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기사: 우리는 그동안 엎드려 있었습니까?

454납북자구출모임 출범을 지지하며


수난 이대

2000년 2월 10일 고문경관의 대명사처럼 알려져 있던 이근안씨가 드디어 재판부로부터 선고를 받았다.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을 선고한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피고인은 지난 85년 납북 어부 김성학(48)씨를 간첩으로 몰아 불법 감금하고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한 혐의가 인정된다”며 “피해자 김씨가 회복하기 어려운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입었으므로 이렇게 선고한다”고 밝혔다. 이씨가 민주화운동탄압의 공적처럼 치부되어왔던 것에 비추어 보면 그의 이러한 죄목은 좀 뜻밖이다.

북한은 휴전 이후 1955년 5월 28일 ‘대성호' 어부 10명을 강제 납치한 이후 총 3,662명의 어부를 납북했다가 3,255명을 송환했고 407명의 어부를 지금까지 돌려보내지 않고 있다. 그나마 돌아온 어부들도 ‘북한 땅’을 밟고 돌아왔다는 이유만으로 이곳에서도 핍박의 대상이 되기 일쑤였다. 연근해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어부의 처지라면 굳이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납북 어부들의 가정을 찾아가 보면 대개 사글세에 좁은 골목 한 귀퉁이에 자리잡은 집에 살고 있다고 한다. 힘없고 빽없는 서민일 뿐인 이들 어부들은 납북되었다가 돌아오면 이곳에서 또 한번 커다란 고통을 치러야 했음을 이근안씨에 대한 이번 판결문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아직 송환되지 않은 납북자 가정의 고통은 한층 더한 것이다. 1979년 네덜란드 유학중 노르웨이에 여행을 떠났다가 납북된 고상문씨 가정의 비극은 언론을 통해 잘 알려진 바와 같다. 고씨의 납북 당시 한국에 남아있었던 그의 부인은 결혼한지 1년이 채 안 된 새댁으로 임신 8개월이었다. 그 아이가 자라 여고 3학년이 되었을 때 고상문씨의 아내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994년 국제 엠네스티에서 고씨가 평양 부근 승호리수용소에 수감돼 있다는 발표가 있고 난 후 송환에 대한 기대로 맘졸였던 그의 부인은 송환이 수포로 돌아가자 남편 납북 후 정신질환에 시달리며 고통받았던 17년간의 고독을 결국 죽음으로 마감했던 것이다. 남은 가족들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한사코 거절했다. 알 권리를 주장하는 기자들에게 그들은 ‘정부도 언론도 조금도 믿지 않는다’며 따돌리기 일쑤였다. 혼자 남은 딸은 정부의 도움 없이도 다른 가족들이 맡아 키울 수 있으니 조용히 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국민된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는 가족

한국에서 납북자 문제는 그동안 ‘조용히 해 두어야 할 문제’였다. KAL기 사고나 삼풍백화점사고의 유족들이 대책위를 구성하여 책임당사자에게 항의하는 것을 보아왔지만 납북문제만은 언제나 피해자만 있을 뿐 가해자는 없는 사건으로 꼬리를 감추었다. 한국 정부는 물론이고 양심있는 지식인들조차 이 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1960년대 조선일보에서 납북자 송환을 위해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인 바 있었고 국제적 연대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미송환자 454명의 숫자가 말해 주듯 지금껏 ‘납북자 문제’는 다루기 어려운 미제로 남아 있다.

1987년 서해상에서 납치된 동진호 선원 12명의 경우 송환협상과정에 김만철씨 가족의 귀순 사건이 맞물리면서 결국 북한에 억류되고 말았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어로장 최종석씨의 장녀 우영씨는 “우리 가족은 대한민국에 의무만 있지 권리는 없는 국민인 것 같다. 지난해 일본의 집회에 가서 내가 차라리 일본인이었다면 아빠를 더 쉽게 구출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 말했다.

한 국가의 질을 따지는 데 국민 개개인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좋은 잣대가 될 듯하다. 몇 사람의 인권같은 것은 간단하게 무시하고 넘어가도 된다는 발상을 가진 나라를 선진국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부산매일신문 워싱턴 특파원 김종천 기자의 글(월간조선 95년 9월호)을 잠시 인용해 보자.

