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좋은벗들'의 조사발표: 중국에 거주하는 북한난민 1,027명 면담조사결과 발표회
"북한주민의 북한사회 경제에 대한 인식 및 대도 조사"

2000년 6월 29일 오후 3:00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

1997년부터 조중국경지대에 은둔해 지내는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실태조사를 벌여온 사단법인 좋은벗들(이사장 법륜스님)에서는 지난 6월 29일 또 하나의 중요한 조사발표를 가졌다. 북한에서 넘어온 지 대부분 1년 미만인 탈북자 1,027명을 대상으로 한 '북한주민의 북한사회·경제에 대한 인식 및 태도조사'였다. 애초에 이 발표회는 남북정상회담이 있었던 그 주의 토요일, 즉 6월 17일 발표 예정되어 있었으나 한 차례 연기된 바 있다.

"어쨌든 남북간에 화해분위기가 무르익어 그 혜택이 북한주민들에게도 돌아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에 일단 발표를 미뤘습니다. 지금 사회분위기와는 너무도 대조적인 조사결과를 이 시점에 내놓는 것이 과연 어떤 효과를 갖고 오지나 않을까 우려되기도 했고요."

좋은벗들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그러나 약 2주 뒤 이 조사결과는 프레스센터 19층에서 공개되었다. 이 날 조사결과를 발표했던 이사장 법륜스님의 목소리는 유독 단호했다.

<우리는 구구한 억측이나 미사여구가 아니라 과거의 화려함이나 미래의 찬란한 꿈이 아니라 현재의 삶에 대해서 알고자 한다. 평양거리의 모습이나 당 간부들의 발언, 훈련된 전문가들의 기예가 아니라 그곳에 살고 있는 다수 대중인 노동자, 농민, 일반 서민들의 삶의 애환을 살펴서 그들의 소박한 꿈이 실현될 수 있는 통일조국을 건설하고자 한다. 아무리 좋은 일이나 주장도 사실에 기초하지 않으면 세월이 지난 뒤에 그 오류로 인해 후회하게 마련이다>

남북정상회담은 대단히 환영할만한 사건이지만 '10년 가까이 식량난을 겪으며 가족이 굶주림으로 죽어 가는 것을 목격하고, 자녀가 학교에 가지 못하고 꽃제비로 떠돌아다니는 것을 보면서 살아온 북한 주민들의 뼈아픈 고통을 해결하고 새로운 희망을 주고자 하는 노력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현실'에 대해 말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좋은벗들에서 말하는 이 조사의 목적이었다.

통일준비를 위해서는 북한주민들의 생각을 알아야

‘북한주민 스스로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한 이 조사는 현실적으로 북한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을 직접 인터뷰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식량난으로 국경을 넘어와 중국에 체류중인 북한 난민들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한계에 대한 보완책으로 중국에서의 체류기간이 짧고 도강경험이 적은 난민을 주 대상으로 했다. 응답자 1,027명중에 73.7%가 단 1회 도강경험자이고, 전체 응답자의 91.6%가 2회 이내였다. 또한 북한으로 다시 귀향할 의사를 가진 사람이 71.1%였다. 식량을 구하기 위해 중국으로 넘어온 난민들을 반체제적인 탈북자로 보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북한사회에 대한 의식을 조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반론에 대한 좋은벗들측의 설명은 이렇다.

“민족의 화합과 통일을 위해서는 북한 주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어떻게 보면 북한에서만 살아서 외부세계에 대해 무지한 북한주민보다 외부세계를 경험한 적이 있는 북한주민들의 의식을 이해하는 것이 통일을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더 효과적인 것일 수도 있다고 본다.”

조사는 조사자가 북한 난민을 찾아가거나 안전한 장소로 초청하여 장시간 이야기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기간은 2000년 1월 18일부터 3월 31일까지였으며, 조사지역은 중국 길림성, 요녕성, 흑룡강성, 이른바 동북 3성에 거주하는 난민을 대상으로 했다. 응답자들의 출신지역은 평양, 개성, 남포를 포함한 9개 도 전체에 걸쳐 있었으나 강을 건너기 용이한 지역인 함경북도출신이 60.3%정도로 압도적이었고, 다음으로 17.9%가 함경남도출신이었다.

