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관심사로 떠오른 '북한 인권' (2005년 8월 3일)

지난달 19일 미국의 워싱턴DC에서는 프리덤하우스 주최로 대규모 ‘북한인권국제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는 1000여명의 한국과 미국 관계자들이 참가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이번 대회 참가를 통해 느낀 것은 최근 미국 내 북한인권 문제에 관한 흐름에 상당한 변화가 감지된다는 것이다. 그동안 미국 내에서 북한인권 아젠다를 주도해왔던 세력은 정치적으로는 공화당 쪽이 압도적이었고, 종교적으로는 기독교 우파들의 전유물처럼 진행되어 왔다. 미국 의회에서 북한인권법이 상정되고 통과되는 데 이들은 큰 역할을 수행했다.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국 민주당 주류는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목소리가 높지 않았다. 그 이유는 공화당이 먼저 이슈를 선점하여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니 자기들도 함께 목소리를 높이면 뒤따라간다는 인상을 주어 정치적으로 득이 될 것이 별로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또 다른 이유는 인권보다는 핵 문제가 우선이고, 인권을 이야기하면 핵 문제를 푸는 것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에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7월 13일자 ‘볼티모어 선’지에 미국 내 대표적 진보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의 마이클 오핸런과 민주당원인 부르스 리(한국계)가 민주당도 북한인권 문제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는 내용의 공동칼럼을 기고했다. 그리고 7월 24일 뉴욕타임스에 니컬러스 크리스토프도 북한인권 문제에 미국의 진보 진영이 나서야 한다는 글을 썼다. 오핸런과 크리스토프는 대표적인 반(反)부시 진영 사람들이다.

이러한 변화는 워싱턴DC에서 만난 국제구호단체들의 경우에도 반영되고 있다. 즉, 그동안 인도적 지원에만 관심을 집중해 왔는데 여기에 얼핏 상충돼 보이는 ‘인권’이라는 아젠다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이처럼 미국에서 북한인권 문제는 이제 좌·우나 진보·보수를 떠나 전국적 관심으로 등장하고 있다.

한편 전통적으로 인권 이슈에 매우 민감한 유럽연합(EU) 국가들은 북한과의 수교 조건으로 인권에 관한 대화를 내걸 정도이다. 체코의 하벨 전 대통령은 공산주의 치하에서 정치범이었던 자신의 경험을 잊지 않고 몇 년 전부터 북한의 인권 유린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왔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메리 로빈슨 전(前) 아일랜드 대통령은 강연에서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도 올해 ‘뉴요커’ 잡지에 “진보주의 정치의 최고 수치는 어느 누구도 북한의 넌더리나는 정권에 대해 거리에 나가 플래카드를 내걸고 시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300만의 북한 주민들은 노예와 같은 삶을 살고 있지만 세계의 누구도 이를 항의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유럽에서도 그동안 NGO를 주축으로 제기되던 북한인권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제는 주요 정치인들의 관심사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국제적 흐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만 북한인권 문제를 이야기하는 자체를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진보’를 표방하는 여당이나 정부 차원에서 이런 경향은 더욱 심각하다. 최근 청와대 당국자가 북한인권에 관한 관심을 표명하고 북한인권 관련자들을 면담을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러한 시도가 북한인권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이 부담스러워진 한국 정부가 단지 체면치레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방향전환을 위한 것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렇지 않을 때 한국은 핵문제와 더불어 북한인권 문제도 해결의 당사자가 아니라 관객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고 이는 민족사에 돌이킬 수 없는 죄를 범하는 일이다.