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Knetworking: 본궤도에 오른 납북자 귀환운동
납북자 문제는 오랫동안 우리사회에서 금단의 영역이었다. 납북자 문제를 한국의 지식인 사회에서 진지하게 다룬 적도 없었으며, 정부도 이 문제 해결에 적극적 열의를 보이지도 않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해당사자인 납북자 가족들도 개인적 차원의 한으로 간직한 채 조직적 대응을 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것은 한국의 지식인 사회의 객관적이고 투명한 접근의 부재(납북을 단순히 반북, 반공이데올로기로만 바라보던 시각을 벗어나지 못함), 역대정권의 현대국가로서의 기본적 책임과 의무의 부재, 그리고 납북자 가족들의 심각한 피해의식 - 비록 납북되었다하더라도 북한과 관련된 일이라면 색안경을 끼고 보았던 일반대중의 의식과 공안기관의 감시 등으로 파생된 것 -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바 크다.

그러나 2월 28일 <납북자 가족모임>이 결성되면서부터 사정은 달라졌다. 최우영을 대표로 하는 가족모임은 결성과 함께 언론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저간에 주요한 이슈로 등장하였다. 몇 차례의 대중집회와 언론 인터뷰, 통일부 방문, 대통령 탄원활동 등으로 납북자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공론화되기 시작하였고, 정부에서도 더 이상 침묵할 수 없게 되었다.

특히 남북정상회담과 이산가족 교류, 장기수 송환을 계기로 납북자 문제 해결이 남북관계 진전의 주요한 열쇠라는 점이 대중적으로 확인되고 언론과 일부 정치권으로부터의 지지를 획득함으로써 납북자를 귀환시키는 운동이 일정한 궤도에 돌입하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북한의 위정자들은 아직도 이 문제 해결에 소극적일 뿐만 아니라 이것이 이슈화되는 것에 대한 극도의 반감을 나타내고 있으며, 우리 정부는 남북화해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 문제 해결에 적극성을 보이지 못하며 여론에 떠밀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에 있으며(남북의 각종 회의 시 납북자 문제를 제기는 하고 있으나 납득할 만한 수준의 성과를 보이고 있지 못함), 아직도 우리 나라의 지식인 사회, 특히 여론을 주도해 나가는 진보적 성향의 지식인 사회는 납북자 문제의 제기를 냉전적 사고의 산물로 간주하며 오히려 스스로를 냉전적 사고의 틀에 가두어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바라보고 있지 못하고 있다.

다음의 <납북자 가족모임> 대표 최우영씨의 한 언론에 시론으로 발표한 글을 통하여 현재 납북자 송환 운동을 하는 데서의 답답한 심정을 읽을 수 있다.

이제 납북자 가족들의 눈물겨운 투쟁은 이 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것이다. 8개월 전만해도 기구한 사연 정도로만 소개되던 것이 남북문제의 주요 현안 중의 하나로 되지 않았는가? Nknet는 납북자 가족들과 계속 함께 할 것이며 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최선의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

자 료 1

장기수 송환에 즈음한 납북자 가족모임의 결의문

우리 납북자 가족들은 지난 남북정상회담과 1차 남북장관급회담, 이산가족상봉 당시 누구보다도 희망에 들떠 있었다. 그리고 어제로 끝난 2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주요 의제로 제기하겠다던 정부의 말을 믿고 참고 기다려왔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하였는가? 우리가 그토록 고대하던 가족들을 만나는 것은 고사하고 어느 것 하나 이루어진 것이 없지 않은가?

