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고: 한 일본 좌파지식인의 북한인권운동
북한 인권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연대를 제창한다!

-기쿠치 히사히코(RENK편집장)


들어가면서

1999년 12월 1일부터 3일간 서울에서 ‘제 1회 북한 인권 및 난민 문제 국제회의’가 열렸다. 나는 북한문제에 관한 일본 NGO의 일원으로 이 회의에 참가했다. 회의를 마친 후 이 회의에 참가한 한국측 민간단체 NKNET 회원들과 교류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다음과 같은 주제로 글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1)일본 좌파지식인들은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2)좌파운동을 했던 한국 젊은이들의 북한인권운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둘 다 지식과 사고력이 필요한 문제이므로 내가 적임자라고는 할 수 없지만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어서 글을 쓰게 되었다.

일본 좌파지식인의 북한인권문제에 관한 인식

우선 ‘좌파지식인’이라는 말의 정의와 관련해서는 학자나 연구자 등 이른바 (전통적인 의미의) ‘지식인’만이 아니라 활동가나 시민 등 넓은 의미에서의 좌파적인 경향을 가진 사람들도 여기에 포함시켜 생각해 보고 싶다. 현대 일본사회에서는 ‘지식인의 대중화’와 ‘대중의 지식인화’가 상당한 정도로 진척되었을 뿐만 아니라 더구나 이러한 흐름은 거스를 수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좌파' 또는 ‘좌파적’이라는 말도 정의하기 쉽지 않다. 이 말은 일찍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마르크스레닌주의 입장에 섰다는 것을 의미했고, 동시에 그것은 사회적 진보를 뜻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러나 1989년부터 1990년대 초두에 걸친 일련의 역사적 사건을 거치면서 ‘좌파’라는 말의 의미는 크게 변화됐다.그래서 지금에 이르러 ‘좌파’가 존재한다면 두 가지 형태가 있을 것으로 본다. 하나는 구태의연한 사상에 절어 있어 현실동향과는 무관하게 자신의 신념을 고집하는 자세이고, 또 하나는 지금까지 의거해 온 사상에 대해 의문을 느끼고 이를 수정함으로써 현실의 동향에 입각해 현실을 비판하려는 자세다. 전자에 대해서는 새삼스레 말할 필요가 없겠다. 문제는 후자이다.

자기비판

여기서 우선 나 자신에 대해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나는 1980년대의 끝무렵에 학생운동에 참가하게 되었고 아직 ‘좌파’라고 하는 자기인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북한의 인권·민주화문제에 관한 운동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나의 입장은 위에 거론한 후자의 자세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시 나를 포함한 학생운동가들 사이에서는 ‘안보분쇄! 한일연대!’라는 슬로건이 제기되고 있었다. 이것은 일본과 미국의 안전보장협정(美日安保)를 축으로 한 체제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反제국주의운동을 억압한다는 정세인식 아래 일본민중운동으로 미일안보체제를 분쇄함으로써 한국민중과의 연대를 실현한다는 방침을 표현한 것이었다. 물론 한일연대의 지향하는 바는 한반도의 통일이었다. 말하자면 전통적인 ‘프롤레타리아국제주의’의 입장이었던 것이다.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모두 반제국주의운동이라고 할 수 있었는가, 또는 미일 안보체제의 분쇄가 사실상 미제국주의의 타도라고 하는 거대한 과제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는가 하는 따위의 세세한 문제는 논외로 하더라도, 가장 큰 문제는 북한체제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물론 북한체제가 옛 소련이나 중국과 마찬가지로 스탈린주의의 틀 내에 머물고 있다는 식의 극히 일반적인 인식은 가지고 있었지만, 실제로 북한에서 어떠한 통치가 행해지고 사람들이 어떠한 상태에 처해 있는지 그런 구체적인 검증은 거의 없었다. “스탈린주의라 하더라도 노동자국가는 노동자국가다", “조선노동당을 비판하는 것은 제국주의에 대한 굴복이다" 등의, 입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당시 나의 북한인식은 그 정도밖에 안 되었다. 그후 1990년대 들어 그때까지의 사상과 운동으로는 현실세계에 대해 정면으로 대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한계를 느끼게 되면서, 내 자신이 의거해 왔던 여러 입장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의 인권과 민주화문제도 피할 수 없는 과제로 대면하게 된 것이다. 결국 내게 있어서 북한문제는 사안 자체의 객관적 중요성과 함께 나 자신의 활동의 역사를 실천적으로 총괄한다고 하는 주관적인 측면에서도 중요성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지금의 내 자신을 절대시해서 설교하고 싶은 생각이 없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특정의 방향성을 강요할 생각도 없다. 단지 ‘한일연대’를 지향하고, 상품·자본세계를 지양(aufheben)한 ‘자유로운 개인성(Indibidualitaet)의 전개’를 추구하면서 다시 그것을 타자에게 제창했던 자로서 하나의 자각을 술회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자신의 잘못을 알게 된 경우 새로운 입장으로 바꾸는 것은 확실히 간단하며 고뇌도 적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어떠한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 오류를 깨닫지 못하는 경우는 논외지만 (오류를 알았을 경우는) 오류의 과정을 되밟아 가면서 그 근거를 찾아내 하나씩 하나씩 대응해 갈 수밖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좌파지식인의 소극성

