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햇빛정책과 그 실현 원칙 / 이민복
■ 이민복씨는 황해도 서흥에서 태어나 남포대학교를 졸업하고 북한농업과학원 옥수수연구소 연구원 등의 농업관련 연구를 하였다. 북한의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개인농을 도입해야 한다고 김부자 앞으로 제기하였다가 위험에 처하게 되어 탈북하게 되었다. 현재는 북한 인권관련 단체와 <자유를 찾아온 북한인협회> 대변인으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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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북한의 정치범 실태를 외신기자에게 말하려는 한 체험자의 입을 막으려는 당국의 처사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요즈음은 탈북자와 북한주민들의 인권문제가 조용한 것 같다. 이런 문제를 꺼냈다가는 남북관계를 깨는 '눈치 없는 세력'으로 몰릴 판이다.

그러나 누가 뭐라도 이 문제는 통일과 직결된 원칙문제다. 통일을 이룩한 서독 정부의 대 동독 정책이 이를 잘 말해준다. 통일비용을 말할 때만 독일통일을 비유해서는 안 된다. 서독이 정상회담과 경제지원을 하면서도 흔들림 없이 견지한 것이 인권원칙이었다. 인권문제는 정치타협의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에 확고하니 그 누구도 매도하지 못하였다. 대북 햇볕정책은 좋은 정책이다. 그럼에도 지적 받아 마땅한 것은 인권원칙과 헌법정신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역사적 정상회담 성사는 꾸준히 추진한 햇볕정책의 결과라고만 보는 이들이 많다. 상기할 것은 이 결과에는 꾸준히 탈북자들을 방치한 희생의 대가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또한 정치범 처녀의 음부에 삽자루를 박아 죽일 정도의 북한인권에 대한 소극적 자세의 대가이기도 하다. 서독 정부의 햇볕정책 방향과 집착은 동독 주민과 인권문제였다면 남한정부의 그것은 북한정부와의 정상회담, 나아가 노벨상에 대한 집착이다.

이것은 탈북자를 어떻게 대하는가를 통해서 여실히 증명되고 있다. 주어도 뺨치고 멱살을 잡아 흔드는 북한 당국을 위해 취하는 햇볕정책은 참으로 눈물이 겹도록 자애로워 보인다. 그러나 놀랍게도 사지 속에 헤매는 수많은 탈북자를 모르쇠 할 뿐 아니라 천신만고 끝에 입국해도 가혹행위로 대한다. 북한 당국과도 만나는 마당에 위장간첩 색출을 구실로 자유를 찾아 생사를 걸고 찾아 온 탈북자들을 인권사각지대 안에 두고 한두 사람도 아닌 대부분에게 가혹행위를 가했다. 최근 재판에서 들어난 것처럼 북한 출신 귀순위장간첩은 역사적으로 단 한 명도 없다. 혹 '이수근 귀순위장간첩'을 말할 수 있으나 그는 누명을 쓰고 죽음을 당한 인권유린의 대표적 사례일 뿐이다.

'귀순자'에 대한 가혹행위는 인권을 중시한다는 국민의 정부에 와서도 여전히 진행되었다. 명확한 근거가 있음에도 "때린 것을 직접 봤느냐"는 것이 아직도 정부의 뻔뻔한 태도이다. 이러한 관점과 자세이니 탈북자 정착은 엉망일 수밖에 없다. 정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남한 내 탈북자들의 수는 실제 수백 명도 안 된다. 이들을 제대로 아우르지 못하는데 2천만에 달하는 북한주민들을 나중에 어떻게 대할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입국한 탈북자는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갈 수 있다. 시급한 것은 시시각각 생사고비를 넘기는 해외 탈북자문제다. 표면상으로는 탈북자의 전원수용이라 하나 실제는 '7인 탈북자 북송사건'이 말해주는 실태 그대로이다. 그 속사정은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것은 한 마디로 허위적 변명이다. 그 근거를 보자. 소위 가치 있는 탈북자는 따라가서라도 데려온다. 북한이 진짜 자극 받는 것은 바로 이런 탈북자들이다.

최근 북한을 위해 일생을 바치고 남은 한생도 김정일을 위해 바치겠다는 장기수를 송환하였다. 나이든 장기수를 인도주의 차원에서 보낸다니 잘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진심이라면 탈북자도 받아야 할 것이다. 구태여 헌법과 국제법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말이다.

요즘은 탈북자들이나 일반 사람들도 북한을 비판하거나 햇볕정책을 비판하면 반동이 되는 분위기다. 원칙 없는 햇볕정책에 집착한 나머지 이런 모순적 결과들이 나타난 것이다. 기준 없는 사회가 어떤 혼란을 가져올지 정책입안자들은 상상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북한이 이번 정상회담에 나온 것은 처지로 보아 백기를 들고 나온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남한정부가 더 조급한지 모르겠다. 현 북한정권은 체질적으로 개혁개방하면 죽게 되어 있다. 적어도 무오류적 신의 자리에서 내려오기 전에는 기대하기 매우 어렵다. 수백만 자기 국민을 굶겨 죽이면서도 권력유지만을 꾀하는 것이 그들의 속성이자 정치의 속성이 아닌가.

그래도 이들을 개혁개방에로 어쩔 수 없이 나오게 하는 주도적 영향은 인권문제에 있다. 주도권은 탈북자와 북한 인권문제에 있다는 것이다. 이런 원칙 하에서 햇볕정책과 정상회담을 밀고 나가야 그 자체도 성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