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mark: 한국 학생운동, 속병을 치유하고 대대적 신축공사로
학생운동의 세 가지 흐름

몇 년 전부터 학생운동이 위기라는 이야기가 들린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주로 학생운동의 변화와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적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논쟁되었고, 지금도 진행중이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와 논쟁은 학생운동의 위기 원인에 대한 분석과 그 처방에 대한 다양한 의견 차이를 드러내며 대략 세 가지 정도의 흐름으로 정리되고 있다.
첫 번째 흐름은 학생운동의 위기 원인을 정권의 극심한 탄압과 개량화된 정국 속에서 학우들의 정치적 무관심 증폭, 원칙에 대한 학생운동 진영의 불철저한 적용 등을 들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처방으로는 주체의 더 높은 결의와 결사 흔들림 없는 원칙의 적용 등을 들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주로 기존 학생운동의 흐름과 질서를 그대로 유지하고자 하는 세력으로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한총련을 포함 몇몇 급진적 사회계급운동을 지향하는 세력들이 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흐름은 현재의 위기 상황에 대해 철저히 인식하기보다 오히려 지금까지의 한국학생운동은 승리하는 역사였고 지금도 여전히 승리하고 있다고 자평(自評)하고, 심지어는 과거지향적인 모습까지 보이고 있어 학생운동의 변화와 혁신에 대한 열의나 적극성이 상당히 떨어진다.

두 번째 흐름은 첫 번째 흐름과 위기원인에 대한 분석과 그 대처방안에서 본질적으로 큰 차이점은 없지만 몇 가지 부분에서 차이점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주로 내용적 측면이기보다는 방법적 또는 전술적 측면에서 드러나고 있다. 즉 조직내의 민주성 획득(패권적이며 권위적인 한총련 중앙조직의 대대적인 개혁)과 투쟁전술에서의 대중성 강화(폭력적 방식에서 평화적이며 합법적 운동으로), 변화된 현실에 대한 몇 가지 인정 등이다.

이러한 흐름은 주로 한총련 또는 기존 흐름과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조직 내에서의 개혁과 혁신을 주장하는 세력으로 경인총련(경기-인천 총학생회 연합)을 포함한 소위 '사람사랑' 계열이라 불리는 세력이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은 첫 번째 흐름에 비해 진일보한 측면이 있지만, 이들의 문제제기가 한총련을 포함한 기존 조직 내에서 부분적으로 받아들여짐에 따라 현재는 과거에 비해 학생운동의 변화와 혁신에 대한 열의와 열정 그리고 문제의식이 떨어지고 있다.

세 번째 흐름은 위의 두 가지 흐름과는 본질적으로 달리하는 흐름으로 학생운동의 위기원인을 보다 근본적인 방향에서 재검토하고 이에 기초해 새로운 학생운동에 대한 고민과 연구를 지속하고 있는 흐름이다. 이 흐름은 주로 ‘새로운 전국적 학생회 연대기구(건)’이라는 조직을 형성하고 있는 전북지역학생운동과 21세기 진보학생연합 그리고 '생학투'(생활 학문 투쟁의 공동체)라 불리는 '참대학'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러나 이 흐름은 기존운동을 대처할 새로운 대안의 형성이 아직까지 모호하다는 것과 기존 학생운동진영 내에서 분열주의 세력 또는 개량화된 세력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협의적 수준의 연대질서로 인한 사업 집행력의 저하 등 몇 가지 어려움으로 인해 당분간 학생운동의 변화와 혁신의 중심으로 자리잡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학생운동에 절망적인 분위기를 불러온 까닭

이상으로 그 동안 학생운동진영 내에서 논의되었던 학생운동의 변화와 혁신에 대한 흐름을 대략적으로 정리해 보았다. 현재의 흐름을 애써 정리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첫째 현재 학생운동진영의 논의수준을 들여다보기 위함이고, 둘째 현재 학생운동의 변화와 혁신을 위한 논의가 정상적이며 제대로 가고 있는가 보기 위함이고, 셋째는 결론적으로 현재의 학생운동이 이대로 계속되었을 경우 희망이 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함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대답은 대단히 부정적이다.

