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연초의 국경기행 / 박상봉
극(極) 스트레스 상태의 탈북자들

2000년 새해 초부터 중국과 북한의 접경지역에는 전과는 다른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김동식 목사 피랍사건 이후 러시아 국경수비대에 체포되어 북한으로 강제 송환된 7명의 탈북자 중 한 명의 아이가 다시 북한을 탈출했다는 소문이 파다한 가운데 연길을 중심으로 중국 공안들과 북한 공작원의 활동이 강화되는 분위기가 역력하였다.

이를 대변이라도 하듯 주일마다 연길교회에 나타나 구걸하던 북한 아이들(일명 꽃제비)이 27일 주일(일요일)에는 한 아이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 곳에서 약 5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장마당이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 사이로 두세 명의 아이들이 사방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접근해서는 "북한아이인데 좀 도와주시라우요" 하는 모습이 뭔가 쫓기는 듯한 눈치였다.

현재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 땅을 헤매고 있는 탈북자들의 수는 적게는 10만 명, 많게는 3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탈북자들의 현황을 말할 때 늘 이렇게 추정치만을 거론할 수밖에 없는 것은 폐쇄된 북한 사회가 탈북 상황을 철저히 은폐하고 있고 중국 정부도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을 떠도는 탈북자들을 귀찮은 존재로 간주할 뿐 아니라 이를 제대로 관리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이들 탈북자들이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보호받지 못하고 제멋대로 떠돌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러나 1996년 한해 동안 먹지 못해 죽은 사람이 2백만 내지 3백만에 달한다는 통계치를 굳이 거론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살기 위해 죽음의 땅을 떠난 숫자는 가히 엄청난 숫자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중국에 도착한 후 주로 조선족과 선교사들의 보호를 받고 있으나 그들은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 저리 떠돌며 살아가고 있다. 늘 불안감에 휩싸여 있으며 심한 스트레스로 때로는 구걸한 돈을 들고 술에 만취가 되어 행패를 부리기도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을 보호해준 당사자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훌쩍 떠나가 버리는 것도 심한 불안감의 한 현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연장 훔쳐 달아난 아들 생각에

모든 동물은 꼬리가 있는 모양이다. 그러기에 '꼬리 없는 짐승'이라는 표현 속에는 인간으로서 도저히 감내할 수 없는 삶의 처절한 모습이 담겨져 있다. 이제 갓 동물에서 인간으로 진화된 초등인간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이제 나이 50을 갓 넘긴 박철규씨의 목숨을 건 탈출기는 너무도 가슴 저민다. '인간이 도대체 어느 정도 동물적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모범답안과도 같이 그의 삶은 너무나 동물적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이제 막 원숭이에서 진화된 고등동물과도 같은 행동을 보며 한편으로는 한없이 복받치는 연민의 정을,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순진한 사람들을 저토록 동물과도 같이 만들고 있는 김정일 정권의 반인륜적 범죄에 치를 떨게 된다.

박철규 씨는 지난 해 겨울 두만강을 건넜다. 이번의 탈북은 과거 먹을 것을 찾아 강을 건넜던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목숨을 건 탈출이었다. 그것은 탈북한 범죄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북한 당국에 체포되어 철저히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박씨가 중국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된 것은 김일성 사후 식량배급이 중단되어 사람들이 여기 저기 굶어 죽는 일이 발생하던 시점이었다.

함경남도에 살던 어머니가 먹지 못해 병세가 악화되어 세상을 떠나자 박씨는 중국행을 결심하고 두만강을 넘어 중국쪽 두만강변에 위치한 목재소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비교적 마음씨 좋은 한족이 경영하는 목재소이지만 그는 일을 하면서 배불리 먹을 수 있었을 뿐 일정한 임금을 받지는 못했다. 중국에 살게 된 지 반년 여가 지나자 박씨는 먹을 것과 약간의 돈을 만들어 아직 북한에 살고있는 외아들 인호가 생각나 몰래 북한에 들어가게 된다. 원래 박 씨는 인호를 버린 자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어머니 장례식에 즈음하여 인호는 아버지의 목수일에 필요한 연장들을 훔쳐 집을 뛰쳐나갔기 때문이다.

