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독재자에게만 쬐이는 햇볕”
탈북자 단체 등, 정부 대북인권결의안 기권에 “국제무대서 패션쇼하나”거센 반발
2007-11-22 17:18:20
정부가 유엔 총회에 상정된 대북인권결의안 표결을 기권한 것과 관련, 관련 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국제무대에서 패션쇼라도 하겠다는 거냐” “독재자에게만 햇볕을 쬐이고 있다”고 비판하며 항의 기자회견을 여는 등 정부에 조직적 움직임으로 맞대응에 나선 것.
“독재자의 비위 맞추는 정치적 인권만 있어”
북한민주화위원회와 자유북한방송 등 19개 탈북자 관련 단체들은 22일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 후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제보다 더 악독한 독재체제를 유지하는 김정일 정권 아래서 참혹하게 유린당하는 북녘 형제들의 고통에 고개를 돌린 노무현 정권은 이완용의 죄를 능가했다”고 신랄히 비판했다.
단체들은 정부의 결의안 표결 기권을 “민족반역행위” “직무유기” 등으로 규정하며 “유엔 대북인권결의안 표결에 수차례 기권, 불참하던 정부가 세계에서 유례없는 폭압정권아래 무참하게 죽어가는 동포들의 인권 유린을 또 눈감고 두둔했다”고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또 이들은 “인간백정 김정일 치하에서 죽어가는 우리 형제들의 인권 결의안 표결에 기권한 노무현 정부는 북한 2300만의 적이자 민족반역집단”이라면서 “지금까지 진행된 남북관계라는 것도 김정일에게 한없이 퍼주고 달래며 비위를 맞추어 유지되는 빈껍데기였을 뿐”이라고 힐난했다.
단체들은 “통일 된 후 노무현 정부가 저지른 반인륜적인 패륜범죄는 북한 동포들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의 공식사과와 통일부 이재정 장관과의 면담, 정부의 북한 인권 개선 노력을 촉구하는 서한을 통일부에 전달했다.
앞서 국내외 북한인권 및 탈북자 관련 38개 단체가 연합한 북한인권단체연합회(이하 연합회)도 21일 성명을 내고 “자신의 부모, 형제의 사형장면을 직접 보고노 눈물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북한 동포들은 음지에서 갖은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도 노무현 정권은 오로지 독재자에게만 햇볕을 쬐이고 있다”고 반발했다.
연합회는 “북한의 인권상황은 여전히 최악의 상황에 있는데 지난해는 찬성표를 던졌다가 올해는 기권표를 던지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노무현 정권은 김정일 정권과 평화와 대북지원에 열중하고 있으나 자유와 인권이 말살된 상태에서의 평화는 거짓일 수 밖에 없고 조건 없는 대북지원은 결국 폭정지원에 지나지 않는 바, 북한 인권 문제는 인류 보편적인 문제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이사장 유세희)도 같은 날 논평을 통해 “정부의 결의안 표결 기권은 기회주의적이고 비양심적인 행위”라면서 “표결 전에는 언론을 통해 찬성할 듯 정보를 흘려 국민들과 시민단체의 반발을 무마시키려 하더니 막상 표결에서는 준비라도 해둔 듯 ‘덥석’ 기권을 해버리는 모습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대립각을 세웠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는 “정부는 국제무대를 상대로 필요에 따라 이옷, 저옷 갈아입는 ‘패션쇼’라도 보여주겠다는 것인지 궁금하다”며 “‘남북관계의 특수성’만을 내세워 독재자의 비위를 맞추는 특수한 인권, 정치적 인권만이 존재하는 한국의 인권기준에 국민들은 자랑스러워해야 하느냐”고 질타했다.
“인권은 보편적 문제…북한 눈치보기 언제까지 하려나”
탈북자 및 북한인권 관련 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기본 이유는 ´명분없는 기권´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인권이 북한만의 ‘특수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인류 보편의 가치이자 남한의 자유민주주체제의 근간인 만큼 북한 인권문제를 묵과해선 안 된다는 것.
더욱이 북핵실험 당시에는 찬성표를 던졌던 정부가 1년 만에 태도를 바꾼 것은 남북정상회담과 종전선언을 염두한 ‘북한 눈치보기’라는 지적이다.
실제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21일 대북인권결의안 표결에서 기권한 것은 “최근 남북관계 진전 상황 등을 고려한” 노 대통령의 지시였다고 밝혔다.
단체들은 통일, 평화, 종전 등에 강한 의지를 보이는 정부가 북한 내부의 자발적인 변화를 유인할 주민들의 인권 개선에 미온적 태도를 취하는 것은 모순된 행동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탈북자 단체 관계자는 “탈북자들 사이에서는 ‘자유를 찾아 내려왔더니 평양에 되돌아간 것 같아 무섭다’ ‘대통령의 인권 사전에는 독재자만 인권이 있고 힘없는 주민들은 조용히 있어야 한다는 말이라도 적혀 있나 보다’ 자조섞인 우스개 소리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고 말했다. 탈북자들이 느끼기에 우리 정부가 북한에 지나치게 유화적이라는 얘기다.
또 이 탈북자는 “지난번 남북정상회담에서 노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을 기원하는 축배사를 했다는 말에 많은 탈북자들이 ‘김정일이 오래 살면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겠냐’ ‘북에 두고 온 가족 생각에 속을 끓이다 우리가 먼저 죽겠다’는 푸념도 적지 않았다”고 전했다.
단체들은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과 북한 민주화는 별개의 문제가 아님을 강조한다. 김일성-김정일 부자 상속으로 공고해진 선군독재체제를 남한식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편입시키려면 개혁개방과 함께 국제적 기준에 맞는 내부의 변화를 강제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단체들은 정부가 주장하는 ‘남북관계의 특수성’에도 불만을 토로한다. “북한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겠다는 말의 외교적 표현”이라는 것이 단체들의 주장. 이들은 ‘범죄자와 초등학생의 인권마저 보호하는 인권 대통령이 북한 내부의 문제라는 이유로 침묵하는 건 옳지 못하다’며 ‘헌법상 우리 영토인 북한에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건 북한 주민들로 하여금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봤을 때 남한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에 따라 단체들은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이자 사무총장을 배출한 남한이 ‘원칙’과 ‘상식’에 따라 북한에 압력을 가해야 한다며 정부의 공식 사과 등을 촉구한다는 방침이다.
[변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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