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김정일 체제 붕괴 시나리오(1)

연재를 시작하며- 김정일 체제의 모순과 북한사회 민주화의 전망


북한사회의 정적은 폭풍 전야의 고요

북한사회는 지금 내적으로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측면에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 위기는 근본적으로 비인간적인 독재권력과 인간 존엄성의 구현을 애타게 갈망하는 2천만 북한주민간의 모순에서 초래된 것이다. 이 모순은 북한사회에 시한폭탄처럼 내재돼 점점 더 첨예하게 발전하고 있으며, 필연적으로 언젠가는 폭발하고야 말 것이다. 외견상 안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북한사회의 정적은 폭풍 전야의 고요에 지나지 않는다.

민중에 대한 억압의 강도가 높을수록 모순의 폭발은 더욱 파괴적인 법이다. 북한의 김정일 체제는 근대 이후 인류가 경험한 가장 억압적인 체제 중의 하나이다. 이에 대한 북한민중의 저항은 폭력적인 양상을 띨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북한체제의 변화는 중국이나 베트남식의 평화적 개혁개방의 과정을 밟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아마도 루마니아나 알바니아와 같은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격렬한- 혁명적 과정을 밟게 될 것이다.

북한사회의 장래 동태는 비단 북한주민들만이 아니라 남한의 생존환경과도 뗄 수 없는 연관성을 갖고 있다. 나아가서는 동북아 전체의 장래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다. 특히 지금 예측대로 장래 북한의 변화가 격렬한 혁명적 과정을 밟게 될 때, 그것은 동아시아 전체-그중에서도 특히 남한-에 엄청난 충격을 가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북한 체제의 붕괴가 남한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필연적으로 도래할 현실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기본적으로 북한 내부의 독재권력과 민중간의 대립을 원인으로 한 것이지 남한이나 미국의 대북정책에 의해 좌우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김정일 정권을 지원해 안정시켜주자는 주장은 -그 비인도적인 성격을 논외로 친다 하더라도- 현실적 가능성이 별로 없는 주관적 희망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필연적으로 다가올 북한체제의 붕괴상황에 대해 면밀하게 예측하고 대비해 나가는 일이다. 그렇지 못할 때 한반도는 다시 한번 역사적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북한체제의 장래에 대한 현실적 논의 필요

사안의 본질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북한체제의 장래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북한에 대한 객관적 연구가 허용되지 않았던 냉전시대의 상황을 일단 논외로 한다면 이는 과거에 북한사회의 내부 실상을 제대로 알 수 없었던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까지 그런 이유에 책임을 돌릴 수는 없다. 왜냐하면 적어도 95년 이후에는 엄청난 수의 탈북자가 발생하여 이들이 북한 내부의 실정을 생생히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마음만 있으면 북한사회의 실상을 아는데 별 어려움이 없다. 그럼에도 왜곡투성이인 북한의 공식자료나 주관적인 희망에 근거한 주장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러한 양상이 위험한 것은 필연적으로 다가올 위기상황에 대해 눈을 감게 만든다는 점에 있다.

현재 북한의 장래와 관련한 남한 내 북한연구자들의 입장은 몇 갈래로 나뉜다. 첫째는 이른바 '연착륙론'인데 김정일 정권의 주도하에 북한 사회가 점진적인 개혁개방의 길을 밟을 것으로 예측하는 입장이다. 이 입장은 이러한 낙관적인 예측에 근거하여 김정일 정권과의 협력관계를 강화하는 것을 북한사회의 변화를 촉진하는 주된 정책으로 간주한다. 이들은 김정일 정권이 개혁개방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개혁개방시 정권붕괴의 우려 때문이므로 정권을 안정화시켜주면 개혁개방노선을 취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현재 우리 사회 북한연구자들 다수의 입장이 되고 있다.

두 번째는 '체제붕괴론'의 입장으로서, 김정일 체제는 그 내부 모순과 취약성으로 인해 점진적인 개혁개방의 길을 밟을 수 없으며 일정시점에 붕괴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견해이다. 이 입장은 북한체제의 붕괴는 외부에서 막을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며 또 북한민중의 처지에서 볼 때 당연한 것이므로 우리는 이를 막는데 힘을 쏟을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수반될 위험성을 예측하고 이에 대처할 준비를 해나가는 것이 옳다고 보는 입장이다.

세 번째는 '주체형 사회주의 유지론'이라고 할만한 것인데, 북한체제를 독특하고 강인한 사회주의체제로 보고 북한의 통치엘리트들과 민중이 변화된 주변상황에 적응하면서도 어떻게든 현 체제의 골격을 유지해 나갈 것으로 보는 입장이다. 이 입장은 주로는 북한 체제를 지지하는 남한내 친김정일 세력의 논리인데, 그 영향력이 축소되어 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일부 급진운동권 사이에 강력하게 잔존하고 있는 입장이다.

이들 각각의 입장은 또 그 내부에 몇 가지씩의 변형된 논리를 가지고 있다. 나름의 논거를 제시하고 있는 이들의 입장은 그 패러다임이 너무나 달라서 어떤 예측이 옳으냐에 따라 한반도의 장래상황은 전혀 달라질 것이다. 또 그에 따라 남한과 국제사회의 대비책도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만일 우리가 이 전혀 다른 예측 사이에서 판단을 그르치게 된다면 한반도는 다시 한번 한국전쟁에 버금가는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객관적 희망을 넘어

이런 이유로 해서 북한 사회의 장래운명과 그것에 수반될 상황의 정치 군사적 함축에 대해 객관적으로 검토하는 것은 한반도의 7천만 주민들에게 바로 사활적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앞의 몇 가지 예측 중 반드시 한 가지 만을 선택할 것을 주장하지는 않으려 한다. 다만 사안이 중대한 만큼 이 문제에 관해서는 낙관적인 희망에만 사로잡히지 말고 여러 가지 우리가 바라지 않는 상황이 도래할 가능성에도 대비하는 사려 깊은 태도가 요구된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본지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앞으로 몇 회에 걸쳐 북한사회의 장래, 특히 김정일 체제 붕괴과정의 양상과 이것이 제기할 과제들에 대해 다뤄나갈 계획이다.

이 기획기사는 다음 호부터 1) 북한 연착륙 시나리오의 비현실성, 2) 김정일 체제의 내적 모순과 그 발전양상, 3) 김정일 체제 붕괴양상의 몇 가지 형태, 4) 김정일 체제 붕괴 과정이 제기할 정치.군사적 문제, 5) 북한 체제 붕괴에 대비할 남한과 국제사회의 과제의 순으로 연재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