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격자통신
수난의 기록을 시작하며

북한에 언론자유가 없다는 것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극단적인 정보통제로 북한내부사정에 관한 신빙성 있는 정보를 취득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Keys는 현재로서는 검증이 어렵다는 점에서 사실확인을 위한 물증을 중시하는 일반 저널리즘 원칙에서 벗어나지만 탈북자나 북한여행자들의 증언을 여타의 정보보다 중시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수용, <목격자통신>을 개설한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대해 우리의 상식으로 여과하기 전에 일단 액면 그대로 듣기를 권한다. 증언의 내용에 ‘터무니 없는 상상’이 개재돼 있다는 판단을 내리는 것은 다음의 일이다. 단 증언채록자는 (1)사실여부에 관심을 두고 인터뷰하고, (2) 증언을 들을 때 서면, 녹음 등의 증거를 남기면서 (3) 채록자의 주관을 최대한 배제해서 기록하기로 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들의 어눌한 증언이 사실일 수 있다는 것과, 터무니 없어 보이는 증언이 상상의 산물이라 할지라도 이런 상상을 가능케 하는 현실이 북한땅에 존재한다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에 대해서다. 독자여러분의 질정을 바란다. - 편집자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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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아웃제 도입 "Three strikes, Out”

세 번 탈출하면 공개 총살하는 제도가 북한에 도입됐다. 과거에 비해 탈북자들에 대한 탄압 강도가 극도로 강화되고 있다. 1번 탈출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3년 구금, 2번 탈북 경험이 있는 사람은 6년의 실형, 세 번 탈출한 사람은 사형이다. 현재 북한의 감옥은 1년 이상 버티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1번만 탈출했다하더라도 발각될 경우 무조건 죽게 됨을 의미한다. 그외 탈북하여 넘어가서 한국인이나 기독교인을 만난 것이 발각될 경우에도 공개 총살이다. 세 번 탈출자의 공개 총살에 대한 시범 케이스로 12월 중순경 북한 혜산에서 14명이 동시에 공개 총살되었다는 소문이 탈북자들 사이에 돌고 있다. (99년 7월에 탈출한 40대 초반의 북한군 대위의 증언, 99년 10월에 청진 사회안전부 감옥에 있다 탈옥한 26세 청년의 증언)

청진의 생체 실험

한 탈북자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청진의 감옥에 끌려갔는데 사람의 심장이 꺼내어져 알코올 속에 담기는 것을 목격했다고 한다. 자기 차례가 된 그 사람은 검거 와중에 총에 맞아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에 의사가 지금은 부적격이니 회복되고 난 후 오라고 하여 일단은 생체 실험을 면했다고 한다. 그는 쇠창살 있는 감옥에 끌려가 갇혀 있으면서 생체 실험을 당하는 것을 상상하니 너무나 끔찍하여 무작정 탈옥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하여 창살을 뽑으니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거짓말 같이 그 창살이 뽑혀 도망쳤다. 이후 중국에 와서 한 조선족의 보호하에 자신이 본 것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그 조선족 집이 다시 발각돼 그 사람은 잡히고 그 조선족은 겁이 나서 탈북자의 소지품을 모두 건네주었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기록도 중국 공안의 손에 넘어가 버렸다. 탈북자는 결국 북한으로 송환되었다. 나중에 중국 공안을 통해 듣기로는 그 탈북자는 몸의 각을 뜨는 방식으로 처형되었다고 한다.

자진 신고 권유, 그리고 실종

12월 말 혜산에서는 탈북자간 있는 가정 중 자진 신고하는 집은 없었던 일로 해주겠다고 주민들에게 선전했다. 일곱 가정이 자진 신고했다. 그러나 그 가정은 그날 밤 흔적도 없이 어디론가 실려갔다. 지금까지 북한 정부의 관행상 그 가정들은 수용소로 보내졌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월경기에는 폐지 한장

한 30대 남자는 국경을 서른 번 이상 넘나들었다. 자신의 가족 11명 모두를 데려나오기 위해서였다. 그런 가운데 3번 잡혔다. 두 번은 사회안전부 감옥에, 마지막에는 국가보위부 감옥에 갇혔다. 국가보위부는 정치범을 다루는 곳이다. 그는 이 곳에서 남한 안기부 간첩이라는 판정을 받고 독방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다 1999년 1월 15일, 간수들이 술먹으러 간 사이 탈출했다.

이 곳 감옥은 지하에 있어 햇볕을 받을 수 없다. 감옥안에는 남녀가 섞여 생활한다. 배설도 통 하나를 구석에 놓아두고 하기 때문에 여자들이 배설하는 모습도 감출수 없다. 배설통이 꽉 차면 일부러 제일 힘없는 사람을 골라 통을 밖으로 나와 비우게 한다. 여자들의 월경기에는 폐지 한 장을 준다고 한다. 음식은 배추시레기에 옥수수 껍질을 몇알 넣고 소금을 뿌려 끓인 것을 준다.