‘식량난으로 행방불명된 가족이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있다’고 응답한 경우가 86.0%로 매우 높게 나타나 북한 내 일반 가정에서 식량난으로 가족이 행방불명된 경우가 일반적인 현상인 것으로 판단된다. 당원이라고 응답한 경우는 95.8%가 ‘있다’고 응답해서 비당원의 84.6%보다 높게 나타났다. 행방불명의 원인은 ‘장사하거나 식량을 구하러 갔다'(47.5%)와 중국으로 갔다'(47.3%), ‘꽃제비가 되어 집을 나갔다'(40.4%)가 비슷하게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중국으로 와서 헤어진 경우도 12.1%였다. 행방불명된 가족수도 1명이라고 응답한 경우가 61.4%, 2명이라고 응답한 경우가 27.9%로 가족당 평균 1.,53명이 행방불명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병원 시스템의 해체 심각

굶주림으로 학교에 못 가는 자녀가 ‘자주 있었던’경우가 75.5%였다. 함경남도지역은 83.7%로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높게 나타났는데 학교교육이 최근까지 거의 붕괴상태에 직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녀가 장사를 한 적이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함경남도 지역은 55.8%로 함경북도의 34.2%보다 훨씬 높았다. ‘질병에 걸렸을 때 어떻게 치료했는가’에 대해서도 함경남도 출신은 ‘병원치료도 받지 못하고 약도 쓰지 못했다’고 73.1%가 대답했다. 전체응답자 63.4%에 비하면 월등히 높다. 변방이지만 강을 끼고 있지 않은 함경남도지역이 식량난을 가장 극심하게 겪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지역은 농업지대가 적고 대체로 공업이나 광업지대에 속해 있다.

의료에 관한 한 전혀 치료를 받지 못한 63.4%의 응답자와 ‘병원에서 진단 받고 약은 개인이 샀다’고 한 34.7%까지 98.1%의 대부분의 주민이 병에 대해 무방비한 상태였다. 최근에 넘어온 사람일수록 ‘병원치료도 받지 못하고 약도 쓰지 못했다’는 응답의 비율이 높아지고, 상대적으로 ‘병원에서 진단 받고 약은 개인이 샀다’는 응답의 비율이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북한 사회내의 의료시스템의 마비현상은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남북정상회담 국면에서 우리가 볼 수 있었던 평양산원의 현대적 의료시설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또 하나 특징적인 것은 학력별로 보아도 고학력일수록 ‘병원치료도 받지 못하고 약도 쓰지 못했다’는 비율이 높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장마당은 생활에 필수

‘장마당이 생활에 도움이 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도움이 된다’고 응답한 비율이 100.0%로 이견을 가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북한 주민의 절대 다수가 장마당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는데 ‘식량난이 해결된 후에도 장마당이 존속되기를 원하는가' 라는 질문에도 100%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2000년 4월 9일자 연합뉴스에 따르면 북한은 최근 농민시장(장마당) 출입을 55세 이상의 주부로 제한시키는 등 농민시장에 대한 제한과 통제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고 한다. 자생적으로 나타나는 자유시장경제의 요인에 대해 당국에서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과는 달리 북한주민들에게 장마당은 생존을 위해 필요 불가결한 공간임이 확인되고 있다.

북한에서 장사로 생계를 유지하는 세대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물음에 대해서도 응답자들 다수는 주민 중 80%이상이 장사로 먹고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응답자 자신들도 92.5%가 장사를 해본 경험이 있다고 했고 나이는 40대(95.8%), 여성(95%), 함경남도(96.8%), 비당원(93%)인 층이 평균보다 높은 비율을 보였다. 이들은 대체로 먹는 장사(61.2%)를 했거나 옷(13.5%), 나무(11.4%) 들을 팔았다고 대답했는데 食(식), 衣(의), 住(주)라는 생존에 가장 기본적인 수요를 장마당을 통해서 해결하고 있는 셈이다. 북한 당국의 장마당에 대한 엄격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근절이 불가능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하다.

북한주민들은 식, 의, 주 해결을 위한 장사라 할지라도 마음놓고 할 수는 없다. ‘장사할 때 안전원의 단속을 받은 적이 있는가' 에 대해 ‘단속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 대답이 61.2%로 나타났다. 남성(52.3%)보다는 여성(66.0%)이 지역별로는 함경북도(66%)가 평균보다 높았는데 특기할 만한 것은, 당원 여부를 밝히지 않은 층에서 '단속받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78.8%)이 매우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 중에는 처벌을 받은 사람도 있었는데 욕설과 폭행을 당하거나 물건을 빼앗긴 경우가 많았고 뇌물을 주었다고 대답한 사람도 있어 엄격한 법에 의한 처벌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없었다.

