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ys' Comment: 남북화해와 북한민주화운동은 병행되어야
지난 6월 13일 역사상 최초로 남북 정상의 감격적인 만남이 이루어졌다. 이후 8월 15일의 이상가족 상봉, 두 차례에 걸친 장관급회담과 특사파견, 경제회담, 국방회담으로 이어지는 숨가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최악의 상황은 벗어났다고 생각되지만 계속되는 식량난과 정치범수용소를 비롯한 최악의 인권상황이 개선되었다는 아무런 증거도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남북화해의 분위기에 기뻐하고 감격스러워 해야할 지 아니면 지금까지처럼 김정일정권 타도에 일로매진 해야할 지 혼란스럽다.

언뜻 보기에 모순되어 보이는 이러한 사태전개는 <남북문제>와 <북한문제>라는 서로 밀접히 연관되어 있으면서도 그 차원과 성격이 완전히 다른 두 가지 문제가 겹쳐서 생겨난 것이다. 즉 <남북문제>란 남한과 북한이 화해하고 평화롭게 지내며 서로 교류하고 협력하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통일하는 문제이고, <북한문제>란 북한이 경제적으로 굶주림과 궁핍에서 벗어나 인민들이 유복한 삶을 누리게 되고 정치적으로 끔찍한 독재에서 벗어나 보다 많은 정치적 권리를 향유하는 문제이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한다면 지금의 북한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에 결정적 책임이 있는 김정일정권을 타도하고 민주적인 정부를 수립하여 그 새로운 정부 주도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발전을 도모하는 일이다.

<남북문제>는 남북분단과 한국전쟁, 냉전, 대결정책 등으로 인해 야기된 모든 문제들을 평화적이고 상호존중적이고 협력적인 관점과 방법으로 해결해 나가자는 것이다. 남북분단이나 한국전쟁이나 과거의 대결정책 등에 관해 서로가 서로에 대해 비판하고 싶은 부분들이 많을 것이지만 서로의 입장만 내세우다 보면 화해와 협력과 통일의 길로 가기가 어려워진다. 따라서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 과거의 일은 과거의 일로 털어 버리고 남북대결의 시대를 종식시키고 화해와 협력의 새 시대를 열어나가고자 한 이번의 남북정상회담은 정당한 일이었다. <남북문제>만 있다면 뭐 그렇게 복잡할 것도 없다. 그러나 문제는 <북한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북한문제>를 해결할 책임이 꼭 대한민국 정부나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헌법상으로는 북한 지역도 대한민국 정부가 책임져야 할 지역이니까 책임이 있다고 해도 좋고 현실적으로 대한민국 정부는 남한 주민들을 대표하고 있고 남한 주민들에 의해 구성된 정부이기 때문에 북한 지역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고 해도 좋고 형식 논리를 떠나 도의적인 책임이 있다고 해도 좋다. 즉 한국 정부가 <북한문제>의 해결에 초연하여 남북간의 대결종식과 화해와 교류에 힘을 집중한다고 해서 이를 올바르지 않다고 몰아붙일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러나 민간단체나 개인의 역할은 정부의 역할과 다르다. 어떤 민간단체나 개인은 정부의 역할을 단순히 보조하거나 선도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겠지만 또 정부가 할 수 없는 일들을 맡아서 하는 단체나 개인들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한국 정부에서 '북한민주화'와 관련된 주장을 편다면 이는 화해와 교류와 협력의 길로 나아가는 데 어려움을 조성할 수도 있기 때문에 현 정세 속에서는 적절하지 않지만 민간단체나 개인은 정부와는 다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북한민주화' 주장을 할 수 있다고 본다.