이제 지상낙원에 있으니 죽어도...

이제 박씨는 인호의 이런 행동을 "얼마나 배고팠으면......"으로 이해할 수 있는 여유를 되찾았고 이런 부성을 안고 두만강을 건너 자신의 고향으로 아들을 찾아 무작정 돌아왔다. 이런 박씨를 누군가가 신고를 했고 그는 체포되고 말았다. 무시무시한 국가안전보위부의 취조가 시작되었다. 심한 매질과 고문이 매일같이 자행되었고 먹을 것이라고는 통옥수수(중국에서 사료용으로 길거리에 방치되고 있음)를 푹 삶아 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결국 박씨는 대장염에 걸리게 되고 피골이 상접하고 곧 죽게되자 보위부는 박씨를 석방하였다.

동네 사람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기운을 되찾은 박씨는 보위부가 언제 다시 들이닥칠지 모르는 가운데 다시 북한을 탈출할 것을 결심하였다. 굶어죽으나, 얼어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에 그는 작년 12월 엄동설한에 국경을 넘었다. 이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땅을 등지고 박씨는 강을 건너 눈 쌓인 산길을 걷고 또 걸었다. 발의 감각은 무디어지고 주린 배를 감싸쥐고 한 산골 민가에 도착했을 때 바지와 다리는 서로 엉겨 꽝꽝 얼어붙어 있었다. 고마운 한족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지난번 중국에 탈출했을 때 일했던 목재소에 도착할 수 있었으나 동상 걸린 다리를 본 주인은 그 다리로는 일을 할 수 없다며 차비를 쥐어주며 쫓아내었다.

필자가 박씨를 만났을 때 그는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었으며 조선족의 도움으로 병원에 갔을 때 한쪽 엄지발가락을 제외한 나머지 발가락은 이미 모두 썩어 떨어져 나가버렸다. 이런 지경에 이르렀지만 그는 자신의 발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햄버거, 닭다리 두 개, 밥 한 그릇 그리고 국 한 대접을 모조리 먹어치우며 그는 "나는 지상낙원에 있으니 이제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이었다.
'짐승보다 못한 인간의 삶', '두발 가진 짐승' 이라는 수식어의 의미를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고 이 북한동포들을 이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은 인간과 동물 사이에 또 하나의 종을 만들어낸 초능력의 신성을 가진 자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둠의 역사 앞에 얼마나 부끄러워 할 것인가

탈북자는 더 이상 한반도 문제만은 아니다. 외국의 언론들이 지속적으로 탈북실태를 보도하고 있으며 세계인권보호단체 및 지식인들은 북한의 실상을 나치에 버금가는 인류의 죄악으로 간주하고 있다. 특히 유럽의 지식인들은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혹한 현실을 나치의 홀로코스트(대량학살)에 비교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막지 못한 것을 인류 역사에 가장 치욕적인 오점의 하나로 인식하는 유럽 지식인들은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북한의 현실을 결코 좌시하지 않는다.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진행 앞에 머지않아 그 옳고 그름이 너무나도 분명하게 판명될 것이기 때문이다. '철의 장막' 이 걷힌 후에야 비로소 그 속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던가가 드러났듯이 북한의 장막도 언젠가는 걷힐 것이고 그 때는 정말로 스스로 부끄러운 사람들이 많이 생겨날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 중에서는 그래도 부유한 나라였던 동독이었지만 통일 후 감춰졌던 역사는 속속들이 드러나게 되었으며 진실로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역사 앞에 스스로 무릎을 꿇고 말았음을 보았다. 과거 공산당 핵심간부들이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서독정부의 일방적인 통합작업 앞에 얌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우리는 그저 흡수통일이라는 단어로 설명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바로 그들에 의해서 자행된 어둠의 역사가 당시에 이미 그 폭발을 예고하고 있었음을 알아야 한다.

오늘날 우리사회에도 북한의 인권이 여러 가지 형태로 타협되는 모습이 보인다. 강한 중국론을 내세우며 탈북자 문제에 소극적이다. 하지만 아무리 강한 중국이라 할지라도 생명과 인권을 경시하는 강함은 이미 그 순간 그 몰락을 예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