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중국에 대한 한반도의 마음, 그 오래된 딜레마
우리 역사에 중국만큼 ‘가까운’ 나라는 없다. 이는 '문화적 친숙성' 뿐만 아니라 지리적 근접성에서 오는 ‘위협의 근접성’까지를 포함해 하는 말이다.

19세기말에 이르러 일본 및 서구열강과의 접촉이 있기 전까지는 고려말 왜구의 침입과 임진왜란 정도를 제외하면 한반도에 대한 위협은 거의 언제나 북방으로부터 왔다. 우리는 모두 초등학교 시절부터 역사 시간에 한무제의 위만조선 정복과 수·당의 고구려침략, 그리고 병자호란에 대해 배웠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중국에 인접해 있던 수많은 민족과 나라들이 중국에 흡수되거나 그 압력에 눌려 사라진 사실을 되새겨볼 때 한반도의 작은 나라가 수천년 동안 중국을 이웃한 상태에서 독자적인 국가를 유지해온 것이 기적으로까지 생각될 정도이다.

물론 중국이 우리에게 늘 위협요인으로 작용한 것만은 아니다. 이미 고조선시대부터 중국은 그 우월한 문화적 역량으로 우리에게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큰 도움을 주었으며 우리 전통문화의 형성과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만일 중국과의 교류가 없었더라면 우리의 과거사와 현재의 모습은 크게 -아마도 훨씬 나쁜 쪽으로- 달라졌을 것이 틀림없다. 이런 연유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중국에 대해 오랫동안 호감과 외경심 비슷한 것을 느껴왔다.

냉전시대의 그 완강한 반공의식도 2000여 년에 걸쳐 형성된 우리의 모화(慕華) 감정을 없앨 도리는 없었던 것인지, 필자는 우리와 중국이 적대관계를 유지하던 70∼80년대에도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국가 중국에 대해 호감을 가지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이것은 같은 공산국가였던 소련에 대해 느낀 냉정한 감정과는 분명 다른 것이었으며 사회주의 성향의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서만 나타난 현상도 아니었다. 그것은 아마도 공자의 나라에 대한 전통적 감정의 연장선상에 있었던 것이 틀림없는데, 우리 사회의 저변에 뿌리깊이 잠재되어 있는 중국의 영향력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국제정치의 냉엄한 현실을 생각해볼 때 현재의 중국을 단순히 과거 '우리에게 은혜를 베푼' 세계 최고의 문명국을 대하던 관점에서만 대하는 것이 과연 분별있는 태도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예민하게 의식하는 미국과의 만남이 이제 겨우 100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2000년에 걸쳐 한반도에 드리워진 중국의 그림자는 결코 과소평가 될 수 없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가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살아온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한반도의 역사에서 극히 예외적 현상에 속한다.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바다를 사이에 둔 일본이나 미국보다는 직접 육지로 연결되어 있는 인구 13억의 거대국가 중국 쪽에서 불어오는 비바람을 더 강하게 맞을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다. 이런 조건에서 지금처럼 중국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둔한 반면 미국과 일본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예민한 태도로 임하는 것은 우리의 생존에 관계되는 치명적 오류일 수 있다.

19세기 중반 근대화된 서구열강의 힘에 눌려 천하의 중심으로서의 자부심을 철저히 짓밟혔던 중국은 모택동식 공산주의 노선에 따른 오랜 기간의 혼란을 거친 후 결국 개혁개방노선을 택함으로써 다시금 국제사회에 등장했다. 지금의 중국은 아편전쟁에 패해 유럽의 일개 섬나라 영국에 무릎을 꿇었던 ‘병든 노(老) 대국’은 아니다. 우리사회에서 중국이 약소국이 아니라 국제정세를 좌우할 만한 강대국임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 거대강국이 그 힘을 장차 주변국들에게 어떻게 투사할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이는 비단 우리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개혁개방의 길을 따라온 지난 20년간 중국은 경제적으로 매우 빠른 성장을 해왔으며 이 나라를 이끈 공산당 지도부는 마르크스주의의 교조 대신 실용적인 부국강병을 추구해왔다. 이러한 근대화의 과정은 소련의 경우와 달리 공산당 일당통치를 보장하는 조건하에서 추진되었다. 실용주의를 택한 공산당의 정치적 통제력은 개혁개방의 초기에 국가붕괴나 격심한 혼란을 피하면서 이 큰 나라의 진로를 수정하는데 긍정적 기여를 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의 와중에서 중국의 지도부와 국민들 사이에는 민족주의가 매우 빠른 속도로 과거 마르크스주의가 차지하고 있던 국가이념의 자리를 점해가고 있다. 또한 새로 형성된 중산층은 점점 일당통치에 불만을 느끼고 민주주의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근대화 과정을 겪은 여러 나라들의 경험에 비추어서 ‘개발독재’가 일정단계에 가면 민주화를 요구하는 내부적 도전에 직면하게 됨을 알고 있다. 중국 역시 이런 운명을 피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 국제사회가 두려워하는 것은 중국 민주화의 과정이 얼마나 원만히 진행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며, 그 도정에서 혹시라도 집권엘리트가 19세기식 부국강병론에 기초한 민족주의와 패권주의로 국내적 위기를 돌파하려 들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중국 공산당의 통치하에서 독립을 요구하다가 총 인구 700만 가운데 100만 이상이 목숨을 잃은 티베트의 상황은 중국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 사례이다.서양의 옛 우화에 황소 뒷걸음질에 밟혀 죽는 개구리들의 이야기가 있다.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은 중국이라는 황소가 앞으로 예상되는 정치적 격변의 과정을 얼마나 무리 없이 헤쳐나갈지 예의 주시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중국의 주변국들에게 바로 생존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공자의 나라' 중국은 과거의 모습인데 반해 사회주의 형제국 베트남을 침공하며 자국을 위해서라면 캄보디아 전체인구의 12.5%∼18.75%(100만 내지 150만명)를 학살한 폴 포트 정권도 태연히 지원하는 중국은 바로 오늘의 모습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서는 점점 거세지는 대륙으로부터의 바람을 인식하는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21세기의 새로운 국제환경 속에서 국가의 진로와 관련한 전략적 판단능력을 시험받고 있다. 이는 결코 감정이나 정치적 순진성에 사로잡혀 대처할 문제가 아니다. 한반도 평화의 유지를 위한 세력균형의 형태가 어떤 것일지 현명한 판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