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 기획: 김정일 체제의 모순과 북한사회 민주화의 전망(결)

- 김정일 체제 붕괴는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 것인가


지난 호에 썼듯이 국제사회의 희망과는 관계없이 북한사회의 연착륙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따라서 우리가 직면할 문제는 김정일 체제의 붕괴 양상이 어떻게 될 것이며 또 그 과정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하나의 국가체제가 점진적 변화·발전의 과정을 밟지 못하고 붕괴와 같은 혁명적 변화의 과정을 밟는다는 것은 커다란 혼란과 고통을 수반하는 일이다. 일인 절대권력에 의해 통치되어온 북한사회의 특성상 체제 붕괴과정에 따르는 혼란은 과거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 붕괴과정의 그것보다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일 체제의 붕괴는 과거 동독이나 체코와 같은 식으로 밑으로부터의 시민운동에 의해 성취되기 어렵다. 왜냐하면 엄격한 일인독재 체제하에서 조직적인 반정부세력과 민주화운동의 성장이 극도로 억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북한의 일반주민과 상층계급 사이에 반김정일 의식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는 증거가 분명히 있지만, 그러한 반김정일 의식이 하나의 커다란 공개적인 반대세력으로 조직화되어 김정일 정권에 도전하기는 극히 어려울 것이다. 보다 가능성이 큰 것은 소규모의 민중저항들이 점점 빈발해지고 민주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이 증대되면서 체제의 장래에 위기의식을 느낀 지배엘리트(특히 군부) 내부의 분열이 초래되어 정변이 발생하는 상황이다.

갈수록 민심이 이반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김정일의 권력은 주민들과 통치계급의 자발적인 충성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비밀경찰의 감시체제와 군사적 폭력에 의존하고 있다.

김정일은 조직적인 반대세력의 등장을 막기 위해 군 상층부를 비롯한 통치계급을 철저히 분할통치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 이는 한편으로는 통치계급 내부에 첨예한 대립갈등의 요소가 잠재해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김정일의 일신에 문제가 발생할 때 이를 대체할 국가권력의 구심이 형성되는데 커다란 혼란과 어려움이 따르리라는 것을 말해준다.

김정일은 자신 이외에 그 누구도 대중 앞에 부각되고 정치적 권위를 갖는 것을 막아왔으며 조금이라도 정치적 지도력을 가질만한 사람은 모조리 제거해 왔기 때문에, 북한의 상층계급은 김정일에 대한 공포심으로 그에 복종은 하면서도 그의 통치방식과 대내외 정책에 매우 큰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 엘리트집단 내부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외부인사들과 만난 사적인 자리에서 김정일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심이 더욱 이반되면 권력 엘리트 내부에서 반김정일 움직임이 돌출할 가능성이 크다1)

이러한 정변을 통해 김정일 정권이 붕괴되면 이는 단순히 정권 담당자의 교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 체제의 전면적 붕괴로 이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북한 사회에서 체제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어떤 사회세력이나 제도가 아니라 김정일 일인의 독재권력이기 때문이다. 김정일 정권의 붕괴는 곧 북한 체제의 '유일무이한' 구심력의 붕괴를 의미하므로 체제는 여러 권력집단간의 대결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필연적으로 해체의 과정에 들어설 것이며 통치권력의 중심이 부재한 상황에서 상당 기간 정치·사회적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붕괴 이후 예상되는 상황과 과제