남한사람 만나면 모두 간첩

북한에서는 탈북자 중 남한 사람을 만났거나 또는 만난 혐의가 있는 사람은 모두 안기부를 만난 것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처형할 때도 안기부의 지령을 받은 자라고 비난하며 처형한다. 물론 내부 反김정일 세력이 체포되어 처형될 때도 마찬가지이다. 모두 안기부와 연계되어 있다는 판정을 받는다. 사실이 어떠하든 상관없다. 북한에서는 안기부와 연계되어 처형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에 주민들도 별로 놀라워하지 않는다. 또 억울하게 죽는 사람이 있구나 정도로 생각한다.

김장군의 군대

북한의 군대는 인민의 군대가 아니라 김장군의 군대라고 불린다. 스스로도 그렇게 부른다. 탈북한 한 특전부대 대위의 증언을 들으면 현재 북한 군대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장교가 자기가 출장을 가야되는 데 돈이 얼마 필요하다고 자기 부하에게 명령을 내리면 그 부하는 자기 밑의 직속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린다. 그러면 그 병사들은 공장이나 민가에 가서 도둑질, 강도질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이나 식량을 마련해온다. 그래서 결국은 장교가 필요한 만큼 구해 온다고 한다.

한 번은 한 병사가 민가의 돼지를 잡아 자기 부대로 가져온 적이 있다고 한다. 상처 받은 돼지의 피가 길가에 떨어져있어 그 돼지의 주인은 흔적을 따라 그 부대에 찾아와 부대책임자에게 따졌다고. 오리발을 내밀 수도 없게 된 그 부대 책임자는 오히려 정색을 하며 그 사람에게 훈계를 했다. ‘우리는 김정일 장군의 직속 부하들인데 당신의 돼지를 잡아먹는 것은 오히려 영광이 아닌가? 잘 드시라고 격려하고 힘을 주어야 할 판에 도둑질했다고 따진다면 이는 김정일 장군을 욕보이는 것이다' 라고 큰 소리를 쳤다. 주인은 그 말을 듣고 아무말도 못하고 돌아갔다.

특수보병 출신 제대 상사 이야기

1군단 특수보병 출신 제대 상사로 온정리에서 근무한 한 군인(30)에 따르면 이 부대의 군인들은 하루에 800g의 쌀을 배급받았다고 한다. 북한에도 김정일 직속 호위 부대와 특수병은 그래도 굶지는 않는다. 이 사람은 군대에 10년간 근무했으며 한 번도 휴가를 나간 적이 없다. 휴가를 나가 집에 가게 되면 이후 돌아올 때 상관과 동료군인들에게 줄 선물을 마련해야 하는 압박감 때문에 모든 휴가를 반납했다고 한다. 10년 뒤 1998년 제대하여 집에 가보니 식량난 때문에 모든 가산이 탕진되고 없었다. 이 집은 아버지가 과거 노비출신으로 신분이 좋다 하여 그 전에는 아쉬울 것 없이 살았다고 한다.

이 군인은 제대 후 취직하려고 하였으나 모든 공장이 놀고 취직할 데가 없어 탈북하였다. 6개월 정도 중국에 있다가 약혼한 여자를 데려오려고 두만강을 건너려고 한다. 집이 단천인데 단천에 가면 약혼자와 밥 한 그릇과 물 한 사발을 떠넣고 양가 집 어른들과 함께 결혼식을 올릴 계획이다. 요즘 북한에서는 결혼을 할 때 주위 사람들에게는 알리지 않는다. 대접할 음식도 없고 줄 선물도 없기 때문이다. 이 군인은 7명의 탈북자와 함께 한국으로 망명하게 위해 11월 경 러시아로 넘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러시아 국경 근처에서 이 군인은 자기의 가족과 약혼자가 마음에 걸려 자기의 돈을 보태주며 나머지 7명만 보내고 러시아 행을 포기했다.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이 7명이 2000년 1월 12일 북한으로 송환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이 7명에 대한 소식을 그 군인이 한국 라디오를 통해 들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북중합작

1월 3일 중국에서 국경을 넘는 중에 잡혔다가 탈출한 탈북자(30)는 잡히면서 개머리판에 머리를 맞아 머리 앞부분이 피로 범벅이 되었다고 한다. 북한과 무역을 하는 중국 장사꾼의 도움으로 북한을 무사히 건널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중국인들에게 돈을 건네주고 북한 국경 지역인 종성에서 도강을 했다. 중국인들은 북한쪽에서 잡지 않으니 안심하고 건너라고 했고 중국인들의 말대로 도강할 때에는 북한 경비병들이 없었다. 그러나 국경 지역을 조금 벗어나 철도 건널목을 지날 무렵 주위에서 불이 비쳐지면서 잡혔다. 중국인들이 북한 군인들과 짜고 돈만 받고 팔아 넘긴 것이다. 이 사람은 1월 1일 북한 군인들이 연초 기분을 낸다고 술을 마시는 와중에 화장실 간다고 한 군인과 함께 나왔다가 옆 강둑으로 군인과 동시에 굴렀다. 다행히 두만강으로 바로 떨어져 다시 도망쳐 나왔다.

