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자구출운동보고(4)
5월10일

남북정상회담에서 “납북자문제를 주요의제로 채택할 것”을 요구하는 집회가 세종로 정부정사 앞에서 열렸다.
결의문

가족을 돌려 달라!
헤어진 우리 가족을 돌려 달라!
그들은 아무 죄도 없이 끌려가 벌써 수십 년을 비참하게 살고 있다. 아니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생사조차 확인할 길이 없다.

왜 우리가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성실히 의무를 다하는 똑같은 국민인데 어째서 우리들만 이런 고통을 겪어야하는가.
우리 납북자 가족들은 언제나 가족과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해 왔다.
그들을 구출해 달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호소하고, 애원해 왔다.

그러나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차가운 무관심뿐이었다.
국민들을 잃어버려 놓고도 오히려 냉대와 멸시뿐이었다. 어느 날 졸지에 헤어진 가족들을 마음놓고 불러보지도 못하는 심정을 정부는 도대체 짐작이나 하는가.

그러나 언제까지 눈물로 지새울 수는 없다.
이제 우리 가족들이 스스로 나서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위협 속에서 떨고 있을 가족을 우리들의 힘으로 구출해야 한다.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투쟁으로 가족들을 구출하자!
자신들의 국민을 내팽개친 정부와 싸우고, 우리 가족을 억류하고 있는 북한 정권과 싸우고, 사람의 기본권을 철저히 말살하는 모든 것과 싸워, 마침내 그들을 우리 가족 품으로 돌아오게 하자!

하나, 남북정상회담시 납북자 문제를 주요의제로 삼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하나, 정부는 납북자 문제를 해결할 전담부서를 설치하라

하나, 정부는 납북자 가족에 대한 피해를 보상하라

하나, 우리는 우리가족을 되찾는 그날까지 끝까지 싸울 것을 결의한다.

2000 . 5 . 10
납북자 가족모임


한겨레 신문 기고 ( 2000. 5 . 12 )


살아가면서 이웃과 덕을 쌓고 부모에게 효를 행하는 것이 인지상정일텐데 자식된 도리로서 살아갈수록 아버지께 불효를 쌓아가는 것 같아 마음이 갈기 갈기 찢어집니다.

해마다 5월 8일이면 남들은 부모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리지만 저는 아버지의 얼굴을 뵈올 수조차 없습니다.
87년 1월 15일 아버지가 타신 동진호는 백령도 부근에서 조업을 하다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치되었습니다. 동진호가 민간어선이기에 당시 북한은 간단한 조사만 끝내고 그 해 2월 선원들을 송환하겠다는 의사를 우리 정부에 통보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저희들은 설을 앞두고 아버지의 귀환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지요.

그러나 그 즈음 마침 김만철씨 일가족이 탈북해 일본에서 대만으로 망명신청을 했고 우리 정부는 이들을 한국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그러자 북한은 즉각 동진호 선원 12명과 김씨 일가 11명을 맞교환하자는 제의를 했고 우리 정부는 이를 거절했지요. 그러자 고기잡이 나가신 아버지는 북한에서 남한간첩으로 몰리게 되었고 그 후로는 생사확인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99년 1월 31일 아버지가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다고 국가정보원이 발표했습니다.

아버지가 독일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보다 더 악랄하다고 평가되는 곳에서 인간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죽도록 억울하게 살아가고 계실 것을 생각하면 동진호 선원 12명을 철저하게 버린 우리 정부의 죄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정치범 수용소에 계신다는 소식을 들은 지 1년이 지났지만 제가 아빠를 위해 한 일이 별로 없습니다. 저에게 1년이라는 시간은 별 것이 아니지만 아버지에게 있어서 1년이라는 세월이 얼마나 길고 고통스러운지 저로서는 상상 할 수가 없습니다. 지옥같은 곳에서 살이 터지도록 일하고 제대로 드실 것도 없이 하루 하루를 천년같이 살고 계실 것을 생각하면 비록 자유로운 남한에서 살고 있지만 저도 피눈물이 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얼마전 아버지의 마지막 행적을 찾아 백령도에 갔습니다. 그 곳에서 아버지가 타셨던 동진호가 고되기로 유명한 저인망 어선으로, 태풍주의보가 내리기 직전까지 파도와 싸우며 고기를 잡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저희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배를 타셨다는 고마움에 저는 또 한 번 울었습니다.

아버지.
저는 어부의 딸입니다. 아버지가 저희들을 위해 배를 타셨듯이 이제는 제가 아빠를 구하기 위한 배를 띄웁니다. 그 배는 항해를 하다가 태풍을 만나기도 하고 어쩌면 산산히 부서져 인권의 바다에서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 저는 아빠를 위한 항해를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조금만 더 견디세요. 살 힘이 없으시더라도 그럴 때마다 아버지를 찾아 헤매고 있는 딸의 목소리를 들어주세요. 그리고 반드시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잊으시면 안됩니다.

하루 빨리 모셔와서 성할 곳 하나 없으실 아버지의 남은 여생을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제게 있는 그 모든 시간을 아버지께 바치겠습니다.

