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을 우롱하는 김정일의「난민말살지령」/ 이영화
이영화는 1954년에 태어난 재일교포 3세로 공업고등하교 졸업 후 용접공으로 일하다가 관서대학 경제학부에 입학하였고 현재는 관서대학 경제학부 조교수로 재임중이다. 같은 대학 전임강사로 있던 91년 4월부터 12월까지 일본의 연구자로는 처음으로 평양의 조선사회과학원에 유학하였다. 이 때의 경험을 통하여 북한 사회의 실상에 대해 깨닫게 되고 93년 <구출하자! 북한민중 / 긴급행동 네트워크(RENK)>를 결성하여 현재 대표로 활동중이다. 주요 저서로 『북조선 수용소군도』, 『평양 비밀집회의 밤』, 『재일한국·조선인 참정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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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수중에는 비디오 테이프 한 개와 7페이지 짜리 수기가 있다. 둘 다 내가 8월 초순에 조-중 국경지대에서 입수했다. 전자는 작년 4월에 강제 송환되어 올 7월에 중국으로 재탈출한 북조선난민의 증언비디오이다. 후자는 북조선 국내의 반체제 그룹에 소속된 난민의 손으로 만든 북조선 사정을 담은 최신 수기이다.

5월과 6월에 조-중, 남북의 정상회담이 각각 열렸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북조선에 긍정적 변화는 발견되지 않는다. 김정일 체제의 실태는 ‘화해와 평화’라는 말과는 요원하다. 마약의 제조와 밀수, 지원 식량의 횡령과 유용, 그리고 난민의 학대와 처형... 입수된 최신 정보는 남북의 민중과 국제사회를 우롱하는 독재자=김정일의 기만을 여지없이 폭로하고 있다.

예를 들면, 세계를 놀라게 했던 정상회담도 북조선 인민에게는 단순한 ‘말의 유희’에 불과하다. 회담 직후부터 김정일과 조선노동당이 국내에서 그렇게 선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담에 기대를 갖지 말라", “조국통일의 환상에 빠지지 말라", “개혁개방에 미련을 갖지 말라", “사회주의를 고수하라"... 이러한 내용의 강연회 및 학습회가 각급 기관과 직장 단위에서 대대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애초 회담의 모양은 TV에서 스쳐지나갈 뿐이고 인민들은 내용을 거의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 화해의 상대인 김대중의 평가에 관해서는 어떤가? 난민의 증언에 의하면, 조선노동당은 북조선 내에서 다음과 같이 유포시키고 있다. “역대 한국대통령보다도 민족적 양심이 있고, 조금은 소견이 있다”고. 한국에서의 이상한 ‘김정일 열풍’과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 ‘교류’다 ‘화해’다 크게 떠들고 있지만 감동이 없는 북조선 인민은 빠져있는 셈이다. 한국정부는 이런 상태에서 누구와 교류하고 화해하려 하고 있는 것일까.

인도적 원조를 바보로 만드는 아편 증산과 약자 학대

정상회담의 실현에 부응하여 세계 각국으로부터의 식량지원이 늘어나고 있다. 이것에 관하여도 조선노동당은 이렇게 선전하고 있다. “김정일 장군이 너무 위대하기 때문에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원조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이 원조식량은 일반 국민에게 배부되지 않는다. 태반이 암시장으로 흘러 들어간다. 그 실태는 난민의 수기에 이렇게 적혀 있다.

“세계 각국과 국제 기관으로부터 보내온 식량은 어떻게 처분되고 있는가. 평양시민에게는 1인당 20일분 정도가 공급되고 있다. 탄광, 광산, 강철부문에는 25일분 정도가 공급되고 있다. 군대, 국가보위부(비밀경찰), 사회안전부(일반경찰), 당원에게는 우선 공급되고 있다. 나머지는 외화벌이 기관기업소(정부, 군관련 기업)에 분배되고, 암시장 가격으로 시장에 판매된다. 거기에서 얻는 자금 중 80%를 국가가 받아서 유통자금으로 사용하고 있다."

원조 식량은 국가기관이 운영하는 배급소에는 유입되지 않는다. 배급소에서 받을 수 있는 것은 고작 한 달에 5일분의 식량뿐. 중국산, 일본산, 미국산의 원조식량은 외화벌이 기관이 외국으로부터 사들인 것으로 위장하여 고가로 암시장에 판매된다. 그 자금이 김정일과 조선노동당의 수중으로 유입된다.

결국, 식량원조는 모양을 바꿔 김정일에게 주는 헌금에 불과하다. 국민을 구원하기는커녕 인민의 고혈을 착취하는 것을 도와주는 셈이다. 금년 4월에 원조식량이 횡령되어 흘러 다니는 현장의 비밀영상이 내가 대표를 맡고 있는 RENK를 통하여 공표 되었지만 격노한 김정일은 “포대를 바꿔치기 해서 팔라”고 엄명하고 있다.

