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북한사람들이 말하는 북한이야기] - 사랑하는 H에게
프롤로그 - 만남

새천년을 맞이하던 그 밤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달랑 한 장 남은 달력이 마음을 허전하게 합니다. 반짝 반짝 깜박이는 때 이른 크리스마스 트리와 신나는 캐롤송을 들으며 어느새 우리 곁에 익숙하게 다가앉은 겨울을 느낍니다.

올 한 해 동안 무엇을 하였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을까. 연말이 다가오면 이런 생각을 하며 '이름'을 적어봅니다. 늘 가슴속에 고마움을 담아두고 있지만 쉽게 찾아뵙지 못했던 분들, 멀리 있는 친구, 언제나 내 곁에서 든든한 힘이 되어 주었던 동료,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들…. 그 이름 중에는 오랜 시간 우정을 쌓아왔던 사람도 있고, 2000년이 맺어준 새로운 인연도 있습니다.

다음주에는 연하장을 사두려고 합니다. 내가 잊지 말아야할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짚어가며 짧은 송년인사를 적어 보낼 것입니다. 언젠가 심하게 다툰 적이 있는 친구에게는 이 기회를 빌어 다시 한번 사과의 말을 건네야겠고, 힘들어한다는 어느 후배에게는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야겠습니다. 관심과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선생님께 감사의 인사를 빼먹지 말아야겠고, 모든 것을 주기만 하셨던 부모님께는 올해도 카드 한 장의 효도로 대신해야겠습니다.

참으로 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집니다. 다른 이의 소개로 악수를 하며 처음 만나는 사람이 있고, 행사나 모임의 계기를 통해 만난 많은 사람들 중에 사귀게 된 사람도 있습니다. 요새는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사업을 하다보면 전화 목소리로만 알고 지내는 사람도 생기게 됩니다. 평생을 한 마을에서 살며 앞강과 뒷산을 세상의 전부로 알고 지냈던 과거의 사람들이 오늘의 우리를 본다면, '정말 이해가 안 되는 사람들'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기억하고, 관계를 맺고..., 내 한 몸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세상 그 많은 일들을 다 자기 일처럼 관심 갖고, 생각하고, 참여하고... 그러나 그것은 인간이 그만큼 '진보했다'는 표현일 것입니다.

북한 사람들과의 만남

흔히들 책을 '간접체험'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책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과의 인연을 맺기도 합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지구 저편 사람들의 생각을 접할 수 있고,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기도 합니다. 한번도 얼굴을 맞대고 만난 적은 없지만 감동 어린 글발에 공감하며 눈물짓기도 하고, 새로운 세기의 전망을 함께 고민하며 머리를 갸웃거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책을 통해 만났던 사람까지 '올 한 해 내가 만났던 사람들'에 포함시킨다면, 2000년 한 해 동안 제가 새로 만났던 사람의 대부분은 이 나라 사람들이 아닙니다. 멀리 먼 나라의 사람들은 아니고, 지금 당신과 내가 사는 곳의 조금 위 북쪽에 사는 사람들… 바로 '북한 사람들'입니다. 지난 며칠 동안에도 숱한 북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들과 함께 밥을 먹고 밤을 새고, 차를 마시면서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나는 많은 것을 물었고, 그들은 그 모든 것에 대해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목소리는 시종일관 담담했지만, 때로는 떨리는 듯 흥분이 느껴지기도 했고, 어떤 이야기들은 가슴을 저리게 했고, 살아온 날들의 추억으로 나를 인도해 주었습니다. "북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단 며칠이었지만 남과 북의 사람들이 한 밥상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조금은 어색했지만, 많이도 슬펐지만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지금부터 펼쳐지는 이야기는 삶입니다"

무산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할머니는 반세기동안 북한에서 살아온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사회주의 건설기의 삶을 이야기해주었고, 잔칫날엔 뭘 하는지, 아프면 어떻게 하는지, 그곳에도 고부갈등이란 게 있는지, 식량난 이후 북녘 사람들의 삶은 어떤지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 아주머니는 자신의 학창시절과 처녀시절, 결혼과 직장생활, 육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북녘 여성들의 삶을 알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당신이 궁금해하던 북한의 배급 구조를 이야기해 준 아저씨도 계셨습니다. 그 많은 인민들에게 어떻게 체계적인 배급을 할 수 있었는지 자세하게 설명해주더군요. 그리고 언제부터 배급체계가 엉망이 되기 시작하였으며 그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자신의 견해까지도.

혜산에 사는 청년은 북한의 교통 실정을 들려주었고, 함흥의 내 또래 친구는 공장기업소들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가르쳐 일러주었습니다. 장마당의 실정을 이야기해준 청진 총각, 정치범 수용소의 역사와 구조, 지형을 그림까지 그려가며 상세하게 일러준 아저씨. 조선노동당원이었던 아저씨는 당원이 되는 절차와 당 조직체계를 설명해 주었고, 광부 아저씨는 탄부들의 생활을 들려주었습니다. 언젠가 당신이 내게 물었던 '북한 사람들도 전기료를 낼까'하는 물음에 대답을 해준 분도 있었고, 협동농장이란 게 무엇이고 그것이 국영농장과 어떻게 다르며, 북한에서 아편을 수출한다는데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해 대답해준 농부 아저씨도 있었습니다. 북한에서 의사를 했던 아저씨는 의료체계만 놓고 본다면 북한은 세계 최고일 것이라면서 병원과 진료소들의 실태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고 중학교 교원이었던 아줌마는 그곳에 두고 온 학생들을 아직도 잊지 못해 눈물을 글썽이며 과거의 기억들을 꺼내 놓았습니다.