아버지가 납북된 지 4813일째
어버이날에 이 글을 띄웁니다.


5월 26일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사상최초로 납북자가족모임은 박재규통일부장관과의 면담이 이루어졌고 이 날 최우영 대표는 장관께 ‘우리의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통일부장관께서도 납북자들의 생사확인과 귀환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할 것을 약속하셨다.

우리들의 요구사항


장관님께.

남북정상회담이 앞으로 17일 남았지만 통일부가 대한민국 국민인 '납북자'들에 대한 송환활동을 적극적으로 펴지 않았다는 사실에 이산의 아픔을 겪고 있는 납북자 가족들은 아픔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분명히 통일부에서는 이산가족중에서 '납북자 문제'를 특수 이산으로규정하고 있으나 탈북자를 위해서는 전담과가 설치되어 탈북자들의 복지와 인권을 위해 일을 하고 있으나 대한민국 땅에서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억울하게 북한에 억류되어있는 자국민인 납북자와 그 가족들을 위한 전담 부서는 없었습니다.

납북자 중에서 '동진호'는 92년도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전제조건으로 올라갔던 사안이지만 동진호선원들이 돌아오지 못했는데 새천년이 되고 인권의 정부가 들어서도 남북정상회담을 두고 비전향장기수들을 위한 인권의 소리만 높아감에 우리 납북자 가족들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이에 목숨을 걸고 납북자 가족들은 장관님께 다음을 호소합니다.

1. 남북정상회담에서 '납북자'문제를 주요의제로 채택해 주십시오.

2. 남북정삼회담의 대표단에 납북자 가족 대표를 포함시켜 주십시오.

3. 한국정부가 발표한 납북자수가 454명인데 생사확인조차 안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생사확인을 해 주십시오.

4. 상반기 내에 납북자의 명예회복과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납북자 관련 전담 부서를 설치해 주십시오.

5. 납북자 가족들의 물질적 정신적 피해를 보상해 주십시오.

2000.5.26
납북자가족모임일동


6월10일

‘통일을 준비하는 모임’이 주관하고 ‘납북자가족모임’과 ‘북한민주화네트워크’의 후원으로 '납북자실태보고 및 해결방안을 위한 포럼'이 기독교 회관에서 개최되었다.

이 날 발표자들은 ‘납북자현황과 북한내 생활실태에 관한 고찰'( 한국정치발전연구원책임연구위원 윤여상),‘납북자가족증언'(납북자가족모임 대표 최우영), ‘납북자 귀환에 대한 법적고찰'(전승만변호사), ’납북자문제해결을 위한 제언'(독일통일정보연구원 소장 박상봉)을 함으로써 납북자 문제를 심도있게 다루었다.


6월20일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단은 남북적십자사 실무접촉(6월27일)을 앞두고 대한적십자사를 방문했다. 정원식총재를 만나 납북자문제를 주요의제로 채택할 것을 요구했고 더불어 납북자가족들이 김정일국방위원장께 보내는 편지를 전달했다.(6월22일 박기륜 사무총장)

"MBC라디오 초대석 유시민입니다(오전 11시)에 최우영 대표가 초청되어 납북자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내는 편지


안녕하십니까?

저는 제 아버지를 북에 둔 최종석씨(동진 27호)의 딸 최우영입니다.
분단 55년만에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행여나 아버지 소식을 평양발 방송을 통해 들을 수 있을까 하여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던 이산가족입니다.

남북정상이 만난 3일이란 시간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짧았다고 할지 모르나 아버지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린 저로서는 부푼 기대와 긴장감의 연속으로 하루가 천년처럼 느껴졌습니다. 평양에서 역사적인 화해무드가 조성되는 걸 보고 꿈엔들 잊은 적 없는 제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가슴을 졸이며 기다렸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버지와의 이별도 어느덧 1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제 책상 앞에 놓여있는 아버지의 얼굴은 13년 전 그대로의 모습입니다. 그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제 눈가에는 아버지에 대한 말할 수 없는 그리움으로 눈물이 가득 고이곤 합니다.

아버지와 헤어진 87년도에 저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정말로 뜻하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고기잡이 나가셨던 아버지가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이 모두가 분단이 낳은 아픔이며 아버지는 그 희생양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화해와 협력을 이야기하고 있고 있지 않습니까?

국방위원장님.
김대중 대통령과 맞잡은 화해의 손이 우리 가족에게는 만남의 축복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김정일 국방위원장님.
오는 8.15 를 맞이하여 위원장님의 서울방문과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지리라는 소식을 접하고 감히 위원장님을 만나 뵙고 싶지만 이 역시 저에게는 '기적'같은 일이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남한의 한사람으로서 벌써부터 위원장님을 위한 환영의 꽃다발을 준비하고 있으며 더불어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서 제게 있는 모든 시간을 바치고 있습니다.

저희와 같은 이산가족에게도 상봉의 기회를 주십시오.

마음속으로만 불렀던 ‘아버지’를 만나서 평소에 당신이 좋아하시던 음식과 술을 정성껏 마련하여 밥상을 올리고 싶습니다. 저의 간곡한 소원을 들어주실 분은 김정일 국방 위원장님뿐이시니 부디 외면하지 말아주십시오.

