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시리즈 5: 김정일씨의 빅 이벤트 - 김일성 배지 달고 다니기
'두발제한철폐'를 주장하는 중고등학생들의 사이버 학생운동(?)을 지켜보며 '격세지감'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10여 년 전만 해도 아직 군사정권의 잔재가 많았던 시절인지라 선생님들에게 '성실'이라는 거수경례를 해야했고, 머리카락이 손에 쥐어질 정도가 되면 가위를 가지고 다니던 학생주임 선생님께 그 자리에서 뒤꽁무니를 잘리는 수난을 받아야 했다.

또한 기억에 남는 것 중의 하나가 '학교배지(badge)'이다.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교문검열'이라는 게 매일 아침 있었는데 두발, 복장과 함께 꼭 살피는 것이 이 '학교배지'였다. 스쿨버스가 학교 어귀에 들어설 즈음에 버스 안은 북새통이 됐다. "야 내 머리 괜찮냐"하면서 서로를 살펴주고 저마다 옷깃에 학교배지는 제대로 붙어 있는지 확인해본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학교배지의 엄청난 밀거래(?)가 시작된다. 워낙 부잡하던 중학시절이라 새끼손톱만한 크기의 그 학교배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학교매점에서 300원 정도 했던 그 배지가 교문검열을 앞두고는 서로간에 500원에서 심하면 1000원까지 뛰어올랐다. 약삭빠른 친구들이 서너 개씩 사두고 폭리를 취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것들도 옛 시절의 한 '추억'이라 할 수도 있겠다.

이벤트를 좋아하는 김정일씨가 북한 전역에 퍼뜨린 이벤트가 많고 많지만 그 중의 대표적인 것 중 하나는 '김일성 배지 달고 다니기'이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대개 1970년 11월 김정일씨의 지시로 김일성 배지 착용이 시작되었다고 하며, 북한의 선전문건들에 보면 김정일씨가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자기 아버지의 배지를 스스로 만들어 달고 다녔다고 주장한다. 이것만으로도 김정일씨가 대단한 효자임에는 틀림없겠다.

얼마 전 평양소년학생예술단 공연 때도 보았듯이 북한에서는 인민학교 학생 이상이면 누구나 김일성 배지를 달고 다녀야 한다. 그런데 김일성 배지는 아무나 제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고 김일성씨와 김정일씨의 형상작품을 일컫는 이른바 '1호 작품' 전담미술가들에 의해 만수대 창작사에서만 제작된다.

또한 김일성 배지라고 다 같은 배지가 아니다. 노동당 기(旗)를 배경으로 한 중앙당지도원급 이상의 고위간부들이 착용하는 '당기상', 군복을 입고 있는 김일성을 도안한 국가안전보위부 및 사법·감찰요원용의 '군상', 지방의 당지도원급 이상이 착용하는 '원형큰상', 그리고 일반 주민들 용으로 제작된 '원형작은상' 등 김일성 배지는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의 하나이다. 해외 무역요원용과 조총련 동포들을 대상으로 한 '공화국기상' 등 용도별 배지까지 있으니 약 20여 종에 이른다는 이 배지를 보면 대개 그 사람이 어떠한 지위를 갖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역시 사람이 사는 세상에는 '거래'가 이루어지게 마련인데 중앙당간부들이 착용하는 '당기상' 배지를 암거래로 불법 구입하여 간부행세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하며, 어느 탈북자는 북한탈출의 과정에서 경비원의 검문에 부딪히자 자신이 달고 있던 고급 김일성 배지를 뇌물로 바쳐 김정일의 통치로부터 벗어난 웃지 못할 회고를 하기도 한다.

아무튼 김정일씨의 이 아이디어는 한때 국제사회의 큰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다. 하긴 어두운 인민복 차림에 근엄한 표정의 김일성 얼굴이 실린 엄지손가락 만한 배지가 혹시나 긁힐라 잃어버릴라 애지중지 소중히 다루는 북한유학생들을 서방의 학생들이 보고 얼마나 놀렸겠는가. 그래서인지 1990년대 초반, 크기를 절반 정도로 줄이고 배지 속 김일성씨의 복장을 신사복으로 바꾼 신형배지를 보급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김정일씨 그 비상한 머리에서 또 무슨 수령복을 인민들에게 안겨줄지 두고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