< 선진국이 별 것인가? 국민들이 안심하고 생명과 재산을 맡길 수 있는 나라이다. 그리고 국가에 봉사하다가 또는 돌발사고로 뜻하지 않은 변을 당하더라도 주검만은 온전히 수습된다는 확신을 주는 나라가 바로 선진국이다. 미국 정부가 전쟁이 끝난 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베트남의 정글과 들판을 누비면서 실종 미군의 유해를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우를 싸움터에 남겨두고 빠져 나오지 않는다”는 걸 신조로 삼고 있는 미군 당국은 적진에 두고 온 장병들의 생사 확인과 유해 송환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노이에 베트남전 실종 장병 확인 합동대책반을 설치하고 활동에 들어간 것이 92년. 그때 이후 지난 7월말까지 모두 2백 2구의 유해가 본국으로 돌아왔다. 여기에 들어간 비용은 모두 1억 9천 4백만 달러. 유해 1구를 찾아오는 데 무려 1백만 달러, 우리 돈으로 무려 8억원에 가까운 돈을 들인 셈이다. >

죽은 사람을 위한 대우가 이렇다면 산 사람에 대한 대우는 굳이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한국의 경우 어떠한가. 구구한 것은 두고 납북자 문제를 다루는 태도를 보자. 자기 의사없이 납북된 사람들이야말로 전쟁피해자와 다름없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한반도는 지금 휴전중이다. 상시적인 대결상태인 셈이다. 바로 그 이유로 납북자들은 하루 아침에 삶의 근거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예의 최우영씨가 언급한 대로 아무도 이러한 분단 또는 전쟁 피해에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보상금 한푼 받아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는 “우리 가족은 아빠와 함께 납북된 것이나 다름없었다”는 의미심장한 표현을 쓰기도 했는데 그래서 우리는 우선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국가’의 태도에 대해 진지하게 문제제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납북자 문제의 1차적 책임은 북한 정권에, 그러나, 이 땅의 목소리가 더 중요하다

물론 1차적 책임은 북한 정권에 있다. 더구나 납북자들을 간첩으로 몰아 수용소에 보낸다든지 대남 공작에 이용한다든지 하는 것에 대해서 묵과할 수 없다. 사람의 목숨을 가벼이 여기고 기본권에 대한 개념이 희박한 김정일 정권이 납북자 문제에 있어 성실한 대화상대자가 아닌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납북자들은 가족과 친지, 삶의 터전을 한국에 둔 인권을 가진 개인이며 대한민국에 일정한 의무를 바쳐온 국민이다. 이들에게 든든한 빽이 있다는 것을 먼저 우리 정부와 납북자 가족, 그리고 양심있는 시민들이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버리면 누가 이들을 기억하기라도 하겠는가? 아직 454명의 미송환자를 두고 있는 한국에 아직까지 납북자 문제를 성실하게 다뤄줄 정부기관도 가족모임도 없었다는 것은 인권 선진국을 구가하는 입장에서는 적이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정부 발표 10명의 납북자를 둔 일본사회의 적극적인 관심과 비교하면 더욱 그러하다.다행히 2000년 들어서 납북자송환운동을 진지하게 벌여나갈 주체가 마련되고 있다. 지난 12월 초 (사)NKNET과 최우영씨, 그리고 일본인 피랍자 구출운동을 벌이고 있는 현대코리아 편집장 니시오까 츠토무씨 등과의 만남으로 이 노력은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정부에서 확인해준 미송환자수 454 명, 이 숫자를 납북자 구출을 위한 상징어로 쓰기로 잠정 합의했다. 2월 말에 납북자 가족모임을 구성하고 (사)NKNET을 주축으로 한 인권단체에서 적극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 운동은 진행돼 나갈 것이다. 그동안 아픔을 묵혀 두었던 납북자 가족들, 그리고 인간의 존엄을 귀중히 여기는 각계 양심 있는 분들의 아낌없는 지원을 기다린다. 다행히 앞서 납북자 송환운동을 벌여온 일본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도움의 손길이 다가오고 있다. '454납북자구출모임’의 전도에 막힘이 없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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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1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 최우영씨 인터뷰 전문 (2000년 2월 9일 아침 7시)

※ 지난 2월 7일 한국일보에 '454납북자구출모임' 결성에 관한 기사가 나간 후 RFA방송에서 최우영씨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다음은 그 내용을 전재한 것이다.

