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김정일의 생각 읽기]
왜 김정일을 알아야 하는가.

80년대에 방영된 좧동토의 왕국좩이라는 드라마에서 김정일은 곱슬곱슬한 라면머리에 정말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문화예술, 특히 영화분야에 조예가 깊다든지, 승마와 사격을 즐기며 특히 승마는 말의 종류를 논할 정도로 매니아라든지, 또 대단한 달변가이며 애주가라든지…. 특히 남북정상회담 이후 김정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쏟아져 나오는 자료의 상당수는 ‘인간' 김정일을 여성잡지나 스포츠 신문에서 무슨 연예인을 다루듯 묘사하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소개들이 ‘북한의 지도자' 김정일을 온전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 그에 앞서 생각해보자. 우리는 도대체 왜 김정일을 알아야 하는가. 도대체 왜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어야 하는가. 그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그가 현재 북한의 ‘유일한' 권력자이기 때문에. 좋든 싫든 그를 중심으로 북한이라는 국가가 움직이고 있고, 그것이 현재 북한 인민의 삶을 결정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 인민들이 당신이 없으면 조국도 없고, 총폭탄이 되어 전 인민이 죽을 각오가 되어있다”고 하면서 외견상으로는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절대 복종하고 있는 인물이기에.

다원주의 사회라면 그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정치세력의 입장과 지나온 역사, 그리고 헌법이나 국가운영체계 등이 그 사회를 이해하는 주요한 척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모든 권력이 김정일로부터 나오고 집행되는 북한사회를 연구하고 그 방향을 예측함에 있어 ‘김정일’을 빼놓고 도대체 무슨 연구와 논의가 가능할까. 이런 의미에서 최근 들어 북한의 지도자 김정일에 대한 갖가지 연구활동이 더욱 활발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김정일 연구의 방법

그런데 도대체 무엇을 중심으로 김정일을 연구할 것인가. 아버지 김일성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극단적 비난과 옹호, 혹은 찬양이 엇갈리는 인물이다. 또한 자신은 은둔생활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지만 영화나 선전매체를 중요시하는 그의 성격에 맞지 않게, 김정일처럼 활동모습 등을 담은 공개 자료나 영상물들이 극히 부족한 지도자도 없을 것이다. 시중에 출판된 김정일에 대한 연구서를 보아도 대개 그의 정치적 성장과정을 나열하면서 거기에 일종의 추리적인 설명을 덧붙인다든지, 혹은 증명되지 않은 ‘측근’임을 내세우며 옹호하거나 비난한다든지, 어떤 경우에는 기껏 그의 음성녹음테이프를 심리학적으로 분석해 봤다든지 하는 정도이다.

이제 소개할 [김정일의 생각 읽기](이주철 著, 지식공작소, 2000년)는 김정일 연구의 중심을 시종일관 [김정일 선집]에 맞추고 있다. 즉 공식적인 그의 발언집을 ‘일단은 믿고' 철저히 그에 의거해 김정일을 분석해 보자는 것이다.

그럼 [김정일 선집]을 중심으로 하여 김정일을 연구하는 방식이 과연 객관적이고 합리적일 수 있는가. 저자의 생각은 일단 ‘그렇다’이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저작은 그들의 서기에 의하여 정리된 것도 있고 대필된 것도 있지만, 그 안에는 김일성과 김정일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가 실려있다”는 것이다. “특히 그들이 조선노동당과 정무원의 최고위 간부들을 모아놓고 한 ‘교시’들은 너무도 소중한 자료”이며 “그것들(서기들에 의해 대필된 것)이 김정일의 연설이나 담화를 바탕으로 하여 편집되었고, 김정일의 요구와 지시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그의 생각으로 이해하는 데는 문제가 없”고, “또 설령 일부의 글은 그의 서기가 직접 창작했다 하여도 그것이 김정일의 저작으로 공식화 되는 것은 김정일의 허락이 있어야 가능했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이러한 저자의 연구관점이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조선왕조실록]의 경우, 그것이 왕의 사후에 집필되었으며, 특히 역사라는 것이 ‘승리한 자의 기록’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많이 윤색되고 과장된 측면이 있을 수도 있으나 조선사를 연구하는데 큰 자료의 하나임은 부정할 수 없다. 하물며 권력자가 살아있을 당시에 쓰여지고 배포된 ‘어록’에는, 그것이 단순한 대외과시용이라 할지라도 집권자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반영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자, 이제 김정일에 대한 사상검증을 해보자.