식량난 이후 절도 만연

90년대 들어 식량난이 극심해지면서 이동의 자유가 어느 정도 생겼다고 알려져 있고, 특히 1997년 유엔인권소위원회가 결의문을 통해 북한당국에 대해 이동의 자유를 허용하라고 요구한 이래 이동자유의 폭이 넓혀진 것으로 알려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통행증이 없이 이동하다가 처벌받은 경험이 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경험이 있다'(51.2%)고 응답한 비율이 ‘없다'(44.5%)고 한 비율보다 높게 나타났다. 다만 식량난 이전보다는 느슨해진 것으로 판단되는데 식량난이 가장 극심했던 함경남도 주민의 경우는 평균보다 낮은 43%만이 경험이 있다고 했다. 또한 농민이나 복무업(서비스업)이 각각 63%, 65%로 노동자나 여타 직업보다 월등히 높게 이동에 제약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공장이나 광산노동자에 비해 식량난으로 인한 타격이 상대적으로 적은 직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도둑이나 강도를 당한 경험에 대해서도 42%가 ‘있다’고 답했는데 두세 사람중 한 사람 정도는 겪은 것으로 보아 치안상태가 매우 나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지로 ‘북한의 치안상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대해 98.1%가 ‘문제가 많다’고 했고 ‘잘 모르겠다’고 한 사람 1.7%, ‘문제가 없다’고 대답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사회질서가 심각하게 붕괴되어 정부의 치안기능이 마비되었고 그 피해가 주민들에게 돌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북한 사람들은 이런 도둑이나 강도질을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전문도둑이나 강도무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꽃제비’(43.3%)와 ‘군인'(21.4%)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의외로 많았다. 일반 인민이라고 답한 사람도 20.6%로 식량난으로 인해 ‘전문도둑이나 강도'(52.3%)가 아닌 선량한 주민들 사이에도 생존을 위한 범죄가 늘어나고 있음을 알게 한다.

북한사람들이 말하는 ‘북한이야기(정토출판)에서는 최근 생존을 위한 단순 절도자의 경우도 총살로 처단되는 경우가 흔히 일어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잠깐 인용해 보자.

<총소리를 울려야 된다는 간부의 얘기가 있었다지만 총소리를 울려도 할 수 없는 것이 백성들의 형편이다. 1995년 11월에 장마당에서 도둑질을 한 사람에게 총살시범을 보였다. 1996년 11월 당에서 ‘인민들에게 총소리를 울릴 때가 되었다’며 범죄자를 닥치는 대로 총살하기 시작했다. 1997년도인가. 어느 대학생이 남의 집에 들어가서 밥상 위에 있는 두부를 훔쳐먹다 주인이 들어오는 바람에 들키자 주인을 때렸는데 그 주인이 죽었다. 결국 대학생은 두부 때문에 총살되었다. 그리고 그 일가족 전부가 앓아 누웠다. 또 동생 결혼 때문에 도둑질을 한 어떤 교원이 있었는데 친구의 제안으로 도둑질하다가 걸렸다. 평소에 부모에게 효자였고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었으므로 아이들이 전부 사형장에 나왔다. ‘나는 죽을 죄 안 지었다’고 하면서 총살당했는데,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전부 ‘선생님’하면서 울부짖었다.>

지도력 부재와 집단농장제도의 문제

통상 북한의 식량난은 97년을 기점으로 바닥을 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6월 7일 데이비드 모튼 유엔개발계획(UNDP) 평양대표는 아사히신문과의 회견에서 ‘북한의 식량사정이 호전의 기미를 보이고 있으나 결코 위기를 넘긴 것은 아니라' 고 밝히고 북한이 일정한 조건을 만족시킬 경우 2002년까지는 식량 자급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좋은벗들의 조사자료에 따르면 북한주민들은 이 문제에 대해 대단히 비관적이다. 우선 ‘식량난과 경제위기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하여 ‘지도부의 문제(25.9%), ‘집단농업제도의 문제(23.2%), ‘국가정책문제(12.8%), ‘개혁 개방하지 않아서(6.8%)라고 대답함으로써 직간접적으로 정치 비판적인 견해를 내놓은 응답자가 전체 68.7%에 달했다. 특히 지도부의 문제라고 응답한 층은 20대(31.6%), 남자(32.9%), 귀향의사가 없는 계층(37.1%)에서 평균보다 높았다. 20대는 ‘개혁 개방하지 않아서’(11.3%)라고 대답한 비율이 평균보다 높았으며 ‘자연재해(16.5%)라고 한 응답자 중에는 50대가 많았다.