해설 : " 한국전쟁이후 북한에 남치된 3천 8백명 가까운 사람들 가운데 450여명이 아직 북한에 억류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남한에 있는 이들 납북자의 가족들이 비정부기구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납북자 송환운동을 벌인다는 소식입니다. RFA 서울지국에서 서경주기자가 전합니다."

기자 : 북한에 억류돼 있는 납북자 454명의 가족들이 납북자들의 인권 보호와 귀환을 위한 비정부기구를 결성합니다. 이들은 지난 6일 모임을 갖고 4월에 '454납북자구출모임’이라는 비정부 기구를 출범시키기 위한 준비모임을 결성했습니다. 이 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사람은 최우영씨입니다. 최씨는 87년 1월 15일 백령도 근해에서 고기잡이를 하다 납북된 동진호 선원 최종석씨의 딸입니다. 최씨는 그 뒤로 13년 동안 아버지 최종석씨의 소식을 단 한 번도 듣지 못했습니다.

최우영 : "13년동안 한번도 없다가요 작년 1월 30일날 신문에서 봤어요. 정치범 수용소 수용자 명단에 나왔거든요. 그때 처음으로 생사확인을 했어요. 그 전까지는 정부기관이나 적십자사에 생사확인을 요청했었는데 확인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최우영씨는 87년 6월, 정부로부터 아버지 최종석씨를 비롯한 동진호 선원들이 귀환될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해 6월 김만철씨 가족이 월남하면서 북한 당국은 동진호선원과 김만철씨 일가의 교환을 요구했고 남한 정부는 북한측의 요구를 거부했습니다. 당시 여고생이었던 최우영씨는 이제는 결혼을 해 새로운 가정을 꾸몄습니다.

최우영 : “고등학교 시절 아버님이 납북됐을 때는 제가 시집갈 때는 아버지 팔짱을 끼고 웨딩드레스를 입고 갈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벌써 결혼하고 몇 년이 흘렀어요."

최우영씨를 비롯해 납북자들은 과거에는 납북자 가족들이 납북자들의 인권이나 귀환 문제를 꺼내기 힘든 분위기였다고 말합니다.

최우영 : “실제로 저희들은 가족이 북한에 의해 납치가 됐는데도 불구하고 북한과 관계가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쉬쉬했어요. 그리고 아버님에 대해서 북한에 납치됐다고 하면 북한에 계시는 아버님이나 납북자들이 다칠까봐 활동하기 힘들었어요.”

최우영씨를 비롯해서 '454납북자구출모임’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일본의 납북자 가족 모임과 연대해서 납북자 문제를 국제적인 인권문제로 부각시킬 계획입니다. 이들은 현재 ‘북한민주화 네트워크' 사무실에 전용전화를 개설해 놓고 납북자 가족들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최우영: “인권문제는 주권에 우선한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현재 저희들은 남북한만의 문제로서가 아니라 일본인들과도 관계를 가지면서 국제적인 또는 아시아적인 문제로 이슈화시켜서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 국제적 관심을 모을 계획입니다.”

현재 북한에는 454명의 납북자들이 억류돼 있습니다. 최우영씨의 아버지 최종석씨 뿐만 아니라 전 수도여고 교사 고상문씨, 재미 유학생 이재환씨 등 납북자 가운데 27명은 정치범 수용소에 수용돼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한에서는 납북자 송환문제가 적극적으로 거론되지 않았고, 정부도 이 문제에 대해서 소극적이었습니다. 납북자가 10명에 불과한 일본의 경우 ‘북조선피랍자구출회’를 비롯해서 여러 단체들이 결성돼 있고 국민서명운동 등을 통해 적극적인 납북자 귀환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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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2 일본의 한반도 관련 월간지 ‘현대 코리아'에서 기획시리즈로 내고 있는 '납북자구출운동 리포트' 시리즈 중 '납치사건 그 후-가족모임결성' 편(荒木和博,1997년 4월호)에서 요약 발췌한 납북자구출가족모임결성 초동단계 일지다.


