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북한의 2000년 공동사설 분석
공동사설의 위상

북한은 올해도 김일성 사망 이후 계속된 당보, 군보, 청년보의 공동사설 형식의 신년사를 발표했다. 북한에서 신년사는 이른바 교시를 제외하면 다른 공식적 문헌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상이 높다. 신년사 혹은 공동사설의(이하 공동사설) 방침을 관철하기 위한 모임이나, 결의대회가 개최되는 것은 그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공동사설은 특히 지난해를 평가하고 한 해의 방침을 전반적으로 결정하는 문건으로 북한 집권층의 주관적 의지가 집약적으로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공동사설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과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공동사설은 어디까지나 집권층의 주관적 의지와 소망을 집약적으로 반영하고 있을 뿐 객관적 실정과 전망을 담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이미 90년대의 경제위기와 사회적 혼란의 양상에서도 목격하듯이 공동사설의 전반적 분위기는 북한의 실제적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는 수사(修辭)의 수준에 머물고 있다. 공동사설의 분석에서 따라서 유의해야 할 점은 이것의 기조를 북한의 객관적 실정과 전망을 반영하는 것으로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다만 공동사설은 현재 북한집권층의 의도와 의지, 인식을 파악하는 좋은 자료라는 점은 지적해 둘 만하다.

북한 계급구조 반영되는 공동사설

북한의 공동사설은 형태적인 측면에서 볼 때 전통적으로 지난 해의 회고, 그리고 새해 과업이라는 구조로 되어 있으며, 새해 과업은 대내(對內), 대남(對南)과 통일, 그리고 국제라는 3부문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전쟁시를 제외하고는 이러한 구조에서 벗어난 적이 거의 없다. 내용적으로 공동사설은 북한사회의 계급적 구조를 전형적으로 반영한다. 즉, 수령에 대한 찬양과 인민들의 과업이라는 이중적 구조가 바로 그것이다. 수령은 철저한 찬양과 경배의 대상이며, 인민들은 수령을 옹호하는 것과 알곡생산에서부터 제국주의의 위협에 결정적 타격을 가하는 것까지 모든 것을 다 떠맡아야하는 것이 공동사설의 계급적 구조이다.

북한의 1999년 공동사설은 1998년을 회고하면서 ‘최후 승리를 위한 결정적 담보가 마련된 강행군의 해, 투쟁과 전진의 해' 라고 평가했는데, 2000년의 공동사설에서는 1999년을 ‘강성대국 건설에서 위대한 전환이 일어난 역사의 해' 라고 회고하고 있다. 공동사설이 밝히는 위대한 전환이란 한마디로 ‘유훈통치’라는 포스트 김일성 시대에서 벗어나 김정일의 통치기반이 정착되어 가는 것을 의미한다. 김정일의 국방위원장 취임과 헌법개정으로 새로운 통치기반이 조성되고 기존의 사상적, 물리적 기반을 후계자의 구조에서 영도자의 구조로 전환시키는데 북한의 집권층이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음을 의미한다.


주관적 희망과 객관적 현실의 갈등: 제2차 천리마 대진군

그러나 이러한 주관적인 ‘위대한 전환’이 실질적인 객관적 전환이 되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대대적인 운동이 요구된다. 제 2의 천리마 대진군은 이러한 김정일정권의 주관적 요구에서 출발한 새로운 인민동원방식이다. 제 2의 천리마 대진군은 여러 가지 면에서 속도전이나, 3대혁명붉은기 쟁취운동과 같은 동원운동, 증산운동과 구별된다.

다음의 도표는 1, 2차 천리마 대진군을 비교한 것이다.


객관적 상황
주체적 실정
성격

제1차 천리마대진군
(1950년대 중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
소련과 동유럽의 중단
1956년 8월 초기의 종파사건 이후 김일성의 권력장악 작업의
객관적 토대 필요
초기의 노력경쟁식 증산운동에서 사상운동으로 전환

22차 천리마대진군
(1999년부터)
동구권 붕괴에 따른 경제위기와 대외적 고립
김일성 사망이후 김정일의 대대적인 숙청사업과 군장악에 따른 권력장악과 이의 토대 요구
경제재건운동, 당의 경제적 전략노선


<표 1 제 1, 2차 천리마대진군 비교>

1995년 이후 계속된 이른바 ‘고난의 강행군' 시기는 1998년을 기점으로 마무리되고 이것을 계승하는 것이 천리마 대진군이다. 역사적으로 이 ‘대진군’을 고찰할 때 우리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위의 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천리마대진군은 첫째로 정권의 기반이 극도로 약해진 상황에서 전개되는 인민동원운동이며, 북한의 위기상황에서 벌어지는 그 어떤 대중운동보다 광범위하게 인민을 동원하는 운동이며, 북한의 역사에서 이 진군은 새로운 단계를 의미한다. 이는 남북관계의 비교에서 볼 때 더욱 분명해진다. 이미 주지하다시피 제1차 천리마는 한국의 새마을운동에 상당한 촉진제 역할을 했다.그러나 남쪽이 세계화, 정보화, 지식사회 등 탈근대의 담론을 추구하고 있는 현재, 북한이 추진하고 있는 제 2 천리마대진군은 공업부문의 전력증산운동와 생산정상화, 농업부문의 감자혁명과 토지정리사업이라는 기조에서 보여지듯이 철저한 근대화와 위기탈출의 담론에 근거하고 있다. 하지만 이 2차 대진군은 1차에 비해 상황적 유사성만 존재할 뿐 이것이 기반한 조건은 1차에 비해 매우 열악하다.