현재 북한의 경제상태가 최악의 상태는 벗어났다고 하지만 여전히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으며 인민에 대한 극단적인 억압과 인권유린이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다. 항상 모든 문제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의 문제이고 '사람'의 문제 중에서도 선차적인 것이 사람의 최소한의 경제적 조건과 최소한의 건강과 인권이라도 보장하는 것인데 북한에서는 이것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사활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우리가 북한 인권 문제에 관해 자꾸 거론하거나 북한민주화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 '국론분열'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우리는 우리 정부의 대북 정책 그 자체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그 나름대로 취해야 할 태도가 있다. 반면 민간단체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분명하게 따지는 것이 먼저다. 이것은 국론분열이 아니라 일종의 역할분담과 같은 것이다. 한국 정부가 북한에 대해 대결적인 자세를 취하고 남북간에 긴장을 조성하는 일은 북한 정부의 자세를 더욱 경직되게 하고 북한의 문을 더 걸어 닫게 만드는 결과를 만들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지만 민간단체는 북한의 현실과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이를 사실대로 알릴 의무가 있다.

'북한민주화'는 분명히 북한 인민이 주체가 되어서 해야 할 일이다. 국제적으로 아무리 난리를 친다고 해도 북한 인민이 나서지 않으면 실현될 수 없다. 그러나 다른 나라의 단체와 개인들도 '북한민주화'를 위해 해야 할 그에 맞는 역할과 의무가 있다. 특히 동족인 우리들이 해야 할 역할과 의무가 특별히 크다.

한편으로 우리는 북한민주화를 추구하면서도 북한의 앞날에 대해 어느 한 가지 가능성만을 강조하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며 거기에는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 중 하나가 최근에 많은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는 '김정일정권 주도의 개혁과 개방의 길'이다. 그 가능성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솔직히 말해 낙관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사람들은 중국에서 이러한 정책이 성공한 것만 생각하고 78년 당시의 중국과 현재의 북한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사실 중국식 개방정책을 북한에 적용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는 매우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다. 78년의 중국 상황과 현재의 북한 상황은 그 차이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첫째 78년의 중국은 새롭게 집권한 세력에 의해 주도되고 있었지만 현재의 북한은 그렇지 못하다. 둘째 등소평은 문화대혁명 시기의 잔혹한 행위들과 경제적 파탄에 책임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가장 큰 피해자의 한 사람이었으나 김정일에게는 지금까지의 북한의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파탄에 결정적 책임이 있다. 셋째 78년 당시 중국은 매우 강력하고 높은 권위를 가진 공산당이 있었지만 북한은 이런 것이 없다. 북한은 오랜 기간에 걸쳐 조선노동당이 1인독재의 도구로만 이용되어 오다보니 껍데기만 남게 되었다. 이미 북한은 오래 전부터 당이 무슨 결정을 내리는가보다 김정일이 무슨 지시를 하는가가 훨씬 중요했다. 넷째 78년의 중국에서 등소평의 권위와 인기는 급속히 올라가는 조건이었는데 비해 북한에서 최근 몇 년 동안 김정일의 권위는 급속히 떨어져왔다. 다섯째 중국이 개방을 시작한 78년과 지금은 국제정세가 크게 다르다. 78년 당시는 미국이 상당히 어려운 상태에 있었고 사회주의국가들이 속으로는 상당히 많이 썩고 있었겠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건재했으며 공산주의 이념도 큰 타격을 받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사회주의 진영은 완전히 붕괴되었으며 공산주의 이념은 엄청난 타격을 받아 거의 빈사상태에 있다.