1. '납북피해자 가족연락모임' 결성

1997년 3월 25일 납치가족 7인이 첫 모임. 니이가타의 납북자 메구미 요코다양의 부친이 대표로 선임. 연락책도 정함. 공산당 하시모토 참의원의 비서 兵本達靑씨 지속적인 관심과 도움에 힘입음.

3월 26일 외무성. 경찰청에 신고한 후 국회에서 기자회견 가짐. 가족들은 납북자 사진을 갖고 넓은 회의실 가득 모여들어 언론에 호소. 요코타 대표가 좥정부에 호소합니다 - "우리들의 아들과 딸들을 돌려보내 주세요." - 라는 호소문 읽음. 정부에 진상규명할 것, 외무성을 통한 정보수집할 것, 관계기관의 요원을 한국에 파견하여 협력 요청하여 사실 확인할 것, 북한에 강력한 송환 촉구할 것 등을 주장함.

최근에 듣기로 북한에 자연재해등이 발생해 일본이 인도적인 입장에서 식량 지원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들은 식량 지원에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인도적 입장을 운운하는 것이라면 먼저 우리들의 아들과 딸들을 돌려 받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우리들의 아들과 딸들이 소식을 끊은 지 어언 15년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 잃어버렸던 귀중한 세월은 영원히 돌려받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그 동안 아들과 딸의 귀환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우리들 가족의 마음은 도저히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부디 국민여러분께서는 우리 가족들의 처지에 깊은 동정과 이해를 해 주시고 우리들 가족전부가 하루라도 빨리 만날 수 있도록 힘이 되어주실 것을 마음으로 기원하는 바입니다. (호소문 끝부분)

2. 「요코타 메구미 납치규명구출 발기인회」활동

가족모임의 결성과 발을 맞춰 니이가타에서 발족한 모임(회장 코지마). 3월13일자 산케이신문 「어필」란에 코지마회장의 ‘메구미 구출에 지원의 손길을' 이라는 기사 게재. 같은 호의 일면에는 북한 망명 공작원 안명진씨가 메구미와 같이 납치된 사람들에 대해서 상세한 증언를 해서 코지마회장의 앞으로 ‘뭔가 도움이 되고 싶다',‘어떤 일을 하면 좋을까’라는 편지와 전화가 쇄도.

3월19일 「눈길에 딸을 잃은 한량없는 슬픔」이라는 팸플릿 작성. 부모의 호소문, 관계자로부터 받은 편지 등을 게재하는 등 경위를 설명하는 내용. 서명운동과 기금모금운동 펼침.

3. 니이가타 지역 자민당 의원 회합

니이가타 지역 자민당 중참의원이 4월1일에 회동 요코다 부인을 초대, 향후 구체적인 활동 방침을 논의. 3일에는 당 본부에 외무성·경찰청, 공안조사청의 담당관을 불러 조사상황 설명을 들음. 의원단에서는 당국의 조사가 불충분한 것은 국민의 기대를 배신하는 것이라고 엄중하게 지적하고 진상규명에 전력을 다할 것을 요청함.

4. 초당파 「북한 납치의혹 일본인 구조 의원동맹」결성

신진당을 중심으로 납치된 사람들의 구출을 위한 의원동맹 결성을 위한 움직임이 진행되고 자민당, 태양당의 출석을 얻어 4월15일에 상정.

5. 외신기자클럽에서 회견

4월 23일 현대코리아연구소와 발기인회에서는 외국인기자클럽에서 회견 개최. UN 등의 식량지원 계획과 발맞춰 납치된 사람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국제적 이해를 얻기 위함.

6. 자치단체, 지방의회에서도 대응 추진

요코타 메구미의 사건은 니이가타를 중심으로 지방의회에서도 대응 계속 추진. 니이가타 의회는 3월28일에 진정서와 의견서 채택. 니이가타현 지사는 4월 3일 외무성과 경찰청에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 요청

7. 조총련의 반발

조총련은 납치사건자체를 「조작」이라고 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