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A
북한의 기아가 북한 집권층의 잘못보다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측의 경제봉쇄, 사회주의권의 몰락 등 외부환경의 어려움과 자연재해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 북한의 경제적 몰락은 이미 냉전시대부터 분명해졌기 때문에 사회주의권 붕괴로 인한 배후시장 상실 등이 북한 경제파탄의 근본요인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미국의 대북 경제봉쇄정책에 대해 말하자면 중국, 러시아뿐만 아니라 유럽과 중동의 많은 나라들에 대해서도 별로 구속력이 없다. 과거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대북 거래를 꺼려온 것은 주로 북한의 신용과 경제능력 부족 때문이었지 미국의 압력 때문은 아니었다. 북한이 폐쇄적인 경제구조를 갖게 된 것은 미국의 경제봉쇄 때문이 아니라 북한 정권의 정책노선 때문이다. 북한은 자국에 대해 아무런 봉쇄도 하지 않은 소련 및 중국과의 경제관계가 확대되는 것까지도 꺼리고 폐쇄적인 경제정책을 고집해 왔다. 따라서 설령 과거에 미국이 북한에 경제봉쇄를 하지 않았었다 하더라도 북한이 서방과의 경제교류를 활용하여 경제건설에 성공했을 가능성은 없다.

북한경제가 70년대 중반을 고비로 정체에 빠지고 종국에는 파탄에 이르게 된 원인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사회주의 나라 일반이 겪은 것처럼 사유재산의 부정으로 인해 근로동기가 약화되고, 민주주의가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창의성이 떨어졌다는 점이다. 이 점은 기존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와 중국, 베트남과 같은 개혁개방의 시도를 경험하면서 역사적으로 검증된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북한의 특수한 측면인데 70년대 중반이후 김정일이 정권을 장악한 이후 북한경제에 대해 김정일이 사실상 사유화하면서 최소한의 경제적 논리조차 통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정이다. 예컨대 어떤 기업체가 석유가 필요하면 내각을 통한 정상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 김정일의 결재를 받아 얻어냄으로써 모든 것이 권력형 로비와 김정일 개인의 판단에 의해서만 움직이게 된 것이다. 흔히 사회주의 경제의 약점을 지나친 계획에서 찾는 경우가 있는데 북한은 이와 정반대로 합리적인 계획이란 없는 '무계획경제'인 것이다. 바로 이점이 북한이 다른 사회주의 나라보다 더 심각하고 비참한 경제파탄에 빠진 근본적 원인이다.

북한은 사회주의 사회인데 자본주의 사회의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 우리 사회에는 남북한 사회가 각기 독자적인 사회이고 독자적인 발전논리를 가지고 있는데 남한이나 서구의 인권개념으로 북한 사회를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만일 북한 사회가 정상적인 발전경로를 밟고 있다면 비록 이러 저러한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남한이 사사건건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보더라도 북한 사회가 김정일 정권 하에서 독자적인 '발전경로'를 밟고 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경제파탄으로 수백만의 인민을 굶겨 죽이고, 체제유지를 위해 사람을 길거리에서 공개처형하며, 조금만 불평을 해도 당사자는 물론 온 가족을 정치범수용소에 가둬놓고 짐승처럼 취급하는 사회를 어떤 기준을 가지고 '발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남북한이 각기 다른 논리를 갖고 있으므로 남한 사회의 잣대로 북한 사회를 비판할 수 없다는 견해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어떤 사회의 '인간의 권리'와 다른 사회의 '인간의 권리'가 따로 있다는 주장은 과거 여러 나라의 독재자들이 자신들의 인권유린을 은폐하기 위해 동원했던 논리이다. 우리가 북한의 김정일 정권을 비판하는 것은 무슨 자본주의 사회의 특유한 기준에 근거한 것이 아니며 전세계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최소한의 인권기준에 근거한 것이다. 인간은 어디서나 인간이며 아무리 구체적인 역사적 배경에 따라 인간의 권리를 실현해 가는 경로가 다를 수 있다 하더라도 인권에 대한 최소한의 공통기준은 있는 것이다. 이것조차 부정하는 논리는 서구의 인권기준과 아프리카의 인권기준이 따로 있다고 주장하며 흑인에 대한 인권유린을 방관한 논리처럼 희생자들의 고통을 생각하지 않는 비인간적인 논리이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거린다는데 김정일 정권의 억압이 그렇게 심하다면 북한체제가 저렇게 유지될 수 있겠는가?

* 김정일 정권의 독재를 지탱해주는 기둥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물리적 폭력이고 다른 하나는 수령절대주의 사상이다. 남한사회의 민주화운동 경험을 기준으로, 유신시대나 5공 시절에도 저항이 있었는데 북한에서는 공개적인 반독재운동이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볼 때 상황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겠지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사소한 불만의 목소리만 내도 재판절차도 없이 당사자는 물론 가족까지도 정치범수용소에 가두어 버린다. 또 반체제행위라고 보여지면 무조건 사형을 시켜버린다. 만약 남한에서도 김정일 정권처럼 반정부인사들을 모조리 사형시키는 정책을 폈다면 남한 사회의 민주화운동도 극히 어려웠을 것이다.

북한의 수령독재를 일반적인 독재와 구별짓는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은 수령절대주의사상을 지배이데올로기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나라에 독재정권이 있었지만 북한과 같이 철저하게 절대복종을 요구한 사회는 없었다. 김정일 정권의 독재는 전 인민에게 오로지 수령 1인을 위해 복무하고 수령을 위해 살도록 요구하는 수령절대숭배사상에 기초를 두고 있다.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는 국가주권이 인민에게 있고 인민이 통치자를 선택할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다. 이는 근대이래 인류의 상식이 되어 심지어는 철권통치를 했던 스탈린이나 모택동조차도 자신의 독재권력을 인민의 위임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북한의 김일성주의는 수령이 먼저 있고 당이 있으며 당이 있고서야 인민이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러한 논리는 중세 봉건시대의 군주제 논리보다 더욱 퇴보한 반민주적 논리이다. 봉건시대의 왕권은 그래도 귀족(서구)이나 신권(臣權)(우리나라)의 견제를 받았고 기독교나 유교적 윤리관에 의해 제약됐었다. 그러나 북한에서 수령의 권력은 그 어떤 제약도 받지 않는 절대권력이다. 이런 점에서 북한의 수령숭배사상은 통치자를 인간이 아닌 신으로 숭배했던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숭배와 비슷한 수준의 사상이라고 볼 수 있다. 74년에 발표된 '당의 유일사상 확립의 10대 원칙'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한 순간을 살아도 오직 수령님을 위하여 살고 수령님을 위하여서는 청춘도 생명도 기꺼이 바치며 어떤 역경 속에서도 수령님에 대한 충성의 마음을 변함없이 간직하여야 한다." 어릴 때부터 이런 식의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들이 아무리 현실에 대한 불만이 있더라도 정치적으로 반항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물론 95년 이후 대량의 탈북자들이 생겨나 이들 중 상당수가 조ㆍ중 국경을 넘어 왕래하게 되면서 김정일 정권의 사상통제·정보통제 능력은 상당히 약화되었다. 그리고 이에 따라 북한 주민들 사이에 북한 사회를 중국이나 남한 등과 비교해서 그 야만성을 객관적으로 보고 김정일 정권을 비판하는 시각이 생겨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