일본 좌파지식인 중에는 훌륭한 일을 하고 있는 분들도 많다. 이들은 현실세계와의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현실세계에 매몰되지 않고 비판적인 관점을 견지한다. 이것은 말로는 간단하지만 실제로는 대단히 힘든 일이다. 그런 자세를 가진 사람은 내 주변에도 몇 분인가 있다. 그러나 북한의 인권·민주화문제에 관한 한 좌파지식인 중에서 적극적인 움직임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모든 점에서 소극성을 보일 따름이다. 사견이지만 소극성은 주로 다음의 세 가지 유형으로 나타난다.

첫째 ‘판단의 소극성’이다. 예를 들어 일본좌파에게 ‘북한 체제와 민중의 현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고 질문하면 돌아오는 대답의 대부분은 ‘잘 모르겠다' ‘판단자료를 갖고 있지 않다' 등이다. 1970-80년대라면 몰라도 지금으로서는 북한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정보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런 대답을 하고 있다.

둘째 ‘옹호의 소극성’이다. 북한의 체제와 인권상황이 심각한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알면서 별개의 요인, 가령 ‘한·미·일의 적대 정책’과 ‘분단의 역사', ‘일제에 의한 식민지 지배’ 등을 들고 나와 균형을 맞추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객관적으로 보면 구차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외부의 요인에 의해 인권 탄압이 정당화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셋째는 ‘비판의 소극성’이다. 이것은 둘째 유형과 가깝지만 반대되는 방향성을 지닌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북한의 체제와 인권 상황에 대해 명확하게 비판적인 입장을 가지면서도 외부요인을 고려해서 적극적으로는 표명하지 않는다는 자세다.

일본좌파의 심성

이상은 어디까지나 편의적인 분류에 지나지 않고, 실제로는 서로 뒤섞인 형태로 나타나지만 소극성의 양태에 대해서는 이해가 되리라 믿는다. 그렇다면 이런 소극성은 어디서 유래하는 것일까? 나는 소극성의 근거로서 일본좌파에게 뿌리 깊이 존재하는 일종의 ‘심성mentality’을 제기하고 싶다.

‘심성’이라는 것은 곧 ‘마음이 존재하는 방식’이므로 그 자체를 논리적으로 혹은 객관적으로 드러내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 ‘심성’을 바탕으로 논리적인 담론 형성과 대상 정립이 이루어진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심성’을 전혀 무규정적인 것이라거나 자생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현실세계의 다양한 규정성을 띠고 역사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다음에서 나의 경험에 비추어 이 ‘심성’에 대해 두 가지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우선 일본좌파의 ‘심성’에 있어 최대의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역사적인 책임 논리다. 널리 알려진 대로 일본의 근현대사는 그야말로 아시아 침략의 역사와 겹친다. 특히 한반도에 대해서는 1910년의 한국병합 이래 36년에 걸쳐 식민지 지배를 행하고 언어를 포함한 민족문화의 말살을 꾀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책임을 중시하는 데서부터 유래한 모종의 ‘부채의식’이 일본좌파의 ‘심성’을 크게 규제하고 역사책임의 청산을 모든 행위의 전제로 위치시키는 자세의 기초가 되고 있다. 물론 이 역사적인 책임 윤리는 단순히 과거의 문제로서만이 아니라 현재의 문제로서도 재생산된다. 재일 한국=조선인에 대한 일본정부의, 또는 일본사회의 민족차별적·배외주의적인 대응, 혹은 1945년 이후의 한반도에 대한 비정상적인 대응, 이러한 것들이 일본인 좌파의 ‘심성’을 더욱 더 크게 규제하고 행위의 전제조건을 점점 확고한 것으로 만들어 왔다.다음으로 일본좌파의 ‘심성’에 있어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종래의 세계인식에서 오는 도식주의다. 이것은 냉전적 사고방식이라고 바꾸어 말해도 좋다. 요컨대 세계는 제국주의세력과 반제국주의 세력이라는 양대 진영으로 형성되어 일방의 공세가 또 일방의 열세로 직결된다는 사고방식이다. 일본좌파는 ‘좌파’이기 때문에 반제국주의세력에 심정적으로 동화되고 같은 진영 내부의 결점에 대해서는 상대 세력의 공세를 불러일으킬까 봐 지적하지 않으려고 하며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같은 진영에 속한 사람이 실제로는 어떤 내용을 갖고 있다고 해도 ‘적의 적은 우리편’인 것이다.

