉 근처와 지중해 해안 바위에 붙어사는 식물이다. 이 이끼에서 짜낸 자줏빛 색소를 리트머스(litmus)라고 한다. 리트머스는 산(酸)을 만나면 붉은 색, 알칼리를 만나면 푸른빛을 띄므로, 이 액체를 종이에 적셔 리트머스 시험지를 만든다. 우리가 흔히 리트머스 종이라 불렀던 리트머스 시험지는 산성이냐 알칼리성이냐를 가르는 실험도구이다. 산도(酸度)는 1부터 15까지의 숫자로 표시한다. 산도가 1에 가까우면 산성이 센 물질이고 15에 가까울수록 알칼리성 물질이라 한다. 리트머스 시험지로는 정확한 산도를 측정할 수 없지만, 우리는 붉은 색이 진해지면 그만큼 산성이 강하고 푸른색이 짙어지면 알칼리성이 강한 물질이라 배워왔다.

전세계에는 200여 개에 가까운 나라가 있다고 한다. 한해 동안에도 몇 개의 나라가 없어지고 또 생겨난다. 이 수많은 나라들에서 인간의 자유와 권리가 실현되고 있는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 정확한 방법이 있을까. 지구를 커다란 실험실이라 하고 이 지구촌에 있는 각 나라들이 모두가 하나씩의 비커(beaker)에 담긴 용액이라면 리트머스 시험지를 대어보아 확인할 수 있을 텐데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실 인권의 실현정도를 숫자로 표현한다는 것은 대단히 모호한 일이긴 하다. 그런데 매해 세계 주요나라들의 인권상황을 수치화 하여 발표해온 곳이 있다. 바로 미국의 인권운동단체인 <프리덤 하우스(Freedom House ; 이하 FH)>. FH는 세계 각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실현정도를 1부터 7까지로 표현하여 매년 연말에 이를 발표하고 있다. 1에 가까울수록 인권상황이 좋은 나라이며 7에 가까울수록 인권상황이 좋지 않은 나라인데 다시 이를 등급화 하여 1∼2.5까지를 F(Free)-자유국가, 3∼5.5는 PF(partly free)-부분적인 자유국가, 5.5∼7은 NF(Not free)-전혀 자유가 없는 국가로 분류하고 있다. 프리덤 하우스가 지난 12월 20일 발표한 ‘세계의 자유 2000·2001년’에는 세계 192개국 중 자유국가는 85개국, 부분적인 자유국가는 60개국, 전혀 자유가 없는 국가는 47개국으로 분류되어 있다.

FH의 연례 조사보고서를 살펴보면 무척 흥미롭다. 각 나라마다 민주화운동에 대한 폭력진압, 양민학살, 군사쿠데타 등이 있었을 때에는 등급이 낮아지고, 민주화운동이 승리했다든지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든지 하는 경우에는 등급이 높아지는데, 예를 들어 중국의 경우 89년에는 천안문 사태 등의 영향으로 6등급이었던 것이 7등급으로 악화되었으며, 우리나라는 87년을 기점으로 5, 6등급이었던 것이 2, 3등급으로 평가되었다. 안타까운 것은 북한의 경우이다. 2000년 보고서에 나타난 북한의 인권실현 정도는 7 NF - 최악 중 최악의 국가로 분류되고 있다. 이번에 7등급을 받은 나라는 북한 이외에도 쿠바,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미얀마 등 몇 나라가 있지만 FH의 보고서가 처음 발행되던 1972년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빠지지 않고 7등급을 석권(?)한 나라는 지구상에 북한이 거의 유일하다.

혹자는 FH가 미국의 연구기관이라 하니 벌써부터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서구적 인권의 잣대로 전세계의 인권상태를 평가할 수 있느냐고. 그러나 인권의 잣대에 서구적 잣대와 동양적 잣대, 혹은 북한식 잣대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지난 몇 년간 수백만 명을 굶겨 죽이고도 이에 대해 어떠한 정치적 책임도 지지 않은 정권은 도대체 어떤 인권 잣대를 들이대더라도 용납하기 어렵다. 거주이전의 자유, 종교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언론의 자유, 결사의 자유 등 인간의 모든 기본권이 철저히 차단 당한 나라를 단순히 Not Free 라고 하는 것이 우리에겐 오히려 부족하게 느껴진다. 특히 지속적으로 인권상황이 호전되고 있고 공개적인 자리에서 공산당에 대한 비판까지 거리낌없이 할 수 있을 정도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나라인 중국을, 부모 자식간에도 당에 대한 비판을 할 수 없고 발각되었을 시 죽음을 면치 못하는 북한과 같은 반열에 놓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중국 당국에게 미안할 노릇이다.

그동안 협박과 갈취의 전략으로 연명해 오던 북한 정권은 2000년 한 해 동안 남북정상회담과 이산가족 방문, 개성특구 개발협정 등을 통해 어느 해 보다 개혁과 개방의 제스츄어를 취하여왔다. 우리는 북한이 이렇게 개혁과 개방의 길에 나서는 것을 적극 환영하며 이것이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앞으로 꾸준히 지켜볼 노릇이지만 김정일 정권은 ‘전면적인’ 개혁과 개방에 나설 의사는 전혀 갖고 있지 않는 듯 하며, 여전히 협박과 갈취의 전략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또한 김정일 정권은 여러 가지 정치적 전술을 통해 경제적 원조만 받아내면 현재 북한의 위기상황이 해결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군사적 위협과 정치적 술수에 굴복하여 경제적 선진국들이 구호와 원조의 대가를 던져주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이제 민주주의와 인권의 문제는 일국의 내부 문제가 아니라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는 ‘기본 자격’이 되고 있다. FH는 보고서에 ‘1990∼98년 자유국가는 평균 2.56%의 경제성장을 기록했는데 이는 전혀 자유가 없는 국가의 평균 경제성장률에 비해 약 70%가 높은 것’이라며 ‘이는 인권과 민주화가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주요 요인임을 보여준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김정일 정권이 진정으로 북한 경제의 회생을 바라고 있다면, 북한 전역에 최소한의 정치적 자유라도 허용하고 외부에 걸어 잠근 모든 문들을 활짝 열어야 할 것이다. 이것 말고 더 이상 선택의 여지는 없다. 새해에도 전세계의 양심적 지성인들은 인권의 리트머스 종이를 손에서 놓지 않고 한반도 북녘땅을 바라볼 것이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빛이 북한 민중과 함께 하기를 소망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