실은 이 과정의 사기술조차 애교스러운 편에 속한다. 원조식량은 온 국가가 몽땅 참여하는 마약밀매의 강력한 무기가 되고 있다.

“최근 수년간 각 도, 시, 군 기관기업소에 대하여 식량을 스스로 구입하여 배급하도록 ‘조선’노동당이 지시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중략) 그래서 각 도, 시, 군, 기관기업소는 아편을 재배하여 그것으로 식량을 사게 되었다. 아편을 수확하여 당해 제약공장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외화확인증을 끊어준다. 그것을 당해기관에 제시하여 식량을 실어서 배급한다....(생략) 세계 각국으로부터 들어오는 식량원조도 아편을 심어서 계획을 초과 달성한 것에 상응하여 공급한다." (앞의 수기)

이러한 사정을 보아 북조선의 아편재배는 최근 점차로 성행하고 있다. 어떤 난민(탈주병)의 말에 따르면, 함경북도의 협동농장에서는 금년에 옥수수를 30% 덜 심고 대신에 아편을 심고 있다고 말한다.

마약증산 때문에 식량이 감산되고 있고 그 부족분을 인도적 원조가 보충하고 있는 셈이다. 북조선 정부는 금년에도 이상기후에 의한 식량감산을 호소하였는 바, 마약왕=김정일은 후안무치하게도 국제사회에 지원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일이 국제사회를 기만하는 것은 인도적 지원 및 마약밀매 문제만은 아니다. 난민처벌에 관하여 김정일이 직접 하달한 새로운 ‘지시’가 그것이다. 그 핵심부분은 다음과 같다.

중국으로부터 강제 송환된 북조선 난민 중 ‘중국에서 기독교로부터 원조를 받은 자’ 및 ‘중국에서 임신한 여성’을 처형시키라고 했다는 것이다.

기독교 교회와의 접촉이 탄압의 이유로 되는 것은 북조선 당국이 포교가 미칠 영향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후술) 그러나 요 몇 년 사이에 일본을 포함해 세계의 기독교계 여러 단체는 민간레벨에서 적극적인 인도지원을 실시하고 있다.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실정을 알면서도 박애정신에 입각하여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에 반대되는 예가 김정일의 이 지시인 것이다. 정상회담에 즈음하여 김정일은 로마교황의 평양초청을 희망하는 말까지 하고 있다. 그 김정일이 기독교 교회와 접촉하여 목사나 선교사의 말을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난민의 처형을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또 임신한 여성을 표적으로 하고 있는 것은 인신매매=불의라는 관념적인 이유만이 아니라 중국인(중국당국)과의 내통을 두려워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게다가 북조선은 국제연합아동기금(UNICEF) 및 세계보건기구 등으로부터 유아용 우유, 임산부용 의료기구와 의약품의 원조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은 중국에서 임신했다는 이유만으로 모자를 함께 말살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상술한 비디오 증언에서도 10세의 여아와 13세의 남아가 비밀경찰에 각목으로 매우 심하게 맞은 체험을 말하고 있다.

김정일이 남북정상회담에서 내걸었던 ‘민족의 화해와 평화’의 간판. 그러나 자국민과 화해할 수 없고 임산부와 아이들을 무자비하게 취급하는 독재자와 평화스럽게 교류하는 방법은 존재할 수 없다.

중-조밀약에서 결정된 삼진아웃

김정일의 화려한 정상외교의 그늘에서 북조선 난민은 한층 고통스러운 처지에 몰리게 되었다.

장쩌민과 김정일의 회담에 즈음하여 ‘숨겨진 의제’가 2개 있었다. 하나는 양국 첩보기관들의 밀고 당기는 피비린내 나는 ‘암투’의 전말이다.(이 건에 관하여는 RENK의 홈페이지를 참조하시오) 또 하나의 의제는 치안관계자를 포함한 복수의 증언에 의하면 난민문제를 포함한 양국 첩보기관의 협력이다.

난민의 증가, 특히 수백 명으로 추정되는 탈주병에 위기감을 느낀 김정일은 장쩌민에게 협력을 요청했다. 장쩌민은 이 문제에 대한 높아지는 국제적 비판에 신경을 쓰지 않고 체포, 강제송환의 강화를 약속했다. 그러나 그 즈음에 장쩌민은 김정일에게 주문을 달았다. “무턱대고 난민을 처형하지 않는다”라는 조건이다. 북조선당국이 학대, 처형하기 때문에 난민이 스스로 귀환하지 않는다는 것이 중국측의 기본인식이었다.

여기에 응하여 김정일은 ‘난민학대’를 완화하는 새로운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무턱대고 죽이지 않는다 하여도’이는 강제 송환이 두 번째인 난민에까지만 해당하는 것이다. 세 번째에 해당하는 사람은 용서 없이 강제수용소에 보내고, 기독교도의 혐의를 받는 사람이나 임산부는 처형된다. 두 번째라도 구치소 및 형무소에서의 고문과 학대로 ‘죽어버린 사람’은 별도의 문제이다.