일본좌파의 심성 비판

앞에서 지적한 두 가지 내용 중에서 전자는 매우 긍정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일본에서는 여전히 배외주의적인 북한비난이 횡행하고 있고 그 비난의 화살이 재일북한인에게 향해지는 경우도 왕왕 있기 때문에 정확한 역사인식과 책임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중요하다.그러나 거듭 말하거니와 그렇다 해서 그것이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 소극적일 이유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일본에서 배외주의는 북한의 체제와 민중을 단순하게 동일시하고 거기에 재일북한인까지를 포함시켜 적대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좌파가 해야 할 일은 배외주의에 동원된 일본 민중의 (잘못된) 의식에 쐐기를 박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북한 민중이 처한 상태를 정확하게 전달함으로써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공통의 가치관을 지닌 한일 민중간의 공감대를 넓히고 북한의 체제와 그 민중 및 다수의 재일북한인이 결코 동일시될 수 없다는 인식을 넓혀 갈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실제 일본좌파의 상당수는 배외주의와는 반대의 관점이긴 해도 역시 체제와 민중을 동일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북한 인권문제에 눈을 감아버린다. 나는 여기서 앞에 말한 도식주의의 영향을 본다.

원래 좌파운동의 중요한 긍정적 측면으로 국가 대 국가, 정부 대 정부 관계를 넘어서서 사람들이 관계를 맺고 공통된 이념을 실현해 간다는 지향성이 존재했었다. 역사적 실천으로서는 많은 수가 좌절로 끝났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런 지향성 그 자체를 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아직도 북한의 사회통제는 엄혹하고 국가기관의 매개 없이 민중과 직접 관계를 맺는 일은 극히 어렵다. 그러나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좌파에게 요구되는 것은 이 작은 가능성을 가능한 한 확대해 가는 활동이 아닐까?

한국의 이전 좌파활동가들의 북한 인권운동에 대해서

이미 예정된 매수를 넘어섰지만 부탁받은 두 번째 주제에 접근해 보고자 한다.작년 ‘국제회의' 참가 즈음에 전 ‘주사파' 활동가들과 만나고 또 그에 앞서 일본의 잡지에 번역된 김영환씨의 인터뷰기록( [五論] 1999년 10월 )을 읽은 인상으로 나는 어떤 동시대성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좌파운동으로의 몰입과 또 그 한계를 자각하고 그로부터 북한인권문제에 접근한 도정은 앞서 말한 것처럼 나 자신이 밟아온 길이기도 하다. 물론 이미 좌파운동 자체가 사회적인 영향력을 잃은 일본과는 달리 당시의 한국에서는 좌파운동의 영향력이 컸고 또 체제측과의 긴장관계도 격렬했던 터이다(필시 나의 일천한 좌파경험은 그들의 경험의 농밀성과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좌파운동에의 몰입도 깊었을 것이고 또 방향전환도 고뇌에 찬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이러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시대성을 느끼는 것은 그들이 북한 인권문제를 인도적인 측면과 동시에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적확하게 포착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는 역시 한번 좌파운동에 몸을 담았던 경험자들이라서 가능했던 인식이 아닐까 싶다.오늘날 북한의 인권문제는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아직 인권의 빛과 민주주의의 공기는 북한민중에게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이 상황을 일초라도 빨리 개선하기 위해서 지금이야말로 한일의 민중연대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시점이다. 이러한 시점에 임해서 NKNET의 발족은 커다란 힘이 될 것이다. 거듭 거듭 발전을 빌면서 글을 마치겠다.

--------------------------------------------------------------------------------

[필자 주] 이 글은 기쿠치 히사히코(菊池久彦) 개인의 책임 아래 쓴 것임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