우선 1차에 비해 현재 북한인민들의 동원시스템은 물론 인민들의 ‘혁명적 열의’가 상당히 저하되어 있다. 그리고 전후 김일성의 지도력과 현재 김정일의 지도력을 비교할 때 김정일은 아직도 유훈통치, 즉 김일성 권위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기에 상대적으로 인민들에 대한 장악력이 떨어진다. 인적 자원의 동원뿐만 아니라 물적 자원의 동원에서도 2차 천리마 대진군은 1차에 비해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식량사정은 국제인도지원 단체의 원조로 개선되고 있다지만 식량난을 발생시킨 보다 고차적인 원인으로서 외환, 에너지 부족이 전혀 개선의 조짐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2차 대진군은 출발부터 좌절의 부담을 안고 출발할 수밖에 없다.공동사설은 강성대국의 3대기둥으로 사상, 총대, 과학기술을 제시하고 있다. ‘사상의 견결’함은 김정일이라는 ‘수뇌부옹위’와 ‘수령결사옹위’를 의미한다. ‘총대가 위력’하다는 것은 ‘총대로 개척된 조선혁명을 총대로 끝까지 완성’한다는 것이다. 지난 해 6월 노동신문과 근로자와의 공동논설을 통해 발표된 선군(先軍)정치는 공동사설에서 ‘총대’라는 보다 구체적이고 분명한 상징을 가지고 등장했다.

위의 공동논설에서는 ‘정치방식이란 정치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 체계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규정하며, 先軍정치는 ‘우리시대의 완성된 정치방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 先軍정치가 구체화된 총대사상이란 한마디로 ‘최고사령관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혁명적 영군체계와 軍風을 철저히' 세우는 것이다.

이에 비해 과학기술은 ‘의연히 어려운 경제’를 돌파하기 위한 유일한 지침으로 제기되지만 공동사설에서는 이에 대한 구체적 방향과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공동사설은 상당부분을 경제건설과 과학기술의 분야에 치중하고 있지만 에너지와 자원절약, 농업과 경공업의 강화 등 기존의 소위 ‘혁명적 경제전략’과 식량난 이후 제기된 경제정책과 차별성을 띠는 새로운 전략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공동사설에는 사상과 총대를 기본으로 인민의 자원을 동원하려는 의도가 바탕에 깔려 있다.

통일의 비전은 없다

올해 공동사설은 통일과 관련된 아무런 제안도, 비전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지난 시기보다 훨씬 구태의연하게 자신들의 기존의 방침을 되풀이한 것이 올해의 공동사설이다. 범민련을 포함한 지난 시기의 소위 민간교류를 높이 평가하지만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를 위한 남북간의 공식적 차원 또는 비공식 차원의 어떠한 제안도 공동사설은 제기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김일성이 내세운 조국통일 3대헌장(7.4 남북공동성명, 전 민족대단결 10대강령,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을 강조할 뿐 김정일 자신의 독자적인 통일에 대한 비전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

이는 한편으로 김정일 정권이 통일에 대한 새로운 비전이 없다는 것으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통일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남북합의서나, 정부간의 대화에 대한 언급의 부재는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는데 북한의 집권세력이 전혀 관심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히려 공동사설은 혹시라도 ‘제국주의 침략자들이 감히 덤벼든다면 인민군대는 일격에 원쑤들의 아성을 폭파해 버릴 것이며 정의의 전쟁으로 조국통일의 역사적 위업을 성취할' 것이라고 협박을 하고 있다.

2000년 공동사설은 북정권 위기의식의 바로미터

김일성 사망 이후 공동사설은 지난 시기에 비해 훨씬 격앙된 수사적 표현을 빈도 높게 사용한다. 그것은 그만큼 김정일정권의 위기의식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90년대 북한체제의 총체적 위기는 이미 위의 제2차 천리마 대진군에서도 보여지듯이 개혁과 개방이 없이는 해소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개혁과 개방은 기본적으로 체제의 수정을 전제하고 있다. 이는 결국 위기의 해소는 현 체제의 대대적인 수술을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김정일정권은 김일성 사후 계속 사상적으로는 붉은기를 강조하고 물리적으로는 군인 > 선군사상 > 총대사상이라는 인민억압체제를 강화하고, 에너지와 자원절약이라는 소극적 수단으로 위기의 심도를 완화하려 한다. 이는 전쟁을 방불케 하는 총체적 위기상황에서 사회를 극명하게 계급적 양극으로 갈라놓았다. 상층의 영향력은 상당히 제한된 수준에서만 발휘될 뿐이며, 하층의 사회적 양상은 통제가 이완된 무정부적인 상황으로 전이된다. 경제적 상황의 일정한 호조는 따라서 이제 정권의 안전을 보장하기보다는 오히려 상하간의 괴리를 심화시키고 하층 내에서의 체제일탈 흐름을 가속화할 수 있다.

북한의 신년사 혹은 공동사설은 역사적으로 볼 때 북한사회가 안정적일 때는 자신감 있고, 안정적 표현을 쓰지만, 불안정하고 위기가 깊어질 때 가장 격렬하고 공격적인 언사를 사용한다.

2000년 공동사설은 오늘 북한정권의 위기감의 바로미터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