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ys' Dictionary: 개성특구
【시사용어】 2000년 8월 22일 한국의 현대아산재단이 북한의 조선아시아태평양평양위원회와 합의한 약 2000만평 규모의 경제개발 특별구역. Kaesong special economic zone. 開城 特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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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은 왕건이 918년 고려의 수도로 정한 이후 500년 간 왕도(王都)의 영광을 누리었던 곳이다. 소나무와 바위가 많아 송악(松嶽)으로도 불리었고 수도라는 의미에서 개경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조선의 3대 폭포인 박연폭포가 있는 곳이며, 정몽주가 이방원의 칼에 쓰러지며 붉은 핏자욱을 남긴 선죽교도 바로 이곳 개성에 있다. 지금 개성은 북한의 행정구역상 '직할시'이며, 개성시, 판문군, 개풍군, 장풍군 등 1개 시, 3개군으로 이루어져 있고, 면적은 약 1,288㎢이다. 현재의 정확한 거주 인구는 알 수 없으나 주변에 있는 황해남도 해주시와 황해북도 사리원시와 합치면 약 100만 명의 배후인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반도의 중부서해안쪽에 위치한, 북한의 최남단 도시라 할 수 있다. 서울과의 거리는 50km, 자동차로 1시간 이내의 거리이며, 서울 서북부인 일산·파주 등에서는 30분 정도면 닿을 수 있다. 판문점과는 불과 8km의 거리로 맑은 날에는 아파트나 큰 건물들이 또렷이 보일 정도이며, 개성 남단까지 도보로 30분 정도면 갈 수 있다.

이런 개성을 김정일이 현대에게 넘겼다. '특구'의 형태로 개방하여, 그 개발권을 현대에게 위임한 것이다. 김정일은 이를 '6·15선언 선물'이라 했고 ‘정몽헌이 입이 찢어져 돌아갔다’고 표현했다. 지난 8월 22일 현대아산이 북한과 합의한 개성 특구의 면적은 총 4,000만 평. 판문군 평화리 일대 800만 평을 공단지역으로, 그 위에 있는 개성시를 포함한 1,200만 평을 배후도시로, 그리고 나머지 2,000만평은 필요할 경우 추가하기로 했다. 서울 여의도의 면적이 500만 평, 울산에 있는 현대 중공업의 면적이 150만 평임을 감안할 때, 800만 평 공단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와 북한의 합의사항이 계획대로 이루어진다면, 2008년까지 추진하기로 한 2,000만 평의 공단과 배후도시 안에서만 근로자 20만 명과 가족, 각종 시설근무자를 포함한 80∼90만 명이 거주하게 된다. 서울에 집을 둔 사람이 개성으로 출퇴근하는 모습도 쉽게 상상해 볼 수 있다.

김정일이 개성을 내어주면서 염두에 둔 모델은 중국의 선전 경제특구. 지난 5월 중국방문 당시 김정일은 이런 특구형 경제개발에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선전은 홍콩에서 3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도시. 주하이, 산터우 등과 함께 경제특구로 개방된 선전은 1980년 개방 당시 인구 3만 명의 가난한 어항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중국의 개혁·개방을 상징하는 인구 400만의 대도시로 성장했다. 1999년 선전의 수출입 총액은 504억 3,000만 달러. 이중 수출액은 282억 달러로 연속 7년 간 전국 1위를 지키고 있다. 1992년부터는 단순가공산업에서 첨단기술제품 위주로 탈바꿈하는데 중점을 두어, 현재 세계 CD롬 생산의 7.8% 이상, 자기 헤드의 3분의 1, 시계의 4분의 1을 생산하고 있다. 지리적 여건 등 여러 가지 상황으로 볼 때 개성은 중국의 선전과 비슷한 점이 많다. 그럼 개성 특구는 김정일의 생각처럼 북한경제를 재생시킬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 있을 것인가. 현재로서는 두 가지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먼저 남한의 경제상황이다. 북한의 나진·선봉지구가 주로 러시아와 일본을 상대로 하여 내놓은 지역인 반면, 개성 특구는 거의 전적으로 남한의 기업들을 대상으로 하여 내놓은 지역이다. 여기에 소요될 자금규모는 공단사업에만 최소한 10억 달러(1조 1,000억 원)로 예상되는데, 이에 부수적으로 따르게 될 도로 및 항만, 발전소 건설 등 SOC 개발사업까지 생각하면 가히 천문학적인 규모의 자금이 투여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사업을 주도하기로 한 현대가 국내의 계열사들조차 관리하지 못해 휘청거리고 금강산사업으로 인한 적자마저 감당 못하고 있는데 과연 이 사업을 끝까지 끌고 나갈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의문이다. 현대를 대체할 만큼 자금력을 갖고 있는 대기업이 없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국제 컨소시엄을 형성한다 하더라도 미사일 협상 등 북한의 대 서방외교가 시원스레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에서 휴전선과 단 몇 분 거리인 개성에 투자하겠다고 선뜻 나설 외국 기업도 당분간은 찾아보기 힘들 것 같다. 이 경우 국제자본의 투자나 차관 제공은 남한 정부의 보증을 요구하게 될 것이고 그 부담은 결국 남한 사회가 감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보다 더 결정적인 것은 북한의 '체제' 문제이다. 앞의 문제가 해결되어 개성에 대한 개발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개성 특구에 머무르게 될 수십만 명의 북한 인민들, 그들이 외부세계에 눈을 뜨고 전국 각지로 퍼져나가 이를 전파하는 것을 북한 정권이 통제할 수 있을까. 김정일이 무슨 계산으로 그러한 체제 자신감을 표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북한 내부의 흐름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건 말 그대로 '제 무덤을 파는 격'이다. 또한 국제 컨소시엄을 형성한다 했을 때, 굴지의 외국자본을 끌어오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제한적 개방 태도를 벗어나 북한의 이모저모를 전부 살펴보고 신뢰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는데 이 역시 김정일이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그밖에도 우수한 직원에게 보너스를 지급하는 메리트 시스템의 도입, 선전 경제특구가 성공했던 비결중의 하나였던 특구 내의 외교, 공안, 징세 등 모든 관할사항을 특구 정부에 모두 위임하는 방안 등 '체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조치'들을 김정일이 어느 정도 취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들도 산적해 있다.

개성(開城)의 지명에는 '성을 연다'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개성 특구가 북한을 개혁 개방으로 이끄는 출발점이 될 지, 기세 좋게 일어섰다가 소리 없이 꼬리를 내리고 있는 나진·선봉의 전철을 밟게 될 지 여부는 전적으로 김정일에게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