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우리 시대의 북한철학』
남북관계가 급속히 변화함에 따라 북한에 다녀온 사람도 어지간히 늘어난 것 같다. 경협 관계자들 중에는 벌써 10년도 넘게 북한을 들락거린 사람도 적지 않다. 이제 금강산에 갔다온 일은 자랑할 것도 못되게 되었다. 세상이 바뀌긴 꽤 바뀐 모양이다.

그런데 한가지 눈 여겨 볼만한 것은 오랫동안 북한을 들락거린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북한에 한번 갖다왔다는 사실만으로 곧 북한을 잘 아는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북한도 사람 사는 곳이고, 우리와 별 다를 게 없더라", "주민들을 만나보니 참 많이 변한 것 같더라"는 식의 이야기를 이들로부터 듣게 된다. 물론 맞는 말이다. 북한도 사람 사는 곳인데,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먹고 입고 쓰고 사는 것이야 우리와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그런데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의 북한관(觀)을 들여다보면 이들은 그 동안 북한을 그저 '호기심의 대상'으로만 보아온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즉, 북한도 우리와 별 다를 게 없더라는 그들의 말은 자신이 북한에 대해 가졌던 호기심의 일부가 풀렸다는 이야기와 비슷한 것이다. 따라서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북한이 변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자신의 북한관이 변한 것이다.

김정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6월 남북정상회담 때 TV에 비쳐진 김정일의 언행이나, 남한 언론사 사장단과의 면담에서 한 발언 등을 두고 김정일이 변했다고 보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은 김정일은 있는 그대로인데, 김정일을 보는 남한 사람들의 관점이 변한 것뿐이다. 김정일은 여전히 "통일은 내 맘먹은 때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스타일이고, 주민들의 생활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수령으로서의 자신의 지위를 누릴 수 있으면 그만인 사람인 것이다. 물론 남한 사람들이 제대로 된 북한관을 가질 수 없었던 것은 과거 정부의 일방통행식 반공교육 탓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러한 교육에 역반응을 보이는 것이 반드시 김정일과 북한의 실체에 제대로 접근하는 길이라고는 말하기 힘들 것이다.

북한 통치자들은 '원하는 사람에게 원하는 것을 보여준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인도의 우화 '코끼리와 장님' 이야기와 비슷하다. 북한이라는 코끼리에서 꼬리를 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꼬리를 보여주고, 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배를 보여주는 것이다. 김정일도 마찬가지다. 그는 외부인들에게 보여주는 몇 가지의 얼굴들을 따로 갖고 있다. 지난번 우리는 그의 얼굴의 일부만을 본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 다녀온 사람들은 북한의 꼬리와 북한의 배만 보고 와서 '북한을 보았다'라고 말한다. 이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미국에서 한 1년 살았다고 해서 미국을 잘 안다고 말하는 것이 위험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면 북한의 어디를 봐야 북한을 제대로 볼 수 있을 것인가. 북한 사회를 한마디로 규정한다면, '사상의 나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남한 사회가 경제결정론적 사회라면, 북한 사회는 정치사상결정론적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사상이 모든 것의 우위에 있고, 사상이 주민들의 정치 경제 문화생활의 전반을 규제하는 것이다.

북한의 사상은 물론 수령절대주의(김일성 김정일주의)다. 수령절대주의는 두 개의 작동원리를 갖고 있다. 하나는 유일사상체계, 또 하나는 유일적 지도체제다. 유일사상체계는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으로 구현되고 있고, 이는 수령의 사상 외에는 다른 사상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 핵심이다. 유일적 지도체제는 수령만이 명령과 지시를 내릴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은 무조건 여기에 복종해야만 한다는, 이른바 수령의 절대 영도론이다. 이 두 가지의 작동원리에 위배되는 일은 일어날 수도 없고 또 일어나서도 안 되는 사회가 북한사회다. 현재 북한 통치자들이 정책방향으로 제시하고 있는 이른바 강성대국론도 사상대국-군사대국-경제대국의 순(順)이다. 이는 경제대국으로 가는 데 있어서 수령절대주의 사상이 훼손된다면 언제든지 경제대국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북한의 현상적 변화도 이런 관점에서 봐야 할 것이다.

따라서 북한 사회를 제대로 보려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머리'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사상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소개하는 『우리시대의 북한 철학』(선우 현 지음, 책세상 발간)은 북한의 머리에 해당하는 사상이 어떻게 형성 발전 변화되어왔는가를 체계적으로, 실증적으로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참으로 소중한 책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북한의 사상문제와 관련하여 '살아 있는 역사'라고 할 수 있는 황장엽 전 노동당 사상담당 비서의 저작과 증언을 상당부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 책의 정확성과 실증성을 충실히 담보해주고 있다.

북한의 사상과 관련하여 지금까지 남한에서 출판된 저작물들은 대체로 북한의 공식 출판물에 의존해왔기 때문에 북한의 사상의 변천과정에 따른 '정치적 행간'이 생략되어 있는 한계를 갖고 있었다. 이 책은 그러한 '행간'을 상당부분 메우고 있으며, 따라서 북한의 사상이 어떤 전후 사정에 의하여 변천되어 왔는가를 살피는 데 정확한 길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북한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나아가 완결된 형태의 남북통합을 이루어내는 일은 국가철학으로서의 주체사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전제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의 집필동기와 관련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오늘날 주체사상은 북한체제의 통치철학의 차원을 넘어 전체 인민대중의 일상적 삶을 규제하는 실천원리이자 행위 규범의 척도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체사상은 혁명적 수령관에 바탕한 사상의식의 통일과 군사력이라는 북한 체제의 두 버팀목 중 하나이기도 하다. 따라서 북한사회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필연적으로 주체사상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필요로 한다.”


