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북한민주화를 주장하는 것이 반공주의나 반북주의적 태도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는
전적으로 오해이다. 오히려 우리는 반공주의나 반북주의에 대해 반대한다.
70년대 우리나라의 유신체제나 박정권에 대해 반대하는 활동을 하던 미국인이나 일본인에 대해 정권 측에서는 ‘반한(反韓)인사’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들은 그 대부분이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70년대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관여했던 외국인 신부 들의 경우도 그들이 한국과 한국인, 한국 문화에 대해 깊은 애정이 없었다면, 여러 가지 불이익을
감수하고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활동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을 ‘반한인사’라고 부르는 것은 전혀 온당치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처럼 김정일체제나 김정일정권에 대해 반대한다고 해서 ‘반북주의’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우리는 북한에, 다시
말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 나라가 김정일의 아버지이자 현재의 북한체제에 상당한 책임이 있는
김일성의 주도로 건설된 국가이긴 하지만 그러한 이유 때문에 그 국가 자체를 부인할 생각은 없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건국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것처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국의 정통성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입장이다. 오히려 우리를
‘반북주의’로 공격하는 사람들 중 일부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 애매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러한 ‘애매한 입장’은
어디에서부터 나오는가? 북한 문제는 철두철미 북한 인민의 입장에서 보아야 하는데 남한이나 남한 인민의 입장에서 북한
문제를 바라보다 보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국의 정통성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인정하지 못하고 ‘김정일체제 타도'
주장에 대해서는 ‘반북주의’로 보는 것이다.
우리는 마르크스주의를 지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상이론적으로 비판하고 반대한다는 것과 ‘반공주의’는 완전히 다르다.
‘반공주의’란 공산주의나 공산당을 적대시하고 그들과 투쟁하는 것을 주요한 임무로 하는 이념성향이다. 그러나 우리는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고 반대하기는 하지만 적대시하지는 않으며 더군다나 마르크스주의나 공산당에 반대해 투쟁하려는 생각도
전혀 없다. 그리고 어떤 주의, 주장, 이론, 학설 등은 그것이 옳은가 그른가가 유일한 기준이 될 뿐 공산주의에 가깝거나
먼 것은 전혀 아무런 기준이 될 수 없다.
북한의 김정일정권이나 김정일체제를 비판하는데 있어 반공주의는 아무런 필요도 없다. 오히려 반공주의적 입장에서 북한을
비판하면 대중으로 하여금 북한이 정상적인 공산주의 사회체제를 갖고 있다는 오해를 하도록 만들 가능성도 있다. 그 뿐
아니라 냉전적이라느니 시대적 조류에 맞지 않는다느니 하는 엉뚱한 논쟁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다. 반공주의가 아니라도
김정일정권을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다. 그 뿐 아니라 반공주의의 입장에서는 철저히 북한 인민의 입장에 설 수가 없고
따라서 북한민주화에 있어 투철하고 정확한 입장을 견지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우리는 반공주의를 반대하지만 북한 인민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북한민주화를 향한 순수한 열정을 갖고 있다면 반공주의자든 마르크스주의자든 모두 함께 손잡고 북한민주화운동을
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진정한 민주화를 이룩하자면 프롤레타리아독재 혹은 공산당독재를 철폐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단기적 혹은 중기적으로
중국식의 공산당독재가 필요하다면 여기에 관해서도 역시 특별히 반대할 생각이 없다. 우리의 북한민주화는 김정일체제를
반대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민주화 이후에 사회주의로 갈지 자본주의로 갈지 중국식으로
갈지 러시아식으로 갈지 한국식으로 갈지 아니면 또 다른 독창적인 길로 갈지는 북한 인민이 결정할 문제이며 더 구체적으로는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에 의해 구성된 북한의 신정부가 북한 인민의 의견을 수렴해 결정할 문제이다.
우리는 물론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더 구체적으로는 프롤레타리아독재(공산당독재)와 계급투쟁, 국유제와 계획경제 등을
반대한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북한의 김정일체제를 타도하자고 주장하는 주된 이유가 아니다. 우리는 북한이 중국처럼
그냥 공산당독재만 했다면 거기다가 중국처럼 부패와 관료주의가 심하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비판은 하지만 ‘타도운동’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쿠바처럼 국유제와 계획경제를 고수하더라도 거기에 비판은 하지만 ‘타도운동’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쿠바는 지금 상당히 궁핍하고 앞으로도 어려울 것이다. 이는 구 체제에 고집스럽게 집착하는 카스트로에게
많은 책임이 있지만 적어도 카스트로는 정직하고, 인민을 사랑하는 마음을 끝까지 잃지 않고 있다.
북한의 문제는 중국이나 쿠바의 문제와는 완전히 다르다. 우리는 북한이 사회주의체제라서 타도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공산당독재' 혹은 '1인 독재’라서 타도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다. 북한 문제는 사회주의체제나 1인 독재의
문제에서부터 출발했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그런 것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문제로 발전했다.