이렇게 이 책은 ‘김정일의 선집에서 나타난 그의 발언들을 살펴보는 것’을 김정일 연구의 주요한 방법론으로 하여 ‘김정일에 대한 사상검증’을 시작한다. 이 책은 총 9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크게 ▷ 김정일의 정치적 성장사를 대략적으로 살펴보고 ▷ 주체사상과 혁명전통에 대한 김정일의 발언들을 바탕으로 그의 사고방식의 윤곽을 그려보고 ▷ 나아가 김정일의 인민관, 혁명관, 자본주의에 대한 관점, 남한 사회에 대한 시각, 민족관, 사회주의관, 민주주의에 대한 시각 등을 조목조목 지적한다. 특히 90년대 이후 심각한 북한의 경제위기에 대해 최고권력자인 김정일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두 장에 걸쳐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1) 김정일의 경력

먼저 저자는 김정일이 이른바 ‘준비된 지도자’였음을 설명한다. 항일유격대 간부의 아들로 태어나 명실상부 북조선의 최고지도자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을 아버지를 옆에서 지켜보며 ‘수상의 아들’로 보낸 유소년기와,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정치경제학과 졸업과 함께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중앙지도과 지도원으로 근무하면서 시작된 그의 정치적 성장사를 살펴보며, 김정일이 아무런 정치적 성장과정이나 후계자 수업의 과정이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지금의 지위에 오르게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지적한다. 또한 항간에 이야기되는 김정일의 괴팍한 성격이나, 여성편력 등의 개인사에 대해 저자는 “최고 권력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즉 김정일이 아닌 누구라 하여도 권력을 향해 나갈 때 북한 체제와 같은 곳에서는 나타날 수밖에 없는 성격”이라고 이야기하며, 특히 이제 김정일이 나이 60을 바라보면서 “젊은 시절 있을 수 있는 감성적인 본능으로부터 벗어나기에 충분한 시간이 되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항간의 이른바 김정일 연구가 개인적인 취향이나 성격 등을 중심으로 논하는 것은 ‘인간' 김정일에 대한 시시콜콜한 호기심을 해결하는 데는 좋을지 모르나 ‘북한의 현실적 지도자' 김정일을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이 부분에서 필자는 김정일의 정치적인 성장과정에 대한 이해가 “그것의 정당성과는 다른 문제”임을 분명히 한다. 즉 김정일의 정치적인 성장과정은 갑산파의 숙청을 시작으로 ‘비판과 검열’이라는 명분아래 당 조직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여 민주주의를 철저히 거세하면서 김일성 일인독재체제를 강화시켜온 과정이었고, 그의 전문가적 자질이라는 것도 최고권력자의 아들로서 갖고 있던 보이지 않는 권력의 한 측면이며, 설령 그에게 다방면의 전문가적 자질이 있다하더라도 그것은 말 그대로 ‘전문가’의 자질일 뿐이지 국가경영자의 자질과 덕목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김정일의 정치적 성장사에 대한 이해는 “다만 김정일도 기본 소양은 있었다”는 의미이지 “김정일이 가장 적임자였다”는 근거는 될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2) 김정일의 인민관, 민주주의관

