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시리즈 2: '金正日씨의 '나의 살던 고향은'
고향이란 무엇일까?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고향을 가진 시인 정지용과 같은 행운아는 더 이상 많지 않은 것 같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산부인과에서 안전하게 태어나 도시의 집에서 살아가면서 '고향'의 말뜻도 잘 모르게 된 시절이 왔다. 고향이라는 말을 감싸고 있던 어떤 '거룩함'은 사멸해 가는 서정시의 구절속에서나 감돌고 있으니 기실 교통, 정보, 통신의 고도 발달 시대라 할 만하다. 시절을 비판하자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고속 질주의 시대는 또 그 나름대로의 미학(美學) 있을 테니까.

그러고 보면 金正日씨는 딱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다. 어느 날 갑자기 고향을 좀 더 깊은 산골로 바꿔 버렸다. 그가 주장하는 자신의 고향은 '양강도 삼지연군 소백수골'(구 지명은 함경남도 해산군 보천면)이다. 그가 만 45세가 된 1987년 2월 11일부터는 이곳에 귀틀집을 마편하여 성지(聖地)로 만들고 있다. 고난의 행군이 계속되고 있는 2000년 올해도 백두산 밀영을 찾는 북한 주민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고 있다(연합통신 2월 1일자).

일본관동군 및 만주군의 공식기록문서, 그리고 구 소련측의 기록에 따르면 김정일씨는 러시아의 하바로프스크에서 출생했다. 당시 부친 김일성은 제2극동군 제88보병여단 제1대대장의 신분으로 하바로프스크에 머물고 있었다고 한다. 그 모진 엄동설하에 모친 김정숙은 무슨 일로 만삭의 몸을 이끌고 장백산맥 준령을 넘어 소백수의 귀틀집까지 찾아가 몸을 풀었던 것일까?

어쨌든 김정일씨는 자신은 아무래도 백두산 출신이라고 고집중이다. 재미있는 것은 최근 월간조선과 신동아에 연속적으로 인터뷰 기사가 난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기의 친구 李敏 여사(전 흑룡강성 성장 진뢰의 부인)의 이 대목에 관한 복잡한 심경이다.

{김정숙과 처음 만난 것은 1942년 가을입니다. 그때 남북 야영이 합하여 우리는 장막 안에서 자게 되었지요. 김정일이 태어날 때는 내가 아직 김정숙을 만나기 전입니다. 김정숙의 출생지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습니다}(월간조선의 피터현씨와의 인터뷰, 2000년 2월호) 라고 했다가 이 기사가 나간 한 달 후 신동아(이원섭 한겨레신문 논설실장 인터뷰)에는 "김정숙이 41년 초여름 여대원들과 함께 백두산 밀영에 가서 조선국내와 장백지구혁명조직들을 지도하는 공작사업을 했는데 다음해인 42년 2월 그곳 귀틀집에서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훈련기지에서 통신원을 통해 전해 듣고 다같이 환호성을 올렸다는 것이다.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런 이야기를 당시에 들었다는 것이다'(3월호) 라고 되어 있다.

그 사이 李敏 여사에게 이렇게 말을 바꿔야만 될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던 것일까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그러나 '백두산'에서 태어났다고 우겨대는 김정일씨의 속을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것인데, 과연 정말로 그렇다면 우리 민족 초유의 대수난사를 연출해 내고 있는 그의 탄생은 '민족의 영산 백두산'의 산신령이 노했던 결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