우리가 ‘김정일체제 타도’를 주장하는 것은 첫째로 북한의 김정일체제는 사람의 인권을 극단적으로 억압하고 있는 체제라는
것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어떤 과부가 굶주리는 애들을 주려고 무 2개를 훔쳤다가 징역형을 언도받았는데 고아가
된 애들이 걱정되어 울다가 당을 믿지 못하고 운다며 총살된 이야기, 러시아 노래를 코로 흥얼거리다가 수정주의 사상에
깊이 물들어 있다며 총살당한 소련 유학생 출신의 아가씨 이야기, 신년사를 외우지 못해 심하게 얻어맞아 죽는 노인들
이야기 등 상상을 초월하는 이야기들이 많다. 정치범수용소에서는 이보다 더 끔찍한 일들이 매일같이 일어난다. 이렇게
극단적인 경우 말고 일반 인민들을 짐승만도 못하게 취급하며 걸핏하면 때리고 모욕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은 지금
한국에 와 있는 탈북자들에게도 수없이 많이 들을 수 있는 이야기이다. 지금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이 걸핏하면 중국의
인권 문제를 들먹이는데 사실 중국의 인권상황은 북한에 비하면 거의 천국 수준이다. 이런 면에서 미국 정부의 태도는
문제가 많다고 본다. 미국 정부는 그들의 막강한 정보력으로 북한의 인권상황이 중국과는 하늘과 땅 차이로 열악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지난 20여 년 동안 더디기는 하지만 꾸준히 인권상황이 개선되고 있는 중국만 주로 문제삼고 있고
북한문제는 완전히 뒷전에 밀어 넣고 가끔 체면치레로만 꺼내고 있다. 인권을 가장 중요시하는 듯하면서도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둘째는 실정과 무능과 무책임으로 북한 사회 전체를 도탄에 빠지게 했다는 것이다. 북한은 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신생독립국
중에서는 가장 빠른 속도로 발전하던 나라였다. 북한의 상황이 30년 사이에 이렇게 극과 극으로 바뀐 것은 물론 마르크스레닌주의식
사회주의 자체가 갖는 근본적인 한계나 문제점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에만 책임을 돌리기에는 북한의 상황이 너무나
엄청나다. 보통 상황의 어려움이 지속되면 중국에서 좌우의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 보았듯이, 아니면 소련에서 리베르만
방식이니 페레스트로이카니 해서 시도해 보았듯이 이런저런 새로운 방식을 시도해보는 것이 당연하다. 이 중에 어떤 방식은
성공했고 또 다수는 실패했지만 어쨌든 구 시스템으로 잘 안 된다는 것이 확실해질 경우에는 시스템을 어떤 식으로든 개혁하는
시도를 해보는 것이 집권자나 집권당의 당연한 의무이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극한까지 가도록 아니 극한까지 가고 나서도
상당 기간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것은 다음 둘 중의 하나이다. 그 첫째는 김일성은 김정일에게 권력을 물려주고
나서는 국정에 별로 관여하지 않으려고 하고 또 나이가 들어 판단력이 크게 떨어져 있는 상태였고 김정일은 오직 권력을
장악하는 데에만 관심과 능력이 있고 국정운영에는 관심도 능력도 별로 없어서 국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몰랐거나, 둘째는
국가 전체가 심각한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방치하는 것이 자신의 권력유지에 유리할 것으로 판단해서 고의적으로
방치했거나 이다. 그런데 이 둘 중 어느 하나에 해당된다고 하더라도 도저히 그 어떤 용서도 받을 수 없는 심각한 범죄행위이다.
고의적으로 그렇게 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권력을 한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국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무지하고 무능했다는
것도 이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엄청난 범죄이다.
셋째, 굶어 죽어 가는 인민을 살릴 수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방치하여 수백만 명을 아사(餓死)시켰다는 것이다.
이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미 말해서 구구절절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단적인 예로 김일성의 시신을 보존하는 궁전을
꾸미는 데 쓴 그 엄청난 돈이면 옥수수 600만 톤을 구입할 수 있다. 이 정도면 북한 사람들이 풍족하게 먹을 정도는
못 되지만 그래도 94년부터 5∼6년 동안의 아사자(餓死者)는 대부분 살릴 수 있는 정도는 된다. 그 외에도 인민
생활과는 관계없는 불필요한 데 돈이 낭비되고 있는 예는 수없이 많다. 이처럼 굶어 죽어가고 있는 인민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눈앞에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방치하여 떼죽음에 이르도록 하였다. 이것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행위이다.
우리는 1∼2명을 살해한 사람도 중벌에 처하는데 수백만 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정권을 어떻게 용서하란 말인가?
넷째, 김정일정권이 계속 집권하고 있는 한 북한의 밝은 미래는 없기 때문이다. 북한이 부분적으로나마 개방을 추진하고
남한을 비롯한 외부의 돈이 유입되면 북한의 상황은 향후 몇 년간은 크게 개선될 것이다. 그러나 무능하고 썩어빠진 김정일정권이
계속 집권하고 있는 한 북한의 미래, 북한 인민의 미래는 없다. 어떤 사람은 김정일의 성향이나 능력에 대해 좀 더
두고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지만 김정일이 집권한지 금년이 27년째 되는 해이다. 일반적인 국가에서 집권자가 집권하고
4∼7년 정도의 기간 동안에 신통치 않다고 생각되면 국민이 집권자를 바꾼다. 좀 더 늘려서 10년 정도까지는 봐줄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김정일정권의 경우 이미 우리는 27년 동안이나 봐왔다. 김정일이 국정 전체를 거의 독점적으로
장악한 시기로부터도 15년이나 지났다. 도대체 두고 볼 것이 무엇이 있는가? 설사 앞으로 북한이 개방정책을 계속 추진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개방정책을 계속 추진한다면 경제규모도 커지고 경제나 사회 운영이 훨씬 복잡해질 것이다. 기존의 단순한
사회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는 정권에게 복잡해진 사회를 어떻게 믿고 맡긴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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