이렇게 많은 북한 사람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들 중엔 광부도 있고, 농부, 노동자, 의사, 교원, 군인도 있었습니다. 당원도 있고, 당원이 아닌 사람도 있고, 함경도 사람도 있고, 평안도 사람, 자강도 사람도 있었습니다. 대학을 나온 사람도 있고, 중학교까지만 마친 사람도 있었습니다. 나이든 할머니도 있고 스무 살 처녀도 있었습니다.

1989년, 남과 북의 엇갈린 운명

당신과 나에게 1995년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해입니다. 통일원년! 1995년에는 정말 무언가 세상이 변할 것 같았습니다. 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이 열릴 것이라 믿었습니다. 모든 게 그놈의 '교시'탓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1995년은 눈물나게 특별한 한 해였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꽃제비들은 1980년도부터 있었다. 원래 부모없는 고아들을 꽃제비라고 불렀다. 전국적으로 꽃제비 천지가 된 것도 1995년도부터이다. 가족 꽃제비, 부부 꽃제비, 아이 꽃제비 등 다양하다. … 제일 먼저 죽은 것이 늙은이들로 1995년도부터이다. … 애들에게 영양실조가 나타난 시기는 1994년에도 있기는 있었지만 1995년도에 많이 나타났다. 1995~1997년 3년 동안, 정말 무수히 많이 죽었다."

함흥에 살았던 한 청년은 너무도 담담하게 이런 이야기들을 해주었습니다. 배급이 완전히 끊긴 것은 1994년이고, 이미 1990년부터 사람들은 공장의 물건을 떼어다 팔았고, 1994년부터는 장마당이 흥행하기 시작했으며, 1995년에는 콜레라와 파라티푸스로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했다고 합니다. 1995년 여름부터는 총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는데 정치범과 불량배를 먼저 총살시켰고, 공장의 물건을 뜯어 팔다가 총살당한 사람도 많았다고 합니다. 죽음과 학살의 이야기가 밤늦도록 이어졌습니다. 정말 인간 지옥이 따로 없었습니다. 더 이상 가슴이 아파 못 듣겠다고 나도 함께 눈물을 흘리며, 1995년 나는 무엇을 했나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한없이 부끄러워졌습니다.

북한의 교통체계를 이야기해 주었던 아저씨는 이미 1980년대부터 식량사정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고 거들었습니다. '한 1986년부터?'라면서 자신의 견해를 덧붙였습니다. 옆에 있던 다른 아저씨는 굳이 간부들의 비리가 아니더라도 북한의 정상적인 배급은 1970년대 말까지였을 것이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조용히 듣고만 있던 한 아줌마는 모든 게 1989년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때문이라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그 축전 개최한다고 엄청난 돈을 쏟아 붓고 인민들을 수탈해 가는 바람에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리고는 수령님 신년사, 장군님 노작을 외우라고 얼마나 인민들이 닦달하는지, 세금이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실제 어떤 방식으로 노임을 떼어 가는지, 권력있고 돈있는 사람의 자식들만 대학에 갈 수 있게 되어있는 구조, 몸파는 여자들이 언제부터 생겨났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생각해보면 1980년대 후반은 남북이 기묘한 운명의 교차로를 거쳐갔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남쪽은 87년 커다란 민주화 항쟁을 겪었고, 88년에는 올림픽을 치러냈습니다. 같은 시기 북쪽은 김정일이 전권을 장악하였고, 88올림픽에 뒤질세라 89년 축전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딴판이었습니다. 80년대 후반을 계기로 남쪽은 민주화와 국제적 지위향상, 경제성장의 상승곡선을 타기 시작한 반면, 북쪽은 독재체제 강화, 국제적 고립, 경제 몰락으로 뚜렷한 하강곡선, 아니 '추락'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추락에는 날개가 없었습니다.

온갖 독재기술의 종합 전시장

북한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당신은 무척이나 의아해 했습니다. 너무도 많은 북녘사람들의 증언을 듣다보니 이제 그것을 믿지 않을 수 없지만, 그런데 과연 그런 체제가 어떻게 '운영 될 수 있는지'. 왜 북한 사람들은 폭동이나 항쟁을 일으키지 않는 것인지. 안 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그러나 이 역시 북녘 사람들의 자세한 이야기를 듣다보니 쉽게 풀릴 수 있는 의문입니다.