그럼 이제부터 왜 부정적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기로 하겠다. 그리고 현재의 논의와 논쟁에 있어 무엇이 문제이고 논의와 논쟁이 무엇을 중심으로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대략적 차원에서 제시하여 보겠다. 현재 학생운동 논의와 논쟁에 있어 큰 문제는 사실접근의 객관성이 상당히 상실된 채 논의가 전개 되고 있다는 것과 자신의 오류와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감싸는 방식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에 대한 예는 위의 첫 번째 흐름과 두 번째 흐름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예는 1995년 통일투쟁의 과정과 1996년 연대항쟁 1997년 한총련 출범식과정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이 좋은 예이다. 1995~7년의 시기는 한국학생운동에 있어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반대로 그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정리하고 평가하느냐에 따라 어려움을 극복하고 그 동안 산적되어 왔던 학생운동의 변화와 혁신에 일대 전환기를 마련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객관성이 결여된 채 주관주의적이며 영웅주의적인 평가에 매몰됨으로써 실패한 투쟁을 승리한 투쟁으로, 무모한 투쟁을 영웅적 투쟁으로 미화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학생운동의 변화와 혁신의 기회를 잃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아직까지 학생운동의 방향과 진로를 결정짓는 중요한 잣대로 이용되고 있어 그 후과는 지금도 남아있다. 그때 제대로 평가가 이루어졌으면 아마 한국학생운동은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을 가능성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1995~7년 시기에 대한 재평가를 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리고 객관성을 상실한 주관주의적, 영웅주의적, 자위적 평가가 주는 후과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것과 사실에 근거한 객관성 있는 논의와 논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다음으로 현재 학생운동 변화와 혁신에 대한 논의와 논쟁이 제대로 가고 있는가? 즉 정확한 방향감각을 잡고 정상적으로 가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 문제는 학생운동 변화와 혁신에 대한 논의와 논쟁과정에서 아주 핵심적인 부분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몇 년 동안 여러 차례 여러 방식을 통해 학생운동의 변화와 혁신에 대해 논의와 논쟁을 계속 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자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한 답이기도 하며 동시에 무엇을 중심으로 논의와 논쟁을 할 것인가, 현재 학생운동 위기의 근본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여러 가지 문제들 중에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먼저 해결해야 될 문제는 무엇인가에 원초적인 답을 주는 것이기도 하다. 또 첫 번째와 두 번째 흐름이 갖는 한계이기도 하며 세 번째 흐름이 풀어야 될 과제이기도 하다.

발본색원의 치료법을 찾아라

우리는 우리 몸 외부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우리 몸 내부에 어떠한 문제가 없는가 하고 관심을 갖는다. 왜냐하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외형상으로 나타나는 문제가 내부의 문제를 동반하고 있거나 아니면 내부의 문제가 그대로 외부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것을 무시하고 외부에 나타난 문제의 치료에만 급급하다면 그 병은 순간 다 치료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치료되지 않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재발하는 과정을 겪게 되는 것이다. 이와 똑같은 이치이다.

현재 학생운동의 변화와 혁신에 대한 논의와 논쟁의 과정은 내부의 큰 병을 보지 못하고 밖으로 드러난 상처만 치유하기 급급한 모양새이다. 아니 어쩌면 속에 큰 병이 있을 것 같아 무서워서 의식적으로 피하는 소심한 사람의 모양새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 내부의 큰 문제란 무엇인가?

한국의 학생운동은 단순히 양심적이거나 지사적(志士的) 차원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의 현실적 변화를 꿈꾸며 그 변화를 이루려는 목적의식적 행위이며 거기에는 과학적인 전략과 전술등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는 그 길을 인도할 사상이념적 문제가 반드시 등장하며 올바른 사상이념을 가지고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중요한 문제로 나선다. 그래서 인류 역사상 수많은 투쟁과 진보의 과정이 있어 왔지만 많은 사람들이 엄밀한 의미에서의 진보운동의 시작을 마르크스 이후로 보는 것이다. 이처럼 사상이념적 문제는 진보운동의 질을 가름하는 중요한 문제이다.

또한 한 사회에 대한 분석과 혁명론, 그리고 현실의 투쟁과제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것은 식민지 반자본주의론과(또는 자본주의론)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에서, 또 이러한 분석에 기초하여 나온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론(NLPDR)과 민중민주주의론(PDR)에서도 그 영향을 볼 수 있으며 또 자주민주통일론과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한 계급해방론에서도 볼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 본 것과 같이 사상이념적 문제는 진보운동 또는 혁명운동에 있어 근본에 해당하는 문제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며 학생운동에 있어서도 근본문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현재 학생운동의 상당부분을 규정하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학생운동의 논의와 논쟁의 중심에는 이 문제가 서지 못했다. 밖으로 드러난 몇 가지 문제가 주요한 논쟁과 논의의 중심에 있었다. 정권의 탄압을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 조직을 어떻게 민주적으로 개혁할 것인가? 어떻게 대중과 보다 밀접히 결합할 것인가 하는 문제들이다. 물론 이러한 논의와 논쟁이 전혀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 몇 가지가 풀렸다고 해서 현재의 학생운동의 문제점이 속 시원하게 풀리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그 동안 무수히 많은 논쟁과 논의를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성과가 없고 또 단기적 효과는 있으되 장기적으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에서 볼 수 있다.