북한에 정변이 일어나 김정일이 축출되거나 제거될 때 지배엘리트 내부에 극심한 권력투쟁이 발생할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북한 사회는 지금까지 철저하게 일인에게만 권력이 집중되어 온 사회이다. 따라서 김정일의 공백을 단기간에 대체할 만한 권위를 가진 인물이나 세력이 등장하기 어려운 것이다. 결국 몇 개 세력이 할거하는 상황이 예상되며 이들의 이합집산은 소모적이고 지루한 내전을 예견한다. 따라서 김정일 정권 붕괴시 북한 사회의 혼란은 일정기간 불가피한 것이다. 이 혼란은 권력집단(특히 군부) 내부의 격렬한 투쟁뿐만 아니라 낡은 체제의 타도를 원하는 민중과 기득권집단 사이의 대결을 통해서도 발생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량학살이나 내전이 발생할 가능성도 크다. 대남도발 가능성은 군내부의 결속력이 얼마나 유지되느냐에 달려 있으므로 정권 붕괴시에는 오히려 그 가능성이 작아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권 붕괴에 따른 혼란은 매우 커서 이것이 북한 사회 자체의 힘으로 수습되기를 기다린다면 매우 오랜 시일이 걸릴 것이며 또 그 과정에서 대량의 인명이 희생되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남한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응이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북한 체제의 붕괴 과정에서 남한이 부닥칠 일차적인 과제는 물론 대량학살 등과 같은 인도주의적 재앙과 대남 무력도발을 막는 일이다. 군부대 사이의 충돌 등 북한 내부상황의 전개는 북한의 군부를 제압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개입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생화학무기 등 대량파괴무기를 고려할 때 더욱 중요해진다. 또한 식량지원을 비롯한 대규모의 인도주의적 지원도 요구될 것이다. 대량으로 발생할 난민 수용의 대책도 필요할 것이다. 나아가서 궁극적으로는 북한 사회 내부의 혼란을 수습하고 민주적인 국가권력을 수립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도 있다.

이러한 과제들은 그 하나 하나가 매우 크고 정치적으로 복잡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남한은 주변국가들을 무시하고 단독으로 행동을 하기 어려운 처지에 있다. 따라서 유엔의 개입이 예상되며, 이 과정에서 미, 일, 중, 러 등 주변국가들의 협력을 이끌어 내는 일이 중요하게 될 것이다. 내전이나 대량학살 등의 사태가 발생할 경우는 국제사회의 개입이 얼마나 신속하게 이루어지느냐가 희생의 정도를 결정할 것이기 때문에 한국과 주요국가들 사이에 미리부터 신뢰관계를 형성해 놓을 필요가 있다.

북한사회 민주화를 위한 남한의 역할

그러나 국제사회의 개입이 신속하게 이루어져 군사적인 위험성과 기아사태가 해결된다고 해서 정치·사회적 혼란이 쉽사리 극복되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에는 국제사회와 북한 주민의 지지를 받으며 효과적으로 사회를 재건해 나갈 정치적 지도집단을 형성하는 일, 강력한 기득권집단의 반발을 억누르며 사회제도를 개혁하는 일 등 뿐만 아니라 민주화 과정을 떠받칠 문화·사상적 토대를 형성하는 과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제들은 본질상 군사적 위험성을 제거하는 문제와 달리 장기간에 걸친 복잡한 과정을 요구한다.

어떻든 새로 들어설 북한 정권이 남한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지원 없이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는 곤란할 것이며 특히 정치·경제적인 부담을 무릅쓰고 적극적인 대북지원을 추진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가 남한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의 재건과정에 남한 주민들이 기꺼이 부담을 감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남한이 북한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태세를 갖추는 것은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당연한 의무일 뿐만 아니라 남북의 통일을 실현한다는 이해관계의 면에서도 중요하다. 북한 사회의 재건을 위한 지원이 단순히 소모성 비용이 아니라 결국에는 분단비용을 상쇄하고 장기적으로 남북한 전체의 보다 빠른 진보를 촉진할 투자비용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현재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 통일비용 부담을 이유로 통일을 꺼리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은 매우 경계해야 할 일로 보인다.

한 사회의 민주화는 단순히 정권의 교체만이 아니라 사회의 전반적인 체제의 변화와 시민사회의 성숙, 경제적 토대의 건설 등 다방면에서의 발전을 요구한다. 따라서 김정일 정권의 붕괴는 북한 민주화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지 그 끝은 결코 아니다. 독재정권의 교체는 민주화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이 필요조건은 민주화와 인권의 실현을 위해 반드시 이루어야 할 절대적인 조건이다. 김정일 정권의 붕괴 이후에야 비로소 북한사회는 진정 보편적인 인간의 가치를 존중하는 민주주의의 실현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이며, 이러한 사업이 일정한 궤도에 오를 때 남북의 주민들은 동등한 입장에서 평화적 통일을 추진하는 동반자의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 본지의 편집구상의 변화로 인해 원래 5회로 예정했던 본 기사의 연재를 이번 호로 마치게 되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