이 책은 '북한의 마르크스주의 철학', '북한의 국가철학-주체사상', '북한철학의 최고 성과물-인간중심철학', '북한의 전통철학과 서양철학 연구현황' 등 전체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 '북한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마르크스-레닌주의로부터 북한의 주체사상이 성립되는 과정과 주체사상의 김일성주의(수령절대주의)로의 변질과정을 밝히고 있으며, 지금은 '박제된 철학'으로 남은 북한에서의 마르크스주의의 위상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북한에서의 마르크스주의의 위상과 관련하여 저자는 "과거 80년대에 김정일의 명의로 나온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주체사상의 기치를 높이 들고 나아가자」는 마르크스주의의 철학의 부활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당시 중국방문을 앞두고 있던 북한 수뇌부가 중국 정부 당국자들에게 호감을 주려는 전술, 즉 같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을 신봉하는 형제국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정치적 의도에서 나온 유화적 제스쳐였다"고 밝히고 있다. 즉, 북한의 배를 보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배를 보여주고, 꼬리를 보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꼬리를 보여주는 것이 사상에서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또한 70년대부터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쇠퇴는 문헌 열람의 통제와 금지뿐 아니라, 김일성대학 철학부 개설강좌에서도 빠지기 시작했으며,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내용이 이제 '철학사'의 일부로 편입되었다는 사실을 이 책은 확인해주고 있다. 결국 북한에서의 마르크스주의는 수령절대주의를 정당화하고 이론적으로 세련화하는 철학적 소모품으로 전락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책에서 가장 주목되는 내용은 제3장 '북한철학의 최고 성과물-인간중심철학'이다.

알려져 있다시피 북한 노동당 내부에서 사상의 두 조류가 형성된 것은 1966년경이었다. 당시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이 일어났고, 소련 흐루시초프의 노선을 수정주의로 강력히 비판하고 있었다. 이른바 '과도기 논쟁'으로 불리는 중소 이념갈등으로 인해 중국은 김일성에 대해서도 수정주의자라는 비판을 가해왔다. 김일성은 이에 대처하기 위하여 소련의 '우경 수정주의'와 중국의 '좌경 모험주의' 양자를 모두 반대하면서 더욱 '주체를 세우는' 데로 나아갔고, 66년 당대표자 회의에서 노동당의 주체노선을 공식적으로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중소 이념갈등의 영향으로 인해 북한 노동당 내부에서도 '과도기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있었는데, 이 무렵 김일성대학 총장으로 있던 황장엽의 논문 「사회발전 동력」이 문제가 되었다. 황장엽의 논문은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넘어가는 데 있어서 과도기를 설정하는 문제와 프롤레타리아 독재문제, 그리고 사회주의 건설과정에서 인텔리의 역할에 관한 것이었다. 이 논문으로 인해 황장엽은 당시 중국의 입장을 지지한 2인자 김영주 및 양형섭으로부터 '수정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황장엽은 이 무렵부터 인간중심철학이라는 세계철학사에서 전인미답의 영역을 개척하는 사상적 대변혁의 꿈을 키우고 있었으며, 역설적이지만 자신에 대한 당내의 비판이 오히려 새로운 사상을 잉태시키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황장엽은 이미 이 무렵부터 계급투쟁과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견지하려는 북한 통치자들과 사상적으로 완전히 결별하고, 비록 북한에서는 그 사상의 전모를 발표조차 할 수 없었지만, 인간 자신이 사회발전의 주체가 되는 새로운 인본주의(인간중심철학)를 개척하게 된다. 이 책은 이러한 과정에 대해 객관적 시각에서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의 중요한 성과 중 하나는 북한의 공식적인 주체사상과 황장엽이 개척한 인간중심철학의 핵심적인 내용의 차이점과 변별되는 측면을 정리해놓았다는 점이다. 저자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북한 주체사상과 인간중심철학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거나 두 가지가 매우 유사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지적하고, 북한통치이념으로서의 주체사상의 구성요소 가운데 하나로 인간중심철학이 수용되어 있으며, 통치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자의적으로 곡해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저자는 북한의 통치이념과 인간중심철학의 차이에 대해 그 이론적 쟁점으로 철학적 원리에 대한 해석, 계급주의 대 반(反)계급주의적 인본주의, 사회적 생명체론 대 사회유기체론, 변증법의 중시 대 변증법의 경시, 3대 개조사업(자연개조, 인간개조, 사회관계 개조), 사회적 존재에 관한 해석, 사회적 운동의 주체로서의 인간(사회적 집단) 대 수령, 개인적 이익과 사회공동적 이익의 통일 대 전체주의적 입장, 사회적 속성에 대한 해석-비약론 대 진화론이라는 9개의 분석틀을 설정해놓고, 이에 대한 저자 나름의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저자의 시도는 그 내용의 간결성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통치이념으로서의 주체사상과 인간중심철학의 원리적 차이성을 제대로 짚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소중한 연구 성과물임에 틀림없다.

이 책은 200쪽이 채 안 되는 분량이다. 그러나 그 내용은 북한의 사상과 관련한 다른 책들보다 충실도의 측면에서 훨씬 높다고 말할 수 있다. 작지만 충실한 책. 북한사회를 제대로 알려는 사람들의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