당원이었던 아저씨는 북한의 조선노동당 체계를 소상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당원이 되는 절차, 어떤 사람이 당원이 되며, 각급 세포조직은 어떻게 구성되고, 이러한 세포들이 모여 어떻게 초급당을 이루고, 군당, 도당, 중앙당까지 이어지는 구조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아저씨는 사회안전부와 국가보위부의 구성과 운영방법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소년단, 청년동맹부터 시작되는 북한 인민들의 '조직 인생'에 대해 이야기해 준 아주머니도 있었고, 인민반, 노농적위대, 여성연맹에 대한 설명도 들었습니다. 학습회와 경연회, 생활총화, 자기 검열, 각종 경연대회로 이어지는 북한 인민들의 고단한 나날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북한은, 의사 아저씨의 말대로 '체계는 우수한 사회'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민을 먹여 살리기에 우수한 체계가 아니라, 수십 년의 연륜으로 갈고 다듬어진 '우수한 독재체제'입니다. 정말 거미줄처럼 얽혀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고발하고 통제하는 체계, 온갖 독재방식의 전시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재올림픽이 있다면 김정일은 단연 금메달 감이라는 당신의 말은, 농담만은 아닐 것입니다.

언젠가 당신은 내게 김일성의 시신처리과정을 이야기해 준 적이 있습니다. 세계적인 방부 처리 기술자들을 불러오고 정교한 과정을 통해 ‘죽지 않은 수령’을 만들어낸 그 이야기를 들을 때 나는 이집트 피라미드에서 나왔다는 미이라와 황금가면이 떠올랐습니다. 그 엄청난 피라미드를 쌓느라고 얼마나 많은 노예들이 죽으로 연명하며 맞아 죽고 깔려 죽었을까. 그런데 수천 년 전 노예시대의 우상숭배가 개명한 21세기에 재연되고 있는 것입니다.

북쪽 사람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이야기했습니다. "예전엔 그래도 3일장을 치러 줬는데 이제는 죽으면 바로 묻어 버린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니 화장을 치를 수고 없고 공동묘지가 있긴 하지만 지금은 아무데나 묻는다. 관이 없으니 700~800원에 빌려 묘자리까지만 넣어 갔다가 되돌려 준다. 그런데 그 돈도 없는 사람이 많아 그냥 헝겊으로 덮어 묻는 경우가 많다." 수령의 시신은 썩지 않도록 온갖 돈과 기술을 쏟아 붓고 싱싱한 꽃송이로 둘러싸인 유리관속에 고이 모셔두면서, 인민들은 3일장도 치르지 못하고 관을 구하지 못해 죽은 자에 대한 예의조차 차리지 못하게 된 사회. 도대체 이게 제 정신으로 돌아가는 사회인지…. 그리고도 수령은 인민대중의 뇌수라고 말하는 독재자의 그 당당함에 머리가 돌아버릴 지경이었습니다.

에필로그 - 잊지 말아야할 이름

차 한 잔을 마시며 창가에 앉았습니다. 며칠 전 당신과 나눈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그 날 당신은 '이제는 무감각해진다'면서, 너무도 잔인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으니 우리 자신도 함께 잔인해지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굶어죽은 사람은 피부가 새까맣게 변한다더라, 기독교 신자들을 공설운동장에서 공개 처형할 때 드릴로 머리를 뚫어 죽였다더라, 이제는 더 이상 죽을 사람도 없을 정도라는 이야기를 너무도 천연덕스럽게 주고받는 당신과 나를 되돌아보며, 얼마나 잔인한 이야기들을 더 들어주어야 저 독재체제가 무너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에 긴 한 숨을 내뱉었지요.

지난주에는 탈북인 안철 씨가 북한에 잠입하여 찍어온 장마당 비디오를 보았습니다. 장마당 한구석에 앉아 음식물을 주워먹던 아이의 얼굴이 며칠동안 눈앞을 아른거립니다. 엄지발가락이 삐죽 삐져나온 아이들의 그 발가락을 감싸주지 못해, 시린 손을 부벼주지 못해 내내 마음이 아팠습니다. 한달음에 달려가 꼬옥 껴안아 주고 싶은데…. 그리고 그 비극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했습니다. 너무 많이 먹고 너무 따뜻하게 살고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고, 인민들의 비참한 처지는 아는지 모르는지 선군정치, 강성대국만을 부르짖는 독재자의 미소가 한없이 미워졌습니다.

북한민주화운동은 북한 인민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시작한다는 당신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북한을, 북한인민을 더 잘 아는 것이 북한민주화운동의 첫걸음이라는 말씀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북한의 민주주의와 인권실현을 위해 열심히 살아온 한 해였습니다. 다가오는 새해에도 내 모든 걸 다 바쳐 김정일 정권과 싸울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원산 앞 바다에 친구들과 자리를 펴고 앉아, 내가 좋아하는 생선회를 안주 삼아 소주 한잔 걸치면서 ‘지긋지긋한 독재야, 이제 지구에 더 이상 발을 붙이지 말아라’며 통쾌하게 웃어댈 그 날이 반드시 찾아오리라 믿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에게 연하장을 보냅니다. 당신과 내가 잊지 말아야 할 이름에 ‘북한 사람들’을 적어 넣읍시다. 당신의 건강과 안녕을 빌며 [북한사람들이 말하는 북한이야기]를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