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그러나 아직까지 분단은 '현실'이다/ 곽대중
우선 나는 한국영화니 외국영화니 하는 구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외국영화를 보더라도 한국 사람들이 공감을 하면 한국영화가 되는 것이고 아무리 한국감독이 만들고 한국배우들이 출연했어도 한국 사람들에게는 공감을 얻지 못하고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반응이 좋다면 그게 아프리카 영화지 어찌 한국 영화라 할 수 있는가. 대체 한국 영화라느니 외국영화라느니 하는 구분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고 그 구분의 기준이 무엇인지도 궁금하다. 예를 들어 어느 외국인 감독이 한국의 정신대 문제를 소재로 하여 영화를 제작하였다하면 그건 한국영화인가 외국영화인가. 하긴 자막이 필요 없으면 한국영화고 자막이 필요하면 외국영화라는 썰렁한 농담도 만들 수 있겠다.

왜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관객들의 동감(同感)'이라는 의미에서 본다면 「공동경비구역 JSA」는 '지극히(!)' 한국 영화라는 것이다. 보다 엄밀히 말하면 남한 영화. 영화 쉬리가 일본에서도 제법 히트를 쳤다는데 그건 그야말로 '액션의 힘'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공동경비구역 JSA」가 다른 나라에 수출된다면 과연 그 정도의 반응을 얻을 수 있을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No'다. 휴전상태에 있는 두 나라의 병사가 상대 벙커를 왔다갔다하며 노닥거리다 상관에게 들켜서 얼떨결에 총질하게 된 이야기, 그런데 그게 양측의 증언이 서로 틀리니까 대체 누구 말이 맞는지 진실을 밝혀나가는 미스테리물, 아마 이 정도로 비칠 것이다. 영화를 이끌어 가는 네 명의 군인들이 한밤에 닭싸움을 하고 실탄으로 공기놀이를 하는 것이 우리 나라 사람들 입장에서는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게 하고 가슴속 저편에서 야릇한 슬픔을 이끌어내는 장면들이겠지만 외국 사람들이 보기에는 웃기는 장난 정도 아닐까. 또한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는 미스테리 휴먼 블록버스터라는 대단히 거창한 자기소개를 하고 있지만 미스테리라고 한다면 복선도 엉성하게 깔리고 반전도 밋밋하며 절정부의 호흡도 부족한 엉성한 미스테리물로 정말 미스테리는 간 데 없고 코미디만 나부끼는 꼴이고 영화음악도 남한 사람들(특히 군대를 갔다온 남자들)의 정서에는 꽤나 적절하고 콧잔등을 시큰하게 하기도 하지만 영화음악 자체만으로 놓고 본다면 급하게 편성된 TV 드라마에서 반복되는 삽입곡을 보는 느낌이다.

도대체 이 영화가 '뜨는' 이유가 뭘까? 마치 밀린 숙제를 하듯 「공동경비구역 JSA」를 관람하고 나오면서 이런 의문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별 다섯 개를 만점으로 삼아, 댁이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관람료가 아깝다고 생각할지 아닐지 미리 가늠자를 던져주는 친절한 비평가 양반들이 이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 한결 같이 대장 계급장을 달아주는 것을 이제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물론 상영시간동안 여기저기 훌쩍이던 사람들의 눈물은 최루성 멜로영화의 그것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겠고 '분단'이라는 다소 무거운 소재를 갖고도 이렇게 웃기고 울리는 영화를 만들 수 있구나 하는 감탄을 자아내게 했지만 '정확히 소비자를 계산한 제법 잘 짜여진 상업영화', 나는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 그 이상의 점수를 주고 싶지는 않다. 별 세 개...?

영화는 우선 문제의 총격사건에 대해 각기 다른 두 가지 주장을 풀어놓는다. 그리고 관객에게 묻는다. '어때, 궁금하지?' 그리고 호기심 많은 관객들이 머릿속에 총알 숫자를 세는 동안 영화는 어느새 슬쩍 한발을 뒤로 빼며 휴먼 코미디로 위치를 옮긴다. 분단국가의 관객들이 남북병사들의 아슬아슬하고도 낭만적인 불륜(?)관계를 훔쳐보면서 잠시 총알 숫자를 잊고 있는 사이 '자, 이제 다 웃고 울었지? 이제 또 고민할 차례야' 하는 듯 투신한 남일병의 얼굴을 교차시키면서 노련하게 다시 그놈의 복잡한 총알 이야기를 꺼내가 싶더니, 비장하게 주먹을 움켜쥐라고 선동하다가 갑자기 이상한 반전으로 꼬리를 내리며 엔딩타이틀을 내어 낸다.

어차피 상업영화는 '계산'할 수밖에 없고 그게 당연한 것이며 잘 계산되었다는 게 오히려 칭찬 받아야 할 부분일 수도 있지만 공동경비구역은 그 '계산'에 '분단'이라는 상황과 국민의식을 집어넣음으로써 원래 영화의 부족함을 덮어버리려 하는 점에서 '제 값'을 찾아줘야 한다.