다음으로 저자가 주의 깊게 보는 부분은 북한의 주체사상에서 수령의 주요한 징표 중의 하나라고 주장하는 ‘인민관’이다. 이 점에 있어 필자는 김정일에게 그리 큰 점수를 주지 못한다. 아니 혹독하게 그에게 낙제점을 내린다. “김일성의 어록과 김정일의 어록을 읽어보면 커다란 차이가 하나 있다. 김일성은 김정일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인간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인민의 먹는 문제, 입는 문제 등의 사는 문제에 대해 대단히 민감하다. 그리고 인민대중을 크게 의식하며 인민대중의 현실적 문제에 대해 좀더 민감하다는 사실이다. 김정일이 인민에 대해 보여주는 태도에는 그들의 삶에 대한 깊은 동정과 애정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반복적으로 인민이 수령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가 만을 말하고 있다. 김정일이 김일성에 비하여 최고 지도자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 덕목이 부족하다는 점을 먼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특히 북한의 기아사태가 폭발적으로 드러나던 1995년부터 지금까지 김정일의 현지시찰이 군부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사실이라든지, “우리 나라에서는 집을 하나 짓거나 길을 하나 내는 데서뿐만 아니라 그것을 관리하는 데서도 언제나 인민의 생활상 편리를 보장하는 것을 첫 자리에 놓는다”는 김정일이 심각한 기아실태를 알면서도 배부르게는 아니어도 대량의 아사는 면하게 할 수 있는 엄청난 돈을 들여 “당의 현명한 영도밑에 도시 중심부의 가장 좋은 자리에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을 높이 모시었으며 수령님의 혁명업적을 만대에 길이 전할 대기념비를 세우고 수많은 혁명사적 건물을 정중히 꾸려놓았다”고 하는 모순된 인민관의 실례들을 지적한다.

인민의 생존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권력 유지이며, 죽은 수령을 높이 모셔 자신의 배경으로 삼음으로써 허약한 권력의 근거로 삼는 김정일의 인민관은 “오늘 우리 인민은 생활에서 일부 곤란한 문제가 있어도 아무런 의견이 없으며 앞날에 대하여 낙관적으로 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좋은 인민을 가지고 있는 것을 자랑으로 여겨야" 한다는 발언으로 뚜렷이 표현된다. 저자는 “그에 따르면 곤란한 문제가 있어도 아무런 의견이 없는 인민이 좋은 인민이라는 것이다. 아마 독재자에게는 최상의 인민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평가하면서, 김정일의 발언들을 종합해 보건대, 그는 민주주의에 대한 관점이 전혀 없는 듯 하며, 이렇게 오로지 ‘복종’과 ‘인치단결’만을 생각하는 사고력으로는 “권력의 공유나 권력의 교체라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한다.

3) 김정일의 경제관, 개혁개방의 가능성

그러나 비록 인민을 통치의 대상 정도로밖에 보지 않는 독재자라 할지라도 국민들을 그나마 잘 먹여 살리기만 한다면 그럭저럭 점수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몇 년간의 기아사태를 김정일의 주장대로 ‘하늘의 탓이고 제국주의의 탓’이라 하더라도, 그럼 앞으로 김정일은 북한의 경제를 살려낼 자기 철학과 전망이 있는가. 여기에 대해서도 저자는 안타깝지만 ‘회의적’이다. 서문에서부터 필자는 이 문제를 관심 있게 제기한다. “필자는 김정일이 개혁을 할 것인가 못할 것인가를 단정적으로 묻는다면,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설령 개혁을 시작은 해도 그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러한 필자의 판단은 김정일에 대한 어떠한 악감정이나 그가 잘못되기를 바라기 때문은 아니다. 김정일의 실패는 곧 남북한 인민 모두의 고통이 될 수 있다. " 과거와 현재야 어찌 됐든 그가 살고 인민도 산다면 얼마나 기쁜 일이겠는가.”