30대 후반의 남성 난민은 비디오에서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5개월 가까이 구치소와 형무소에 넣어져 6개의 감방에 묶여있는 30~50명의 난민 중 4명이 사망했다. 연일 중노동이 강제되고 식량은 한 주먹의 옥수수밥과 소금을 비닐 주머니에 넣은 것이다. 경찰의 취조에서는 정좌한 채로 심하게 맞고, 하루 3시간도 넘게 손에 수갑이 채워져 취급된다. 심문내용은 “기독교 교회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을 자백하라”라는 것이었다. 남성의 이는 거의 빠지고 뼈가 부러질 때까지 중노동에 처해졌다. 살아서 석방되어도 집도 가족도 없고, 다시 중국으로 탈출할 뿐이지 난민이 살아갈 길은 없다. 이렇게 세 번 체포되면 ‘삼진아웃'. 수용소로 보내지던가 처형된다.

앞의 수기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다.

“이전에는 국민에게 공포심을 심기 위해 수천 명의 주민을 모아놓고 총살을 집행했다. 그러나 이것이 해외로 노출되어 세계의 여론이 나빠지게 되자, 2000년에 들어서 새로운 방법으로 처형하고 있다. 탈북자가 한국의 국가정보원 및 종교단체의 파견자로부터 말을 들은 경우 비밀리에 지하감옥에서 용서 없이 총살하고 있다.”

이렇게 정보통제를 엄격히 하고 있어도 입으로 전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중국에서 들어온 난민이 들은 외부의 정보는 입소문으로 북조선 주민들에게 전달되고 있다. “한국보다도 수준이 낮은 중국에서도 흰쌀밥을 먹고 돼지고기를 먹고 있다. 살아 있는 한에는 한번은 한국에서 살고 싶다” 이제 이러한 말이 인민들 사이에 보통으로 교환되고 있다. 어느 탈북병은 단언한다. “진정으로 남북교류를 시작하면 북조선의 주민은 전원이 남으로 쇄도할 것이다”라고.

외부세계의 생활 이외에도 각종 정보가 북조선으로 유입된다. 북조선 당국이 현재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각종의 종교활동의 유입이다. 수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각 종교단체로부터 선전서, 초상화를 비롯한 종교관련의 책이 북조선에 들어가고 있다. 이것에 대하여 북조선 당국자는 주민에게 단속을 더 한층 강화하고 가택수색 등 다양한 방법으로 감시, 통제하고 있다. 당국자는 의심스러운 자를 체포하여 심문하고 증거가 발견되면 즉결처형하고 있다."

난민들이 절규한 ‘우리의 소원은 통일’

조-중 정상회담 이후 중국에서는 ‘난민사냥’의 회오리바람이 일고 있다. 8월 19일에 길림성의 연변 조선족 자치주(연길시)에서 ‘조선민족박람회’가 당국의 주선으로 개최되었다. 많은 조선인이 모인 일대 이벤트였다. 그렇지만 개최의 ‘액운으로 된다’는 이유에서 난민의 집중단속이 실시되었다. 북조선의 난민은 ‘조선민족의 일원’으로 취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안전지대로 보였던 흑룡강성에서도 속속 난민이 체포되고 있다. 강제송환의 중계지점의 하나인 화룡현(길림성)에서는 하루 평균 40명 정도의 난민이 송환되고 있다. 그 중에는 흑룡강성의 농가에 은신 중이던 난민여성도 포함되어 있다.

이 체포 ‘선풍’에도 김정일의 지시가 하나의 역할을 하고 있다.

“탈북자를 체포해서 자백조서를 받아, 노동당과 수령을 위해서 일한다는 서약서를 쓰게 한다. 그후 악행을 씻어버리기 위해 또 한 번 중국에 가서 탈북자 10명 이상을 적발하는 임무를 부여하여 파견하고 있다."(앞의 수기)

이렇게 김정일은 비열한 밀고제도를 중국에까지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2개월 후에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4월 18일, 돌연 조-중 양국의 중국측 국경에 노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평양에서 남북 정상이 손을 맞잡고 불렀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었다. 그러나 국경에서의 노래 소리의 주인은 위정자가 아니라, 북조선 난민들이었다. 강제 송환에 항의하여 결사의 각오로 폭동을 일으킨 것이다. 약 80명의 난민 중 60명 정도는 임산부를 포함한 여성과 아이들이었다.

발포허가를 받은 무장경찰이 일제히 돌입하던 중 적수공권(赤手空拳)의 난민들은 그들 나름의 저항으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절규했다. 참사소식을 일찍 입수한 내가 발신한 제1보는 AP통신 및 AFP통신이 세계에 보도했다. 그러나 폭동진압 이틀 후 부상자를 제외한 나머지 난민 전원이 강제 송환되었다.

이제 우리들의 귓전을 울리는 것은 남북의 위정자가 ‘정치쇼’로 한창 성가를 올린 노래 소리가 아니다. TV에서 흘러나오지 않는 북조선 난민들의 비통한 노래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