최전방부대에서 신병교육을 받으면서 필자는 우리 나라 국민들, 특히 젊은 세대들이 분단이라는 상황에 대해 지극히 현실적인 것 같지만 실은 지극히 낭만적인 구석이 많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예를 들어 신병들 사이에는 GOP 근무에 대한 환상(?)이 많이 있는데, 사실 겉에서 보면 대단히 낭만적일 수 있다. 소총 옆에 차고 북녘을 바라보면 커다란 북한의 선전문구가 보이고, 끝없이 이어져 있을 듯한 철책 저 너머에도 초소가 있고 혹시 내 또래의 하전사가 근무를 서고 있겠지... 환히 불이 밝혀진 한밤의 철책을 순찰할 때면 욍욍 울려대는 남북의 확성기 소리에 귀가 따갑고, 문득 남쪽하늘을 바라보면 고향생각, 어머니 생각.... 그런데 군대를 갔다 온 사람은 알겠지만 그 낭만도 하루 이틀이지 한 6개월씩 있으면 그것도 신물이 나고, 또 군 생활의 대부분이 풀 뽑는 일, 흙 나르는 일 등 잡일의 연속인지라 전역한 후 술자리 안주 삼아 이야기 하기는 좋을지 몰라도 실제 겪어본 사람은 별로 낭만적이지 않다.

영화 공동경비구역은 이러한 구석을 정확하게 노리고 들어간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라는 조그만 다리를 사이에 두고 걸어서 몇 걸음이면 오고갈, 말 그대로 지척에 있는 남북의 초소, 대체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하는. 초등학교 시절 책상 위에 짝꿍이랑 줄을 그어놓고 '너 이 금 넘어오면 맞는다' 하던 식으로 다 큰 어른들이 땅바닥 위에 줄 그어놓고 폼 잡고 서서 아무 말 없이 서로를 쳐다보고 있는 곳, 대체 그 시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하는.

이러한 호기심과 궁금증을 상품으로 승화시키면서 마침내 영화는 분단을 낭만으로 용해시킨다. 까짓 것 그거 별거 아니더라, 서로 왔다 갔다 하다보니 호형호제하면서 놀고 어울리고 하질 않나 하는. 통일이라는 것도 별거 아니잖아, 뭐가 그리 복잡해 그냥 줄만 넘으면 되는 거잖아 하는.

그리고 거기에는 별로 고민이 없다. 있어도 중요한 게 아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도 서로 쏴야 하는 걸까' 하는 느닷없는 질문에 침묵이 흐르기도 하지만 영화 속의 네 병사와, 이들과 호흡을 맞추며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에게 이제 분단은 그저 난센스일 뿐이다. (결국에는 이것이 각자에게 중대한 비극을 낳게 되지만) 등장인물들은 모두 자기 감정에 대단히 충실하고 거기에 미쳐 자살을 택할 정도로 철저하다. 분단이라는 지극히 사회적인 문제에 도전했음에도 복잡한 현실은 미스테리로 대체하고 모든 문제를 개인의 감정으로 처리해 버리는 것이다.

「공동경비구역 JSA」를 「쉬리」와 비교하면서 전자는 통일영화이고 후자는 반공영화라고 하는 사람도 있던데, 반공영화와 통일영화가 어떻게 다른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볼 땐 거꾸로 된 표현이라 생각한다. 영화 「쉬리」가 평화적인 통일을 원치 않는 북한의 군부강경파가 남북화해 분위기를 깨기 위해 엄청난 테러를 계획한다는 상황설정을 통해 분단 구조에 대해 시사점을 던져주고, 나아가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와 인간적인 면모까지 부각시키고 있다면, 오히려 「공동경비구역 JSA」는 앞서 말했듯 지극히 남한 사람들의 시각에서 분단의 문제를 바라보고 그 해결방식 또한 지극히 '개인적'이다. 진정한 통일영화라 한다면 남한 사람이 보든 북한 사람이 보든 '통일'에 대한 동감을 얻을 수 있어야 할건데 과연 공동경비구역이 북한 사람들의 정서에도 남한 사람들의 그것과 일치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개인적으로 무척 궁금한데 최근에 탈북한 북한동포에게 공동경비구역을 보여주고 그 소감을 묻고 싶다).

아무튼 이제 거품을 걷고 다시 보자. 이산가족 상봉을 위시한 남북화해의 분위기 속에서 잔뜩 바람만 불어넣으면서 무리하게 상업영화를 계몽영화의 수준으로 승천 혹은 추락시키려 들지 말고 영화는 영화로서 평가해 주어야 한다. 그저 부담 없이 웃고 또 울면서 가볍게 볼만한 한국영화 한편 나왔다고, 그것도 제법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말이다. 너무 띄워주다가 잘못되면 더 아픈 법이다.

PS. 도대체 이놈의 영화를 감독은 어느 메에서 어떻게 끝맺을까 궁금했었는데 라스트씬은 생각만 해도 정말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