북한 당국에서 순순히 납치 사실을 인정하고 순순히 납북된 우리 가족들을 돌려줄 것이라고 믿는 국민은 아무도 없다. 우리 정부의 강력한 의지만이 이 문제 해결의 가장 중요한 열쇠다. 이웃 일본을 보라. 납치된 일본인 송환문제가 가장 중요하고도 원칙적으로 거론되고 있지 않은가? 도대체 북한 당국이 꺼려하는 사안이라 하여 한발 물러선다면 무엇을 이룰 수 있으며 누가 정부를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오늘 장기수들을 송환하면서 우리 가족들의 마음은 더욱 이루 말할 수 없이 착잡하다. 그들이 비록 남한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남파된 간첩이고 빨치산이지만, 오랜 기간 가족들과 떨어져 있는 그 아픔을 납북자의 가족들인 우리들은 알고 있기에, 정부가 상호주의 원칙을 저버리고 장기수들을 북송한다고 하여도 참았던 것이다. 심지어 그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감을 축하하고 북에 있는 우리 가족들에게 편지 전달과 생사확인을 부탁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어처구니없게도 돌아온 것은 "납북자는 없다"라는 망언뿐이었다. 얼마나 우리 납북자 가족들의 가슴에 피멍이 들어야만 하는가.

북한 당국에게 호소한다.

납북자가 한 명도 없다는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려는 위선을 벗기를 충언한다. 분단으로부터 파생된 잘못된 과거를 청산한다는 견지에서 납치 사실을 인정하고 납북자 가족들의 만남과 송환을 추진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그것만이 진정한 남북화해의 시작이며 통일의 첫걸음이다. 만약 이 문제 해결에 전향적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면 그에 따른 모든 책임은 납북자 문제의 실질적인 책임이 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있음을 분명히 할 것이며 한국 국민들은 당신에게서 완전히 등을 돌릴 것이다.

남한 정부에 호소한다

정부는 납북자 문제가 남북관계의 개선의 걸림돌이라는 의식과 국민 여론과 가족들의 따가운 시선에 마지못해 나서는 자세를 버리고, 국가의 기본적인 존립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인권 보호라는 인식으로 납북자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이 문제 해결의 여부가 국가의 존립과 관계되는 중차대한 일임을 직시하고 남북관계 진전의 최우선적 과제로 설정하고 나서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말로는 납북자 문제 해결에 최선을 다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납북자들의 정확한 숫자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들의 생사확인도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심지어 남한에 있는 납북자 가족들의 연락처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놓고 무슨 협상을 하고 무엇을 북에 요구할 수 있단 말인가? 납북자 문제에 대한 기본적 애정과 기초적인 조사도 없이 납북자 문제 협상 운운하는 것은 삼척동자도 웃을 일이다.

정부는 즉시 전담부서를 설치하고 그에 기초하여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안을 시급히 마련하여 정권과 국가 존립을 걸고 국가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여야 할 것이다. 다음의 회담에서는 이 문제 해결의 구체적 진전을 이루기 위해 대통령직과 통일부장관직을 걸고 임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우리 납북자 가족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위협 속에서 떨고 있을 가족들을 생각만 하면 가슴이 무너지고 피가 솟구쳐 오른다. 더이상 우리 가족들은 눈물로만 지새우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우리 가족들이 스스로 나설 것이다. 자신들의 국민을 내팽개친 정부와 싸우고, 우리 가족을 억류하고 있는 북한 정권과 싸우고, 사람의 기본권을 철저히 말살하는 모든 것과 싸워, 마침내 그들을 우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다.


납북된 우리 가족들의 절절한 외침소리를 가슴에 새기며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바쳐 납북된 사람들이 우리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하나, 북한 당국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납북된 우리 가족들을 즉시 송환하라!

하나, 남한 정부는 장관직과 대통령직을 걸고 다음 남북장관급 회담까지 납북된 우리 가족들의 생사확인과 상봉, 송환에 합의하라!

하나, 남한 정부는 하루속히 납북자 문제를 해결할 전담부서를 설치하고 국가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여 북한 당국과 협상하라!

하나, 정부의 무능력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납북자와 눈물과 탄압속에 살아온 가족들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라!

하나, 국회는 납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반 업무의 감독과 법률제정을 위한 특위를 즉각 구성하라!

하나, 우리는 우리 가족을 되찾는 그날까지 모든 것을 다 바쳐 끝까지 싸울 것을 결의한다!