어떤 여성의 수난기

함흥 출신 한 여성은 1995년 결혼했는데 시아버지의 과거 투쟁경력으로 이 집안은 설날, 양김씨 생일날에도 많은 선물을 받았다. 그러나 이 여성의 어머니와 동생이 1997년 행방불명이 되는 바람에 이 집안도 풍지박산이 났다. 남편의 노동당 간부 채용 전형에서 처가의 이력 때문에 하급당으로 발령났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사회로 진출할 때 본가 가족의 경력과 처가 가족(아버지, 어머니, 남자 형제)의 경력을 참고한다. 이 일로 이 여성은 이혼을 하고 7개월 된 아이를 사산시켜야 했다.

그 뒤 그녀는 함흥 집에 돌아가 집안에 있는 가산을 탕진하며 하루하루를 꾸려갔다. 그러다 얼마남지 않은 재산을 몽땅 판 돈 100원을 가지고 흥남으로 가 장사를 하였다. 흥남은 남한, 미국, 유엔등으로부터 오는 구호 물자가 하선되는 곳이다. 식량, 약품 등의 이 곳 물자는 주인이 없기 때문에 운반하는 사람들이 술과 담배를 받으면 좋은 조건에 판다고 한다. 예를 들어 100원어치 술을 주면 400원어치 쌀을 받는다. 그러나 이 생활도 감시가 심하고 항상 지원 물자가 운반되는 것이 아니기에 오래 못하고 탈북할 결심을 한다. 그래서 1998년 5월에 탈북하여 조선족을 만나 결혼을 한다. 1998년 9월 2일 동네 사람들의 신고로 붙잡혔으나 남편이 6000원 벌금을 물어 풀려난다. 풀려날 때 중국 공안은 다시는 안 잡아가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10일 뒤 이제는 지방 공안이 아니라 국경 변방대에서 몰려와 잡아갔다. 그 때는 벌금도 안 통하고 무조건 북송시켰다.

중국 공안들은 북한 여성들에게 몸을 허락하면 풀어주겠다고 유혹한다고 한다. 어떤 여성은 속아넘어가나 실제로 풀려나는 경우는 없다. 그녀는 이 사실을 변방 구류장 담에 쓰인 낙서와 동료들의 이야기를 듣고 알았다. 그녀 자신도 그 유혹을 받았으나 단호히 뿌리쳤다고 한다. 몸을 허락해도 풀려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북한 청진의 노동 단련대에 가서는 20평방 미터 콘크리트 방에서 40~50명의 여성들과 함께 기거했다. 새벽 5시에서 12시까지 노동을 하면서 말이다. 여성들 중에는 임신한 여성들이 반 이상 된다고 했다. 북한 안전부원들은 임신한 여성들에게 ‘중국에서 중국 돼지 새끼를 배어왔다’며 나무나 쇠로 된 막대로 임산부의 배를 세게 찌르고 차고 한다. 그래서 99%이상은 유산이 된다. 이 여성은 다행이 임신 1개월밖에 안 돼 그와 같은 수모는 겪지 않았다.

회령의 反김정일 정서

1월 초순에 회령 사는 친척을 방문한 한 조선족 아가씨는 현재 회령에는 굶어죽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회령의 장마당에는 중국산 물품들이 많이 들어와 있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사람들의 反김정일 의식이 놀라울 정도로 높아졌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反김정일 발언이 흘러나가면 바로 처형을 받기 때문에 감히 김정일을 비판하는 발언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비록 바깥에서 공공연히 反김정일 발언을 할 수는 없지만 집안에서는 한다고 한다. 이 조선족 아가씨는 ‘김정일도 인민들 먹는 문제 책임 못 지면 물러가야지’ 하는 소리를 집안에서 들었다. 또 남한, 미국, 기독교 등에 대해서도 반감이 상당히 약화되고 있다. 反南의식은 크게 줄어들었으며 남한이 북한보다 잘 산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회령은 두만강 접경 지역이기 때문에 식량 문제가 비교적 괜찮은 편이다. 또 중국의 정보가 빨리 들어가기 때문에 사람들의 의식도 내륙지역보다 선진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