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기고: 북한체제의 놀라운 내구력의 비밀
최근 몇 년간 북한에서 일어난 일들을 지켜보아 온 사람이라면 당연히 다음 몇 가지 의문을 갖게 될 것이다.

첫째, 95년 이후 굶어죽은 사람이 3백만명 가량이라는데, 북한에는 어째서 대규모 폭동이 일어나지 않고 있는가?

둘째, 북한도 사람 사는 곳일 텐데, 김정일 정권이 그토록 폭압적이라면 왜 자생적인 민주화 운동은 일어나지 않는가?

셋째, '어버이' 김일성이 죽으면 다른 동유럽 국가들처럼 북한체제도 곧 붕괴될 줄 알았는데, 왜 아직까지 체제 붕괴는 일어나지 않고 있는가?

남한에서 교육을 받고, 정치적 민주화를 경험해본 우리들에게 이러한 의문들은 매우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이러한 의문들은 김정일 체제를 애써 옹호해 보려는 사람들이 김정일 체제의 필연적 종말을 예견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역공하는 반증논리로 활용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지난 몇 년간 보아왔듯이 김정일 체제는 나름대로 내구력이 있으니, 섣불리 북한 민주화운동론 등으로 함부로 북한을 흔들어댈 것이 아니라 김정일 정권이 점진적인 개혁개방으로 나오도록 도와주어야 하며, 설사 북한에 민주화가 필요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북한 민중이 자발적으로 선택할 일"이라는 주장이 마치 근거 있는 논리를 갖고 있는 것처럼 들리는 것이다.

또 한편, 어찌 보면 앞의 몇 가지 의문들은 우리의 눈으로 볼 때 그렇다는 이야기이지, 북한사회 자체의 관점에서 북한을 바라볼 때는 별로 이상할 게 없는 의문들일 수도 있다. 우선 북한의 '보통 사람'의 관점에서 첫번째 의문부터 대답해보자.

"대규모 아사사태의 원인은 순전히 자연재해와 제국주의자들의 경제봉쇄 정책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를 굶겨 죽인 원흉은 조선식 사회주의와 수령님이 아니라,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큰물과 철천지 원쑤 미제국주의다. 지금 우리는 수령님을 향도로 고난의 행군을 끝내고 강성대국으로 가고 있다. 이제 조금만 더 지나면 조선식 사회주의가 필승불패라는 사실을 세계 만방에 알릴 것이다".

둘째, "남한이 다당제 정치구조라면 북한은 일당 독재가 기본이다. 남한이 민주화 운동을 해온 것은 기본적으로 민주주의가 미성숙했기 때문이고 미제 식민지에서 벗어나자는 것이었다. 우리는 당(김정일) 앞에서 모두 평등하고 민주주의를 하고 있는데 민주화 운동이 왜 필요한가?"

셋째, "김일성 수령님이 사망하신 뒤에도 조선식 사회주의가 끄떡없다는 것은 조선의 사회주의가 얼마나 위력한가를 보여주는 증거다. 동유럽이 망한 것은 자본주의 황색바람을 철저히 차단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역사발전의 법칙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김일성 수령님은 사망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영원히 살아 계신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얼마나 허구인가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북한에 대규모 아사사태가 발생한 것이 근본적으로 수령독재로 인한 경제운영의 실패에서 기인한 것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남한의 연평균 강우량은 북한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홍수 발생 횟수도 월등히 많다. 방글라데시조차 홍수로 인해 수백만 명이 한꺼번에 굶어죽는 경우는 없다. 또 백보를 양보해도 김정일 정권이 유사 이래 그 예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폭압적이라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보통 사람'은 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또 정말 왜, 북한에서는 자생적인 변혁운동이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외부에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지금 북한에서는 산발적인 민주화 시위 정도는 발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의문을 추적하다보면 필연적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 김정일 체제의 내구력의 정체와 그 허구성이다.

북한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온 탈북자들에게 '북한에서는 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지 않는가'라고 물으면 십중팔구는 이렇게 대답한다.

"북한에 살아보지 않아서 그런 말을 하는 겁니다. 민주화 운동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김일성 종합대 학생이나 평성 리과대학(남한의 KAIST 정도에 해당) 학생들이 '반 김정일'을 외친 적이 있긴 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소식을 듣는 것은 그들이 처형되고 한참 뒤에야 입에서 입으로 조금씩 전해질 뿐입니다. 북한에서 조직적인 민주화 운동은 상상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조짐이 조금이라도 보인다 싶으면 즉각 잡혀가 쥐도 새도 모르게 처형됩니다. 북한이라는 사회 자체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주목되는 것은 '북한이라는 사회 자체가 그렇게 되어 있다'는 대목이다. 어떻게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일까.

우선, 가장 큰 이유는 철저한 주민 감시체제 때문이다.

북한 당국의 주민감시 체제는 크게 3선(線)이다. 첫째 국가보위부 선, 둘째 군 보위사령부 선, 셋째 사회안전부 선이다. 탈북자들이 급증한 95년 이후에는 군 보위사령부가 전면에 나서고 있다.

이 3중 감시망을 종합조정하는 것은 당(黨)이다. 북한에는 리(里)급 기관에까지 모두 당기관이 나가 있다. 당의 최말단 조직은 세포조직이다. 북한의 모든 당원들은 세포조직에 속해 있다. 중앙당 비서도 예외가 아니다. 세포비서는 당생활총화를 통해 자기 세포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파악하고, 이를 자료화해서 상급 당기관에 정기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당생활총화는 최소 1주 1회다. 비당원들은 자신이 속해 있는 각급 기관(사로청, 농근맹 등)에서 생활총화를 받는다.