죽어서도 포기할 수 없는 아버지를 찾아 헤메는 제게, 자식을 둔 아버지의 심정으로 다가가 ‘상봉’이라는 선물을 안겨다 주실 것을 믿습니다.

동진호 어로장 최종석의 딸 최우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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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저는 남한에 있는 16살의 강현문이라는 학생입니다.

제가 이렇게 글을 쓰게 된 이유는 1987년 동진27호를 타시고 백령도 부근에서 조업을 하시다 북으로 넘어가신 아버지 때문입니다. 아버지 성함은 '강희근'입니다.

그때 제 나이 3살 때여서 아버지의 얼굴은 희미해진 사진으로밖에는 뵙지 못했고 다른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고등학생이 되도록 가져보지 못했습니다. 아니 아버지란 소리를 한번도 불러 보질 못했습니다. 이제는 너무 늙어 버리신 할머니(현재 76세 이십니다)는 13년이 지난 지금도 밤잠을 못 이루시고 아버지 생각에 눈시울을 적시고 계십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님!
김대중 대통령과 악수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전 이제나마 자그마한 소원이 생겼습니다. 태어나서 한번도 뵙지 못한 사진 속의 아버지를 만나서 ‘아버지’라고 불러보고 싶습니다.

할머니는 아버지가 배 타러 가시기 전에 “칠순 때는 잔치상 크게 차려드릴께요!" 라며 가신 아버지의 뒷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하십니다. 아버지를 가슴에 묻고 13년 동안 눈물로 세월을 보내신 할머니의 소원은 죽기 전에 아버지 손 한번 잡아 보는 게 소원이라고 하세요. 아직까지도 아버지가 살아 계시는지 돌아가셨는지 모르지만 할머니와 저는 아버지가 살아 계시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님!
이번 정상회담에서 아버지와 같은 분들의 이야기가 빠져서 많이 울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직접 편지를 씁니다. 아버지의 생사라도 알고 싶습니다.

아버지를 만나서 제 모습도 꼭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부디 할머니와 저의 소원을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아버지가 돌아오시길 간절히 바라는 남한의 강현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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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13일 그날은 김위원장님께서 마음을 활짝 열고 남북한이 화해의 장을 열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한민국의 한사람으로서 감사 드립니다.

저는 김위원장님께서 깊은 배려속에 북한에서 살고 있을 안승운 목사의 안사람입니다. 벌써 안목사와 헤어진지가 6년째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안승운목사도 이제 북한에서 잘 적응하고 있을 것입니다. 혹시 위원장님의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할지라도 깊은 배려로 잘 보살펴 주실 줄 믿습니다.

제가 이 글을 드리는 것은 벌써 헤어진지가 6년째로 접어들다 보니 보고싶은 마음이 간절하고 안목사도 가족을 몹시 그리워할 줄로 압니다. 김위원장님의 배려속에 저의 가족이 만날 수 있는, 아니 같이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안목사님이 북한에 간 후 저는 어렵게 두 딸을 출가시켰습니다.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시집을 보내야 하는 좋은 날 큰아버님의 손에 이끌리어 보내는 심정은 이루 설명할 수 없는 아픔이었습니다.

많은 하객들은 이 사실을 알고 동정하며 같이 슬퍼해 주었습니다. 어언 몇 년 사이에 우리가족으로 듬직한 사위 둘, 그리고 손녀 둘과 손자 하나가 생기는 대식구가 되었습니다. 이제 안승운목사는 어엿한 할아버지인데 유난히 아이들을 좋아하는 안목사가 지금 함께 있다면 손주들 재롱에 얼마나 행복할까 상상해 봅니다.

그러나 가장이 없는 저의 가정에 안목사의 빈자리는 너무나 크기만 합니다. 막내인 아들은 군대에 가서 이제는 저 혼자 안목사를 기다리며 날마다 베갯잇을 적시며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안목사는 제 인생의 첫사랑이고 영원한 동반자로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헤어지고 나니 지난 날의 애뜻한 그 사랑이 생각납니다. 다시 한번 저희들이 같이 살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십시오

김위원장님 웃음속에 안목사도 같이 웃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그래서 온 나라가 평화의 물결과 화해의 물결이 흘러 온 겨레가 바라는 통일의 길이 열리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우리 민족은 이제 세계에 가장 앞서가는 나라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00. 6. 20
안승운목사 아내 이연순 올림


6월24일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단은 한나라당사를 방문하여 이회창총재를 만나 납북자가족들의 아픔을 호소하고 납북자 및 귀환납북자를 위한 특별법 제정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했다.


6월27일

라디오 ‘여성시대’에서 최우영 대표의 김정일국방위원장께 보내는 편지가 소개되었고 각 신문에도 게재되었다.


6월27-29일

남북한 실무접촉이 있은 기간 동안 명동성당에서 납북자문제를 주요의제로 채택할 것을 요구하고 ‘납북자 및 납북자 귀환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집회와 납북자귀환을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