이런 차이들을 살펴보면 북한에서 개혁과 개방이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또 그렇지 않다. 북한체제의 가장 큰 약점은 모든 권력과 권위가 김정일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것인데 이것은 약점이자 장점이기도 해서 개혁과 개방의 성공 가능성을 높여주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 볼 때 지금부터 확실한 자세로 개혁과 개방을 동요 없이 강력하게 추진해 나간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30% 정도는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북한이 경제개발에 성공하려면 시늉뿐인 개방이 아니라 확실하게 개방을 해야 하며 전면적인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해야 한다. 정치적으로는 점진적 변화를 추구한다고 하더라도 경제부문에서는 초기부터 모든 영역에서 시장경제적인 요소를 과감하게 도입해야만 한다. 모든 부문에서 기업과 개인의 실리추구를 용인하고, 국유기업들에 의한 독점체제를 국유기업과 민간기업을 포함한 경쟁체제로 전환해야 하며,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개혁과 개방만 확실히 하면 북한 체제의 성공이 보장되어 있을까? 문제는 꼭 그렇지도 않다는 데 있다. 박정희나 리콴유 식의 개발전략이 됐든, 중국식의 개혁·개방정책이 됐든 필수조건은 북한이 전면적 개혁·개방을 추진하고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해야 하는데 북한으로서는 이를 받아들이기가 그렇게 쉽지 않다. 북한은 지금까지 늘 걱정해온 것처럼 전면적 개혁·개방이 전면적 체제위협으로 전화될 것을 심히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북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으로 남쪽에서는 북한대개방의 물꼬가 곧 바로 터질 것 같은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지만, 실제 상황은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다. 북한정부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원하는 극히 일부 분야에서 그들이 허용할 수 있는 범위까지로 대외개방 폭을 제한할 가능성이 대단히 많은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극히 제한된 개방은 심지어 그 개방된 부문에서조차 큰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는 데 있다. 즉, 시늉뿐인 개방이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은 나진선봉지역 특구 개발사업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나진선봉지역을 특구로 설정한지 금년이 10년째 되는 해인데도 별 성과가 없었다. 오히려 그 10년 동안 북한 경제는 계속 나빠져 오기만 했다. 개방과 개혁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보이고 이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아야만 외국인 투자도, 기술도입도, 수출활성화도 가능해진다. 지금과 같이 소심하고 소극적인 태도로는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것이 대부분의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바로 여기에 그들의 딜레마가 있다. 어쨌든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분명한 것은 개혁·개방과 체제수호라는 어떤 관점에서는 이율배반적으로도 보이는 두 방향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성공할 수가 없다는 것이며 동시에 대단히 불행히도 북한 정부가 이러한 선택을 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것이다. 이러한 애매한 태도는 북한 정부에도 북한 인민에게도 그 어느 누구에게도 유리하지 않다. 만약 북한 정부가 10년 전이나 혹은 20년 전에 과감하게 개방했더라면 경제적으로도 큰 성과를 거두었을 것이고 정치적으로도 체제붕괴 위험이 지금에 비해 몇 분의 1로 줄어들었을 것이다. 다만 지금과 같은 철권독재는 불가능하고 유순한 독재로 그 체제의 성격은 조금 바뀌었겠지만 말이다.

지금 북한에서 중국식 개방정책이 성공하겠는가 하는 문제와 별도로 우리는 북한이 중국식 개방정책을 받아들일 것을 간곡히 권유하고 싶다. 현재의 북한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그렇게 많지가 않기 때문이다.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중국식 개방정책을 받아들이는 것과 그냥 망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의 2가지 길 밖에 없다. 그냥 망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인민을 더욱 비참한 길에 빠뜨리는 것이고 체제가 붕괴되고 난 후 가혹한 역사적 단죄를 피할 수 없는 길이며 개방정책을 추진하다가 체제가 붕괴되었을 때에는 그래도 동정을 받을 수 있는 여지는 있다. 그리고 앞에서 설명했듯이 중국식 개방정책이 성공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다. 북한은 매우 특수한 나라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의 경험을 기초로 북한의 앞날을 평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은 전인미답의 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잔재주를 부리지 않고 진심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일관성 있는 개혁과 개방정책을 펴면 주위 나라들의 도움도 받을 수 있고 인민의 일정한 지지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개혁과 개방이 김정일정권에게는 유일한 선택의 길이요, 시기적으로도 이번이 마지막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이는데 지레 모든 것을 예단해서 겁을 먹고 소심하게 나오지 말고 대담하고 대범하게 개혁과 개방의 큰길로 나올 것을 우리는 간절히 호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