‘식량난과 경제위기를 극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농업제도(집단농장, 농법) 개혁(27.9%), ‘개혁 개방’(15.6%), ‘국가 정책 개선'(15.2%), ‘지도부 교체'(12.1%) 등 정부 정책의 근원적인 개혁을 요구하는 의견(79.8%)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남북통일'(15.6%)이라고 응답한 비율도 비교적 높게 나타나 북한주민들은 통일이 경제난 극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다.

‘식량난과 경제 위기가 언제쯤 해결 가능하겠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10년 이내’가 55.9%, '10년 이상’이 36.5%, 불가능하다고 응답한 비율도 4.6%로 나타나 북한 주민들 중 40% 정도는 매우 비관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다. 연령이 높을수록 비교적 빠른 시간내에 해결할 수 있다고 답했고, 연령이 낮을수록 시간이 많이 걸리거나 불가능할 것이라고 답한 비율이 높았다. 귀향 의사가 있는 사람은 5년 이내(28.7%), 귀향 의사가 없는 사람은 ‘불가능(15.4%)에 평균보다 훨씬 높은 비율을 보였다. 고학력일수록 희망적이고 저학력일수록 비관적인 경향도 나타났다.

개혁 없이 갱생 없다

그러나 ‘북한이 자력으로 갱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는 질문에 대해 ‘할 수 없다’고 응답한 비율(76.9%)이 ‘할 수 있다'(23.1%)고 응답한 비율보다 월등히 높게 나타났다. 특히 농민이 ‘불가능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87%에 달했다. 다른 계층에 비해 보수적인 성향을 갖기 쉬운 농민의 이반이 갖는 사회적 의미는 중요하게 취급된다. 대다수의 농민들이 자력갱생에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아 북한농민의 절망감을 짐작할 수 있다.

자력갱생할 수 있다고 본 사람들도 ‘지도부가 인민을 위한 정책을 실시하면 된다'(35.9%)와 ‘농업을 개혁하고 농자재를 확충하면 된다'(33.3%), 그리고 ‘개혁개방하고 국가정책을 개선하면 된다'(12.8%)는 등의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있는데 북한 당국의 변화 없이는 사실상 자력갱생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대다수의 북한주민들이 갖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경제가 쇠퇴하고 산업이 파괴되었으며 식량난이 너무나 심각해서'(50.6%), ‘지도부가 대안을 제시하지 못해서'(16.5%), ‘농업이 낙후해서'(10.3%), ‘개혁 개방하지 않아서'(7.2%) 등은 도저히 자력갱생이 불가능하다는 하다고 말한 사람들이 제시한 이유였다.

북한사람들은 사회 생활 전반에서 만족하지 못한다(95.2%)고 했고, ‘아주 불만’이라고 응답한 비율도 82.2%에 달했다. 이들은 북한의 간부들에 대해서 절대적으로 신임하지 못했는데(96.9%), 신임하고 있다는 대답은 단 한 사람에게서도 없었다. 그들은 또한 북한체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집단농업제도와 배급제도를 혁파해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었고, 장사규제도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을 갖고 있었다.

사회제도에 대해서도 ‘여행규제'(38.4%), ‘상호감시제도'(29.9%), ‘출신성분제도'(19.8%), ‘사회동원제도'(6.6%), ‘조직생활제도’(3.2%), ‘직장선택제한'(1.8%)의 순으로 폐지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참고로 북한주민 네 명 중 한 명 정도는 출신 성분 때문에 진학, 직업선택, 사회적 활동 등에서 차별 받은 경험을 갖고 있었다. 특히 중복응답을 허용한 ‘대학에 진학하여 학문을 연구하거나 전문 기능을 습득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 라는 질문에 대해 ‘출신성분이 좋아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56.6%에 달해 ‘공부를 잘하거나 재능이 있어야 한다'(53.8%)는 응답보다 높게 나타났다. ‘노동자의 나라', ‘계급해방의 나라’에서 간부의 자식이 아니면 출세할 수 없고, 아버지의 출신 성분에 따라 자식이 철저하게 차별을 받는 아이러니를 목격하게 된다. 역사의 시계를 억지로 붙들어 매온 사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인류사적 관점에서의 연구대상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