흡사 위에서 제시한 예처럼 속에 있는 큰 병을 치료하지 못하고 어쩌면 겉으로 드러난 외부의 상처만 치료한 것처럼 말이다. 지금이라도 사상이념적 문제에 대한 관심을 갖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너무 어려워하면서 예전의 사상과 이념을 고수하기에 바빴다. 혼란이 있고 문제점이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애써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기를 꺼려해 왔다. 그 문제에 대해 관심을 표명하면 큰 일이라도 날 것처럼 말이다.

보수공사가 아니라 대대적인 신축공사를-북한민주화운동을 향하여

그리고 이러한 관심에는 절대 성역이 따로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지금까지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것에 대한 재검토에서부터 시작하여 지금 이 순간 원칙이라고 간직하고 있는 것모든 것을 재검토의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 그리고 하나하나씩 새로 세워나가야 한다. 이러한 과정이 조금은 더디고 갑갑하지만 현재 학생운동의 위기원인을 밝히고 그 처방을 찾는데 있어 정도일 것이 분명하기에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에는 보다 빠른 길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제 학생운동은 부분적 보수공사가 아닌 대대적인 신축공사가 필요하다. 집을 튼튼히 지탱하게 할 기초 토목공사부터 말이다. 그 기초 토목공사는 보다 객관적이며 사실에 근거한 공사가 되어야 하겠고 이 공사를 보다 튼튼히 하기 위한 내용물은 사상이념이 되어야 하겠다. 이것이야 말로 현재 학생운동이 지리한 논쟁과 논의에서 벗어나 보다 생산적이며 효과적인 논쟁과 논의로 갈 수 있고, 현재의 위기를 보다 안전하게 극복할 수 있는 탄탄한 토대를 마련해 줄 것이다.

이상으로 현재 학생운동 변화와 혁신의 논쟁과 논의의 과정에서의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다음으로 이 문제와는 별도로 다른 문제를 한가지 제기하고자 한다.

별도로 정리하고자 하는 것은 북한의 인권과 민주화에 대한 문제이다. 이 문제를 별도로 정리하고자 하는 것은 이 문제가 남한 학생운동의 변화와 혁신과는 분명 연관성이 있으되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고, 또한 보다 중요한 논점을 흐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첫째, 북한의 문제가 보편적 가치의 문제이기 때문이고, 둘째 북한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취할 것인가가 학생운동 혁신과 변화의 전부인 것처럼 논점이 형성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고, 셋째 학생운동의 변화와 혁신과는 무관하게 매우 중요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그 논쟁과 논의에 파묻혀버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는 현재 이 문제가 학생운동진영내에서 매우 중요한 논쟁거리이고 학생운동 변화와 혁신의 논의과정에 일정한 영향을 주고 있으며 그 어떤 문제보다도 시급하고 절박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북한사회에서 살아가는 인민들의 상황이 얼마나 비참하며 참혹한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겠다. 약간의 관심과 논리적 추론으로도 지금의 북한사회가 얼마나 비참하고 참혹한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에 대한 사실은 이미 여러 통로를 걸쳐 접하는 정보들에 의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것에 동의하기 힘든 사람이 있다면 북한 인민들에 대한 관심을 조금만 가지고 여러 가지 사실들을 여과 없이 접해보길 바란다. 지금은 노력하면 얼마든지 비교적 정확한 사실들을 접할 수 있으니까.

여기에서는 왜 우리가 북한의 인권과 민주화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아주 보편적이며 기본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 운동의 동인은 무엇일까? 사람을 운동하게끔 움직이는 힘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사랑이 아닐까 한다. 사람에 대한 사랑 말이다. 많고 적음은 있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이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랑만큼 실천하는 것이 운동이 아닐까 생각한다.

북한의 인권과 민주화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라고 본다. 나의 삶과 가족,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지역사회와는 직접적 연관성이 떨어지지만 바로 멀지 않은 곳에서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과, 우리보다 휠씬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보통사람들의 마음, 그리고 그 사랑이 진짜 사랑이 되게 하기 위해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고 도와주는 진짜 사랑을 실천하고자 하는 것에서 나오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르는 결론이 아닐까 가장 깨끗하고 순수한 열정과 사랑을 간직한 학생운동에서 북한 인권문제 해결과 북한 민주화의 대장정에 함께 하길 기대하며 지금도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북한인민을 생각하며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