2000년 9월 2일
납북자가족모임 일동

자 료 2

납북자 송환은 남북화해의 열쇠


열흘 전쯤 한 대학교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비전향 장기수와 납북자를 맞교환 해야 한다는 주장은 틀렸다. 비전향 장기수는 북파간첩과 맞교환 해야 하고, 납북자는 남한에서 납치해 온 납남자라 할까, 그들과 맞교환 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이 대학교수는 북한에 살고 있는 북파간첩을 찾아 송환해 와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인가?

보통사람은 잘 모르고 있지만 납남자가 이 땅 어느 곳에서 탄압 받고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인가? 순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가 하고 싶은 말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었다.

"남한에서도 간첩을 보내거나 북한인사를 납치해 온 적이 있다. 북한만 간첩 보내고 사람 납치해 간 것이 아니다. 그러니 이번에 비전향 장기수를 송환시킨다고 해서 납북자를 데려오라는 소리는 하지 마라."

필자는 북한에 억류된 동진호 어로장의 딸로서, 그리고 460명이 넘는 납북자들을 대표해서 지난 6개월 동안 이들의 송환운동을 펼쳐오는 동안 한국의 여러 인권단체, 시민단체에서 이런 논지의 얘기를 들어왔다. 어제는 나의 활동을 비난하는 익명의 이메일을 받기도 했다. "40∼50년 동안 가족을 못 만나고도 참고 있는 사람에 비하면 당신은 행운이다. 남북화해가 이루어질 때까지 참으라"고 했다.

필자는 평범한 직장인이자 주부일 뿐으로 대단한 인권운동가도 아니고 고명한 학자나 전문가도 아니다. 나의 바람은 단지 1987년 북한에 억류되어 간첩혐의로 기소된 납북어부 나의 아버지를 더 늦기 전에 모셔와야겠다는 것뿐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우리 정부가, 그리고 지금은 소위 인권운동, 통일운동을 한다는 분들이 나에게 침묵을 강요한다. 그분들에게 나보다 더 깊은 생각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민족화해를 위해서 납북자 송환운동을 참아달라는 주문은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다음달 북한으로 가는 비전향 장기수들에 대해 우리 남한 쪽 사람들이 양해해 준 것은 그들이 오랜 고난을 감수하면서도 공산주의를 버리지 않은 신념가인 점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들이 늙고 병들었으며 분단이라는 장벽에 눌린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우익이고 좌익이고, 친북이고 반북이고를 떠나서 이해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속에는 인도주의와 진정한 화해의 정신이 들어있다.

내가 바라는 것도 이런 화해다. 납북된 청소년 이민교, 최승민, 요코다 메구미 등의 어머니가 잃어버린 아들딸의 생사라도 확인할 수 있고, 동진호의 선장과 어로장이 '정치범 수용소에 있다'는 얘기가 거짓임이 드러나도록 얼굴이라도 한번 보았으면 한다. 언젠가부터 북한의 방송에서도 자취를 감춘 안승운 목사, 북한에서 의거월북이라고 주장하는 고상문, 이재환씨 등이 가족들에게 안부라도 전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런 소박한 바람조차 속으로만 삼키고 있어야 하는가? 세살배기 현문이를 고등학생으로 키워놓은 김삼례 할머니는 주름이 더해가고 있다. 아버지의 납북으로 어머니까지 떠나보내야 했던 고아 아닌 분단고아들이 애타게 육친을 그리워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바라는 것은 인도주의다. 정치나 이념, 뭔가 위대하고 숭고한 것이 아니라 그저 소박하고 평범한 것이다.

필자는 '비전향 장기수의 송환'이 정치적으로 퇴색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북한의 자국민 구출작전 성공쯤으로 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인도주의'여야 하며 그 정신의 연장선 어딘 가에서 이산가족, 납북자 가족들이 은혜를 입게 되기를 바란다. 만약 비전향 장기수가 전원 송환되고도 우리 납북자 가족들이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게 된다면 그 상실감은 정녕 누가 달래주겠는가?

8월 21일,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