저자가 “김정일의 개혁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단정하는 이유는, 당면한 북한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김정일이 인민들의 먹고사는 문제의 해결을 최우선에 놓고 이를 위해서는 어떠한 결단이라도 내릴 수 있어야 하지만, 김정일의 지금까지의 발언으로 보건대 “가장 중요한 것은 오직 정권의 유지”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과감한 외자를 도입한다든지, 인센티브를 인정한다든지, 시장 경제를 도입한다든지 하는 근본적인 체제변혁과 관련한 부분에서 김정일은 절대 문을 열 수 없을 것이며, 현재로서는 당면한 정권유지에 필요한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수준이며 이의 한계는 분명할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그래서 저자는 “북한 사회의 변화를 읽기 위해서는 겉에 드러나는 모습에 초점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겉에 보이는 변화의 상당수는 조선로동당의 통제가 가능한 범위 안의 것일 뿐이며, 그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복선의 하나인 경우가 많다. 북한의 작은 변화 또는 유연한 몸짓, 위기 해소를 위한 제한된 대응을 변화의 징조로 보고 감격하는 것이나, 이러한 변화를 찾아내어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좀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변화는 변화가 아니라 또 하나의 발전적인 통제일 뿐이며, 김정일 체제의 생존력을 보여줄 뿐이다.”

일독(一讀)을 권하며

[김정일의 생각읽기]를 통해 저자는, 김정일이 여전히 항일투쟁이나 한국전쟁 당시처럼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의 관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당과 인민을 이에 동원하는 병사(兵士)정도로 생각하는 한 북한의 개혁과 개방, 그리고 통일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북한민주화를 둘러싼 항간의 논의에 대해 저자는 “정부가 북한의 민주화운동을 지원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지만, 민간에서 북한의 인권과 민주화를 요구하고 여론을 형성하는 것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어쩌면 여당은 북한 정권에 대한 지원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야당은 북한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것이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할 임무라고도 할 수 있다”고 견해를 피력하면서, 이제 “통일 문제는 민주화의 문제”임을 주장한다. 북한 민주화의 직접적인 주체는 북한 인민이고 현재로서 남한에서 취할 수 있는 북한 민주화의 방법은 대단히 협소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식량지원·의료지원·교육지원 등을 통해 일단 긴급한 북한 인민대중의 생명을 지키고, 그 다음단계로 경제발전을 위한 협력과 지원을 하면서 이를 민주화의 요구와 병행시키자는 것이 저자가 생각하는 북한민주화의 경로이다.

현재 고려대, 건국대, 순천향대 강사로 재직중인 저자 이주철씨의 연구성과에 경의를 표하면서 한가지 아쉬운 점을 말하자면 이 책 [김정일의 생각읽기]가 연구서도 대중교양서도 아닌 애매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일 선집]을 중심으로 한 본격적인 연구서로서는 조금 깊이가 떨어지고, 북한의 실상과 김정일의 생각을 알리는 대중적인 교양서적으로는 자료의 출처들이 너무 한정되어 있다. 일단 ‘연구서’라고 하기에 깊이가 부족하다는 것은 전반적인 체계가 빈약하고 같은 주장들이 너무 많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것은 대중교양서로서의 역할도 부족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김정일에 대한 연구를 공식적인 문헌인 좬김정일 선집좭 등을 중심으로 한다는 방법상의 이유 때문이겠지만, 이러한 방법으로 한국의 독자들에게 ‘김정일의 생각과 북한의 실상을 종합적으로 설명한 책’이라고 소개하기는 힘들 것 같다.

북한의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이 고조되는 이때에, 김정일의 진정한 생각이 과연 무엇이며 북한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그리고 북한 민주화의 필요성과 전망을 종합적으로 제시한 체계적인 연구서적, 대중교양서적들이 절실히 필요한 것 같다. 이 책은 그 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좬김정일의 생각읽기좭의 일독을 권하며 저자의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우리가 남한정권을 비판하는 것도 보다 나은 권력, 시민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 때문이다. 북한정권에 대한 비판도 똑같은 이유이다. 김정일 정권을 감싸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도 아니며 사회주의에 대한 지지도 아니다. 2,300만 인민의 인권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지만 그에 대한 아무런 비판을 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비겁함과 우리만의 평화를 다치지 않으려는 데도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