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ys' Comment: 2차 이산가족 상봉과정을 지켜보고
2차 이산가족 상봉이 북측 사정으로 당초 일정보다 한달 가량 늦춰져 11월 29일부터 2박 3일간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이루어졌다. 당초 남북은 지난 8월의 2차 장관급회담에서 8.15 상봉에 이어 연내에 두 차례 추가상봉을 추진하기로 했었고, 이에 따라 9월 하순의 2차 적십자회담에서는 11월 2∼4일 2차 상봉, 12월 5∼7일 3차 상봉을 갖기로 합의했었다. 그러나 2차 상봉이 이같이 늦어짐에 따라 3차 상봉이 연내에 이루어질 가능성이 낮아졌다.

2차 상봉이 이렇게 늦어진 것은 북측의 사정 때문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월 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남북간 합의사항을 이행하는 데 인력이 부족하니 내년 봄까지만 참아달라"는 북측의 요청이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북한당국의 이러한 속도조절 의사와 관련해서 남북관계에 낙관적인 사람들은 북한이 교류의 속도를 늦추는 것은 장기수 송환,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 방북 등 다른 일정을 소화하기에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며, 따라서 이러한 일정들이 지나면 다시 남북교류가 속도를 얻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었다.

그러나 이번 2차 이산가족 상봉 과정에서 나타난 북측의 태도는 그들의 속도조절 의사가 여러 이벤트를 동시에 준비할 수 없는 실무적 역량부족 때문이라기보다는 복잡한 정치적 계산 끝에 나온 공작적 성격의 것이라는 판단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애초에 이산가족 문제는 남북간 현안 가운데서도 정치적 이해관계를 초월해서 다뤄야할 가장 절박한 인도주의 문제로 꼽혀왔다. 이러한 인식 위에서 남한 국민들은 지난 1차 상봉 당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상봉이 1회성 이벤트 차원을 넘어 제도화 과정을 통해 조속히 해결되기를 기원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2차 이산가족 상봉에서 보여준 북한 당국의 태도는 이러한 기대에 찬물을 끼얹고 문제 해결을 모색할 의지가 있는지 의심케 하는 것이었다.

평양의 상봉장에서 북측 인사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김정일 찬양과 체제선전에 열을 올렸으며 서울에 온 인사들은 남측 가족들에게 김정일 ‘노작’과 전기 따위를 건네주었다고 한다. 북측 체제의 속성상 이는 북한 당국의 ‘교육’의 결과로 볼 수밖에 없는데, 순수하게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로 한 남북합의를 심각하게 위배하고 이산가족 상봉장을 정치 선전장으로 만든 결과가 되었다. 남쪽을 향해서는 북측의 가족에게 인도적 지원을 하는 것조차 항의했던 북한 당국이었다.

'장군님 만세' 요구에 남측 가족들이 머쓱했다는 한 남측 일간지의 보도내용을 문제삼아 이 언론사의 기자를 위협하고 취재결과물을 강탈해 간 행위도 마찬가지다. 평상시 그 언론의 논조를 지지하고 안하고를 떠나, 정확한 사실을 보도한 것을 트집잡아 기자를 3시간이나 감금하고 나아가 남측이 사과하지 않을 경우 "이산가족 상봉이 어려워질 것"이라며 위협한 것은 전 민족이 절박하게 여기는 인도주의 문제를 인질 삼아 남한을 길들이겠다는 정치적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북측의 공작적 행태의 절정은 납북어부 강희근씨 모자의 상봉행사다. 북측은 모자 상봉 도중 중앙TV와의 인터뷰를 통해 "납치됐다는 주장은 날조이며, 강제 억류된 것이 아니라 무상교육, 무상치료가 가능한 공화국에 자진해서 영주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하는 강씨의 모습을 연출했다. 같은 날 평양방송도 "강씨가 동진호의 납치, 납북이라는 것은 허황한 날조이며 거짓이라는 것을 온 세상에 선언한다고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북쪽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는 한편, 납북자 문제는 사실상 없으며 당사자들이 자진해서 북에 머물기 원했다는 북측 주장에 근거를 만들어 그 가족들의 송환요구에 쐐기를 박으려는 정치책략에서 나온 것이다.

이번에 북측 상봉단을 수행해 온 최승철 남북 적십자회담 북측 단장은 원래 각각 12월 13∼15일과 5∼7일에 갖기로 합의됐던 3차 남북 적십자회담과 이산가족 상봉을 내년 초로 연기하자고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두 차례의 상봉에서 북한정권은 자진 월북해 북쪽에서 상류층으로 대우받고 있는 '믿을 수 있는' 인사들을 주축으로 상봉단을 꾸려왔던 것으로 미뤄볼 때, 앞으로 상봉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남쪽에 믿고 보낼 수 있는 북측 상봉자를 확보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또 북한 정권으로서는 이산가족 상봉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남측을 방문하고 돌아간 북쪽 인사들의 관리에도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북한 당국이 이산가족 생사확인과 서신교환, 면회소 설치 등 문제 해결의 제도화를 자꾸 뒤로 미루고 있는 것은 이 문제와 관련한 북한 정권의 운신폭이 얼마나 좁은지를 말해주고 있다. 또 상봉과정의 억지와 고압적인 태도는 북한 통치체제에 미칠 이 사업의 영향이 정권이 설정한 한계선을 넘어서지 못하게 통제하는 한편 만약의 경우 이를 중단하게 될 때 그 책임을 남측에 떠넘기기 위한 사전포석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같은 사실들은 종합적으로 북한이 지금처럼 수령독재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한 이산가족 문제의 해결은 요원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체제의 속성상 상봉이 확대되는 데 따를 체제이완을 용인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북한 당국이 보여준 태도로 볼 때는 김정일 정권이 이산가족 상봉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러나 김정일 정권이 이 문제를 계속 지금과 같은 태도로 다룬다면 그 동안 그에 대해 수많은 불신과 의혹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북화해와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해 대승적으로 넘기려는 생각을 가져왔던 남측 여론이 이를 묵과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그때에는 이산가족 문제가 김정일 정권의 신뢰성 여부를 가늠하는 중요한 시금석의 하나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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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측에 의한 남북간 합의 일정 연기 또는 무산 사례

■1차 적십자회담(6월 27일∼30일)에서 이산가족 면회소를 설치, 운영하기로 합의하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은 비전향장기수를 송환(9월 2일 송환함)하는 즉시 적십자회담을 열고 협의, 확정.

■장기수송환 : 9월 2일

■임동원 대통령 특보-김용순 특사 회담(9월 14일) 후 발표한 공동보도문에서 연내 이산가족 생사확인 완료하고 생존사실이 확인된 가족부터 서신교환 추진키로 합의했다고 발표했으나 실현 안됨.

■2차 적십자회담(9월 20일∼23일)에서 2차 이산가족 상봉은 11월 2∼4일, 3차 이산상봉은 12월 5∼7일에 갖기로 합의했으나 2차 상봉은 11월 30∼12월 2일로 연기되고 3차 상봉은 사실상 연내에 추진하기 어려워짐.

■같은 2차 적십자회담에서 11월 중 3백 명 규모의 서신교환 추진키로 합의했었으나 사실상 무산됨.

■12월 13일로 예정됐던 3차 적십자회담도 북측에서 내년으로 미루자고 제안.

■장기수 송환즉시 적십자회담을 열고 협의, 확정하기로 했던 면회소 설치문제는 연내 개최가 어려워진 3차 회담으로 미뤄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