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한국 '진보' 지식인들의 '답보' 혹은 '퇴보'
지난 해 10월 한겨레신문의 인터넷을 통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남한내의 북한정권에 대한 민주화운동의 필요성’에 대해 49%가 긍정하고 44%가 부정하는 결과가 나왔다. 한겨레신문 독자층의 성향이나 젊은층 위주의 네티즌 대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결과를 근거로 적어도 국민 절반 이상이 북한민주화운동의 필요성을 공감한다고 추정해 볼 수있다. 그런데 한국 지식인들의 북한민주화운동에 대한 관심은 ‘국민 절반의 공감’이라는 평균치에 못 미친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우선 지식인들이 주도하고 있는 대표적인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와 ‘경실련’이 1999년 한해동안 발표한 각종 성명서를 살펴보면 북한의 인권에 관한 주제는 단 한 건도 찾아볼 수 없다. 최근 탈북자 7인이 러시아아 중국정부를 거쳐 다시 북한에 송환되는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도 이들 단체는 공개적인 관심표시를 하지 않았다. 물론 이들 단체는 대북 식량지원 활동에는 열의를 보여왔다. 그러나 북한정권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사실상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이는 서구나 일본의 지식인들이 좌우를 막론하고 북한의 인권문제를 이슈화하고 있는 상황과는 대조적이다. 우리나라의 인권단체들 또한 아직은 북한민주화라는 주제를 배제하고 있다. 시민단체와 인권단체들이 지식인 일반을 대변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우리사회에서 진보성향의 지식인들이 점차 다수를 점해가고 있기 때문에 이들 단체의 동향이 지식인의 인식 경향을 살피는 데 유력한 지표가 될 수 있다. 지식인들이 북한민주화에 대해 선도하는 입장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국민 일반 수준에도 못 미치는 관심부족의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 인권문제는 국제기구나 제3국이 우회적으로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북미회담을 통한 미사일 발사유예 등 모처럼 화해무드에서 북한을 자극하는 것도 부적절한 선택이다", “통일을 위해선 북한 정권과 공존 원칙을 지켜야 한다”모 일간지의 지상토론에서 나온 북한민주화운동에 대한 반대토론의 일부 내용이다. 북한정권을 공격하는 또는 자극하는 행위는 평화통일에 역행하는 작용을 한다는 우려를 갖고 있는 것이다. 북한정권을 통일 협상의 상대로 인정하려면 그 존재를 부정하는 반대운동을 해서는 안되며, 다소 문제가 있어도 북한정권을 용인하는 태도를 보여야 통일협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반드시 김정일정권을 통일의 대상으로 삼아야만 할까? 정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통일논의의 상대로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정권이 민의에 기초하고 있는지 여부를 중심으로 합법성을 철저히 따지는 것이 오늘날의 추세이기 때문이다. 진보적 지식인들이 북한정권의 성격에 관계없이 도식적으로 그 인정에 집착하는 데는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 진보세력은 북한정권이 사회주의를 표방한다는 것 때문에 적대는 당연하다는 반공주의에 대해 반대운동을 펴왔다. 이념대결식으로 통일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주장을 꾸준히 펴온 것이다. 그런데 지금 북한정권에 대한 논의의 초점은 이념문제가 아니다. 지극히 보편적인 인권의 문제, 민중생존의 문제가 다루어지고 있다. 북한 민주화운동에 대해 이념대결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이 우리 지식사회의 ‘북한 무관심’의 중요한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북한민주화에 대한 문제제기를 극우적 태도로 간주하는 경향은 쉽게 발견된다.한편 북한연착륙에 대한 기대 또한 북한민주화운동에 대한 소극성을 낳는 원인으로 보인다. 현 정권 주도하에 북한사회가 안정을 찾고 나아가 개방이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라는 점에서 연착륙에 대한 희망은 종종 그 객관적 가능성을 냉철하게 따지는 것을 방해한다. 북한의 연착륙의 가능성이 낮다고 한다면,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들을 예견할 수 있다. 이때는 ‘북한사회의 민주화’라는 누구에게도 분명한 목표제시가 있어야만 대단히 가변적인 상황들을 능동적으로 타개해나가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런데 북한연착륙에 관한 우리사회의 논의들을 지켜보면 지나치게 주관적인 희망과 당위에 매달려서, 그것이 불가능해질 경우 필요한 대비를 할 수 없는 단선적인 상황으로 몰고가는 위험성이 발견된다.

어쨌든 연착륙론 또한 하나의 가설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기대만으로 북한민주화에 대한 관심을 거세하는 것은 과학적인 태도라고 볼 수는 없다. 한국사회의 발전과정에서 지식인들이 해온 역할을 되새겨본다면 북한민주화 운동의 진전도 지식인들의 관심에 크게 달려있을 것이다.이때 도식에 얽매이지 않고 현실에 대한 집요한 탐구정신이 절실하다. 우리 지식사회에서 북한민주화에 대한 성역없는 활발한 토론이 벌어지는 것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