이렇게 볼 때 북한의 거의 모든 인민들은 당 관계자를 비롯해서 국가보위부, 보위사령부, 사회안전부 관계자들로부터 집중감시를 받게 되는 것이다. 사람 3-5명이 모이면 그중 한 명은 감시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또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게 된다. 북한에서 감시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김정일 한 명이다.

과거 남한의 유신정권이나 5공정권이 아무리 공포의 감시망을 형성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김정일 체제에 비하면 족탈불급(足脫不及)이다. 서로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것이다.

이러한 감시망의 사령탑은 당중앙위원회(중앙당) 조직부다. 중앙당 조직부는 북한의 모든 당적 활동, 내각, 군을 핵심적으로 지도 통제한다. 현재 중앙당 조직비서겸 조직부장이 김정일이다(김정일의 공식직함은 국방위원장, 총비서 등 7개). 따라서 북한 감시체제의 정점에 김정일이 있다. 이 때문에 교화소나 정치범수용소에 감금된 사람들이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김정일에게 매일 편지를 쓰게 되는 것이다.

김정일은 밑에서 올라오는 모든 제의서(보고서)를 본다. 특히 체제도전과 관련된 것은 최우선이다. 따라서 북한체제가 '버티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수령독재를 유지할 수 있도록 거의 완벽에 가까운 시스템을 구축해 놓았기 때문이고, 김정일이 그러한 시스템에 누수현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독재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김일성 김정일은 이러한 시스템을 단기간에 구축한 것이 아니라 근 5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진척시켰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체제 자체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가지기가 쉽지 않게 되어 있는 것이다. 물이 담긴 비이커에 개구리를 넣고 매우 천천히 가열시키면 개구리가 수온상승을 쉽게 느끼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그러한 정치 사회적 시스템을 갖추게 한 이론적 배경은 물론 수령절대주의 사상이다. 수령절대주의를 구현하는 현실적인 장치는 '유일사상체계확립 10대원칙'이다. 10대원칙은 북한의 실질적인 헌법이자, 인민들의 실생활을 규제하는 '생활법률'이다. 따라서 김정일 체제 내구력의 원천은 수령절대주의 사상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수령절대주의 사상은 북으로 강제 압송된 탈북자들을 처형하는 방법에서도 나타난다. 총살 집행자들은 맨 먼저 탈북자들의 머리를 쏘게 되어 있고, 그 다음이 심장과 복부다. 머리부터 쏘는 것은 수령의 유일사상 외에 다른 사상이 들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절대권위주의 체제에 오랫동안 길들여진 일반인들은 체제에 대한 비판의식 자체가 마비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 비서는 최근 일본 [문예춘추]에서 발행된 {속-김정일에의 선전포고}를 통해 "자신과 가족이 함께 굶어 죽어가고 있는 어느 기술노동자가 도리어 수령님의 건강은 괜찮으시냐고 걱정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증언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일반인들에게 '민주화 운동'이라는 것은 그 말 자체부터 지극히 생소할 뿐 아니라, 개념 자체가 미미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더구나 남한 대중이 경험해본 4.19나 5.18, 6.10 항쟁과 같은 대중운동을 북한 인민들은 한번도 겪어보지 못했다.

또 하나는 설사 산발적인 움직임이 있다 하더라도 조직적인 연대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근본적으로는 감시체제 때문이지만 현실적으로 전화나 팩스 등 통신시설이 지극히 미미한 원인도 있다. 말하자면 대중운동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이 안 되어 있는 것이다. 구소련의 개혁개방에서 통신시설이 원인(遠因)으로 작용한 예에서 볼 수 있듯 통신시설의 확충은 매우 중요한 기능을 가진다. 그러나 북한의 비상연락망 체계는 거의 인편 전달에 의존하고 있고, 이는 지방일수록 심하다. 따라서 정보를 공유하고 교환하는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조건에서 자생적인 대중 민주화운동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 체제가 아무리 강고하다 하더라도 내부에 변화의 움직임이 없을 수 없다.
탈북자들마다 의견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현재 하층계급은 상당부분 체제이반 현상이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오랫동안 자신의 출신성분에 대한 불만과 최근 5년간의 극심한 식량난에 기인한 것이다. 상위계층의 이반현상도 많이 진행되었다. 이들은 겉으로는 김정일에게 순종하지만 속으로는 더 이상 김정일에게 기대할 것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탈북자들의 성분과 직업의 다양화 현상에서 이러한 사실을 감지할 수 있다. 따라서 피라미드를 세 부분으로 나눌 때, 맨 아래는 체제이반, 맨 위는 상황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계층, 중간은 어쩔 수 없이 보수적으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는 계층으로 예측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의 개혁개방을 추동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수령절대주의의 미신을 제거하는 것이다. 김정일 체제는 수령(김정일) 개인을 정점으로 하는 전체주의다. 전체주의는 겉으로는 강하게 보일지 모르나, 사실은 매우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김정일 체제가 강하게 보이지만 사실은 계란의 노른자와 흰자를 둘러싸고 있는 연약한 피막과 같은 것이다. 수령절대주의라는 사상의 '피막'을 제거하는 주사 한 방이면 이내 깨지고 만다."

다원화된 사회는 붕괴되지 않는다. 사회의 어느 일각이 무너지더라도 다른 부분이 받쳐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체주의-특히 일 개인이 절대화된 사회는 그 개인이 부분이자 전체이기 때문에 개인이 무너지면 사회가 유기적으로 지탱될 수 없게 되어 있다. 여기에 김정일 체제 내구력의 결정적인 허구성이 있는 것이다.

아울러 수령절대주의라는 얄팍한 피막을 제거하는 데 인권문제는 첫 출발점이자 결정적 해결책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